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두에서 일하며 사색하며 - 길 위의 철학자, 에릭 호퍼가 남긴 1년간의 일기
에릭 호퍼 지음, 정지호 옮김 / 동녘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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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평생을 길 위에서 일하며, 사색한 미국의 사회철학자 에릭 호퍼가 56~57세 나이에 샌프란시스코 부두에서 일을 하며 쓴 일기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부두 노동자로 일을 하면서도 책 읽기, 사색하기, 글쓰기를 했다니 대단하다. 쉽지 않은 노동이었을 것이다. 그는 중간에 쉴 때 사색을 하며 가지고 다니는 메모 북에 노트를 하고, 집에서 정리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하루 종일 쉴 때도 있고, 사색을 안 할 때도 있고, 글도 안 쓰는 날도 있었다. 그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보다는 그저 내가 해야 할 거 같다는 생각에 묵묵하게 하루를 살아갔다. 그가 혼자서 직장과 집에 틀어박혀 지낸 것은 아니다. 교외도 나가고, 공원에서 아이와 놀고, 꽃도 사서 집안을 치장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책 읽기, 사색하기, 글쓰기에 자유로웠다. 


우리는 일하느라 책을 읽을 시간이 없고, 바빠서 생각할 시간이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은퇴를 하거나 장기간의 휴가를 보낼 수 있다면,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글쎄다. 뭔가 생각을 바꾸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은퇴하고 나서 시간이 많다고 좋은 것만은 아닐 거 같다. 꼭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라도 실제 존재하는 나를 느끼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일은 필요하다. 책 읽기, 사색하기, 글쓰기는 돈이 많이 안 든다. 하지만, 3주 휴가 기간에 글을 못 쓰다가 다시 부두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글쓰기를 재개한 에릭 호퍼처럼 일은 필요하다. 책 읽기, 사색하기, 글쓰기뿐만 아니라 은퇴 후 일찾기도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좋은 방에서 살고, 좋은 옷을 입고, 최고의 서재를 꾸미고, 세상의 좋은 음악을 다 감상하는 등, 생을 즐기면서 살면 안 된다는 세속적인 이유는 전혀 없다. 행복감을 느끼는 데 글쓰기가 꼭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이런 단순한 이유로 글을 써야 한다. 내 이름이 활자화되기를 특별히 바라지도 않고 아무에게도 빚진 것이 없다. 나는 그저 꾸준히 생각하고 쓸 뿐, 그 결과 생기는 부산물은 제 스스로 알아서 가도록 내버려둔다.' (p.192)

에릭 호퍼는 역사, 인문, 인간, 자연, 정치, 사회 등 폭넓은 분야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사색을 한다. 책을 읽고, 사색을 하고, 글 쓰는 것을 구상한다. 대중은 포털 사이트를 통해 온갖 뉴스, 가십거리에 노출되어 있지만, 시간 때우기 용도로 읽고, 집어치워 버린다. 나름대로의 해석과 고민은 없다. 아는 만큼 사색도 할 수 있고, 고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일상생활 속에서도 찰나에 스쳐가는 무수한 생각들이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 어느 것 하나 기록할 생각을 안 한다. 감정 또한 마찬가지이다. 

'한순간의 감정은 말로 간직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문장으로 표현해놓을 때만 기억할 수 있다. 우리는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지는 것은 쉽게 기억한다. 그러나, 치욕스럽거나 칭찬받았을 때 느낀 감정, 희망을 품거나 절망했을 때 느낀 감정은 기억하지 못한다.' (p.165)

에릭 호퍼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실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를 안다고, 어떻게 미래를 해독할 수 있겠는가? 다양한 조건에서 과거에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참고할 뿐이다. 

'역사가 가치 있는 이유는 후대 사람들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해독하는 데 도움을 줘서가 아니라, 인간이 자연과 사회 환경에 따라 어떤 영향을 받으며 어떤 식으로 살아왔는지 그 실마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인간을 실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지만, 역사를 보면 다양한 조건에서 인간이 어떻게 대처했는지 알 수 있다.' (p.55)

에릭 호퍼가 인간의 창의성을 논한 부분은 스티브 존스의 <원더 랜드>와 통하는 부분이 있다.

'인간의 창의성은 놀기 좋아하고 사치스러운 것에 집착하는 성향에 그 뿌리를 둔다. 중요한 점은 아이들이나 예술가들에게는 생필품보다 사치품이 더 필요하다는 사실, 사치품을 만들기 위해 애쓸 때 인간은 보다 과감해지고 더욱 독창적으로 변한다. 인간이 발명한 실용적인 도구는 통찰력과 기술을 응용한 것들인데, 이들은 대개 비실용적인 것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산물이다.' (p.103)

이나가키 에미코의 <퇴사하겠습니다>에서 회사 사회가 아닌 인간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에릭 호퍼의 다음 내용은 지독하게 현실적인 분석이라 생각한다. 이런 인간의 본성으로 지금까지 회사 사회가 더욱 굳건해졌을 것이다. 

'사람은 꼭 필요한 생필품보다는 없어도 그만인 사치품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열심히 일한다. 앞을 정확하게 내다볼 줄 알고 쉽게 현혹되지 않으며 자제력이 있는 사람들은 일단 욕구가 충족되면 더는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 사치품을 위해 공들이지 않는 사회는 끝내 생필품 부족 사태에 직면한다.(중략) 활기찬 사회는 사회 구성원이 장난감에 마음을 쏟고, 생필품보다는 사치품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하는 곳이다.' (p.171)

에릭 호퍼가 가난한 나라를 걱정하는 아래 내용을 보면, 왜 한국이 이승만, 박정희 시절에 절대 권력을 가진 독재자에게 지배당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가난한 나라에서 자유를 허용할 수 있을까? 기술적, 사회적, 정치적 기교를 많이 축적하지 않은 신생 국가는 자유가 가져오는 피로와 긴장을 감당하는 일이 무리가 아닐까? 내가 볼 때 한 나라가 국민에게 자유를 허용하려면 우선 부를 충분히 쌓아야 한다. 또 제멋대로인 정당과 자유를 외치는 개인 사이의 끊임없는 주도권 싸움에게 버틸 수 있으려면 충분한 활력을 갖추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한 사회가 자유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의 기능을 원활하게 꾸려갈 수 있는 기술을 먼저 확보해야 한다.' (p.197)

안드로이드 일기장 앱 하나를 다운로드해서 설치했다. 메모장을 가지고 다니는 것을 잊어먹기 때문에 항상 챙기는 휴대폰에서 그때마다 메모를 해두기 위해서이다. 사실 도구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습관처럼 책 읽고, 사색하고, 글 쓰는 것을 지속할 수 있으냐가 중요하다. 에릭 호퍼의 인생처럼..


2017.10.09 Ex Libris H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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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7-10-09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는 제가 전투마법사님에게 졌네요. 명백한1패. 직장생활중에 이렇게 많은 리뷰를 써내시다니 대단합니다. 전투마법사님의 앞으로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네요 ^^

카타유 2017-10-09 12:57   좋아요 0 | URL
이번 연휴에는 시간이 많이 있어서 쓴 거 뿐이에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감사합니다.
 
휘게 라이프, 편안하게 함께 따뜻하게 - 덴마크 행복의 원천
마이크 비킹 지음, 정여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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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말뫼로 출장을 간적이 있었다. 추운 1월에 갔기 때문에 중무장을 한 채로 코펜하겐 공항에 도착했다.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에서 스웨덴 말뫼로 갈 때는 긴 다리를 지나 가는데, 그때 엄청난 바람과 눈이 내렸기 때문에 엄청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힘들게 도착한 호텔 실내는 꽤 어두웠지만, 밖의 날씨에 대해 너무나 포근했던 기억이 난다. 
에이전시 사무실에서 몇 주동안 근무하면서 그들의 생활이 참 부러웠다. 20명이 안되는 소규모 회사였는데, 대부분의 직원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항상 가족과 저녁을 먹기 위해 6시 이전에 퇴근하고, 매주 금요일 오후에는 간단한 다과, 케이크, 커피 또는 맥주와 함께 사무실에서 어울린다. 
회식을 할 때는 보드카를 마시면서 쇠구슬 놀이를 했다. 자유로운 분위기가 참 좋았고, 회식하는 중에 담배를 피기 위해 잠시 음식점 밖으로 나왔을 때 눈덮인 광장과 하늘의 별들은 정말 환상적인 조화를 내뿜고 있었다. 

이 책은 덴마크의 생활 라이프를 규정할 수 있는 휘게 라이프를 소개하는 책이다. 촛불, 따뜻한 차, 맛있는 케이크, 벽난로, 따뜻한 담요 등으로 묘샤할 수 있는 북유럽 라이프를 휘게라고 말할 수 있다. 휘게에 대한 정의를 명확하게 내리는 것은 어렵다. 기분으로 느껴야 한다. 
가족과 친구와 함께 할 때 휴대전화를 끄고, 보드 게임을 하거나 대화를 나누면서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며, 평화롭고 안전하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휘게릭하다 표현할 수 있다.

덴마크는 날씨가 우리나라처럼 좋지 않다. 우리나라는 4계절이 뚜렷하고, 아름다운 산, 깨끗한 물, 좋은 흙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덴마크는 여름은 있어도 대체적으로 습하고, 어둡고, 추운 나라이다. 그러다 보니 덴마크는 실내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고, 집안 소품, 가구 인테리어, 조명 등이 발전했다.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고, 검소한 삶을 살기 때문에 휘게릭한 생활을 하는데, 돈이 많이 필요하지가 않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또는 가장 행복한 나라를 뽑을 때 항상 상위권을 유지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덴마크에 대한 여러가지 면을 살펴 볼 수 있었다. 고기와 단 것을 무척 많이 먹는다는 것은 나에게 맞지 않지만, 그들의 삶의 방식, 여유와 절제 등은 부러운 점이 많다.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크 비킹이 제안한 구매 방법은 실천해 보면 좋을거 같아서 적어본다. 무절제한 쇼핑을 막으면서 구매를 한 후에도 기쁘게 쓸 수 있을거 같다. 저축하면서 기다리면 꼭 필요하고, 꼭 갖고 싶은 것만 구매를 하지 않을까 한다. 

'무언가를 구입할 때는 좋은 경험과 연결 지어라. 나는 새로 출시된 의자를 사려고 충분한 돈을 모았는데도 나의 첫번째 책이 출판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구매한 적이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의자를 볼 때마다 나는 첫번째 책의 출판이라는 성취를 기분좋게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갖고 싶은 스웨터나 좋은 모직 양말을 구입할 때도 똑같은 방식을 적용할 수 있다. 우선 저축을 하라. 그러나, 휘겔리한 경험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구매하라. 그러면, 그것들을 입거나 신을 때마다 좋은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아래는 코펜하겐에서 찍었던 몇 장의 사진이다. 어느 여름에는 코펜하겐을 꼭 다시 방문하고 싶다.







2010.10.08 Ex Libris H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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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하겠습니다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김미형 옮김 / 엘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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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대기업에서 근무하다가 50세에 회사를 그만둔 독신 여성이다. 30대 후반부터 회사는 평생직장이 아니고, 50세에 회사를 스스로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준비를 한다. 
마약 같은 월급을 받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며, 누군가와 끊임없이 경쟁하며 힘들게 살다가 지칠 때쯤에 은퇴나 해고 통보를 받기보다는 회사를 스스로 나가서 자립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뭐, 이 정도는 다들 아는 내용일 수 있는데, 저자가 준비하는 방법이 신선했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 끊임없이 배워라. 등 많은 조언들이 있지만, 저자가 말하는 조언은 '돈이 없어도 행복한 라이프 스타일의 확립'이다. 월급을 받을 때마다 쇼핑을 하며 집에 쌓아두던 물건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최소한의 돈으로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독신이기 때문에 극단적인 방법도 선택하는데, 전기세 반으로 줄이고, 외식을 자제하고, 농수산물 직거래 장소를 찾아다닌다. 
가족에게 이렇게 하자고 한 번 이야기해보자. 당장 어떻게 된 거 아니냐고 핀잔을 들을 것이 뻔하다. 하지만, 각자 상황에 맞게 물건에 집착하는 물욕의 생활을 떠나야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회사를 그만둘 때 가장 걱정되는 것 중의 하나가 회사에서 받는 각종 보장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건강보험, 개인연금, 각종 복리후생, 건강 검진 등. 회사를 그만두면, 스스로 모든 사항을 신고하고, 처리해야 한다. 부동산 중개소에서 집을 구할 때나 신용 카드 만들 때도 회사를 안 다니면, 많이 불편하다. 

저자는 국가가 회사를 그만둔 퇴직자를 위한 정책을 만들기보다는 어떻게 하든 회사를 다니도록 만드는 정책을 먼저 우선시한다고 한다. 회사에 의해서 돌아가는 사회가 바로 회사 사회이다. 정부, 회사, 은행이 서로 협력해서 사람들에게 더 많은 빚을 내도록 해서 경제를 성장시키는 구조인 사회이다.   
회사 사회에서는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회사가 물건이 안 팔리면, 일하는 사람을 싸게 쓰고 버리거나 고객을 속여야 한다. 다시 말해, 회사가 살아남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불행해지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이런 회사 사회를 벗어나 인간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자립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돈은 벌어야 하지만, 경비와 수입의 균형을 맞추고, 절제와 절약을 하며, 싫은 사람과 억지로 사귀지 말고, 이웃과 교류하면서 사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저자가 말하는 인간 사회는 참으로 쉽게 만들어질 사회가 아니다. 하지만, 고민해 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정의하는 일은 다음과 같다. 이 정도의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많은 고민의 결과가 아닐까 한다. 

'일이란 궁극적으로 말하자면, 회사에 들어가는 것도 돈을 버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 그것은 놀이와는 다릅니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반드시 진지해져야 합니다. 그렇기에 일은 재미있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회사가 힘들다고 나갈 궁리만 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의 마지막 충고를 가슴속에 새겨 둘 필요가 있다. 

'회사는 나를 만들어가는 곳이지, 내가 의존해 가는 곳이 아닙니다. 그걸 알게 되면 회사만큼 멋진 곳도 없습니다. 그리고, 수행이 끝났을 때 당신은 언제고 회사를 그만둘 수 있습니다. 다만 언젠가 회사를 졸업할 수 있는 자기를 만들 것. 그것만큼은 정말 중요한 게 아닐까요.'


2017.10.08 Ex Libris H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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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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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목은 <Hillbilly Elegy>이다. 영어사전에 없는 Hillbilly를 위키피디아에서 찾으면, 미국 산맥 지역 특히, Appalachia 산맥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슬랭 용어라고 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하층민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쓰고 있다. Elegy는 슬픔을 표현한 시나 노래를 뜻하는 것으로 애가라고 번역할 수 있을 듯하다. 즉,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하층민의 슬픔을 표현한 노래가 이 책의 제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J.D. 밴스는 힐빌리 출신으로 해병대, 오하이오 주립대학, 예일 로스쿨을 거쳐 로스펌에 취직한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그도 힐빌리 출신이었기 때문에 불완전한 가족관계, 약물중독 엄마, 가난한 생활 등에 그대로 노출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그를 지켜준 누나 등이 주변에 있었기 때문에 아주 불운하지 않았다. 표창원 님은 <왜 나는 범죄를 공부하는가>에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의 유년시절에 따뜻하게 보호를 해주는 사람이 한 명만 있었어도 그토록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수도 있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하층민의 세계에서 살았지만, 교육 또는 자존감 만큼은 지켜준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힐빌리를 탈출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로 성공적인 삶을 산다. 그냥 주저앉을 수도 있었지만, 두려움을 딛고, 해병대를 자원하고, 해병대에서 배운 경험, 제대 후 지원 혜택을 기반으로 자신의 길을 계속 간다. 

저자는 본인들의 어려움을 국가와 사회보장 탓으로 돌리지 않고, 제대로 살기 위해 힐릴리들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할머니가 항상 그에게 통렬하게 꾸짖은  "뭐든 할 수 있다. 절대 자기 앞길만 막혀 있다고 생각하는 빌어먹을 낙오자처럼 살지 말거라." 이 말은 참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가난한 사람은 통조림, 냉동식품으로 장바구니를 채우고, 맥도널드 등의 체인점에서 식사를 한다. 그리고, 분유를 산다. 복지 제도를 통해 얻은 푸드 스탬프를 팔아서 담배, 술, 약물, 마약 등을 산다. 이러면서 자신의 몸을 더욱 망친다. 본인도 감당하기 힘들면서 한순간의 성적 욕망에 사로잡혀 아이를 낳고, 방치한다. 그러면서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고, 점차 결혼도 못하고, 동거와 별거로 바뀐다. 
미국 대학교는 장학금 제도가 잘 되어 있어서 어려운 환경에 있는 학생들이 마음만 먹고, 노력하면 충분히 대학교를 다닐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알아볼 생각조차 안 하고, 경제적인 이유로 대학교를 포기한다. 결국, 가난한 사람은 스스로 계속 가난의 길로 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국가는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고, 최소한의 보장을 국민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열심히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저자는 사회 보장 시스템을 만들기 전에 가난한 사람의 실생활을 제대로 파악하라고 역설한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본인의 마음과 노력이 없으면, 아무리 보장 제도를 잘 만들어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공감 가는 이유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가난할수록 보수 정치, 즉 기득권을 위하는 정책을 펴는 정당을 지지한다고 한다. 한국에서 시골, 저학력자, 노동 계층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것과 비슷하다. 내 월급 명세서에 노인복지 기금 지출이 매달 찍혀있다. 이 복지 기금을 만든 사람이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유시민 님이다. 하지만, 경기도 도지사에서 많은 노인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결국 떨어졌다. 

헬스장에서 양복바지를 입고, 운동하는 할아버지 한 분이 있다. 트레드밀에서 운동은 안 하고, TV만 보신다. 가끔 덤벨을 들어 올리시고, 다시 본인의 가방으로 자리를 잡아 놓은 트레드밀로 올라가서 TV 조선을 본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트럼프 같은 엄청난 대통령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재인 같은 사람이 트럼프에게 가서 말할 상대나 되냐고 말한다. 난 그 할아버지에 대해서 하나도 모른다. 하지만, 화도 나면서 안타깝기도 하다. 

난 어렸을 때부터 무난한 게 살아왔다.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남들 하는 대로 쫓아갔다. 정말 어렸을 때 내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면, 그리고, 하나의 이정표를 향해 정말 노력했다면, 지금은 어땠을까 생각한다. 어렸을 때 나 또한 그리 풍족하지 않은 가정에 불만을 가진 적이 많았다. 하지만, 문제는 내 인생을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고, 주도적인 삶을 살지 못한 것이다. 아직도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뭔지 잘 모르겠다. 그때까지 멈추지 말고, 고민을 해야 한다.


2017.10.06 Ex Libris H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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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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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님의 소설을 처음 읽었다. 일본 소설의 특징일까? 일본 소설에서 주인공이 주변 사람들을 치유하는 내용을 에피소드로 묶어서 소개하는 구성을 볼 수 있는데, 내가 읽은 책 중에 <비블리아의 고서당 서점>, <팽권 철도 분실물 센터>도 비슷한 구성을 따른다. 
직접적으로 해결책을 제기하지 않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가끔 무심한 듯한 주인공이 등장하고, 평범하지 않은 주인공의 외모, 환경 등을 기반으로 전개되며, 잔잔한 생활의 단면을 배경으로 따뜻한 결론으로 끝맺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비블리아의 고서당 서점>에 등장하는 미모의 고서점 여주인과 직원, <팽귄 철도 분실물 센터>에 등장하는 분실물 센터 직원과 펭귄, 그리고, <공중그네>에 등장하는 뚱뚱하고, 염치없는 신경정신과 의사와 육감적인 간호사는 분명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대상이다.

이 책의 주인공 이라부 이치로는 종합병원 원장 아들이면서 신경정신과 의사로 각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환자들을 치유한다. 치유 방법이 독특한데, 일단 환자가 하는 일에 많은 관심을 가지며, 무심한 듯한 태도로 일관하면서 치료를 하면서도 결국, 환자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결국, 신경정신이 마음의 문제이니 마음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치료의 핵심인 거 같다. 
이라부는 환자들의 생활에 직접 개입하기도 하는데, 진취적이고, 호기심도 많고, 자신이 직접 부딪혀 보는 것을 좋아한다. 조폭과 함께 미팅에 참석하기도 하고, 공중그네를 배워서 서커스단에서 관중 앞에서 직접 해보고, 공공시설물에 낙서도 하고, 환자에게 야구를 배우고, 심지어 소설가가 되기 위해 책을 써서 출판사로 찾아가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적극적이고, 활동적인데, 왜 뚱뚱할까? 뚱뚱하면, 게을려야 한다는 내 선입견이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부럽다. 
'난 안되겠지. 시간이 없어. 남들이 보면 뭐라고 하겠어.' 우리는 항상 이렇게 생각하면서 많은 것을 시도조차 안 하지 않나.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종합병원 원장의 아들로 병원에서 쫓겨날 염려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저렇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경제적 능력이 뒷받쳐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경제적 능력이 있으면, 향정신성, 도박, 불륜 등으로 어긋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좋은 모습이기는 하다.

이 책에서는 신경정신학에서 다루는 여러 증상들이 나온다. 
뽀족한 것을 못 참는 '선단공포증', 항상 뭔가를 가지고 다녀야 하는 '블랭킷 증후군', 일탈의 행위를 억누르고 있는 '강박증', 자기가 생각하는 바가 몸에 전해지지 않고, 의지에 반하는 '입스', 감정들을 쌓아 놓고 있는 '강박증' 등이 등장한다.
그런데, 환자들이 하나같이 나름 성공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조폭 중간 보스, 서커스단 퍼스트, 대학병원 학부장을 장인으로 두고 있는 대학 강사, 올스타전에 매년 나가는 부동의 3루수,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인 안정을 가지고 있어도 신경정신 문제는 피할 수 없는가 보다. 어찌 보면, 이루어 놓은 것을 지키기 위한 지속적인 강박 관념이 문제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한다. 가진 것이 없으면, 걱정도 없다는 역설적인 주장이 생각이 난다.
이라부는 원인과 규명이 신경의학의 기본이라고 한다. 먼저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일종의 명상이기도 한데, 내 마음이다 보니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상담을 하러 간다. 자신을 속이 지 않고, 투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좋다. 이라부는 주사 성애자이기도 한데, 주사에는 항상 비타민이 들어 있다고 한다. 마음의 병이면, 마음을 다스려야지. 약물로 치료할 수 없는 거 아닌가. 이라부의 진단과 치료 방법이 마음이 드는 이유이다.

하루 만에 읽었다. 내용이 어렵지 않고, 이라부의 특이하면서 환자를 생각하는 치료 방식이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었다.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도 이번 연휴 시간에 읽을 생각이다. 
<공중그네>는 그리 길지 않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 소설이었다.


2017.10.06 Ex Libris H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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