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절 - 42곳 사찰에 깃든 풍물과 역사에 관한 에세이
장영섭 글.사진 / 불광출판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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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들은 오래 살아온 만큼 쉽사리 상상할 수 없는 곡절을 한둘쯤은 갖고 있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사연을 알아주면 절들은 대번에 반색을 하고 아예 곳간까지 내주었다.  

외로웠던 것이다.
그들이 허락한 자리엔 이런저런 깨달음이 쌓여 있었고,
나는 그것들을 쏙쏙 빼먹으며 하루를 보냈다...<여는글 중에서>

쉽사리 상상할 수 없는 곡절을 삶에서 겪을 때 떠오르는 것이 사찰이다. 크게 자리잡고 많은 중생들의 발걸음이 바쁜 사찰이 있는가하면, 있는 듯 없는 듯 한두분의 스님과 공양주가 전부인 소박한 사찰도 있다. 물론 두 곳 모두 마음이 외로울 때 삶이 곡절에 지칠 때 찾아볼 수 있는 곳이다.

불자라고 감히 말할 수는 없지만 때론 부처님 앞에 엎드려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따라 바르게 수행하면 이생에서 겪고 있는 모든 괴로움과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믿어보고 되뇌이던 적이 있다.

<길위의 절>이란 커다란 제목만으로 이왕가는 절이라면 좀더 알고 가보자는 마음에 접했다만 <풍물과 역사에 관한 에세이>라는 부제가 말하듯이 절을 통하여 삶과 인간이 되풀이해온 역사를 깊은 안목과 철학으로 말하는 책을 만났다.

<불교신문>에 2008년 한 해 동안 올려졌던 글을 모은 이 책은 길을 따라 여행을 하다보면 만나게 되는 절을 소개하고 있다. 보통의 여행을 위한 답사의 글과는 다르게 절 안에서 느끼게 되는 깨달음, 생명, 역사, 풍경이라는 주제로 42곳의 사찰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워 찾는이가 있다 하더라도 쉽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절이다. 절을 찾아가려면 깊은 산속을 향해야하고 길을 따라 오랜 걸음을 해야만 만날 수 있는 것이 절간이다. 어찌보면 산속으로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세속의 풍파를 겪지 않고 고즈넉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리라 여겨보지만 그 속에는 오랜 세월을 견뎌내는 조건으로 우여곡절의 역사와 느낌을 안고 있다.

인간사와 더불어 살아가려니 불교와 그것이 머무는 곳인 절은 무수히 많은 사연을 숨기고 있다. 만일사 앞마당에서 햇볕과 물과 바람의 포만이 빚어낸 깊은 맛의 순창 고추장을 만들어 살아가면서 고운사 가운루마냥 고독하지만 청승을 떨지 않는 그런 수행자의 모습은 어찌보면 관촉사의 미륵마냥 민중의 꿈을 먹고 사는 평범한 부처님의 모습이리라. 인간의 모습과 부처님의 모습과 그를 수행하고 부처를 알리는 수행자의 모습은 어쩌면 똑같은 하나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욕심을 품고 산들 그것이 내세로 이어질 것도 아닌것을..
잘난척하고 있는척 해봤자. 우리에게 가장 기본적인 것은 먹고 싸는 일이고 더럽다고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거늘..공주 갑사에 남아있는 불족적을 보더라도 가장 학대받고 신체 중에서 더럽게 사용되던 발이 결국은 석가모니 온몸의 하중과 그의 깊은 가르침을 떠받들었음을 떠올려보자.

부처와 중생은 다름이 아니라는 생각이 또다시 떠오른다.
지독한 악취가 나고 외면하고 혐오하는 해우소를 보고 이런 생각까지 미친다면 욕심을 놔버릴 수 있을까.
스스로가 곧다고 그것을 누가 받아주고 알아주랴. 고고한 불교도 살아 남기 위해 산 속으로 쫓겨 들어가 민간신앙과 손잡았다. 중악단은 경내안에 있는 어쩌면 다른 이질감을 느끼는 곳이지만 그 또한 경내의 한 일원이다. 

서산 부석사에는 유명한 철새도래지가 가까이 있다. 일 년 중 겨울에만 볼 수 있는 새들의 군집에서 서로를 볼 수 있는 시간적 거리. 영장류와 조류라는 생물학적 거리를 따져 보면서 결국 믿음과 사랑과 그리움은 서로 떨어져 있어야만 귀함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곁에 두면 귀찮음의 존재이지만 멀리서 서로 바로볼 때 나 아닌 존재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려나.

아름다움과 소박함을 자연 그대로 두지 못하고 파헤쳐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의 욕심에서 밀양 표충사는 모든 사람의 귀감이 되는 결단을 내린다. 화산 폭발로 토양과 이탄이 뒤섞여 산들늪이 생겼다. 100년에서 200년의 시간이 지나야만 이탄 1센티미터가 생성된단다. 1급수 지표종 버들치가 사는 원시 상태의 작은 생태계를 절이 나서서 보호한 것이다.

논산의 개태사역, 사천의 다솔사역, 의정부의 망우러사역, 장성의 백양사역, 경주의 불국사역, 창원의 성주사역, 김천의 직지사역, 여수의 흥국사역, 영주의 희방사역...사찰의 이름을 따온 역이다. 교회나 성당에서 명칭을 빌려 온 역은 없다. 사찰의 오랜 역사성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기차는 현대의 상징이다. 자본과 기술이 더 멀리 운반되고 신문물이 퍼져 나간다. 우리나라 역시 철도는 귀향과 여행의 길이면서 수탈과 징용의 길이었다. 철길의 발달에 따라 크게도 변하고 작게도 변하던 절은 지금은 기찻길과 함께 하나의 고즈넉한 풍경으로 남는다.

선지식들은 세상의 욕망과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잘나고 멋진 것을 혐오하고  못나고 추한 것에 귀 기울였다.  
그것만이 궁극적인 평화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잘나고 멋진 것을 구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을 얻으려면 반드시 남과 싸워야 하기 마련이다.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그냥' 산다는 건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
장춘에 장고(長考)가 필요하다...<함안 장춘사의 불두화 中에서> 

길을 걷다보면 작은 절이든 큰 절이든 만나게 된다.
때론 인간의 수행도량으로 만나게 되기도 하고 때론 민중의 피난처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뿐이랴 마냥 이어질 것 같던 권력자들의 도피처로도 이용되고 새로운 시대의 발원점으로도 이용된다.
절에 대한 역사와 풍경과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좋은 기회였다. 직접 발길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적 이야기는 마치 여행서와 역사서와 지리서를 함께 읽는 듯 하였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과 주변의 풍경을 객관적으로 풀어가는 부분은 무척 많은 도움이 되지만 에세이라고 여기기에는 너무 사실적이고 철학적인 이야기에 다소 이해가 어려운 부분도 있다. 선지식善知識 부족한 이들이 읽기에는 어렵다. 그저 읽다가 작가의 감정을 통해 동질감을 느끼면 그것 역시 큰 가르침 아닐까.

앞으로 겪을 삶에서 힘듬을 느낄때 절을 향해 갈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산속에 있는 절에 갔다온 것이 이전의 행동이었다면 이젠 절이 안고 있는 그 오랜 연륜을 들여다 보리라. 오래 세월을 버티고 서있던 그들을 혜안으로 바라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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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칭찬하는 법 꾸짖는 법 - 긍정적 사고를 키우는
하마오 미노루 지음, 이민영 옮김 / 비즈니스세상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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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아이들 교육에 이토록 부모들이 열성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옛날의 부모의 부모들이 해왔던 교육은 그저 잘먹고 사는 것이 우선이었다. 자녀들의 인생관이나 미래에 관한 것은 어찌보면 호사스러운 바램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좋은 환경, 좋은 교육 여건에 사는 지금의 부모들과 아이들은 또 어찌보면 서로를 견주고 비교해가는 교육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교육의 열성속에 가장 최고로 치는 것은 모든 것에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인재를 키워냄이 숙제이다.

좋은 교육 여건속에 살다보니 머리만 똑똑한 아이보다는 감성과 인성이 제대로 올바르게 키워진 아이들이 올바른 어른상이 되어감은 당연한 이치이다.

 

<아이를 칭찬하는 법 꾸짖는 법>이란 책은 일본의 교육평론가인 하마오 미노루의 저서로 더구나 작가 자신이 일본의 동궁 시종으로서 왕들의 어린시절을 옆에서 보아오고 가르쳤던 경험을 바탕으로 펴낸 책이라 예절과 인간의 옳은 근성에 대한 가르침은 어긋남이 없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하였다.

 

긍정적 사고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는 어른의 변화가 우선이다. 아이가 부모와 단절되었다는 것은 99%가 어른의 잘못이다. 어른이 되기전에 가졌던 순수한 마음을 잃어버리고 세상의 때에 젖어들 때 어른들은 스스로의 잣대로 아이들을 판단하고 가르치려 하기 때문에 아이들과 단절되는 것이다.

하지만 늦은 것은 아니다. 어른 스스로가 순수함과 동심이 바래졌음을 인정한다면 책을 읽고 글을 써보자. 그리고 더 나은 것을 향해 좋은 취미를 갖고 깔끔한 몸과 마음을 가져보자.

 

좋은 일은 하고, 나쁜 일은 하지 말라고 가르쳤다면 부모 자신도 그렇게 행동하도록 노력해야함은 첫번째 실천 사항이어야 한다. 사람은 '쉬운 길로만 가려는 습성'을 가진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수도 번복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자신을 바로 볼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며 이것은 진정으로 자신에게 강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마음 가짐만 갖는다면 부모로서의 자신이 당당해지고 또한 그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친다면 제대로 된 꾸짖음을 할 수 있고 올바른 칭찬을 하게 되는 것이다.

 

각각 다른 성격, 다른 모습의 남녀가 만나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되는 과정은 상당히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부부간의 대화가 중요한 것이 이것 때문이다. 서로 다르게 교육받고 살아왔지만 둘의 공통점을 그대로 받은 아이들이 있기에 서로 존중하고 대화를 많이 하다보면 아이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관과 신념이 생길 것이다.

나의 피붙이로 태어난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아이는 어른들의 장난감이 아니다. 아주 고귀한 존재이다. 아이라는 것은 하늘이 나에게, 우리 부부에게 준 선물이기 때문에 자신의 올곧은 신념을 갖고 아이를 교육해야 하는 것이다.  

아이의 장점을 발견하였으면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하고, 머리가 아니 몸으로 진심으로 아이와 대화를 한다는 자세를 가져 한다. 반항하는 아이들을 그 모습만 판단하지 말자. 반항이라는 것은 어찌보면 마음의 상처가 있는 아이들 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마음에 영양을 공급하고 더욱 마음을 기울이다. 기대를 받고 감사함을 받은 아이들은 언제든지 순수함이 가득한 그런 아이들로 변화할 수 있다.

이 많은 이야기들이 속속들이 경험에 의한 글로 적어나가고 있다.

꾸짖기와 칭찬하기, 예의바른 아이로 키우기, 반항기의 아이를 대하는 것, 공부를 잘하기 위한 방법등 부모라면 늘 고민스럽고 생각이 많아지는 이야기들이 조목조목 적고 있다.

 

어른은 아이의 '거울'이라는 결론은 여러번 강조하여도 지겹지 않다. 그토록 중요한 명제인 것이다. 그것에 대한 해답이 이 책 안에 있다. 어른의 변화, 어른의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어른이라 할지라도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의 실수와 나의 착오를 인정하고 다시한번 생각하고 공부하는 부모로써의 자세를 가다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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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궁궐에 가다 역사가 보이는 우리 문화 이야기 5
황문숙 글, 에스더 그림, 오성 감수 / 가나출판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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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조선시대의 왕들은 어떤 생활을 하였을까.  

많은 신하들이 시중을 들어주고 비단옷을 입고 살아간다.
신하들이 올린 상소문을 앞에 두고 신하들이 서로 논쟁을 벌이고 많은 주장이 나오는 것을 결정한다.
왕은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또 아들에게 그 자리를 대물림하는 생활을 한다.
당파싸움과 후궁들의 세력싸움에 오도가도 못하는 왕의 모습..
이것이 어쩌면 흔히 알고 있는 조선시대 궁궐의 모습일 것이다.

<조선시대 궁궐에 가다>는 역사가 보이는 우리 문화 이야기의 5번째 책이다. 그 옛날 화려하게 살았을 것만 같은 왕이지만 실상의 생활은 그렇지 않았음을 충분히 보여주는 책이다. 더 나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공부도 하고 예절도 몸에 익히고 백성들과 함께 하는 농삿일도 해야만 했다.
<조선시대 궁궐에 가다>는 주인공 천명군이 후궁의 아들이라는 위치에서 왕세자인 천명세자로 커가는 과정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펼쳐내고 있다.
 

왕이 될 왕자, 즉 왕세자의 자리에 책봉되면 왕세자의 생활이 화려하고 더욱 권위있는 위치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왕이 되려는 준비는 정말 힘들고 고된 일이다.
가장 중요한 덕목인 '효'를 실천하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임금의 수랏상을 살피고 탕약을 살피고 궁궐의 모든 어른께 문안을 여쭈어야 한다. 또한 왕이 참석하는 궁궐의 행사에는 모두 참석을 해야 했고 나머지 시간은 공부를 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게을리하면 왕세자의 자리를 뺐기는 일도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 또한 만만치 않은 자리였다.

왕세자는 혼례를 빨리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찍 혼인을 하여 더욱 어른스럽고 세자빈과 함께 다음 세대의 왕과 왕비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왕세자의 혼인 이야기가 나오면 나라에 금혼령이 내려지고 양반집 규수들을 처녀단자를 올리고 몇번의 심사끝에 가례를 올려야 했다.
때론 왕을 대신하여 나랏일을 보살피는 대리청정을 하기도 했어야 하고 직접 백성들의 생활을 익히고자 친경을 하기도 했어야 한다.

이 책은 사람을 위주로 펼쳐진 동화같은 역사 이야기이다. 역사서라는 장르가 유물과 유적들에 대한 설명이 주된 전개임을 감안한다면 이 책은 '천명세자'를 통해서 궁궐의 생활을 속속들이 보여주고 있다.
고된 왕세자의 생활과 공부로 천명세자가 게으름을 피우고 꾀를 부리지만 곧 마음을 다잡고 더욱 열심히 공부한다는 이야기는 아이들의 많은 공감을 얻지 싶다.
역사드라마나 책에서 보게 되는 어려운 단어의 설명은 물론 궁궐의 생활을 따로 자세하게 설명한 첨부 설명은 또한번 당시의 시대상과 역사의 제대로 된 지식을 다지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재미있는 동화 속에서 알게 되는 조선시대의 생활상은 어른들도 미처 몰랐던 지식을 알게 해주고 이것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들과 함께 나눠보면 어떨까. 아이들의 생각주머니가 더욱 알차게 채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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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와 정글의 소리
프레데릭 르파주 지음, 이세진 옮김 / 끌레마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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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청소년들이 직접 뽑은 2008년의 책이라는 선전답게 청소년들을 위한 추리소설로서도 참으로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책이다. 성장소설을 읽다보면 뻔한 스토리에 가끔은 지루함을 느낄때가 있지만 <미카와 정글의 소리>는 성장소설속에 보여지는 추리력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마음껏 접할 수 있는 책이다.

태국에서 태어나자마자 프랑스로 입양된 미카.  

12살이 된 미카는 모습은 태국인이면서 정신은 프랑스인으로 살고 있다.

정작 본인은 자기를 입양시켜 버린 태국이란 나라를 싫어하지만 미카의 주변 사람들은 모든 것을 태국과 연관짓고 있다. 젓가락질을 하게 될때나 동양을 배우는 수업시간이나 더구나 어이 없는 것은 성룡이 주연하는 중국 영화를 보고 미카를 "떼놈"이라고 놀림을 당하는 일이 빈번하기에 어쩌면 프랑스인보다 더 프랑스인이 고자 하는 미카이기도 하다. 

어느날 미카와 그의 프랑스 가족은 미카에게 유산으로 남겨진 태국의 정글로 떠나게 된다. 야생동물이 있고 멋진 모험이 가득한 정글을 떠올렸다면 아니다. 미카의 가족이 만난 정글은 다 쓰러져가는 코끼리 조련사들이 모여있던 그리고 병든 코끼리만 남아있던 곳이다. 자신의 유산을 팔아버리지도 그렇다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못하는 미카에게 누나의 제안으로 가족은 정글에 남기로 결정한다.

태국의 한 정글에서 살아남기로 결정을 한 가족들은 어쩌면 각각의 마음의 방황을 다잡고 싶었던 모양이다.  갑작스레 아내를 잃고 그리고 직장도 잃고 세아이를 데리고 막막함과 부정적인 생각뿐이었던 아빠. 남자아이들에게 심한 콤플스를 가지고 있던 맏딸 샬리, 그리고 찔찔이라는 별명을 달고 다니는 막내 바르의 하루하루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자신을 단단하게 다져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미카는 정체성으로 혼란스럽기만 하다. 태국에 살게 되지만 미카프랑스인임을 주장하고 싶다.

그런 현실 도피적인 미카에게 할아버지는 소년의 능력을 일깨워준다. 자연을 통하여 무엇을 얻으려는 걸까. 이것은 미카의 숙제이지만 그 능력을 스스로 일깨우도록 이끄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우리 어른들이 청소년들에게 반드시 해야할 의무를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아이들은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고 그 능력을 제대로 짚어보고 제대로 된 길로 이끌어야 함은 어른들의 몫임을 일깨운다.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고 더욱 작은 소리를 듣게 되면서 미카는 자신도 모르게 자연에 대한 경외함과 넓은 자연을 받아들이면서 현실속에서 늘 비판적이였던 소년은 어느덧 넓은 정글속에서 모든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멋진 소년으로 자라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노라면 정글을 비추는 환한 태양속에 같이 서있는 듯한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지루할 수 있는 결말이 정해진 성장소설의 틀을 벗어난 5년전의 살인사건의 등장과 숲속에서 만난 미지의 생명체에 대한 이야기는 아이들이 추리소설과 환상소설을 같이 읽어가는 재미를 준다.
할아버지의 존재와 생각지도 못한 반전으로 책을 끝까지 놓지 않게 하는 스릴 넘치는 재미가 풍부한 책이기도 하다.

청소년기에 들어서면서 오히려 가족과 소원해질수 있는 아이들이 이 책을 통하여 어려움과 역경은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이고 힘들수록 가족만이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라는 것을 떠올린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아이들은 충분히 마음 넓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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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구재 시사회
최승환 지음 / 낮에뜨는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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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구재 시시회>라는 책을 듣고 나서는 책 내용보다는 그에 얽힌 이야기들이 흥미를 끌었다.

소설을 위한 홈페이지. 주제곡이 있는 소설..그리고 책을 출판과 절판과 재출판 과정에서 일어났던 슬픔등... 처음 이 책에 대한 소개글을 뒤져보면서 무엇인가..말로 표현되지 못하는 서늘함이 있었다고 해야 할까. 역시나.. 나는 책을 접하고 정말 날밤을 꼬박 새워서 읽었다. 책을 편식하는 나의 습관과 잘난 주제도 아니면서 이책 내용은 어떻고 저건 어떻고를 연발하면서 책을 정독하는 습관이 없다. 급한 성격탓에 일단 훑어보고 다시금 읽어대는 독서 습관으로 인해서 한자리에 꼼짝 않고 앉아서 읽었다는 것은 나 스스로도 대견하다. 이렇듯 이 책은 단어 하나하나 표현 한구절 한구절을 놓칠까봐, 급해지는 내 성격을 차근차근 다독이면서 읽어 나갔다.

슬픔이라 표현되기에는 너무 저리다. 가슴 저리다가 아니라 온 몸이 저리다가 맞다. 이 책은 나에게 온 몸이 저려오는 그 무엇을 전해주고 있다. 불혹의 나이에 어지간한 감정도 어지간한 슬픔도 이젠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는 내가 책을 읽고 나서도 한참을 그 저려옴에 꼼짝할 수 없다. 흔한 사랑이야기라고 하기에는 표현 하나하나..이야기의 전개 하나하나가 너무 절절하다. 

반전의 반전..세상을 나름 살아봤다고 말하는 내가 생각하던 결론을 뒤집어 버린 또 다른 결론.
그리고 그에 따른 주인공의 그 아픔..그 결정..그럴 수 밖에 없던 것을 이해하면서도 너무 화가나고 짜증이 난다. 왜 그래야 하지? 이해한다. 사랑의 그 깊이가 어느 정도였는지 이해를 하지만 그래야 했나? 왜? 그럼..남은 사람들은??나는 현실적인 사람인가 보다. 결과를 보고 혼자서 끙끙대고 화를 삭히니 말이다.

작가는 사랑을 선택했다. 사랑이 모든것을 바꾸어 놓는다는 그 단순한 결론을 멋있게 행복스럽게 이끌어 낸다. 다시한번 나는 현실적인..감정이 메마른 사람임을 스스로 인정했다. 조금 더 생각을 한다면..조금 더 사랑에 대한 깊이와 그 향기를 생각한다면 중간에 그토록 화를 내고 짜증낼 일이 없었을 것이다. 섣부른 나만의 결론을 내릴 일이 없었을 것이다.

<사십구재 시사회>라는 제목을 보고 무서움을 느꼈다. 그것은 없다고는 할 수 없는..영혼과 그 영혼이 살아 생전 사랑하던 이를 찾고. 정을 끊기 위해 행한다는 그 무엇..이것에 대해 그래도 조금은 알고 조금은 겪은 나였기에 현실과 다른 세계에 대한 무서움도 함께 느꼈다.

내가 죽는다면..내가 살아 생전 못했던 사랑의 표현을 이승 사람에게 표현하고자 48일간을 떠돌아 다닌다면..과연 나를 기억 하는 사람들은 내 영혼을 꿈속에서 보길 원할까? 아니면 나를 귀신이라 치부하고 도망칠까..역시나 나이 때문일까..내가 살아온 길에 대한 후회와 내가 살아갈 날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다시 말해 젊은 두 연인의 사랑 이야기 뿐만 아니라 연인 주변의 사건을 통해 인간으로서 진정 무엇이 되었나. 어떻게 될까를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슬프다..라고 말하는 것이 이 책에 대한 가벼운 표현이라고 하고 싶다.

행복함이다. 책의 결론을 떠나서 나 스스로 세상과 영혼과 삶과 주변 사랑들에 대한 그 가슴 넉넉한 행복감을 느낀다. 책 속의 한 구절에서 하나를 배워본다. 가지고 있던 것을 다 덜어내 베풀어 보는 그 무엇, 더 많이 웃어서 다른 이를 행복하게 해주는 그 무엇을 내 가슴에  담기 위해 책을 또다시 펼칠 것이다.

책의 뒷편에 있는 작가의 작품 후기를 보고 감히 작가님께 말하고 싶다. 좋은 곳에 가셨을 거라고. 아마도 그 절절함을 다 알기에. 그 슬픔을 다 안고 좋은 곳에 가셨을거라고 하찮은 위로를 드리고 싶다. 산 사람은 살게 마련이라고 참..야속한 말들을 하고 산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정확한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는 살아 있는 사람의 또다른 인생을 돌아보라는 뜻이다. <사십구재 시사회>의 모든 것을 접할 때마다 작가님의 슬픔이 또다시 떠오르겠지만 이토록 책 한권으로 마음속 깊이 저려옴을 느끼고 그것이 온몸으로 반응함을 느낄때..책을 만들었던 모든 사람들의 그 간절한 소망함이 이루어진것이 아닐까하며 감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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