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황홀한 글감옥 (리커버 특별판)
조정래 지음 / 시사IN북 / 2020년 8월
평점 :
태백산맥과 아리랑, 한강. 작가 조정래가 지난 수 십년간 우리에게 남긴 대하소설이다. 간혹 사람들은 이 소설들은 반드시 읽어야 하는 부채성격을 가진 작품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럴만한 것은 이 소설들이 우리 민족사의 중요한 부분들을 관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해방공간 8년, 한국전쟁, 광주민주화운동, 근대화 과정 등이다.
소설을 잘 보지 않고 독서편력도 짧은 난 이 세 작품을 보지 않았다. 사실 조정래 작가의 소설을 하나도 보지 않았기에 대표적을 못 본것은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겠다. 태백산맥을 오래전 영화로 접하긴 했지만 책에 따르면 영화 태백산맥은 감독이 무려 임권택임에도 불구하고 90년대 중반이라는 한계 때문에 일그러진 영화였다.
그러면서 정작 조정래의 본 글이 아닌 그의 인생과 사상이 담긴 이 책을 보게 되니 좀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했고, 그의 작품을 봐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한국이라는 나라가 분단국가이기에 작가라면 그것을 반드시 다뤄야 하는 상황, 그리고 작가라면 반드시 진실을 다뤄야한다점, 소설 쓰기의 어려움과 정신적 피폐함과 환희 그리고 조정래 개인의 삶에 대해 느낄수 있었다.
책은 대학생들과의 대담을 엮은 것인데 그들의 질문에 대해 작가가 답을 한 것을 각 장으로 구성했다. 먼저 소설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 조정래는 소설은 인간에 대한 총체적 탐구라고 한다. 그래서 소설엔 인간의 모습이 총체적으로 형상화되는데 당연히 모국어를 쓰는 만큼 세상의 모든 작품들은 그 모국어의 자식이 된다. 그리고 언어는 그 민족의 색채가 가장 강한 것이기에 음악 미술보다도 더욱 강한 민족적 색채를 갖게 된다. 그래서 소설은 그 민족의 전통, 정서, 풍습, 습관등이 다채롭게 펼쳐지며 감동까지 주기에 다른 책보다 더 그 민족의 고육한 특성이나 문화전반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처럼 문학은 민족적 색채가 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이 전세계적인 공감을 얻는다. 그것은 문학이 전 인류의 이상과 행복, 인간다운 삶의 가치를 옹호하고 구현하는 보편적 미덕이라는 최소공배수와 최대공약수를 갖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글을 잘 쓰는 방법으로 조정래는 익히 알려진 다독, 다상량, 다작을 제시했다. 별다른 왕도가 없고 타고난 재능에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다독과 다상량, 다작을 4:4:2로 하라고 구체적으로 제안한다. 읽은 시간만큼 그 작품과 사상에 대해 꾸준히 생각하고 그리고 나서 써야한다는 것이다. 무턱대고 쓴다면 자신이 비어있기에 역시 좋은 작품은 나올수 없다는 것이다. 모방역시 좋은 글을 쓰는 좋은 방법인데 다만 한 작가에 치우치는 것을 경계한다. 한 작가에게만 몰두하면 그 사람의 아류가 될 뿐 자신만의 문체가 나오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책을 쓰려면 적어도 500권의 책을 읽기 전에는 펜도 들지 말라고 한다. 500권은 세계문학전집 100권, 한국문학전집100권, 중단편소설 200권, 그외 기타 역사, 사회과학 등의 지식 도서 100권이다.
이 책들을 보면서 왜 그런 소재를 선택했고, 주제와 소재는 효과적으로 조화되는지, 주제의 형상화는 적절한지, 사건의 전개는 우연이나 조작적이지 않고 실감있고 필연적인지, 구성의 허술함은 없는지, 문체의 특성은 무엇인지, 인물들의 개성과 생동감은 있는지, 감각과 묘사는 특색있는지, 결말처리는 효과적인지, 소설로서의 성취도는 얼마인지를 모두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 작가의 능력은 그 작가가 얼마나 많은 작품을 썼는지 보다는 얼마나 개성적인 인물을 창조했는지의 여부라고 말한다. 각 인물은 그 나름의 개성과 전형성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전형성은 그 역할, 그 사건, 그 상황, 그시대에 없어서는 안될 꼭 어울리는 인물로 전형성이 있어야 작품은 시대상을 반영하고 실제성을 부여하며 개성도 비로서 살아나게 된다. 또한 작품을 쓰면서 1인칭이 아닌 3인칭을 강조하는데 3인칭이 쓰기는 어렵지만 모든 인물들이 자율성과 개성, 전형성이 살아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조정래가 한국사를 관통하는 주제들을 소설로 다룬데는 우리의 역사적 정치적 상황이 컸다. 그자신이 어려서 여순사건과 한국전쟁을 목격했고, 그 아픔을 체화했다. 조정래는 무척 가난했고, 아버지가 신식 공부를 하기 위해 승려가 되었지만 일제가 우리 승려들을 일제식으로 결혼시켜 태어나게 되었다. 어려서 여순사건과 한국전쟁을 목격해 정신적 충격을 받았고, 친일청산의 실패와 독재, 빈부격차 등을 경험하며 그 사건들을 다루게 되었다. 그는 한국사의 민중을 괴롭히며 이득을 보는 무리들의 사건들에 대해 경악하고 분노했지만 소설 뿌리의 작가 알렉스 헤일리의 담담한 어조를 보면서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로 사건을 다루는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소설들은 명백히 잘못된 사건에도 분노하지 않고 담담히 다루며 작가 자신이 진보적임에도 우익사건이나 우익인사에 대해서도 장점을 드러내고, 좌익에 대해서도 장점 뿐만 아니라 단점도 드러낸다. 영화 태백산맥에서도 지주의 친일파를 공격하는 장면도 많지만 좌익에 경도된 농민들에게 땅을 나눠주는게 좋아보이지만 자네가 열심히 일한 것을 모두 거둬들여 똑같이 나누는게 좌익이 하자는 이야기라고 농민에게 이야기하는 지식인의 모습이 나오는 것도 그러한 일환이다.
그는 사회 운동으로 시민단체에 적극 참여할 것도 주문한다. 프랑스와 독일은 시민단체가 무려 5만개인데 한국은 2천 5백개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저도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려 정부로부터 활동보조비를 받는 형국인데 돈을 받는 시민단체가 어떻게 올바르게 권력 감시를 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때문에 마땅히 시민으로서 공부하고 시대에 대해 알게 되었으면 시민단체를 하나 정해 같이 활동도 하고 활동비도 기부해야 진정한 민주주의로 갈수 있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정치권력이든 자본권력이든 권력의 속성상 감시하지 않으면 부패하고 전횡하기 때문이며 그래서 민주주의는 꾸준히 관리하며 감시해서 완성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책은 300페이지 정도로 보이는 두께였지만 막상 열어보니 450쪽이었고, 내용도 알찼다. 대담이기에 쉽게 읽을 수 있고 작가 조정래에 대해 알아가는 기쁨이 있다. 그는 매일 30매의 소설을 썼다고 한다. 자신과의 약속이고 이를 지키기 위해 주색잡기를 멀리하고 꾸준히 건강관리를 했다고 한다. 대단할 따름이다. 그의 소설을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