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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지기 쉬운 깨지지 않을 - 바람단편집 3 ㅣ 반올림 11
김혜진 외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7년 10월
평점 :
결혼준비를 할 때 살림이 넉넉하지 않았던 엄마는 다른 것들은 보통 수준의 것으로 고르시면서도
유독 그릇만은 제일 좋은 것을 고집하셨는데 이유인즉,
가구나 가전제품은 처음 쓸 때만 눈길이 머물지만 그릇들은 세 끼를 끓여먹을 때마다 항상
모든 식구들이 보고 만지게 되는 것이니 튼튼한 것은 물론이고 아름다워야 밥맛도 나는 법이라 하셨고
그렇게 크리스탈 물잔 11개가 나에게 왔다.
애지중지 다루던 물잔들은 다른 사람들이 놀러와서 깨뜨리기도 하고, 내가 설거지를 하다가 깨기도 하여
십여 년이 지난 지금은 겨우 5개만 남아 있을 뿐이지만, 엄마가 처음에 골라주실 때 그 맑은 빛깔과 울림을
아직도 기억한다. 아마도 나는 앞으로 또 몇 개를 깨뜨리겠지만 엄마의 마음만은 결코 깨지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이번 단편집은 뜨거웠다.
라디오 디제이에게 사연을 보내는 형식을 취하는 홍홍이의 '정오의 희망곡'은 영화 '라디오 스타'처럼 따뜻하다.
'쥐포'는 대학에 대해, 참교육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재삼이의 얼굴을 통해서 삶은 언제나 '나'의 것이라는 걸
깨달으라고 충고한다. 이 책에서 제일 밝은 모습을 보여주는 'Reading is sexy!'는 힘겹게 살지만 책을 읽을 수 있다면
언제나 행복하다는 연저를 등장시켜 삶의 긍정적인 면을 보라고 일러준다.
선생님이 내주신 과제인 착한 일을 하고 논리적인 글을 쓰기 위해 의도적으로 할머니의 마늘을 몽땅 사려는 현서
('내가 왜 그랬지?')를 보면 봉사 점수 때문에 억지로 여기저기 봉사할 곳을 찾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아이들이 사람답게 사는 법을 잊지 말아야 할 텐데 하는 안타까움마저 들고,
청소년 소설의 영역에서 한 발 물러선 듯 보이는 '세상에 단 한 권뿐인 시집'은 젊은 날을 회상하면서 그 시절의
아련한 첫사랑을 그리고는 있지만 역시 어른들을 대상으로 쓴 글처럼 보인다.
'학습된 절망'에서는 말의 힘이 느껴졌다. 될 수 있을 거야, 할 수 있을 거야!
'정오의 희망곡'과 더불어 가장 마음에 들었던 '깨지기 쉬운, 깨지지 않을'은 제목에서 드러난 것과 같이
유리 공예품처럼 소중하게 잘 다뤄야 하지만 그렇게 쉽게 자신을 내던지지 않는 강인한 면모를 가진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어른들이 사는 모습이 다 다르듯이, 아이들도 사는 모습이 다 제각각이라는 걸 우리는 항상 잊고 산다.
호박에 틀을 씌워놓으면 네모로도 세모로도 동그랗게도 만들어지는 걸 보고는 아이들도 교복 속에 가둬놓고
똑같아지라고 주문을 외우는 탓이다. 누가 가르쳐줬는지도 모르는 그런 엉터리 주문은 버리고 이젠 이렇게 외쳐보자.
"소중한 우리 아이들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