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케의 눈물 - 대한검국에 맞선 조국의 호소
조국 지음 / 다산북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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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사출신 대통령이 등장했다. 매스로우가 '망치를 든 사람은 모든 것이 못으로보인다.'라고 말했듯이, 그에게는 모든 것이 수사의 대상으로 보이나 보다. '법치'의 깃발 아래, 가짜뉴스를 없애기 위해서 언론사 앞수수색이 이뤄졌다. 그렇게 언론의 자유를 말하던 언론인들도 대통령의 '법치'에 동조하듯이 숨죽이며 엎드려있다. 야당 대표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야당 대표를 '잡범'이라고 말하는 XXX도 등장했다. 정권이 바뀌고 법치는 강화되었는데 우리는 법치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러한 걸까? 왜 법치가 강조되는 사회에서 법치가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 것일까?


  조국 교수는 '디케의 눈물'에서 오0준 대법관의 판결을 소개한다. 그는 2011년 12월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 재판정 재직 시절 800원 을 횡령한 버스 기사를 해임한 고속버스 회사의 처분은 정당하다는 판결했다. 버스기사는 2010년 승객에게 받은 요금 6400원 중 6000원만 회사에 내고 나머지 400원을 사용해 자판기 커피를 두 차례 사셨다.(6400-6000=400원인데, 조국 교수는 800원을 횡령했다고 서술했다.) 아니, 800원 횡령했다고 17년간 버스 기사로 일한 기사분을 해고하다니!! 

  오0준 대법관의 판결을 읽으며 춘추 전국 시대 법가가 생각났다. 춘추전국시대! 법가들은 혈연 중심의 보수적 세력을 없애고 부국강병을 위해서 엄격한 법을 제정하고 이를 집행했다. 조그만 잘못도 국법에 따라서 처벌되었다. 그 처벌은 우리의 눈에는 참으로 가혹한 것이었다. 법에는 예외가 없었다. 귀족이라도 법에 따라 처벌받고 상을 받았다. 신분이 낮더라도 전장에 나가 공을 세우면 상을 받았다. 법가에 따라 개혁을 하고 부국강병을 이룬 진나라가 중원을 통일 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오0준 대법관의 판결에서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는 단호함을 기대한 것은 나의 욕심이었을까? 조국 교수는 "오 후보자가 85만 원 상당의 접대를 받은 검사의 면직에 대해 "가혹하다"고 한 판결"했다고 소개했다. 이것 억강부약 (抑强扶弱)이라는 통치의 기본에 거스르는 판결이 아닐까? 어찌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가혹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법가가 추구했던 법치에 어긋나는 판결이다. 

  그렇다면, 조국 교수가 생각하는 '법치'는 어떠해야할까? 조국 교수는 뉴욕 시장을 세번이나 연임한 피오렐로 라과디아 뉴욕시 치안판사의 예를 소개한다. 배가 고파 빵을 훔친 어는 노파에게 10달러 벌금형을 선고한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배고픈 사람이 거리를 헤매고 있는데 나는 그동안 너무 좋으 음식을 배불리 먹었습니다. 이 도시 시민 모두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하며, 방청객 모두에게 각각 50센트 벌금형을 선고합니다."(133쪽)


  라과디아 판사는 벌금으로 걷은 돈으로 노인의 벌금을 냈다. 그리고 남은 돈을 노인에게 건네주었다. 이러한 판결은 법가의 판결에서도, 대한민국의 오0준 대법관에게서도 기대할 수 없는 판결이다. 나는 라과디아 판사의 판결을 읽으면서 인간의 얼굴을 한 "법치'를 보았다. 그동안 법은 우리에게 인간의 얼굴이기 보다는 사형집행관의 얼굴이었다. 우리가 바라던 "법치"는 강자의 정의가 아니라, 인간의 얼굴을 한 사랑이었다. 이를 김상준 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법치는 인본을 근간으로할 때 가치가 있다. 이점에서 법치는 법가의 통치와 궤를 달리한다."(148쪽)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 법치란 법가의 법치를 뜻했다. 지배의 망치로 사용될 뿐,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지팡이는 아닌 존재였다. 조국이 인용한 마르크스주의 명제 즉, (법은) '지배계급의 도구'일 뿐일까? 현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약자에는 가혹한 논리를, 강자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논리를 들이대었다. 법가 사상가 한비자도 울고갈 정도의 잣대이다. 

  플라톤은 "법이 정부의 주인이고 정부가 법의 노예라면 그 상황은 전도유망하고, 인간은 신이 국가에 퍼붓는 축복을 만끽할 것이다."(100쪽)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법이 정부의 주인이고 정부가 법의 노예'가 될 수 있게할 수 있을까? 조국은 지방 검찰청 검사장 직선제를 주장한다. "주권자 국민은 자신이 선출한 권력에 의해서만 지배받는다."(96족), 아니 그래야만 한다. 

  그런데, 현실은 비관적으로 보인다. 나라가 망할 것 같다는 걱정을 주변사람들도 공유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나라가 망할 것 같다는 걱정을 하는 현실이 너무나도 서글프다. 이런 우리에게 조국은 무어라 말할까? 아마도 조국은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을 인용해서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210쪽)라고 말할 것이다. 세상은 차가운 이성의 눈으로 바라보고 삶은 따듯한 감성으로 살아가야하지 않은까? 어둠 속에서 빛을 보는 것이 희망이 듯이, 어두운 현실 속에서 한줄기 희망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어둠 속에서 살아가야하는 우리가 살아갈 방도이다. 


  글을 마치며 조국 교수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을 소개하며 자신의 다짐을 말한다. 


  "날지 못하면 뛰어라, 뛰지 못하면 걸어라. 걷지 못하면 기어라. 무엇을 하든 계속 전진해야한다." 등에 화살이 박히고 발에 사슬이 채워진 몸이라 날지도 뛰지도 못하지만, 기어서라도 앞으로 가려고 한다.(325쪽)


  그가 기어서라도 앞으로 가길 바란다. 그가 가고자하는 길이 인간의 얼굴을 한 따뜻한 법치의 길이라면, 우리 모두 그 길을 같이 가야한다. 법치가 더 이상 강자의 통치의 수단으로 이용당하지 않고, 시민을 보호하는 지팡이가 되는 그날까지....


ps. 조국 교수는 윤석렬 당선에 미약하나마 기여한 것으로 보이는 진중권의 말을 이책에 인용했다. 

  "윤석렬 정부는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부보다 더 심하다. 속았다는 느낌이 든다."(65쪽)

  이글을 읽으면서, 한때나마 지식인이라고 믿었던 진중권에게 실망했다. 진중권이 윤석렬 정부에게 속았다는 말은 진심일까? 진중권의 사람보는 눈이 나보다도 형편없는 것일까? 아니면 속은 척하면서 자기 변명을 하는 것일까? 그의 속마음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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