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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구
김이환 지음 / 북다 / 2025년 5월
평점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절망의 구>는 2009년 멀티문학상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진 김이환 작가의 한국형 SF소설이다. 한국 재난 소설, SF소설 등을 찾는 이들이 꾸준히 찾아 읽은 작품이었으며 이번에 미국과 영국에 번역 출간되기도 하였다. 김이환 작가의 다른 작품으로는 <소심한 사람들만 남았다>, <초인은 지금>, <이불 밖은 위험해>, <너의 변신> 등이 있으며 이 중에서 몇몇은 일본에서 출간되거나 영상화 진행 중이라고 한다.
이번에 개정판으로 출간된 <절망의 구>는 새까만 표지에 더 새까맣고 반질거리는 '절망의 구'가 그려져 있다. 그대로 책을 들고 보면 까만 동그라미 안에 우리의 얼굴이 흐릿하게 비춘다. 소설은, 일본 판타지 애니메이션의 오프닝 문구처럼 시작된다.
그 일의 시작은 그저 희한했을 뿐이다. 담배를 사러 밖에 나갔더니 세상이 멸망해 있다면 당신은 기분이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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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조심하게 젊은이."
남자는 뒤를 돌아보았다.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남자의 어깨에 부딪히자 건넨 말이었다. 무엇을 조심하라는 것인지 남자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
-소설 <절망의 구> 첫 페이지-
도대체 무엇을 조심하라고 했는지 소설 속 남자와 독자의 호기심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소설은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서술된다. 서른두 살의 평범한 남자, 그는 부모가 도움을 청하는 다급한 전화를 받지 못했다. 후에 왜 전화를 받지 않았느냐고 호통을 치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언짢아진 기분을 산책으로 푸는, 그런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나날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럽게 달라진 골목 풍경. 정체불명의 시커먼 물체가 길 위에 나타났다. 높이는 2미터쯤 되고, 완전히 둥글고, 표면은 검은데 광택은 없어서, 꼭 허공에 검은 구멍이 나 있는 것처럼 보이는 둥근 물체. 옆집 아저씨가 그것에 다가가자 그 물체도 다가왔다. 그리고 시커먼 표면에 닿은 아저씨의 손이 그대로 끌려 들어갔고, 다음엔 손목이, 순식간에 팔꿈치까지 안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아저씨는 끌려들어가지 않으려고 소리를 질렀지만 모든 몸이 흡수되고 말았다.
그것은 2미터가량의검은 구였다. 그 구는 이내 주변의 사람들을 삼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구 안으로 끌려들어가며 비명을 질렀고 남자는 골목을 빠져나와 구로부터 도망갔다. 밤새 검은 구로부터 도망을 다니던 그는 텔레비전에서 '뉴스 속보'를 보았다. 검은 구가 사람을 삼키는 것에 대한 소식이 텔레비전을 통해 퍼져나갔고, 심지어 구는 자기 분열까지 하면서 늘어났다. 이 모습이 알려지자 세상에는 혼돈과 두려움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공포에 휩싸인 사람들은 비이성적으로, 이상하게 행동하기 시작한다. 도시는 통제되고 남자는 부모와 연락이 끊기고 만다. 자전거를 훔치려고 시도하면서까지 도착한 집, 그러나 부모님은 없고 남자 정수는 검은 구를 집 안에서 마주친다. 허겁지겁 구로부터 도망치는 남자, 그리고 구를 피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 여러 인간 군상을 만나게 된다.
미지의 물체 '검은 구'를 둘러싸고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다. 검은 구는 한 마디로 알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검은 구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흡수하고, 갯수를 늘릴 수 있으며, 여러 사람이 같은 거리에 있을 때는 멈춘다. 이 외에도 자잘한 사실을 알게 되지만 이 알 수 없는 '구'는 사람들을 더 많이 삼켜 나가며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남자는 과연 이 구를 끝까지 피할 수 있을까? 검은 구 때문에 이상하게 변해버린 세상에서 살아나갈 수 있을까? 도대체 구는 무엇이며 그의 부모님은 안전하게 피한 것일까?
수많은 물음을 안고 소설 속 이야기가 굴러간다. 검은 구와 남자의 행적을 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