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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가 사랑한 와인 - 와인잔에 담긴 미술관
이지희 지음 / 더블북 / 2024년 9월
평점 :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와인과 사랑에 빠져 와인소믈리에 학위를 딴 저자에 따르면 와인과 그림에는 여러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느린 부화의 과정이 필요하고 시간이 흐르며 깊이와 형태를 갖추어 가며, 고유한 특성, 화가와 와인 메이커의 독특한 천재성, 즐거움 이상의 감동과 행복에의 몰두, 수익률 높은 상품성까지 서로 닮았다고 한다. 이 두 가지 분야를 모두 전공한 저자는 미술과 와인에서 얻을 수 있는 삶의 풍요로움과 감성의 총체적 예술을 함께 공유하기 위해 <화가가 사랑한 와인>이라는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와인잔에 담긴 미술관 <화가가 사랑한 와인>에서는 한 예술가의 생애를 관통하는 미적 철학과 그의 미술작품으로부터 연상되는 개성있고 다채로운 유럽 와인 스타일을 만날 수 있다. 화가와 와인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우리는 이 예술 작품에 담긴 기쁨과 경이, 깊은 미학적 공감을 경험할 수 있다.
<화가가 사랑한 와인>에서는 유럽의 와인과 유럽출신의 미술 작가에 대해서 다룬다. 프랑스 작가 오귀스트 로댕, 미켈란젤로 부오나르티, 에드가 드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야수파 화가들과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등 유명 화가들과 함께 프랑스 각지의 와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와인의 특성 상 프랑스 지역의 화가와 와인에 대해 가장 많이 다루지만 이탈리아와 스페인, 포르투갈의 화가와 와인들도 차례대로 다룬다.
19세기 말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서 상징주의 문학이 일어났다. 고대 신화와 성서의 전통적 알레고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꿈, 엑스터시, 질병, 죽음, 환각, 판타지 등 과거에는 없던 새로운 주제들을 다루었다. 샤를 보들레드, 아르튀르 랭보, 폴 베를렌 같은 상징주의 작가들은 암울하고 신비로운 정서를 표현했고 훗날 등장할 초현실주의의 전조였다. 이들은 근대 조각의 창시자인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오귀스트 로댕은 고대 조각품과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이탈리아 르네상스 예술품으로부터 자극을 받아 조각에 생명과 감성을 불어넣고 예술의 자율성을 부여했다. 저자는 조각 속에 깃든 '로댕의 우주'에는 고귀함의 감탄과 미적 신비가 시대를 초월하여, 와인 중에서도 가장 신비로운 심미성을 갖춘 샴페인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한다.
샴페인은 프랑스 북동부의 상파뉴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스파클링 와인으로, 샴페인이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전통적으로 샤르도네, 피노 뫼니에, 피노 누아 세 가지 품종을 혼합해야 한다고 한다. 샤르도네는 생기와 미네랄, 피노 뫼니에는 핵 과일 캐릭터와 부드러운 풍미, 피노 누아는 바디와 구조를 담당한다고 한다.
로댕의 작품 중 <입맞춤>은 <지옥의 문>에 있는 수많은 군상들 중 하나로 육체적인 사랑을 부드럽고 찬연하게 전한다. 그 모습이 아름다워 오늘날 성에 대한 책의 삽화로 자쥬 사용된다. <입맞춤> 속 사람들은 <신곡>에 등장하는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이다. 프란체스카는 정략결혼으로 조반니를 남편으로 맞이하지만 잘생긴 조반니의 처남에게 반하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입맞춤의 순간 조반니에게 들킨 이 둘은 살해되고 이들의 영혼은 지옥에 갇혀 영원히 떠돌게 된다. 이 연인들의 엄숙함과 관능적인 모습은 샴페인 하우스를 대표하는 클래식 스타일 '샴페인 프르미에 브뤼'로 표현된다. 샴페인 프르미에 브뤼는 가볍고 균형감이 좋은 것이 특징이며 논 빈티지 스타일로 샴페인 하우스 고유의 개성과 품질을 보증한다고 한다.
<화가가 사랑한 와인>에는 이런 식으로 유럽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과 그 작품에 꼭 어울리는 와인을 함께 소개한다. 각 그림과 와인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와인의 풍미는 어떻고 어떤 음식과 어울리는지 최대한 감성을 살려 이야기한다. 책 곳곳에 와인과 함께 아름다운 미술 작품들의 사진이 나와 있으며, 어울리는 와인이 어떤 식으로 어떤 지역에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다. 그냥 와인의 종류와 향미, 특징 등을 소개한 것이 아니라 와인에 담긴 예술성과 아름다움을 파악하여 그림과 함께 연결시켜 이야기한다.
와인을 좋아하면서 와인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은 독자,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음미하고 싶은 와인을 추천받고 싶은 독자들은 <화가가 사랑한 와인>을 꼭 읽어봤으면 한다. <화가가 사랑한 와인>을 읽기만 해도 생생한 그림묘사와 함께 와인의 향긋한 냄새가 코끝에 어른거릴 정도이다. <화가가 사랑한 와인>은 이제껏 보지 못한 스타일의 유럽 와인 소개책이자 그림 감상책이다.
주의사항 :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어느새 집에 쟁여둔 와인을 꺼내 마시고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