
예상했던 결말이긴 하지만, 휴대폰을 바꿨다. 2년 3개월간 열심히 써서 그런지 보조금을 28만원이나 준단다. 고칠까 말까를 망설이던 내 마음은 바꾸는 걸로 확정되었는데, 고치는 비용이 7만원이고 사는 비용이 11만원이니 지극히 당연한 결정이었다. 다른 건 안보고 배터리가 큰 걸 골랐는데, 그러다보니 휴대폰이 겁나게 무거워서 목에 걸면 부담스럽다. 폴더형만 써보다 슬라이드형을 쓰니 괜히 뿌듯하고, 새로 샀으니 여기저기 전화를 해보고 싶은데, 안타까운 건 전화할 사람이 별로 없다는 사실. 할 수 없이 야클님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잘 받지도 않고, 받고 나서도 “전화 왜했어요?”라고 한다. 야속한 사람.
그 휴대폰 최대의 장점은 사진이 선명하게 나온다는 것. 나중에 알았는데 휴대폰의 카메라가 무려 200만 화소다. 생애 처음으로 디카 수준의 카메라를 갖게 된 것까지는 좋았지만, 안타까운 건 찍을 게 없다는 사실. 그전 카메라로 모자 쓴 모습의 셀카를 하도 찍어서 그런지 또 찍으려는 생각만 해도 멀미가 나고, 그렇다고 내 곁에 아름다운 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오죽하면 내가 중년 아저씨인 테니스 멤버들을 한 장씩 찍었겠는가? 아, 진인이 결혼식 때 만난 귀여운 여자 동창 사진이 하나 있다. 다른 여자들은 사진을 찍으려면 일단 얼굴을 가리는 반면 그녀는 포즈를 취했고, 내가 배경화면으로 쓰겠다는 어이없는 요구를 했더니 “그럼 고맙지”라고 한다. 역시 멋진 친구다. 세실님과 달밤님을 비롯한 알라딘 미녀 분들은 내 촬영에 응해 주실까?
휴대폰을 사고 며칠간은-금요일에 샀으니 아직 닷새밖에 안지났지만-그전 휴대폰이 그리웠다. 망가져서 폴더가 안접히는 수준까지 간 녀석이지만, 2년이 넘게 살인적인 통화시간을 견뎌 왔던 당나귀같은 얘였지. 특히나 전화가 왔다는 걸 알리는 우렁찬 타잔 소리가 그리웠다 (이 휴대폰에는 그런 벨소리가 없다). 모닝콜을 아주 확실하게 해주는 것도 그 휴대폰의 장점이었는데, 지금 휴대폰도 그 기능에 있어서는 만만치 않다는 걸 알게 된 뒤부터는 옛 것에 대한 그리움을 접어 버렸다. 가장 중요한 거, 그전 휴대폰은 LG 거라 문자 체계가 달라서 쓰기가 영 불편했다. 그래서 난 그 휴대폰으로 문자가 오면 애니콜로 답장을 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 (게다가 30통인가가 무료다).
새로 산 거 티를 내느라고 아직 비닐도 안뜯고 있는데, 세월이란 건 무상한 놈인지라 지금의 새 휴대폰이 낡아 보일 날이 조만간 올 것이다. 그때 내 나이는 도대체 몇 살이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