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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 단편선 소담 클래식 6
에드거 앨런 포 지음, 임병윤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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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마침내,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눈을 번쩍 떠 보았다.

정말 두려워했던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새까만 오둠만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애드거 앨런 포-


서양문화권에서 공포소설이나 미스터리 하면 반드시 언급되는 작가 '에드거 앨런 포'. 최근 넷플릭스에서 시즌2가 방영되어 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던 팀 버튼 감독의 <웬즈데이>에서도 그의 이름과 작품에 대한 내용이 주인공의 입을 통해 종종 나온다. 


팀 버튼이 어릴 적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을 읽고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지 그의 시 중 하나인 '갈까마귀'는 <웬즈데이>를 포함한 여러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팀 버튼을 포함하여 왜 많은 사람들이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에 푹 빠져드는 걸까?

에드거 앨런 포는 1809년 미국의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는 집을 나가고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고 만다. 부유한 양아버지 아래서 비교적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사립학교를 다녔지만 방탕한 생활로 퇴학을 당하고 만다. 보스톤에서 첫 시집을 내지만 호응을 얻지 못하고 궁핍한 생활을 이어나가다 미국의 육군 생활을 한다. 군인의 길을 가려고 사관학교에 입학했으나 이번에도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퇴학,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14세 사촌 누이동생 버지니아와 비밀 결혼을 하고 행복한 생활을 꿈꾼다. 그러나 이마저도 심각한 알코올 중독자였던 그 때문에 아내는 심하게 고생을 하게 된다. 그는 이를 보고 뉴욕에 정착하여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잡지사의 일급 편집자로도 인정받는다. 여기서 여러 단편을 발표하여 대중 작가로서 성공하지만 아내 버지니아는 폐병을 앓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아내의 병으로 인해 포는 극도의 불안감과 우울감을 느끼고 이는 그대로 작품에 반영되기도 한다.

이번에 소담 출판사에서 출간된 <포 단편선>에는 에드거 앨런 포의 대표작 『검은 고양이』를 비롯하여 『어셔가의 몰락』, 『적사병의 가면』, 『모르그가의 살인』 등이 실려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은 『검은 고양이』이다. 작품 안에는 실제 '에드거 앨런 포'가 자신의 모습을 반영하여 묘사한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무절제한 폭음으로 인해 극도로 과격해 버린 성격, 날이 갈수록 침울해지고 스스로 화를 돋우며 다른 사람의 감정 따위는 안중에 없는 모습 등이 서술된다. 그리고 어느 날 밤, 폭음으로 인해 자신이 정말 좋아했던 고양이 '플루토'를 학대하기까지 이른다. 조끼 주머니에서 조그만 칼을 꺼내어 목을 틀어쥐고 눈알을 도려내고 다음 날 후회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잔혹하고 사악한 마음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그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는 충동과 분노에 휩싸여 어느 날 아침 '나'는 고양이를 올가미에 걸어 죽이고 만다. 


이후 '내'가 스스로 자초하여 겉잡을 수 없이 이어지는 비극에 대한 이야기가 서술된다.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에서는 '나' 자신도 몰랐던 잠재의식 속의 잔인함과 공포, 사악함이 불쑥 튀어나온다.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며 망가지고 괴물이 되어가는 모습을 그려낸다. 


현대의 미스터리, 공포소설, sf 등 여러 장르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작가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 세계를 이해해 보고 싶다면 <포 단편선>부터 감상하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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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인 캐빈 10
루스 웨어 지음, 유혜인 옮김 / 필름(Feelm)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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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넷플릭스에서 곧 방영을 시작하는 <우먼 인 캐빈 10>, 무려 키이라 나이틀리가 주연을 맡은 선상 미스터리 스릴러다. 현대판 애거서 크리스티라는 찬사를 받은 작가 루스 웨어의 소설 <우먼 인 캐빈 10>이 원작으로 탄탄한 줄거리가 예상된다. 


참고로 넷플릭스에서 콘텐츠를 고를 때 구멍없는 치밀한 구성, 매끄러운 스토리 전개 등을 중요시 한다면 원작 소설이 있는 작품을 선택하면 된다. 이런 작품들은 갑자기 이야기가 딴 데로 새지 않으며 최소한의 기대치에 부응할 가능성이 높다.

루스 웨어의 데뷔작은 <인 어 다크, 다크 우드>로 예전에 리뷰를 한 적이 있다. 이 또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로, 은둔 작가'노라'가 기묘하고 낯선 공간에 초대되어 벌어지는 일을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였다. 이번 작품 <우먼 인 캐빈 10>도 호화로운 크루즈 쉽 '오로라호'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사건이 벌어진다. 루스 웨어의 소설답게 주인공이 가진 트라우마, 여성들이 가진 본질적인 두려움을 자극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키이라 나이틀리가 맡은 역할이자 <우먼 인 캐빈 10>의 주인공은 여행 잡지 <벨로시티>의 기자 '로라 블랙록', 애칭은 '로'이다. 초호화 크루즈선인 오로라 보리알리스호(오로라호)의 첫 항해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이 첫 항해는 노르웨이 피오르 해안을 한 바퀴 도는 코스로 오직 소수의 기자단만 초대되었다. 원래는 로의 상사인 '로완'이 갔을 자리였지만 그녀가 임신 후 입덧을 심하게 하는 바람에 '로'에게도 기회가 오게 되었다. 


오로라 호의 출발 일자는 9월 21일 월요일, 로는 이 기회를 꼭 잡아 오로라호를 소유한 노던 라이츠사의 회장 '리처드 불머' 경에게 투자를 받고 승진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9월 18일 금요일, 중요한 일을 앞두고 로는 큰일을 당한다. 바로 그녀의 집에 강도가 든 것, 불행 중 다행인지 강도가 직접적으로 로에게 상해를 입히지는 않았다. 그러나 강도가 침실 문을 확 밀치는 바람에 문이 로의 얼굴을 강타했다. 로는 문고리를 생명줄처럼 꽉 잡고 오랜 시간 자신의 방에 갇혀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로에게 완전히 트라우마가 되어 버린다.

로는 강도가 완전히 떠났다는 것을 깨달은 후 이웃집에 도움을 청하고 경찰을 부른다.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따뜻한 차도 마시고 약도 먹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남자친구 '주다 루이스'가 너무 보고 싶었지만 그 역시 여행 기자로 전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취재를 하는 중이었다. 열쇠 수리공이나 경찰은 로를 안심시켜주기는 커녕 더 큰 두려움을 심어주고 간다. 그녀는 공포에 휩싸여 거의 뜬 눈으로 밤을 보내다가 겨우 한 시간 반 정도를 잤다.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남자친구의 집을 찾아가지만 당연하게도 그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체취를 맡으며 겨우 잠에 들었다가 현실과 악몽을 분간하지 못하고 주다에게 전등을 힘껏 휘두르고 만다. 

주다는 입술이 찢어지고 이가 빠질 정도의 상처를 입었지만 '로'가 그런 일을 당할 때 옆에 있어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미안해한다. 덧붙여 주다는 로를 위해 런던에서 승진 제안을 받은 것까지 거절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로는 자기 자신마저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이 모든 것이 부담감으로 다가올 뿐이다. 아무것도 정리하지 못한 채로 오로라 호를 취재하기로 했던 일을 강행한다.


로는 술과 약에 의존하여 겨우 '정상적인 척'을 하며 오로라 호에 탑승한다. 호화로운 이 크루즈 선에는 도서관, 일광욕실, 스파, 사우나, 칵테일 라운지 등이 있으며 눈이 부시게 찬란한 상들리에가 장식되어 있었다. 모든 선실은 스칸디나비아 출신의 유명 과학자 이름을 따서 지었고 '노벨실'에는 불머 경 내외가 묵는다. 로의 방에도 무려 두 명의 승무원이 배정되어 언제든 불편한 점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한다. 


컨디션은 바닥을 치고 침대는 어서 푹 자라며 손짓했지만, 로는 어떻게든 제 역할을 하기 위해 저녁 만찬과 프레젠테이션을 참석하기로 한다. 선상에서 보내는 첫 날, 서로 연락처를 주고 받으며 친분을 쌓을 텐데 이 기회를 놓치면 로만 뒤처져 겉돌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빌린 드레스를 차려입고 화장을 하려는데, 마스카라가 없다. 진한 화장에 마스카라를 하지 않으면 너무 이상해보이는 상황, 그러나 마스카라는 강도에게 도둑맞은 핸드백에 들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로는 오른쪽 옆방의 여자에게 마스카라를 빌릴 수 있었다. '10. 팔름그렌'이라고 적힌 여자의 선실, 핀란드 출신의 피아니스트 이름이다. 로가 마스카라를 쓰고 돌려주겠다고 하자 그녀는 손사레를 치며 자신은 필요없으니 괜찮다고 한다. 


아름다운 드레스를 차려입고 다른 여행 기자들, 세계적인 부자들과 친목을 나누며 즐기는 저녁. 로는 폐소공포증과 강도로 인한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오로라호'에서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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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구
김이환 지음 / 북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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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절망의 구>는 2009년 멀티문학상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진 김이환 작가의 한국형 SF소설이다. 한국 재난 소설, SF소설 등을 찾는 이들이 꾸준히 찾아 읽은 작품이었으며 이번에 미국과 영국에 번역 출간되기도 하였다. 김이환 작가의 다른 작품으로는 <소심한 사람들만 남았다>, <초인은 지금>, <이불 밖은 위험해>, <너의 변신> 등이 있으며 이 중에서 몇몇은 일본에서 출간되거나 영상화 진행 중이라고 한다.


이번에 개정판으로 출간된 <절망의 구>는 새까만 표지에 더 새까맣고 반질거리는 '절망의 구'가 그려져 있다. 그대로 책을 들고 보면 까만 동그라미 안에 우리의 얼굴이 흐릿하게 비춘다. 소설은, 일본 판타지 애니메이션의 오프닝 문구처럼 시작된다.

그 일의 시작은 그저 희한했을 뿐이다. 담배를 사러 밖에 나갔더니 세상이 멸망해 있다면 당신은 기분이 어떻겠는가?

*

"……을 조심하게 젊은이."

남자는 뒤를 돌아보았다.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남자의 어깨에 부딪히자 건넨 말이었다. 무엇을 조심하라는 것인지 남자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

-소설 <절망의 구> 첫 페이지-

도대체 무엇을 조심하라고 했는지 소설 속 남자와 독자의 호기심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소설은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서술된다. 서른두 살의 평범한 남자, 그는 부모가 도움을 청하는 다급한 전화를 받지 못했다. 후에 왜 전화를 받지 않았느냐고 호통을 치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언짢아진 기분을 산책으로 푸는, 그런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나날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럽게 달라진 골목 풍경. 정체불명의 시커먼 물체가 길 위에 나타났다. 높이는 2미터쯤 되고, 완전히 둥글고, 표면은 검은데 광택은 없어서, 꼭 허공에 검은 구멍이 나 있는 것처럼 보이는 둥근 물체. 옆집 아저씨가 그것에 다가가자 그 물체도 다가왔다. 그리고 시커먼 표면에 닿은 아저씨의 손이 그대로 끌려 들어갔고, 다음엔 손목이, 순식간에 팔꿈치까지 안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아저씨는 끌려들어가지 않으려고 소리를 질렀지만 모든 몸이 흡수되고 말았다.

그것은 2미터가량의검은 구였다. 그 구는 이내 주변의 사람들을 삼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구 안으로 끌려들어가며 비명을 질렀고 남자는 골목을 빠져나와 구로부터 도망갔다. 밤새 검은 구로부터 도망을 다니던 그는 텔레비전에서 '뉴스 속보'를 보았다. 검은 구가 사람을 삼키는 것에 대한 소식이 텔레비전을 통해 퍼져나갔고, 심지어 구는 자기 분열까지 하면서 늘어났다. 이 모습이 알려지자 세상에는 혼돈과 두려움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공포에 휩싸인 사람들은 비이성적으로, 이상하게 행동하기 시작한다. 도시는 통제되고 남자는 부모와 연락이 끊기고 만다. 자전거를 훔치려고 시도하면서까지 도착한 집, 그러나 부모님은 없고 남자 정수는 검은 구를 집 안에서 마주친다. 허겁지겁 구로부터 도망치는 남자, 그리고 구를 피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 여러 인간 군상을 만나게 된다.

미지의 물체 '검은 구'를 둘러싸고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다. 검은 구는 한 마디로 알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검은 구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흡수하고, 갯수를 늘릴 수 있으며, 여러 사람이 같은 거리에 있을 때는 멈춘다. 이 외에도 자잘한 사실을 알게 되지만 이 알 수 없는 '구'는 사람들을 더 많이 삼켜 나가며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남자는 과연 이 구를 끝까지 피할 수 있을까? 검은 구 때문에 이상하게 변해버린 세상에서 살아나갈 수 있을까? 도대체 구는 무엇이며 그의 부모님은 안전하게 피한 것일까?

수많은 물음을 안고 소설 속 이야기가 굴러간다. 검은 구와 남자의 행적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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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일본문학 베스트 1
다자이 오사무 지음, 강소정 옮김 / 성림원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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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이자 그가 마지막으로 완성한 소설이다. 그는 대지주 집안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여섯째 아들로 바쁜 아버지와 병약한 어머니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재학 중에 만난 술집 여급 다나베 시메코와 함께 고시고에 바다에서 첫 자살 시도를 했으나 그만 살아남았다. 이후 다섯 번째 자살 시도를 끝으로 1948년 39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애인 야마자키 토미에와 함께 강에 뛰어든 그의 시신이 발견된 날은 6월 19일, 그의 마흔 번째 생일이 되던 날이었다고 한다.

성림원북스에서는 <인간 실격>을 비롯하여 다자이 오사무의 대표작 <사양>, <달려라 메로스>를 매력적인 일러스트레이션 표지로 출간하였다. 새빨간 배경을 바탕으로 피가 묻은 약지를 입술에 대고 있는 모습이 피폐 웹소설의 치명적인 남주인공처럼 보인다. 다자이 오사무는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로 아쿠다카와 류노스케를 존경했으며 생전에 아쿠다카와 상을 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다. 아쿠다카와 류노스케, 나쓰메 소세키, 다자이 오사무 등은 일본의 유명작가로 일본 문학작품은 물론이고 만화, 애니메이션 등에 자주 등장하므로 이들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두면 다양한 일본 작품들을 훨씬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일본의 유명 작가가 대거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문호 스트레이독스>에도 다자이 오사무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초년 때보다 좀 나이가 들었을 때의 모습과 유사한듯 하다. <문호 스트레이독스>에서 다자이 오사무는 이능력자 집단 '무장탐정사'의 일원이며 자살 애호가로 소개된다. 특히 미인과 함께 동반 자살을 하고 싶다고 하며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이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미남 시인, 작가 계보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긴 하다.)

대부분의 소설에서 다자이 오사무는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인간 실격>에서는 특히나 그가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이 가감없이 나와 있다. 소설을 읽다보면 어쩜 이렇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자학할 수 있는 것인지 안타까울 정도이다. 


<인간 실격>은 서문부터 심상치 않다. 첫 페이지는 '그 남자'라고 표현된 사람의 사진 석장에 대한 묘사로 시작된다. 유년 시절, 열 살 전후로 추정되는 사진으로 많은 여자에게 둘러싸여 있는 모습인데 다들 알 것이다. 이 시기 대부분의 남자아이가 얼마나 개구쟁이인 데다가 귀엽고 발랄한지. 그러나 그 아이를 '흉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라고 말하며 '불쾌한 아이', '쪼글쪼글한 원숭이의 웃음'라고 평한다. 매우 기분 나쁜 듯이 중얼거리면서 송충이라도 털어낼 법한 손놀림으로 냅다 던져버리고 싶은 사진이라니. 두 번째는 고등학교 또는 대학교 시절의 사진, 아주 잘생긴 외모라고 평가하나 피의 무게도 생명의 깊이도 전혀 없는 만들어진 느낌이며 어딘지 모르게 괴이한 불쾌함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마지막 사진은 흰머리가 생긴 그가 엄청 지저분한 방의 구석에서 조그만 화로에 양손을 쬐고 있는 모습이다. 앞의 두 사진과 달리 웃지 않고 있으며 '화로에 두 손을 쪼이며 자연스럽게 죽어가는 듯한, 정말 꺼림칙하고 불길한 냄새가 묻어나는 사진'이며 표정 뿐 아니라 아예 아무 특징이 없는 얼굴이라고 말한다.


세상에... 매일 거울을 보며, 또는 자신이 찍힌 사진을 보며 항상 이런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면 얼마나 불행한 삶을 살다 간 것인지 모르겠다.


'첫 번째 수기'는 요조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이다. 첫 문장 부터 이렇게 쓰여 있다.


부끄러움이 많은 생애를 보내왔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유복한 집에서 태어났으나 요조는 어릴 때부터 허약해서 자주 몸져 눕고, '공복'이라는 감각을 느낄 수 없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배고파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 그저 타고난 아부 실력을 발휘해 '그러는 척' 했다. 가족 식사를 하는 시간이 가장 고역이었는데 어둑어둑한 방에서 열 명 남짓한 가족이 각자의 밥상을 보며 묵묵히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이 항상 으스스하다고 느꼈다. 먹고 싶지 않아도 말없이 밥알을 씹으면서 고개를 숙인 채 집 안에 꿈틀거리고 있는 영혼들에게 기도를 하는 일종의 의식처럼 여겨졌다니... 그는 항상 지옥에 있는 느낌이 들었고 다른 사람이 훨씬 더 평안해 보였다. 다른 사람이 지닌 괴로움의 성질이나 정도가 전혀 짐작되지 않아 혼자 특이한 사람이라는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그는 해결책을 찾아냈다. 다름아닌 '개그', 그에게는 이것이 인간에 대한 마지막 구애였다. 겉으로 다른 이들을 끊임없이 웃기고자 하면서 어느새 진실은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아이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항상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을 읽으면서 자조적이지만 웃기는 이야기, 그 특유의 분위기가 솔직해서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유머라는 것이 이렇게 개발되어 발전된 것이라면 정말 슬픈 일이지 않은가. 다른 사람에게 받은 물건이 아무리 취향이 아니더라도 거부하지 못하고, 싫은 걸 싫다고 말하지 못하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에 몸부림쳤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자신을 고백하는 소설들을 '글'이라는 형태로 쓰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속고 속이면서, 맑고 밝고 쾌활하게 살아가고 있는, 혹은 살아가는 자신감을 가진 듯한 사람을 이해할 수도 없고 그런 기술을 배울 수도 없었다는 그는 밤마다 인간의 삶과 대립했다고 말한다. 두 번째 수기에서는 자신의 '개그 연기'를 간파한 다케이치와의 이야기를 한다. 다케이치는 모딜리아니의 볕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 여인의 누드화를 보고 '지옥의 말'같다고 감상을 표현한다. 


"나도 이런 괴물 그림을 그리고 싶어."라고 하는 말을 듣고 그는 생각한다. 


인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훨씬 더 무서운 요괴를 두 눈으로 확실히 보고 싶어하는 심리, 신경질적이고 쉽게 겁을 먹는 사람일수록 폭풍우보다 강력한 것을 바라는 심리. 아아, 이 많은 화가들은 인간이라는 괴물에 당하고, 위협받고 끝끝내 환영을 믿다가 대낮의 자연 속에서 또렷이 요괴를 보게 된 거구나.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다자이 오사무는 스스로를 죽어가는 듯한, 꺼림칙한 이라고 거침없이 말하는가 하면 또 이세상 사람들 전부를 '인간이라는 괴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이 세상을 편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그는 스스로 삶을 꾸려가지 못해 여러 난항을 겪고 학업을 포기한 후 술집을 전전한다. 그러다 술집에서 만난 여성과 함께 가마쿠라의 바다에 뛰어들어 혼자 살아남아 취조를 받는다. <인간 실격>에는 항상 그의 옆을 서성이는 여자들의 이야기와 함께 세상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고 바닥의 바닥으로 가라앉는 그의 모습이 자조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애정을 갈구하지만 그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두려워하며, 스스로를 가치 없고 불쾌한 이라고 칭한다. 만약 다자이 오사무의 삶과 작품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인간 실격>은 꼭 읽어야 하는 작품이다. 당시 일본의 격동기를 살아가며 온 몸으로 불안해하는 청년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방황하는 우리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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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플라이트
줄리 클라크 지음, 김지선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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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그림과 함께 나온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 그리고 샛노란 알약 하나를 잡고 있는 손과 돈더미. 뉴욕타임스, USA투데이, 아마존에서 베스트셀러로 선정된 <라스트 플라이트>는 표지부터 심상치 않다. 새빨간 제목은 꼭 핏물이 번진 것처럼 보인다.


용기 있는 목소리를 들려준 모든 여성들에게 바친다는 <라스트 플라이트>, 메리 올리버의 <기러기>에 나오는 문구가 쓰여 있다. 네 절망과 내 절망이 모여 이 책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일까?


<라스트 플라이트>의 첫 페이지를 펼치면 의미심장한 문구가 나온다. 


뉴욕 존 F.케네디 국제공항...

추락 당일.


이 책에서 비행기가 결국 추락할 예정인 걸까? 비행기 추락을 계획했지만 무산되는 이야기일까?


'나'로 지칭되는 어떤 이가 공항 터미널에서 어떤 여자를 찾는다. 그 여자에 대해서 아는 것은 딱 세 가지. 이름, 생김새 그리고 아침에 푸에르토리코행 항공편을 예약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려고 온 사람들을 살펴보며 꼭 그들이 오늘 죽을 것처럼 예상하고 말한다. 이 세상에서 아주 작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지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데, '나'는 비행기를 추락시키려는 걸까? 타겟인 여자를 찾았다. 도망자들이 늘 앞쪽이 아니라 뒤쪽을 신경쓴다는 것까지 잘 알고 있는 '나'는 아무렇지 않게 여자의 앞쪽에 줄을 서려고 한다. 여자가 곧 사라진 사람들 중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라는 '나',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이 책은 두 여자주인공 클레어와 이바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먼저 클레어의 이야기가 나온다. 미국 정계에서 케네디가 다음으로 유명한 쿡 가문, 클레어는 로리 쿡의 아내로 살아가고 있다. 클레어는 엷은 화장으로 감춘 목 아래쪽 멍을 가리기 위해 스카프를 만지작 거린다. 다니엘의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편의 직원 다니엘에게 어디를 가야 하는지 미리 말한다. 클레어가 사전에 공지된 일정을 소홀히 여기면 다니엘은 이 일을 반드시 남편에게 보고한다. 로리는 상원의원 출마를 앞두고 클레어에게 언행을 조심하라고 단단히 일렀다. <쿡재단>은 전세계의 평화를 위해 여러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클레어의 평화는 지키지 못한 듯 하다. 로리에게 고용되어 충성하는 모든 사람들은 클레어를 감시하고 보고한다.

이런 로리의 눈을 피해 만나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었으니 바로 체육관에서 만나는 '페트라'이다. 클레어는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펜실베이니아의 귀족 학교에 다녔는데 러시아 출신 마피아 딸인 페트라와 니코가 항상 다른 아이들로부터 클레어를 지켜주었다. 2년 전 우연히 체육관에서 마주치게 된 페트라, 오직 페트라 앞에서만 클레어는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어느 날 페트라는 클레어의 멍 자국을 보고 남편과 헤어지라고 말한다. 클레어 또한 과거에는 로리와 이혼하려는 시도를 했었다. 남편의 폭력으로 소송이 유리한 쪽으로 진행될 거라 생각하고 대학 시절 친구의 집에 도피했으나 그 친구의 남편이 로리의 친구였다. 로리는 클레어가 우울증을 앓고 있어 정신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하며 클레어를 데려갔고, 클레어는 그 날 집으로 끌려가서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맞았다. 말을 듣지 않으면 진짜 정신병원에 넣어버리겠다는 위협을 들었고, 로리는 쿡 집안의 전통과 명예를 위해 '이혼'은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모든 사람들은 로리가 쿡 집안의 아들답게 진보적이고 모범적이라 믿었고, 클레어가 아무리 다른 사람에게 하소연해도 믿어주지 않았다. 로리와 과거 사랑을 나눴다던 '매기 모레티'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남편으로부터의 자유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자신을 찾아내지 못하는 곳으로 숨는 것' 뿐이라고 말하는 클레어. 대체 매기 모레티는 누구이며 그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 그리고 클레어는 이 지옥 속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페트라와 몇 년에 걸쳐 실종 계획을 세운 클레어는 마침내 모든 준비를 끝내고 비행기를 예약한다. 클레어는 로리가 '매기 모레티'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를 회상한다. 로리와 매기는 연인이었고 둘이 크게 다툰 날 로리가 차를 몰고 맨해튼으로 향했고, 그날 밤 집에서는 화재가 났고 매기는 계단 아래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로리가 매기 모레티에게 느꼈던 감정을 자신에게도 느꼈으면 좋겠다는 클레어, 과연 그날 밤의 진실은 무엇일까?


클레어는 체육관에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낸 것을 추궁하는 로리를 겨우 진정시키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잠자리에 든다. 로리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몰래 로리의 컴퓨터 하드를 복사한다. 만약의 경우 협상의 카드로 쓰기 위해서, 이 과정이 어찌나 두근거리는지. 클레어는 아무 일이 없었다는듯이 다시 로리의 옆자리로 돌아와 잠을 청한다. 나는 분명 클레어가 아니고 안락한 집에서 책을 읽고 있는 것 뿐인데 클레어에 이입이 되어 심장이 쫄깃해진다. 


탈출할 순간만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로리가 출장을 떠날 장소를 바꿨다고 가사도우미 직원인 콘스탄스가 클레어의 여행 가방을 정리한다. 존 F.케네디 공항에서 출발하는 항공을 이용해 푸에르토리코로 가게 된 클레어, 로리는 클레어 대신 디트로이트로 향했고 탈출을 위해 계획했던 소포가 로리에게 가 버렸다. 이바는 안절부절 못하는 클레어를 발견한다, 꼭 자기처럼 어딘가로 도망가 사라지고 싶어하는 여자. 이 둘은 서로의 비행기표를 바꾸기로 결정한다.


<라스트 플라이트>는 정말 매력있는 소설이다. 몇 페이지 읽지도 않았는데 순식간에 클레어의 입장이 된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나도 모르게 손에 식은땀을 흘리며 제발 그녀가 이 지옥같은 생활과 악마같은 남편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를, 로리가 그녀를 주적할 수 없기를 바라게 된다.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사라져야 하는 이바의 입장에도 몰입된다. 이 둘의 시점이 왔다갔다 하는데, 위화감 없이 이 두 여성들의 입장에 빨려들어간다. <라스트 플라이트>의 두 주인공들이 지옥같은 삶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이들을 지옥에 빠뜨린 이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거기다 프롤로그에 등장한 알 수 없는 '나'는 비행기가 추락한다고 하는데... 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쫄깃해지는 심장을 부여잡고 읽게 만드는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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