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혐오 사회 - 팩트도 정의도 기자도 없다
정상근 지음 / 행성B(행성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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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언론은 많이 망가졌다. 기레기라는 용어가 난무하고, 이번 대선에선 명백히 잘못된 사태에 대해 기계적 중립을 취해 잘못된 쪽을 사실상 옹호하는 행태를 하는가 하면, 그 기계적 중립마저 지키지 않는 경우도 허다했다. 사람들은 언론에 대한 신뢰를 잃어 더 이상 신문이나 뉴스를 보지 않으며 SNS와 유튜브를 통해 뉴스를 얻는다. 물론 그 결과는 확증편향뿐이다. 그리고 신문기사나 뉴스를 굳이 보는 경우에도 그 홈페이지를 방문하기보다는 대부분 포털을 통해서 소비한다. 언론은 선정성경쟁과 자극적 기사로 속도경쟁을 하며 기본적인 크로스체크도 하지 않고 그를 통한 수익만 얻을 뿐 양산한 피해자에 대해서도 책임지지 않는다. 이에 여당은 작년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법을 발의했다. 물론 언론은 전가의 보도 '언론의 자유'를 압세워 야당과 합세해 저항했다. 그리고 상당수 국민들은 이 법에 찬성한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한국언론이 망가진 첫 번째 이유로는 우선 수익구조의 붕괴를 들 수 있다. 인터넷 포털이 등장하기전 신문이나 방송사는 일종의 독점을 하고 있었고 확실한 소비처를 얻을 수 있었다. 때문에 신문은 실제로 판매될 수 있었고, 지상파와 신문 모두 고액의 광고를 독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매체 환경이 변화했다. 인터넷이 등장했고 포털이 생겨났다. SNS에 유튜브 그리고 포털이 뉴스진입장벽을 크게 낮추어 매우 많은 인터넷 언론이 등장했다. 그 전엔 언론사하려면 상당한 자본이 필요했다. 

 이로 인해 지금의 대부분 언론사들은 수익구조가 사실상 포털 이외에는 없다. 광고 수익은 모두 쪼개져서 나눠가졌고, 공짜 언론 콘텐츠에 익숙한 한국의 독자들은 더 이상 뉴스를 돈을 주고 소비하지 않는다. 주요 포털들이 뉴스 제공의 대가로 수익을 제공하는데 대부분의 언론사가 이에 의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는 부작용을 낳았다. 포털에 종속된 언론사는 페이지뷰 경쟁을 들어갔다. 대부분의 언론사 사주들은 긴 안목과 리더십을 부재하며 수익구조도 창출할 역량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이에 기자들은 페이지 뷰를 올리기 위해 자극적 제목과, 선정성 경쟁, 제목만 바꾸어 다른 기사 베끼기, 연예인 인스타그램 뒤지기, 예능 프로그램 내용 요약하기 등으로 기사를 공장식으로 양산한다. 

 한국 언론이 망가진 두 번째 이유는 기자들이 시간이 없다는 점이다. 한 사건은 상당히 입체적인 측면을 갖고 있으며 여러 이해당사자가 사회문화, 경제, 정치적 배경을 각각 앉고 얽혀있다. 이를 모두 이해하고 기자가 방향을 정하여 분석하고 기사화하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포털에서 자본과 시간에 종속된 기자들은 이런 시간을 들여 기사를 작성할 시간이 없다. 기자들은 속도경쟁을 통해 1-2시간만에 하나의 기사를 써내기 일쑤며, 심한 경우 하루 10개의 기사를 작성하기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사는 데스크가 있는 언론에서도 게이티 키핑에 의한 검증이 불가능하다. 데스크들이 어느 정도 소화하려면 하루 50개 미만의 기사가 적당하다. 이렇다 보니 조선일보 같은데서도 조국과 관련해 잘못된 성적 이미지를 넣는 실수가 벌어진 것이다. 

 세 번째 문제는 한국과 일본에만 거의 남아 있는 출입처제도다. 출입처란 정부, 법원, 국회등 권력 3부와 여타 중요 대기업들에 대한 취재를 위해 해당기관이 기자들에게 제공한 공식 출입장소다. 이곳을 통해 과거 많은 언론들이 해당기관 관계자를 직접 만나 쉽게 접할 수 없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권위주의 정권만 해도 상당히 유용한 정보 통로였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대부분의 주요 공직자에게 접근하는 전화 번호 및 SNS가 모두 공개되어 있어 누구나 이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출입처 제도는 다른 문제를 낳는다. 바로 기사의 동질화 현상이다. 각 언론사의 기자들은 자신이 출입하는 기관의 관계자들과 비슷한 입장을 갖기 시작한다. 여당이면 여당, 야당이면 야당의 시각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접근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럴 만 한 것이 매일 출근하며 이들과 이야기하고 부딪히고 밥을 같이 먹고 서로 경조사를 챙겨나가는 과정을 통해 동질화 되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또한 출입처 기자들 간에는 묘한 동질감이 형성된다. A라는 사건이 발생한다면 한 기자는 '가'의 관점으로 기사를 쓸 수 있으며, 다른 기자는 '나'의 관점으로 기사를 작성할 수 있을 것이며 이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하지만 향후 '가'의 관점이 비교적 옳은 것으로 밝혀진다면 '나'로 작성한 기자와 언론사는 타격을 입게된다. 때문에 기자들은 이런 경험을 통해 같은 출입처기자끼리 같은 정보과 같은 시각마저 공유하며 상당히 비슷한 류의 차별성없는 기사를 작성하게 된다. 

 출입처의 마지막 문제는 언론의 자유를 방해한다는 점이다. 개인의 보호나 국가의 이익, 혹은 민감한 사안때문에 출입처에선 사전에 언론에 정보를 제공하고 엠바고를 거는 경우가 있다. 이는 대부분 지켜지지만 간혹 엠바고가 깨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출입처의 다른 기자단이 해당 언론에 대해 출입처 접근을 제한하는 징계를 내린다. 이는 매우 어처구니 없는 경우인데 해당 기관도 아닌 언론사가 다른 언론사의 취재할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의 네 번째 문제점은 폐쇄적 편향적 의사결정 구조다. 대부분의 언론사는 게이트 키퍼 구조를 갖는다. 일선 기자 - 팀장 - 부장 - 국장으로 올라가며 기사를 검증받는 식이다. 이는 기사의 크로스 체크 기능 및 각종 오탈자 검증, 논리 보완을 통해 어느 정도 기사의 질을 보장하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구조가 수직적이고 윗선 일인에 의해 검증되다 보니 상당한 편향성을 가질 역할도 한다. 실제 언론사는 위로 갈수록 나이가 고령화 하고 소득이 매우 높으며 오랜 기자 생활로 정재계 주요 유력 인사들과 친분 관계를 쌓고 있다. 이런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 서민 계층과 약자의 입장에서 쓰여진 기사를 공감하고 옹호할 수 있을가. 그리고 반대로 유력 계층을 공격하는 기사를 과감히 기재하는 결정을 할 수 있을까. 

 또한 언론사의 구조는 남여 편향적이기도 하다. 물론 이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전 세계 언론들은 상당히 남성 중심의 문화를 갖고 있으며 미국조차도 2021년에 로이터 통신이 170년만에 처음으로 여성 국장이 생겼을 정도다. 한국은 2020년 언론인 중 남성 기자가 69.4%, 여성 기자가 30.6%로 상당한 수적 차이를 보였다. 이는 언론사 상층으로 갈수록 심해져 게이트 키퍼 층은 주요 보직으로 올라가면 104명중 여성은 겨우 6명에 불과할 정도로 적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페미니즘시각이나 여성 중심의 기사가 나올리 만무하다. 

 한국 언론이 마지막 문제는 무책임하게 기사를 양산할 뿐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생겨난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2008년 SBS의 '긴급출동SOS24' 라는 프로그램은 한 휴게소에서 찐빵을 파는 소녀에 대한 보도를 한다. 프로그램은 악의적으로 동영상을 촬영 및 편집하여 휴게소 사장이 강제로 소녀를 착취하고 폭행까지 당하는 것처럼 꾸며졌다.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어찌된 일인지 휴게소 사장은 6개월 가량 수감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영상이 제작진에 의해 촬영되고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소녀의 상처 역시 대상포진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SBS가 배상한 금액은 고작 3억원이 전부이며 놀랍게도 이는 한국 언론이 배상한 역사상 최고 금액이다. 300억도 아니고 겨우 3억이다. 거기에 제작진 중 누구 하나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다. 법원이 언론의 자유를 상당히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반면 피해자인 휴게소 사장은 억울한 감옥살이에 생계인 휴게소를 폐업해야 했다. 이뿐 아니다 2013년 당시 이명박 국정원에 의한 유우성 간첩 조작사건도 있다. 동아일보가 대대적으로 보도했는데 이 사건이 조작으로 밝혀지자 동아일보는 고작 1000만원 손해배상에 무려 12명 최하단에 7줄의 정정기사만을 게재했을 뿐이다. 유우성 사건은 아마 일면 보도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적어도 정정이라면 잘못된 보도 만큼 같은 비중으로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책은 비판으로 끝나지 않고 한국 언론이 나가야 할 길도 제시한다. 미국엔 프로퍼블리카라는 언론이 있다. 독립언론인데 월스트리트 저널의 전설적 편집장 폴 스타이거와 뉴욕타임즈의 전문기사 스티븐 엔젤버그의 합작품이다. 그들의 시도에 감동해 캘리포니아의 거부 샌들러 부부가 무슨 짓이든 해보라고 연간 무려 천만달러의 자금 지원을 한다. 그래서 독립이 가능한 셈이다. 이들은 창간 이후 허리케인 카트리나때 뉴올리언스의 한 병원이 환자를 안락사 시킨 사건과, 금융회사가 부동산 거품을 키워 투자자에게 거액의 손해를 입힌 사건을 보도했다. 결과는 두 차례의 퓰리처 상 수상이었다. 

 한국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뉴스 타파다. 뉴스타파는 출입처를 사용하지 않으며 이를 통해 타사 기자와 정보 교환 및 의견조율이 없다. 뉴스타파는 구조적으로 기자에게 상당한 재량권과 양질의 기사를 생성할 충분한 시간을 부여한다. 이를 통해 상당히 양질의 기사를 한국 사회에 제공하고 있으며 이는 역시 재정적 독립에서 가능했다. 뉴스 타파는 후원 제도를 통해 운영되고 있는데 미국처럼 갑부가 아니고 언론 자유를 바라는 여러 사람의 후원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이런 후원은 한계가 있다. 후원을 하는 사람은 한국에서는 매우 소수로 대개 정치 고관여 층이다. 때문에 충분한 숫자를 확보하기 힘들다. 거기에 이들은 정치에 고관여하기에 후원하는 언론사가 자신의 정치적 방향과 일치 하지 않는 기사를 작성할 경우 후원을 끊거나 마찰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정답은 과거처럼 뉴스를 팔아 생존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포털을 통해 뉴스는 공짜란 인식을 많이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인은 필요하다면 양질의 콘텐츠에 돈을 사용한다. 넷플릭스가 대표적 예인데 한달 일정의 구독료를 내는 넷플릭스 회원이 국내에 무려 380만이나 된다. 언론사도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있다면 그런 것이 가능하다는게 저자의 주장이다. 물론 오락거리와 고도의 정치사회문화적 상품이 사람들의 지갑을 똑같이 열수 있는지 개인적 의문이 있긴 하지만 마땅한 대안도 없고 의외로 한국인의 뉴스 소비는 상당히 많다는 걸 감안한다면 설득력이 없지도 않다. 다만 책은 언론 컨텐츠가 유료화할 경우 이중 시장과 이중 여론이 조성될 것을 우려하기도 한다. 일본의 경우 중장년층의 어느 정도의 재력을 갖고 오랜 시간의 습관을 통해 일본 언론이 판매하는 양질의 컨텐츠를 소비한다. 하지만 젊은 층은 일본 야후를 중심으로 제공되는 저렴하고 저열한 뉴스를 소비하는 형태를 보인다. 때문에 일본은 같은 사안에 대해 이중, 혹은 삼중의 여론이 형성되는 문제점을 갖고 있는데 한국도 그럴 우려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책은 오늘날 한국 언론의 문제점을 저자가 기자이기에 누구보다 잘 짚어내고 지적하고 비판하며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포털에만 의존하지 말고 개개인의 뉴스 소비자도 직접 언론사 홈페이지를 방문하고,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언론사엔 후원도 해나가며 눈높이를 키워나가는게 개인이 할 수 있는 언론 개혁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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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2-04-15 15: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구구절절 공감 합니다. 그래서 장강명 작가에게 왜 그만두었는지 묻고 싶어요. 저는 장작가의 작품은 르포밖에 안 읽었지만 이 사람이 엄청 기자가 되고 싶어했더라구요. 결국 관두고 소설을 썼는데.. 지금 작가로서 언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묻고 싶더라구요

닷슈 2022-04-15 20:32   좋아요 0 | URL
장강명 작가가 동아일보 기자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장작가의 작품을 볼 때 그 정도 인식을 가진 사람이 동아일보에서 동화되긴 힘들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추측합니다. 어렸을적 지인 중 언론인이 된 사람이 몇 있습니다. 다들 생업인지 날카롭던 사람들이 정말 현실 기자처럼 되더군요. 안타깝고 애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