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돈을 찍어내는 제왕, 연준 - 미국 중앙은행은 어떻게 세계 경제를 망가뜨렸나
크리스토퍼 레너드 지음, 김승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3년 5월
평점 :
연방준비제도는 사실 중앙은행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이곳은 반은 민간은행이며 반은 정부기관이다. 이는 미국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미국은 유럽의 왕정에 반발하여 생겨난 국가로 태생자체가 중앙집권을 싫어한다. 그렇기에 미국은 역사상 중앙은행을 두 번 만든 적이 있지만 단기간이었고 조건을 제한하고 기간이 지나자 바로 없앴다. 그래서 지금의 연준은 하나가 아니라 지역 연방준비은행의 네트워크다. 그래서 각 지역엔 지역 연방준비은행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은 전체적으로 워싱턴의 지휘를 받는다. 물론 이 연방준비은행은 전체를 아우를 필요가 강해지면서 워싱턴의 입김이 강해져왔다. 워싱턴의 연준 이사회에는 7명의 이사가 있다. 이들은 대통령이 지명하며 의회의 인준을 받는 공직자다. 이들은 이사회의 과반을 차지하기에 사실상 안건설정을 한다.
연준은 틍화공급과 관련한 전권을 갖는다. 하지만 이 과정을 민간은행을 거쳐서 한다. 그리고 선출기구가 아니기에 유권자의 영향을 받진 않지만 자신들의 통화 정책에 대해서 정치인들에게 설명할 의무를 갖는다.
연준은 단 한 가지 방법으로 돈을 창출한다. 뉴욕 연방은행의 트레이더들은 프라이머리 딜러라고 불리는 약 24곳의 금융기관들과 늘 금융거래를 한다. 프라이머리 딜러 등 은행들은 연준에 계좌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을 지급준비금 계좌라고 한다. 연준은 이 프라이머리 딜러들이 갖고 있는 채권을 구매하거나 이들에게 채권을 파는 형식으로 이들의 지급준비금 계좌의 통화량을 조절한다. 이 방식으로 통화량이 결정되고 금리가 결정되는 형식이다.
1970년대는 미국은 자산과 물가가 모두 오르는 대인플레이션 시대였다. 당시는 연준이 은행들을 철저히 통제하는 시대였다. 은행들은 대출을 해주고 담보를 잡는데. 이 담보가 자산이 된다. 담보 가치가 높으면 은행은 더 높은 대출이 가능했다. 연준은 이를 감시하는 과정에서 담보가치가 은행이 생각하는 것보다 낮다고 생각하면 은행은 반드시 그 차이 만큼 위험을 보충하기 위해 대손충당금을 준비해야만 했다.
70년대 미국은 자산이 인플레되면서 은행이 잡고 있던 담보가치도 자연히 커지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은행은 더욱 공격적으로 대출을 하게 되었는데 연준은 그럼에도 낮은 금리를 유지하여 사태를 키워나갔다. 금리가 낮으니 가계와 기업을 저축도 하지 않았다. 당시 연준이 이런 인플레에도 불구하고 금리를 낮춘것은 실업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소비재와 자산의 가격을 계속 끌어올렸다.
70년대 펜스웨이 은행은 저금리 시대에 지나치게 위험한 사업을 벌였다. 대출을 증권화하였고, 페이퍼 컴퍼니등을 동원해 갖은 금융수법으로 자기 자본금 이상의 대출을 벌였다. 결국 금리가 인상되자 도산의 위험에 처했다 연준은 펜스웨이를 망하게 두기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생각지 못한 문제가 있었다. 지루하고 안전한 은행으로 생각한 콘티넨탈은행이었다. 여기는 미국에서 가장 큰 상업, 산업대출은행이었다. 콘티넨탈은 은행과도 거래가 많았는데 무려 2300곳이었다. 콘티넨탈은 펜스웨이와 거래가 많았다. 그래서 같이 위험에 처한 것이다. 콘티넨탈의 예금 중 절반 이상이 예금자보호제도의 보호대상이었다. 때문에 펜스웨이 사태로 예금자보호제도는 유례없는 압박을 겪게 되었다. 콘티넨탈마저 버릴 수 없었던 연준은 역사상 처음으로 콘티넨탈에 15억 달러를 구제금융패키지로 제공한다. 이러한 콘티넨탈 구제금융은 어떤 은행이 충분히 크고 다른 은행과 연루되어 위험을 많이 퍼뜨릴수록 연준에 의해 구제될 것이라는 안 좋은 선례를 남기게 된다.
80년대 폴볼커의 고금리 시대를 지나자 어느 정도 회복된 월가는 80년대 중후반 막대한 대출과 펑펑쓰는 소비가 특징인 골드러시 시대를 경험한다. 이 시기는 기업사냥꾼의 시기다. 영화 귀여운 여인에서 리처드 기어가 바로 이 기업사냥꾼으로 나왔다. 이들은 싼 비용으로 회사를 사들인 뒤 다른 회사와 합병 분할 후 되팔아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
미국의 90년대는 더 좋아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경제가 꾸준히 성장하고 있음에도 고용이 증가하지 않았다. 이는 70년대 부터 이어진 타격으로 80년대의 고금리로 인해 그 때의 빚을 가계와 기업이 아직도 상환중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연준 의장인 그린스펀은 경제가 성장함에도 금리를 낮추어 돈을 쉽게 쓸 수 있는 이지머니 시대의 시작을 열게 된다. 90년대의 연준은 과거와 달리 인플레에서 자산을 제거하고 소비자 물가 인플레이션만 산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이전과 달리 소비자 물가만 오르지 않는다면 연준은 얼마든지 통화 공급을 늘리고 금리를 내릴 수 있게 되었다.
90년대 말 그린스펀은 소비자 물가 상승없이도 경제성장을 촉진하여 칭송을 받았다. 하지만 90년대 내내 이뤄진 낮은 금리로 자산가격이 상당히 올랐다. 99년 S&P 지수가 19.5%상승하였고 나스닥은 무려 80%나 올랐다. 그 결과 2000년의 주식시장 붕괴가 일어난다. 3-11월 사이 280개 인터넷 주식 1조 7600억 달러 가치가 증발한다. 그린스펀은 그간 자산 인플레는 무시해왔고 막상 자산 가격이 붕괴하자 개입해서 시스템을 구제한다.
이런 버블위기 국면 타개를 위해 연준은 지속적으로 금리를 더 인하하였고 이는 2000년대 미국주택가격상승으로 이어진다. 2003-2007년까지 미국의 주택시장은 무려 38%나 상승한다. 주식시장 붕괴를 막기 위해 금리를 6년 간 낮게 유지하자 미국의 금융시스템은 다시 값싼 돈이 풍부히 흐르는 환경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작은 파장이 일어나는데 2007년 8월 프랑스의 거대은행인 BNP파비라바 주택대출에 기반한 몇몇 파생 상품의 정확한 가격에 대해 의문을 표현한 것이다. 이는 은행 건정성의 기저인 자산 가치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진다. 거대한 파장이 흘러 1년 사이 미국 주택가격의 10%가 빠졌고 2009년엔 20%가 하락한다. 그 2년 사이 주택가격 하락으로 미국인은 10조 달러의 부를 상실하게 된다.
이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연준은 1조 달러를 찍어보낸다. 하지만 이 돈은 대부분 주택가격으로 고생하는 서민이 아니라 도산위험에 처한 은행으로 흘러들어간다. 결국 주택담보부실로 인해 미국에서 무리하게 집을 구매한 수백만 가구가 퇴거당하게 되고 이 고통은 무려 10년 간 이어진다. 2009-2016년까지 미국에서 무려 800만건의 주택 압류가 이뤄진 것이다.
이런 일련의 경제 혼란이 수십년 간 이어짐에도 미 정치권과 여론은 연준에 무관심했다. 사실 미국의 대공황을 극복한 것은 연준의 힘이 아니라 미국 정치권이었다. 하지만 연준이 점차 경제의 전권을 시행하면서 선출된 재정당국은 무언가를 할 유인이 작아지게 되었다. 중앙은행은 또한 잘못된 행위에 대해 정치적 책무를 지는 다른 정부기관과는 다르게 소수 경제 엘리트로 구성되었으면서도 전문성 뒤에 숨어 책임은 지지 않는 전능한 기관이 되어 가고 있었다. 양적완화라는 시대에도 2007-2011년 미국에서 나온 30만건의 기사 중 오바마는 8%였던데 반해 당시 연준 의장인 버냉키는 고작 0.13%밖에 관련하지 않았다. 심대한 의사결정을 내림에도 여론의 영향을 지나치게 덜 받는 셈이었다.
2008 금융위기 국면에서 연준은 과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양적완화라는 정책을 최초로 도입한다. 이는 과거의 저금리와는 차원이 다른 정책이다. 양적완화의 방법은 이렇다. 연준의 트레이더들은 프라이머리 딜러들의 채권을 매입한다. 과거 이렇게 통화량을 공급해 금리를 낮추었는데 채권의 양이 물리적 한계가 있었기에 더 나아갈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프라이머리 딜러를 활용해 그 한계를 한참 뛰어 넘는다. 먼저 헤지펀드 회사가 미국채를 매입한다. 그리고 프라이머리 딜러로 하여금 그 국채를 연준에 팔게한다. 그리고 헤지펀드는 프라이머리 딜러가 연준에 국채를 판 대금을 다시 빌려 이걸로 또 국채를 산다. 이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면 사실상 제한없는 통화공급, 즉 양적완화가 가능해진다.
양적완화로 인해 금융계의 규칙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간 연준은 미국채를 매입할 때 단기국채를 주로 매입했었다, 히자만 양적완화로 인해 모든 채권, 즉 10년 만기 장기국채도 매입하게 되었다. 연준이 장기국채를 대량으로 모두 매입하자 장기국채가 희소해져 가격이 상승했고 그로 인해 수익률이 크게 떨어지게 되었다. 이는 모든 금융주체들에게 안전하게 어느 정도 수익성을 보장하던 상품이 사라진 것을 의미해다. 금리도 제로 금리이다보니 모든 경제주체들은 수익률을 찾아 헤메게 되었고 이것이 회사채, 주식, 부동산, 미술품, 암호화폐등으로 향하게 되었다.
자산 가격은 그 어느 때보다 실물경제와 유리되었고 각종 위험한 금융거래가 생성되었다. 기업은 두 가지 방식으로 부채를 갖는다. 하나는 회사채로 금리와 만기가 정해져있다. 대출과의 차이점은 일반 대출은 이자와 원금을 같이 조금씩 상환해나가는 반면 회사채는 만기일전까지 이자만 지급하다 만기일에 원금을 모두 갚는 형식이라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회사들은 회사채 만기일이 도래하면 원금을 모두 갚기 보다는 다른 회사채를 만들어 원금을 갚고 새로 갈아타는 행위를 주로 한다. 다른 하나는 레버리지 론으로 은행이 해당기업에 맞게 직접적으로 발행한다. 그렇다보니 회사채와는 다르게 표준화가 어렵다.
CLO가 바로 이 레버리지 론과 관련한다. MBS는 2008금융위기 당시 주택담보부실과 같이 무너져 내렸지만 CLO는 살아남았다. 그런 잔상때문인지 이 상품은 조금 더 안정적으로 보였다. CLO는 여러 레버리지 론을 합쳐서 증권으로 표준화한 것이다. 하나의 CLO 꾸러미에는 세 등급이 있는데 가장 안전한 트리플 에이, 메자인, 에퀴티 순이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위험도가 커져서 이자율은 큰 반면 원금 손실시 상환에 위험이 따른다.
제로금리로 수익률 추구에 떠몰린 투자자들이 이 CLO로 몰렸다. 하지만 레버리지 론은 변동금리가 적용되기에 금리 상승시에 차입자가 위험을 떠 맡는다. 하여튼 CLO는 이런 위험에도 2010년 3천억달러에서 2018년 6170억 달러로 규모가 커진다. 좋은 투자처가 씨가 마르면서 레버리지 론을 제공하는 사모펀드 같은 것들이 소위 갑이 위치를 갖게 된다. 이들은 투자자를 보호하는 약정인 코버넌트를 매우 약화시키고 차입자에거 더 큰 유연성을 주는 방향으로 유도한다. 이걸 코버-라이트라고 하는데 이것이 일반화하여 2019년엔 무려 85%까지 상승한다.
양적완화시대에는 소위 말하는 자사주 매입도 유행한다. 지금은 안하면 이상할 지경인데 역사상 이걸 하는 편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자사주 매입이 합법화한 것은 1982년의 일이다. 자사주 매입은 주식 수를 줄이므로 기업의 경영실적과는 무관하게 주당 순이익을 높인다. 대신 회사 여유자금을 사용하기에 회사의 부채를 늘린다. 그래서 기업의 잠재적 성장력과 재무건정성을 약화시킨다. 자사주 매입엔 대규모 자금일 필요한데 양적완화시대의 싼 돈에서는 웬만한 기업이 이를 쉽게 실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헤지펀드들은 어느 덧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사실상 은행 역할을 하는 그림자 은행으로 취급되기 까지 한다. 헤지펀드는 위험한 거래인 베이시스 거래를 행한다. 이는 미국채 현물과 선물 사이의 가격차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들은 미국채 현물을 매수 후 선물과의 가격 차이를 이용해 이득을 챙긴다. 하지만 그 차이가 미미하여 수익이 적은데 이를 횟수로 만회한다 현물로 매수한 미국채를 미국 레포시장에 담보로 내놓아 거액을 대출하여 다시 투자한 것이다. 이는 미국 레포시장을 흔드는 행위로 매우 위험했다.
미 레포시장은 금융기관의 자금 정리를 위한 현금융통시장이다. 매일 거래를 정산하며 은행은 남는 금액을 빼고 모자란 금액을 일시적으로 채워야 했는데 그것을 위함이다. 그래서 이들은 가장 안전한 자산인 미국채를 담보로 돈을 빌렸다. 리스크가 낮은 담보이기에 레포시장의 금리는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헤지펀드들의 위험한 거래로 인해 미 레포시장의 금리가 크게 뛰어오르는 일이 있었고 연준은 이를 막기 위해 레포시장에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여한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헤지펀드들은 큰 이득을 보게 된다.
책을 정리하면 연준은 1980년대 후반 또는 1990년대부터 자산 가격을 인플레 요인에서 제거하고 저금리 기조를 유지한다. 이는 자산가격을 부풀렸고 자산가격은 관리를 하지 않다보니 2000년 주식 버블, 2008 금융위기, 2019코로나 위기를 맞게 된다. 이 때마다 연준 일부에서는 금리를 올릴 것을 주문했지만 반대세력이 주류였으며 이런 중요한 의사결정에 미국 정치권이나 여론은 무관심했다. 그 결과 고통스러운 위기를 겪을 때마다 돈을 공급하는 미봉책을 쓰게 된다. 이는 갈수록 그 규모를 크게 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렇다보니 유례없는 통화량을 전세계에 뿌려지게 되었다. 이는 매우 큰 불평등을 야기했고, 상당한 위험을 미래로 전가하게 되었다.
이런 거대한 풍선은 아직도 유지 중이다. 미 주식시장 및 코인 등 자산 가격은 유례 없이 최고치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해야 하는 실물경제는 이렇다하게 좋은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언젠간 터질 가능성이 높은데 그 때 저런 결정을 내린 연준의 관계자들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