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 노혜경이 학생 시절, 존경하는 시인이 학교에 와서 강연을 했다. 신이 난 노혜경은 뒤풀이 자리에서 시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봤지만, 그 시인은 대뜸 이렇게 말했다.
“자네 오늘밤 나한테 수청 들지 않겠나?”
노혜경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을 때, 선배라는 자가 한마디 덧붙였다.
“너 좋겠다. 낙점을 받았잖아” (참고문헌: 페니스 파시즘)
과거 성희롱이 만연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 꼴을 당해도 누구에게 하소연할 길이 없고, 문제가 생기면 당한 자가 오히려 사직을 해야 하던 암담한 시절이. 하지만 이젠 시대가 달라졌다. 민주화가 진전과 더불어 신장된 여권은 더 이상 그런 행태가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게 만들었다. 검사가 여기자의 가슴을 만졌다는 이유로 좌천이 되고, 상습적으로 성희롱을 해온 장군이 옷을 벗는다(으음, 이건 표현이 좀 이상하군). 행여 성희롱으로 고소될까봐 다들 행동을 조심하는 작금의 시대에 문인들만은 아직도 과거의 습속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강준만은 여기에 대해 문화특권주의라는 말을 붙인다. 문인들은 뭔가 대단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고, 그러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기행은 사회적으로 용인된다는 거다. 박남철 시인이 성폭행을 했던 것도 그런 정서의 연장이고, 거기에 대해 항의한 김모 시인에게 박남철이 시를 빙자한 엄청난 성폭력을 가했을 때 문단에서 기이할 정도로 침묵을 지킨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술먹고 전봇대랑 부딪히는 거야 얼마든지 괜찮아도, 성폭력을 저지르는 게 용인되어야 할만큼 문인이 대단한 존재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봐야되지 않을까?
소설가 지망생을 만났다. 어딘가에 응모한다면서 대단한 소설을 써가지고 왔기에 좀 읽어봤다. 문외한인 내가 보기엔 문장이 아주 발랄하고 나름의 재미도 있었는데, 끝이 좀 약했다. 이런저런 평을 하면서 말했다.
“저기 내가 전에 사귀던 여친을 보니까 그 작품 가지고 20명 이상이 모여서 품평회도 하고, 교수들이 친절하게 고쳐주기도 하는 모양이던데, 대학원 다닐 때 교수한테 좀 봐달라고 하지 그래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안그래도 그것 때문에 좀 봐달라고 했더니 교수란 놈이 굳이 자기 혼자 사는 오피스텔로 오라고 했단다. 내키지 않았음에도 원고를 가지고 갔더니 원고는 거들떠도 안보고 와인을 마실 채비를 해놓고는 이렇게 말하더란다.
“오늘 여기서 자고가지 그래?”
그 후 그녀는 그 사람 전화도 잘 안받는다고 한다. 그 인간은 평소에도 수업이 끝나면 꼭 술마시는 노래방에 가서 그렇게 블루스를 추자고 추근댔는데, 그녀가 계속 거절하니까 다른 선배들이 “너 참 독하다”며 그녀를 타박했단다. 누가 독한지 마구 헷갈리려고 한다. 도대체 문학을 하는 사람들의 가치관은 왜 다 이모양일까?
그녀의 말에 의하면, 물고기를 소재로 한 몽환적인 소설을 썼던 유명 소설가는 수업이 끝나고 난 뒤의 회식 자리에서 술에 취해 옆에 앉은 여인을 껴안고 “오늘 집에가지 말고 나랑 자자”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고 한다. 사생활과 소설은 물론 다르겠지만, 이런 의혹이 든다. 그의 소설에 나오는 쿨한 섹스들은 혹시 자기의 실제 생활이 아닐까? 자아도취에 빠진 문인들에게 급격한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노상방뇨, 취해서 길바닥에 드러눕기, 한달간 샤워안하기, 이런 것들은 해오던대로 그냥 해도 좋다. 하지만 성희롱은 그만 하는 게 좋겠다. 문학이란 게 성희롱을 위한 방패는 아니잖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