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굴이 갸름해졌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지만, 그게 체중으로 입증되지 않는 건 분명 슬픈 일이다. 하지만 스스로 생각해볼 때 난 지금 살이 빠지는 과도기에 있다. 아플 때 약을 먹으면 병이 치유되느라 증상이 악화된 것처럼 보이듯, 살이 빠질 때는 일시적으로 체중이 증가하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난 우기고 있다. 내가 다이어트에 성공한 비결을 몇 개만 써본다.
1. 과중한 학교 일
이번 학기 들어 일이 좀 많아졌다. 퇴근을 하려면 쌓인 일들이 눈에 걸려 마음이 불편하다. 내 술 약속이 줄어든 이유도 다 여기에 있는데, 밤 8시 퇴근버스를 타고 집에 가니 도착을 하면 10시가 넘는다. 과거에는 술약속을 거절하는 게 선약된 술자리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순전 일 때문이다. 먼저 마시잔 얘기를 안하고, “이번 주랑 다음주는 안돼!”를 입에 달고 살았더니 술마시자는 사람도 많이 줄었다. 오늘 마시고 토요일에 마시면 두 번으로 이번주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
* 첫째: 일에 치여 살고 바쁜 척을 하자.
2. 밥
우리집은 엥겔계수가 높은 집이다. 나랑 엄마, 할머니 이렇게 세식구만 사는데도 그렇다. 우리 형제들이 기를 쓰고 우리집에 와서 밥을 먹으려는 것도 자기 집에서는 못먹던 진수성찬을 먹을 수 있기 때문. 그러니 살을 빼려면 집에서 밥을 먹지 말아야 했다. 난 그래서 요즘 병원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학기 초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할 때 “우리 병원에서 밥을 먹고 나면 다른 데 가서 반찬투정 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한 적이 있는데, 평소에도 그리 맛있는 건 아니지만 가끔씩 “너무 하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반찬이 안 좋다. 어제 같은 경우 저녁을 거기서 먹었는데, 배가 꽤 고팠음에도 불구하고 밥을 남겼다. 구내에 이런 좋은 환경을 가진 식당이 있다는 건 나에게 좋은 기회일 수 있다. 앞으로는 무조건 병원식당이다.
* 두번째: 주변 환경을 잘 이용하자.
3. 식탐
6시쯤 병원식당에서 밥을 먹고 밤 10시가 넘어 집에 들어가면 괜히 배가 고프다. 난 그럴 때 라면을 끓여먹거나 엄마의 유혹에 넘어가 밥을 먹곤 했다. 하지만 식탐을 버리지 못하면 살을 뺄 수가 없는 법이다. 내가 무지하게 예뻐하는 의예과 조교 선생, 언제 그녀와 밥을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속도가 무지하게 빠르다. 경쟁적으로 빨리 먹다가 지쳐서 이랬다.
“정말 빨리 드시네요.”
그녀의 대답, “전 말이죠, 눈앞에 먹을 게 있으면 참지를 못해요. 빨리 입으로 넣어야 직성이 풀려요.”
내게는 여전히 예쁘지만, 그녀가 날씬한 편이 아닌 이유도 거기에 있으리라. 식탐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배가 고플 때마다 고통을 가하는 거다. 최근 며칠간 난 식사 시간 외에 배가 고픈 경우, 옥상에 올라가 줄넘기를 했다(그것도 두 번넘기로...). 배가 고플 때마다 반복하고 나니까 더 이상 배가 안고프게 된다. 왜? 배가 고프다는 신호를 보내면 이 인간이 줄넘기를 함으로써 고통을 가할 게 뻔하기 때문. 부실한 저녁을 먹은 어제도 밤 12시가 넘도록 배가 고프지 않았던 것은 내 몸이 충분히 ‘학습’되었기 때문이다.
* 세 번째: 식탐에 죄의식을 갖게 만들자.
4. 꾸준한 운동
러닝머신을 사가지고 나만큼 열심히 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걸 산지가 벌써 5년 째, 무게를 망각하고 앉았다가 앞부분이 뽀개졌지만 달리는 데는 지장이 없다. 아무리 못해도 일주에 두 번 이상은 꼭 러닝머신을 하는데, 밖을 달리는 것보다야 못해도 6킬로쯤 뛰면 제법 운동은 된다.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사람 치고 한가지 이상 운동을 안하는 경우는 없는 법, 러닝머신은 괜찮은 운동이다. 오늘도 새벽 두시에 일어나 김병현이 던지는 걸 보면서 30여분을 뛰었는데, 화장실에 가던 할머니는 밤중에 뛰는 날 보고 무척이나 대견해하셨다. 뛰고 난 뒤 샤워를 하고 거울을 보니 얼굴이 갸름하다 못해 핼쑥해져 있다.
* 네 번째: 한가지 이상의 운동을 하자.
그밖에 난 TV를 보면서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남들이 펼쳐놓는 간식에는 일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다이어트는 어느 한가지만 가지고 성공할 수가 없으며, 여러 분야에서 노력한 대가가 모여 결실을 맺는 종합예술이다. 쉬운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할 것도 없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그 길 어딘가에 핼쑥해진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