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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ㅣ 일본문학 베스트 1
다자이 오사무 지음, 강소정 옮김 / 성림원북스 / 2021년 12월
평점 :
<인간 실격>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이자 그가 마지막으로 완성한 소설이다. 그는 대지주 집안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여섯째 아들로 바쁜 아버지와 병약한 어머니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재학 중에 만난 술집 여급 다나베 시메코와 함께 고시고에 바다에서 첫 자살 시도를 했으나 그만 살아남았다. 이후 다섯 번째 자살 시도를 끝으로 1948년 39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애인 야마자키 토미에와 함께 강에 뛰어든 그의 시신이 발견된 날은 6월 19일, 그의 마흔 번째 생일이 되던 날이었다고 한다.
성림원북스에서는 <인간 실격>을 비롯하여 다자이 오사무의 대표작 <사양>, <달려라 메로스>를 매력적인 일러스트레이션 표지로 출간하였다. 새빨간 배경을 바탕으로 피가 묻은 약지를 입술에 대고 있는 모습이 피폐 웹소설의 치명적인 남주인공처럼 보인다. 다자이 오사무는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로 아쿠다카와 류노스케를 존경했으며 생전에 아쿠다카와 상을 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다. 아쿠다카와 류노스케, 나쓰메 소세키, 다자이 오사무 등은 일본의 유명작가로 일본 문학작품은 물론이고 만화, 애니메이션 등에 자주 등장하므로 이들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두면 다양한 일본 작품들을 훨씬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일본의 유명 작가가 대거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문호 스트레이독스>에도 다자이 오사무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초년 때보다 좀 나이가 들었을 때의 모습과 유사한듯 하다. <문호 스트레이독스>에서 다자이 오사무는 이능력자 집단 '무장탐정사'의 일원이며 자살 애호가로 소개된다. 특히 미인과 함께 동반 자살을 하고 싶다고 하며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이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미남 시인, 작가 계보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긴 하다.)
대부분의 소설에서 다자이 오사무는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인간 실격>에서는 특히나 그가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이 가감없이 나와 있다. 소설을 읽다보면 어쩜 이렇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자학할 수 있는 것인지 안타까울 정도이다.
<인간 실격>은 서문부터 심상치 않다. 첫 페이지는 '그 남자'라고 표현된 사람의 사진 석장에 대한 묘사로 시작된다. 유년 시절, 열 살 전후로 추정되는 사진으로 많은 여자에게 둘러싸여 있는 모습인데 다들 알 것이다. 이 시기 대부분의 남자아이가 얼마나 개구쟁이인 데다가 귀엽고 발랄한지. 그러나 그 아이를 '흉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라고 말하며 '불쾌한 아이', '쪼글쪼글한 원숭이의 웃음'라고 평한다. 매우 기분 나쁜 듯이 중얼거리면서 송충이라도 털어낼 법한 손놀림으로 냅다 던져버리고 싶은 사진이라니. 두 번째는 고등학교 또는 대학교 시절의 사진, 아주 잘생긴 외모라고 평가하나 피의 무게도 생명의 깊이도 전혀 없는 만들어진 느낌이며 어딘지 모르게 괴이한 불쾌함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마지막 사진은 흰머리가 생긴 그가 엄청 지저분한 방의 구석에서 조그만 화로에 양손을 쬐고 있는 모습이다. 앞의 두 사진과 달리 웃지 않고 있으며 '화로에 두 손을 쪼이며 자연스럽게 죽어가는 듯한, 정말 꺼림칙하고 불길한 냄새가 묻어나는 사진'이며 표정 뿐 아니라 아예 아무 특징이 없는 얼굴이라고 말한다.
세상에... 매일 거울을 보며, 또는 자신이 찍힌 사진을 보며 항상 이런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면 얼마나 불행한 삶을 살다 간 것인지 모르겠다.
'첫 번째 수기'는 요조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이다. 첫 문장 부터 이렇게 쓰여 있다.
부끄러움이 많은 생애를 보내왔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유복한 집에서 태어났으나 요조는 어릴 때부터 허약해서 자주 몸져 눕고, '공복'이라는 감각을 느낄 수 없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배고파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 그저 타고난 아부 실력을 발휘해 '그러는 척' 했다. 가족 식사를 하는 시간이 가장 고역이었는데 어둑어둑한 방에서 열 명 남짓한 가족이 각자의 밥상을 보며 묵묵히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이 항상 으스스하다고 느꼈다. 먹고 싶지 않아도 말없이 밥알을 씹으면서 고개를 숙인 채 집 안에 꿈틀거리고 있는 영혼들에게 기도를 하는 일종의 의식처럼 여겨졌다니... 그는 항상 지옥에 있는 느낌이 들었고 다른 사람이 훨씬 더 평안해 보였다. 다른 사람이 지닌 괴로움의 성질이나 정도가 전혀 짐작되지 않아 혼자 특이한 사람이라는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그는 해결책을 찾아냈다. 다름아닌 '개그', 그에게는 이것이 인간에 대한 마지막 구애였다. 겉으로 다른 이들을 끊임없이 웃기고자 하면서 어느새 진실은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아이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항상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을 읽으면서 자조적이지만 웃기는 이야기, 그 특유의 분위기가 솔직해서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유머라는 것이 이렇게 개발되어 발전된 것이라면 정말 슬픈 일이지 않은가. 다른 사람에게 받은 물건이 아무리 취향이 아니더라도 거부하지 못하고, 싫은 걸 싫다고 말하지 못하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에 몸부림쳤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자신을 고백하는 소설들을 '글'이라는 형태로 쓰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속고 속이면서, 맑고 밝고 쾌활하게 살아가고 있는, 혹은 살아가는 자신감을 가진 듯한 사람을 이해할 수도 없고 그런 기술을 배울 수도 없었다는 그는 밤마다 인간의 삶과 대립했다고 말한다. 두 번째 수기에서는 자신의 '개그 연기'를 간파한 다케이치와의 이야기를 한다. 다케이치는 모딜리아니의 볕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 여인의 누드화를 보고 '지옥의 말'같다고 감상을 표현한다.
"나도 이런 괴물 그림을 그리고 싶어."라고 하는 말을 듣고 그는 생각한다.
인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훨씬 더 무서운 요괴를 두 눈으로 확실히 보고 싶어하는 심리, 신경질적이고 쉽게 겁을 먹는 사람일수록 폭풍우보다 강력한 것을 바라는 심리. 아아, 이 많은 화가들은 인간이라는 괴물에 당하고, 위협받고 끝끝내 환영을 믿다가 대낮의 자연 속에서 또렷이 요괴를 보게 된 거구나.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다자이 오사무는 스스로를 죽어가는 듯한, 꺼림칙한 이라고 거침없이 말하는가 하면 또 이세상 사람들 전부를 '인간이라는 괴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이 세상을 편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그는 스스로 삶을 꾸려가지 못해 여러 난항을 겪고 학업을 포기한 후 술집을 전전한다. 그러다 술집에서 만난 여성과 함께 가마쿠라의 바다에 뛰어들어 혼자 살아남아 취조를 받는다. <인간 실격>에는 항상 그의 옆을 서성이는 여자들의 이야기와 함께 세상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고 바닥의 바닥으로 가라앉는 그의 모습이 자조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애정을 갈구하지만 그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두려워하며, 스스로를 가치 없고 불쾌한 이라고 칭한다. 만약 다자이 오사무의 삶과 작품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인간 실격>은 꼭 읽어야 하는 작품이다. 당시 일본의 격동기를 살아가며 온 몸으로 불안해하는 청년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방황하는 우리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