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선할까? 아니면, 악할까? 집단적으로 인간들이 얼마나 악할 수 있는지를 볼 수 있는 사례는 인류 역사상 너무나 많다. 한 명이 무고한 사람에게 총을 쏴대면, 그 사람이 악하다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국가가 집단적으로 잔인한 죄를 방조하거나 획책 또는 직접 저지르는 것을 악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미국이라는 나라도 악한 나라이다. 선량하게 살고 있는 인디언들의 땅을 강탈한 후 모두 죽여버리고, 그 땅에 아프리카 흑인들을 데려다 놓고, 짐승처럼 부려먹은 나라가 미국이다. 자유와 기회의 땅은 유럽에서 떠나온 백인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었다. 

한 여자가 아프리카에서 납치되어 미국에 도착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미국 남부 조지아 주 백인 소유 농장에서 노예로 살던 주인공은 그나마 상식과 존엄성을 가진 백인들의 도움을 받아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로 도망가는데 성공한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흑인 전용 기숙사에서 미국 정부의 감찰 아래에서 노예를 벗어나 정상적인 생활을 하면서 기쁨을 누리지만, 이 주에서 흑인들 대상으로 조직적 불임, 전염성 질병에 대한 연구, 새로운 시술 테스트 등을 진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노예사냥꾼의 끈질긴 추격으로 인해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를 다시 탈출하고, 노스캐롤라이나 주로 숨어들지만, 이곳에서는 흑인들의 수가 많아져서 백인들을 쫓아낼까 봐 걱정하는 한심한 백인들에 의해 모든 흑인은 추방되거나 강제로 사형을 당하고 있었다. 주 정부에서 이런 사실을 묵인하고 있는 곳이었다. 끝내 노예사냥꾼들에게 잡히고,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주인공을 도왔던 백인들은 모두 처형을 당한다. 
테네시 주에 끌려온 주인공은 자유를 얻은 흑인들의 도움으로 다시 탈출을 하고, 인디애나 주에 정착해서 자유권을 가진 흑인 농장 사회에서 다시 행복한 삶을 가꿀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각 주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흑인 노예가 머물 곳은 없었다. 잠시 쉴 수 있어도 결국은 계속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이 사실을 주인공은 왜 그리 늦게 깨달았을까? 그 당시에 미국이라는 악마 같은 나라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주저했을까? 어쩌면, 인간의 본성은 착하다를 믿었을까? 설마 이 정도까지 할까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일종의 탈출기를 다룬 소설인데, 읽는 내내 조급함이 있었다. 주인공이 여기에서 이렇게 있으면 안 되는데, 빨리 움직여서 사악한 손길로부터 더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에 안절부절했다. 하지만, 힘든 여정을 이어온 주인공은 정착을 해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싶었지만, 결국 또다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의 앞 부분에 미국 동부 지역 지도가 나와 있다. 각 주는 거의 한국 지도보다 크니 주 경계를 넘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주 경계를 넘어 탈출할 때 지하에 있는 비밀 기찻길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 기찻길을 만든 사람들은 백인이었지만, 워낙 수가 적기 때문에 음성적으로 행동해야 했다. 조금이나마 양식을 가지고, 흑인 노예제를 반대하는 백인들도 테러를 당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에도 이렇게 어딘가로 탈출할 수 있는 지하 기찻길이 있을까? 하지만, 이렇게 탈출해서 도착한 곳은 과연 더 나은 곳일까? 흑인 노예는 분명 탈출해서 도착한 곳이 이전보다 좋았다. 하지만, 안전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한밤중에 외진 곳을 걸어갈 때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또는 그냥 서 있는 낯선 사람을 만나면, 어떤 기분일까? 난 아예 안 만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각박해졌다고 누군가는 말할 수 있지만, 오래전 과거에도 여전히 인간들은 잔인했고, 흉포했다. 개인이나 단체 또는 국가 차원에서 차이점은 없었다. 

일전에 겪었던 씁쓸한 기억이 떠올랐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뒤를 이어서 뛰어온 여자분이 날 보더니 엘리베이터 타는 것을 포기한 것이다. 올라가면서 생각해보니 그때 미처 머리 손질을 못해서 모자를 깊숙하게 쓰고, 감기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있던 모습 때문에 그 여자분은 불안한 마음에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은 것이었다. 더구나 근처 편의점에 갔다 오느라 운동복 차림이었으니. 씁쓸하기는 했지만, 그 여자분을 탓할 수는 없었다. 인간의 본성이 착하다는 것을 믿었다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었던가? 인간의 본성이 착하다는 것을 믿는 것보다 악하다는 것을 믿고, 조심하는 것이 맞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개개인이 자신의 본성이 착해지도록, 착한 본성이 계속 유지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노력하지 않으면, 언제 악한 인간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중간중간 등장인물들의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시간을 엇나가게 배치했다. 그리고, 중간에 시간을 송두리째 건너뛰기도 했다. 약간 번역이 매끄럽지 않은 부분도 있어서 이야기의 추진력을 떨어뜨리는 거 같다. 한창 긴박하게 돌아가면서 그다음 이야기가 궁금한 시점에 갑자기 과거로 돌아가서 설명을 하니, 과거 이야기를 하는 부분은 지루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주인공 노예 여자를 따라 미국 동남부 - 동부 - 중부로 긴박하게 여행을 하다 보니 어느덧 책을 다 읽었다. 몰입감이 있는 소설이다. 지금의 미국이 과연 어떤 것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올라타서 짓밟고, 나아갔는지를 알 수 있는 의미 있는 소설이었다. 


2017.10.18 Ex. Libris. H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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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10-18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폴 비티의 <배반>이 나왔는데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와는 어떻게 다른 결
을 보여 줄지 궁금하네요.

아타락시아 2017-10-18 21:54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배반>이라는 책도 읽어 봐야 하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