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담한 작전 - 서구 중세의 역사를 바꾼 특수작전 이야기
유발 하라리 지음, 김승욱 옮김, 박용진 감수 / 프시케의숲 / 201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책 '대담한 작전'은 하라리의 인류문화 3부작이 국내에서 인기를 얻자 나온 책이다. 사실 '사피엔스' 이전에 쓴 논문같은 느낌의 책인데 하라리가 인기를 얻으면서 '호모데우스'와' 21세기를 위한 제언' 사이에 책이 출간되었다. 그냥 점만 찍어만 두었다가 우연히 보게되었는데 그의 인류문화 3부작과는 확연히 달랐다. 우선 이책은 그냥 역사책이다. 그것도 일반적이지 않고 매우 좁혀진 특정시기의 특별한 전쟁방식을 다룬다.
그것은 바로 특수작전이다. 우리가 영화에서 흔히 보는 무슨무슨 특공대 뭐 그런 것들이다. 이런 특수작전은 과거에도 있었으며 하라리가 주제로 삼은건 1100년에서 1500년까지만이다. 특수작전은 소규모 인원으로 상대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기에 쓸모가 있는데 주로 상대의 기지나, 중요한 인물, 생산시설등을 파괴함으로써 상대에게 큰 타격을 입힌다. 전쟁시 특수부대가 적의 후방에 침투하여 적 군수뇌부를 제거 및 납치한다던가, 적의 핵무기를 파괴하거나 탈취한다던지, 아니면 군수시설을 파괴하는 것들이 특수작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중세에는 적의 기지를 파괴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지금처럼 폭탄이나 미사일이 없기 때문이다. 활이나 화승총으론 적의 기지에 흠짓을 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생산시설의 파괴도 문제였다. 역시 활이나 화승총으로 뭔가 큰 것을 부수기 어렵다는게 문제였고, 중세는 지금같은 대규모 생산시설이 없고 그나마도 분산되었기에 파괴의 의미도 없었다. 남은 것은 주요 인물의 암살이나 납치인데 이것만은 매우 유효했다. 활이나 화승총 정도의 무장으로도 가능하며 효과도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 대담한 작전의 특수작전은 대부분 적 수뇌부의 암살및 납치다. 1부에서는 이 시기에 등장했던 다양한 특수작전의 예들이 번잡하게 등장한다. 그려려니 하면서 읽힌다. 2부가 좀더 재밌는데 여기부턴 이야기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책이 다루는 시기 유럽에서 있었던 중요한 전쟁인 십자군 전쟁과 백년전쟁, 프랑스 통합전쟁, 합스부르크가와 프랑스의 패권대결이 여기에 등장한다.
중세에서는 다들 특수작전의 효과에 공감하면서도 상당히 조심스레 실행했어야 하는데 이는 중세 특유의 기사도 정신때문이었다. 이 기사도 정신은 정정당당함에서 비롯되는 명예를 매우 중시하고 그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였기에 특수작전은 비교적 금기시되었다. 명예를 잃는 다는 것은 실용적 입장에서 본다면 별것 아닌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당시 중세 유럽에선 그렇지가 않았다. 왕이든 귀족이든 자신이 직접 다루는 병력 기반은 대개 취약했고 부족한 부분은 용병을 쓰거나 동맹이나 휘화의 귀족 병력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왕이나 귀족이 명예를 잃는 다는 것은 바로 이런 병력 동원에 차질을 불러올수 밖에 없는 문제였기에 명예는 실질적으로 중요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세에 몰린 적이나 자신의 성공에 굶주린 하급귀족이나 귀족집안의 차남들은 특수작전을 감행하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잃을게 없기 때문이다.
책에서 십자군 편에는 하지리라는 중동의 독특한 암살집단이 등장한다. 영어로 암살자인 어쌔신의 어원은 이들에게서 비롯되었다. 하지리의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암살자로 육성되었으며 암살의 성공률이 상당히 높아 주변의 영주와 왕들은 이들을 두려워하여 전체적으로 보면 미약한 세력인 하지리를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 그렇다고 하지리들이 우리의 상상처럼 고된 육체 훈련으로 무예나 암기를 익힌건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학문이나 언어 및 교양에도 상당한 중점을 두었는데 그것은 이들의 독특한 암살방법때문이었다.
하지리들은 목표물이 정해지면 오랜세월을 두고 목표물의 심복이나 주변에 침투한 후 완전한 기회후에 목표물을 공개적으로 암살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단검만을 사용해서이다. 이런 치밀함에 유럽 각국의 군주와 특히, 중동의 권력자들을 하지리가 궤멸될때까지 두려움에 떨었다.
책의 다른 재밌는 부분은 결혼에 의한 왕국의 합병이었다. 우리를 포함한 동아시아 권에서는 서자일지라도 적자가 없다면 왕위를 이어받을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이 그의 권력정통성에 흠집을 내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중세 유럽은 그렇지 않았다. 군주가 아무리 처첩으로부터 사생아를 많이 낳았어도 이들은 상속권이 없었다. 군주는 오직 정식 아내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이혼도 쉽지 않아 아내와의 사이에서 아들이 없다면 방법은 아내가 죽은 후 재혼하는 것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유럽 각국의 군주들은 대가 끊어지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런 경우 남겨진 아내의 재혼상대나 군주의 친척들이 그 세력을 상속하곤 했다. 이런 독특함으로 인해 프랑스와 영국의 백년전쟁이 시작되었으며 한때 일개 소국의 영주에 불과했던 합스부르크 왕가가 플랑드르와 이탈리아 북부, 스페인, 서부독일 일대를 차지하는 대제국으로 성장할수 있었다.
이 책의 장점이라면 하라리의 책치곤 매우 빠른 시간에 가볍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역시 단점이라면 사피엔스나 호모데우스 같은 것들을 기대한 독자는 실망할수 밖에 없다는 점과 중세유럽의 역사적 맥락을 모른다면 책의 흐름을 쉽사리 탈 수 없다는 것이다. 카페왕조나 샤를, 안티오키아 등이 매우 생소하다면 책은 생각보다 어려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