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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리커버 에디션) - 발칙한 글쟁이의 의외로 훈훈한 여행기 ㅣ 빌 브라이슨 시리즈
빌 브라이슨 지음, 권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20년 5월
평점 :
품절
빌브라이슨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양한 부분의 지식을 풍부하면서도 쉽게서술해서이다. 그러한 기대를 가지고 '빌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역사와 문화 정치, 경제 등의 다양한 주제를 유럽 그 현장에서 서술해주길 기대했으나, 책에는 과장법들이 난무했다. 때로는 이러한 과장법이 해당 지역에 대한 불쾌한 선입견을 갖게할 위험성도 존재했다. 때로는 이스탄불을 비롯해서 유럽 곳곳에서 겪었던 다양한 불쾌한 경험들의 나열을 읽으면서 여러번 책을 집어 던지고 싶었다. 여행은 원래 고생을 동반하는 것이다. 낯선 곳에서, 낯선 음식과 낯선 사람을 만나서 고생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단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그 고생을 줄일 뿐이다. 곳곳에 독자에게 웃음을 선사하기 위해서 서술된 과장된 표현은 오히려 불쾌감을 강하게 풍긴다.
빌브라이슨의 과장된 미국식 유머 중에는 절대 해서는 안되는 표현도 있다.
"신이 터비를 세상에 내놓은 유일한 이유는 다른 아이들에게 때릴 상대를 주기 위해서였다. 여자애들도 터비를 때렸다. 터비보다 네 살 어린 아이들도 터비를 때렸다. 잔인하게 들리고 또 실제로도 잔인하지만, 터비는 그래도 싸다."-121쪽
'신이 터비를 세상에 내놓은 유일한 이유는 다른 아이에게 때릴 상대를 주기 위해서였다.'라는 표현은 학교폭력을 조장하는 선동적 표현이다. 불쾌한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는 듯한 빌브라이슨의 글은 지금의 기준으로 살펴보면 몹시 불쾌하고 비윤리적인 표현이다.
'빌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을 읽으며 한가지 소득이 있다면, 선진국 유럽의 허상을 깼다는 것이다. 아프리카라는 단어를 들으면 굶주린 아이들이 떠오른다. 유럽이라는 단어는 선진국의 고풍스런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러나 실상을 일반적인 이미지와 너무도 다르다.
빌브라이슨이 스톡홀름에서 목격한 유럽의 현실은 너무도 추했다. 술에 취해서 노상 방뇨하는 남성과 아무데나 버려진 쓰레기들, 다음날 기계가 와서 청소를 했으나 제대로 쓰레기를 수거하지 못했다. 그나마도 바로 시민들이 버린 쓰레기로 청소한 의미가 사라졌다. 빌브라이슨은 돈이 없어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살다가 '평등하고 공정하게 헌신'하는 유럽에 와서 현실을 보았다. 빌브라이슨은 유럽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일지 모르지만 공중도덕은 선진국이 아니었다.
충격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로마 보르게제 주변 공원을 거린다가 빌브라이슨은 노상 배변을 하고 있는 남성과 눈이 마주친다. 빌브라이슨에 의하면 프랑스와 벨기에서는 고속도로 옆에서 오줌을 누는자를 발견할 수 있으며, 18세기 프랑스 귀족 남녀는 남녀가 화장실에 같이가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화가 중단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남녀가 다 같이 노상 변소에 가기도한단다. 화장실에 자신이 쓴 휴지를 보는 것도 역겨워하는 그들이 노상배변을 하고 남녀가 같이 화장실을 쓴다. 페이스북에서는 소변을 보고 있는 백인 남녀가 영어로 대화하는 짤이 올라왔던 적이 있다. 그들의 화장실 문화는 전혀 선진적이지도 고상하지도 않다.
로마는 문화재로 유명하지만, 소메치기가 많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탈리아는 조상이 남긴 문화재 덕에 먹고사는 나라이다 그렇다면 문화재 관리는 잘하고 있을까? 신혼여행을 로마로 갔을 때, 포로로마에 수많은 유적들을 복원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역사 인식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문화재를 복원해서 본래 모습을 영원히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더 선진적인 문화재 관리라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문화재 보존 수준은 비참하다. 문화재 보수와 유지에 제대로 돈을 쓰지 않아 유럽 미술품 도난의 80%가 이탈리아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많은 문화재가 훼손되고 있다. 못난 후손들이 조상의 문화재를 망치고 있다. 조상의 문화재 덕에 먹고사는 그들이 그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문화재를 망가뜨리고 있다. '최후의 만찬'이라는 벽화는 초기 수도사들이 예수의 발부분을 망가뜨리면서 그 곳에 문을 냈다. 어쪄면 이탈리아인들은 제2의 '최후의 만찬'을 훼손하면서 돈을 벌고 있는지도 모른다.
'빌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은 유럽 선진국의 고풍스러운 이미지 속에 숨겨진 빈민가의 고통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이탈리아 나폴리 도심에는 7만 가구가 욕조도 상수도도 창문도 없는 집에 대가족 15명이 단칸방에 살고 있다. 범죄율이 상당히 높으며 그중에서도 차량 절도는 매년 29,000건이 일어날 정도로 많다. 명품의 나라로 알려진 이탈리아의 현실은 전혀 명품적이지 않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명품의 이미지는 사실은 만들어진 신기루인지도 모른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빌브라이슨에 대한 기대가 컸던 나는, 그의 유쾌한 필법으로 유럽의 역사와 문화, 정치, 경제에 대해서 풍성한 정보를 기대했다. 그러나, 빌브라이슨은 정보를 제공하는데 주력하지 않았다. 유럽을 스치고 지나가며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썼다. 그의 과장법을 유감없이 사용하며 때로는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