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시댁에 다녀왔다.  어머님이 담궈놓은 김장을 가지러.  지난 금요일이 시댁 김장하는 날이었다.  나? 집에서 애들 보고 편안히 있으면서 전화만 두 통을 했다.  이 나이에, 내가 담가서 갖다 드려도 시원치 않을 이 나이에 손가락 하나 까딱 안하고 얻어다 먹으려니 마음이 불편했다. 늦둥이 비니 덕에 누리는 호강이기도 했지만 마음 불편한 것 보다는 몸이 힘든 게 낫지, 이거 원 사람 꼴이 아니다.

우리 어머님 김치가 끝내주긴 한다.  나는 아무리 해도 못따라 간다.  설탕도 조미료도 넣지 않고 담그는 김치라서 익으면 익을 수록 묵으면 묵을 수록 깊은 맛이 난다. 그런게 어머니의 손맛인가 보다.

애 셋을 키우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덜컥 겁이 날 때도 있다.  나는 이담에 우리 어머님처럼 맛난 김치를 담가서 자신있게 며느리, 딸 불러다 나눠줄 수 있을까 싶다. 우리 어머님은 집에서 고추장이며 된장이며 간장도 다 담궈 드시는데, 난 하나도 할 줄을 모른다.  이러니 나는 이담에 어른 노릇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심히 염려스러운 것이다.

친정에도 잠깐 들렀다. (시댁과 친정이 모두 인천이다) 울 친정어머니는 딸이 왔다고 간장게장에 고추가루에 알타리김치에... 집에 있던 과일까지 다 싸 주신다.  너 생각나서 사놨다며 티셔츠 2벌까지 챙겨주신다. 그만 됐다고 해도 챙겨줄 수 있을 때 가져가라시며 오히려 꾸지람이시다.

세상을 공들이지도 않고 거저먹기로 참 잘 살고 있다. 이런 내가 뻔뻔하다는 생각이 들어 두 어머님께 죄송한 마음인데도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조차도 뻔뻔하게 느껴져 그저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두 마디로 죄송한 마음을 감춘다.  겨우내 먹을 김치가 있고 쌀이 있으니 이제 난 부자라고 너스레를 떤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사는 게 빠듯하다는 핑계로 잘 해드리지도 못하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는데 밉다 서운하다 안하시고 오히려 더 챙겨주시려 한다.  아무리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더니 우리 사는 꼴이 아무리 바쁜 척 해봤자, 아무리 잘난 척 해봤자 부모님 품안이다.  늙으신 부모님 품이 우리보다 훨씬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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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11-27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 마음 쓰시고 사는 님의 품도 넉넉해 뵙니다. 아이들 연령차가 큰가 봐요. 전 중1과 초2의 딸 둘입니다. 즐찾하고 가신 걸 보고 달려왔어요^^ 반갑습니다. 앞으로 종종 뵈어요^^ 어린이/청소년책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 더욱 반가워요.

섬사이 2006-11-28 0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즐찾했다고 달려와 주시니 고맙습니다. 이거 원,,, 변변치 못한 서재라 남 보여주기 민망해요..
 
기차 ㄱ ㄴ ㄷ 비룡소 창작그림책 7
박은영 글.그림 / 비룡소 / 199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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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ㄱㄴㄷ 이라는 한글 닿소리가 제목에 붙어 있어서 '이거 무슨 한글 가르친답시고 애들한테 글자부터 들이대는 그림책 아냐?' 하며 부정적인 의심의 눈초리를 가졌었다.  기차 칸칸마다 ㄱ,ㄴ,ㄷ,,,, 닿소리 간판이 붙어 있고 그 칸마다 그 닿소리가 들어있는 낱말들이 타고 있고... 뭐 그런걸 상상했었다.  그런데 예상을 뒤엎고 이건 신나는 기차여행 그림책이다. 

책표지엔 강렬한 빨간색의 기차 정면 모습이 그려져있다.  붓으로 거친 터치감을 살린 그림은 기차가 금방이라도 빽빽 울릴 것 같은 생동감을 표현하기에 그만이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왼쪽엔 글이, 오른쪽엔 그림이 그려있는데  글이 있는 왼쪽 페이지 하단에도 기차길은 쭈욱 이어져 있어서  끝없이 이어진 기찻길이 시각적으로 와 닿는다.  기차엔 누가 타고 있을까? 이 빨간 기차의 기관사는 초승달님이고 승객은 모두 별님들이다.  즐겁게 노래부르며 기차타고 가는 모습이 흥겹다.  그림책 마지막에 "해는 벌써 지고 있어요."라는 글처럼 해는 산을 넘어가고 하늘 가득히 빨갛게 노을이 진다. 그다음 페이지에 빨간 기차는 언덕에 서있다. 서있는 건지 어떻게 아냐고? 기차에서 연기가 안나니까. 너무 단순한가? 그리고 다른 이유는 기관사이던 초승달님이 하늘에 걸려있다.  승객이었던 별님들도 모두 밤하늘에 올라가 빛나고 있다.

글을 살펴보자. 글은 리듬을 타고 읽어주기에 좋게 되어 있다.  나는 사각틀안에 크게 쓰여있는 닿소리 ㄱ,ㄴ,ㄷ,... 은 무시하고 리듬을 붙여 읽다가 책장을 넘길 땐 "칙칙폭폭 칙칙폭폭"하고 장단을 맞춰준다. 

한글을 가르쳐줘볼까 하고 한글학습에 무게를 두고 있다면 구입하지 말길 바란다.  이 그림책은 그저 읽기가, 또는 듣기가 즐거운 기차 그림책일 뿐이다.  뭐, 워낙 스펀지같은 학습 능력을 가진 아이들이 제목에 붙어 있는 ㄱ,ㄴ,ㄷ..이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예쁜 사각틀에 두꺼운 글씨체로 크게 인쇄되어 돋보이는 한글 닿글자들, 그리고 페이지마다 두꺼운 볼드고딕체(맞나?)로 강조해 놓은 낱말들을 눈여겨 보았다가 기대하지도 않은 한글학습성과를 보여줄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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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가 쿵! - 0~3세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14
다다 히로시 글 그림 / 보림 / 199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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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커어다란 사과가.."까지만 말하면 아이가 알아서 "쿵!"하고 받는다.  우리 비니의 첫돌맞이를 앞두고 구입했던 책이다.  보드북으로 구입하질 않아서 아이가 책장을 넘기다 찢어지고 셀로판 테이프로 붙이고 해서 지금은 꽤 너덜너덜 해졌다.  하긴 비니가 이제 두돌을 앞두고 있으니 이 책이 우리집에 온지도 벌써 1년이 다되어 간다. 

이 책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아이가 좋아할 만한 요소들이 풍부하게 들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엄청나게 커다란 사과가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할 것이고, 다양하게 등장하는 동물들이 아이의 시선을 사로 잡는다.  두더지와 애벌레, 나비와 벌, 개미, 나중엔 코끼리와 기린까지.. 거기에 아이를 청각적으로 자극하는 다양한 흉내말들.. 사각사각, 야금야금, 쪽쪽쪽, 냠냠냠, 아삭아삭, 우적우적, 날름날름, 와사삭 와사삭. 까지 잔치상처럼 펼쳐져 있으니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건 당연하다.  비가 내리자 동물들의 멋진 우산으로 변하는 사과의 모습도 재미있다. 그림도 우울함이나 어두움이 없다.  배경이 생략되어 커다란 사과가 더 커다랗게 부각되고 투명한 수채화 그림이 애들 마음에도 맑게 가 닿을 것만 같다.

가운데 부분을 모두 먹어버려 기둥과 위아래 부분만 남아있는 사과,, 비가 오자 동물들이, 그것도 자그마치 코끼리와 기린을 포함한 11마리의 동물들이 사과 속으로 들어가 비를 피하는 장면은 어쩐지 겨울에 동물들이 떨어진 장갑안에 들어가는 <장갑>이라는 그림책을 떠올리게 한다. 그림책의 세계에서만 가능한, 아이들의 상상력이라는 열쇠없이는 이해가 불가능한 장면이다. 

이 그림책 때문일까?  우리 비니는 사과를 좋아한다.  그리고 다른 책에서도 사과가 나오면 "쿵!"하고 반응한다.  아이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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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방 친구들이 뭉쳤다.  학원이니 숙제니 단어시험이니 하는 걱정거리를 잠시 접어두고 우리 큰딸 친구 효주의 생일 맞이하여 같은반 친구 4인방이 뭉친 것이다. 

2시 30분경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 오늘 학교에 행사가 있어서 수업이 일찍 끝났는데 친구들이랑 노래방에 가서 딱 1시간만 놀다가 갈게요." 한다.

"그려그려그려, 신나게 재밌게 실컷 놀다와"

그래, 풀어야지,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얼마나 많을까.. 맨날 정해진 코스대로 입력된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기계인형처럼 사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는데 잘됐다 싶었다.

주말마다 애들을 데리고 뭐가를 하고 어딘가를 가려고 하는 편이다.  지난 주엔 과천 서울대공원에 갔었고, 지지난주엔 우리 지니가 보고싶어하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느다'영화를 보러 갔다왔다.

하지만 사춘기 소녀가 아닌가.  가족과 어울리는 것도 좋지만 친구가 더 좋을 나이다. 

한시간만 놀다 오겠다던 아이가 4시 반이 되었는데 소식이 없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딸 가진 엄마 마음이란 게 이렇다.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봤다.  신호가 얼마 가지도 않았는데 금방 받는다.

"응, 엄마! 아직 노래방인데 조금있으면 끝나."

"알았어. 아직 노래방이구나.  그럼 됐어.  재밌게 더 놀다와."

쿵짝쿵짝 노래방 기계 반주소리, 아이들의 꺅꺅대는 소리, 웃음소리... 나도 슬며시 웃음이 난다.  5시쯤이 되어서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 이제 노래방 나와서 집에 가는 길이야."  딸의 목소리에 아직 신나게 놀고난 흥분이 남아있다.

"왜? 더 놀지." 은근히 저녁에 가야 하는 영어학원이 맘에 걸리면서도 뭐, 하루 좀 늦거나 단어시험 망치면 어떠랴 싶은 마음도 있었던 거다.

"에이~ 영어학원 가야잖어. 주은이는 걔네 엄마가 전화해서 빨리 오라고 야단쳐가지고 중간에 갔는데.."

지니랑 같은 영어학원에 다니는 친구다.  걔가 중간에 집으로 가버렸으니 놀던 우리딸도 맘이 편치 않았을 것 같아 불쌍하다.

집에 돌아온 딸아이가 핸드폰을 내민다.  노래방에서 친구들과 노래하며 노는 걸 동영상으로 찍어온 것이다.  노래방 모니터 화면만 번뜩이는 어두운 노래방에서 미친 듯 춤추고 노래부르고 망가지면서(?) 깔깔대고 웃는 사춘기 소녀들이 담겨 있다.  완전히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가 왔구나 했더니 씨익 웃는다. 저런 에너지를 어디다 꾹꾹 눌러 감추고 지냈을까 싶다. 

오늘 아침, 학교가는 딸아이에게 "이번 기말고사 끝나면 친구들이랑 노래방 가서 또 놀아야 겠다, 그치?" 했더니 베시시 웃는다. 

우리 아이들은 다이나믹하다.  학교라는 제도, 공부라는 굴레로 묶어두기엔 아이들의 세상이 너무 크다.  내일이 놀토다.  아이들에게 '자유'를 선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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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6-11-25 0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말씀처럼 (애들에게 미안한 이유중에서)우리나라 교육현실좀 확 뜯어 고쳤으면 좋겠어요..ㅎㅎ
이렇게라도 스트레스를 풀수 있는 댁의 따님 멋집니다..허락하시며 놀아ㅡ놀아..하시는 님도 멋지구요..
 

사정은 그랬다.  비니가 걸어다니고 자기의사가 분명해지기 시작하자 뽀의 공부를 도와주는 게 어려워졌다.  공부하려고 책을 펼친 뽀 옆에 앉기만 하면 비니가 와서 달라붙는다.  풀어 놓은 문제집 채점이라도 해주려고 하면 쫓아와 색연필을 뺏기도 하고, 틀린 문제 설명이라도 해주려하면 비니는 날 잡아 끌었다.  비니가 잠들었을 때 하려고 하면 뽀의 사정이 여의치 않았고...(졸립다거나 친구가 놀자고 부른다거나 TV에서 재밌는 프로를 한다거나..) 비니가 잔다고 갑자기 하던일을 멈추고 학습모드로 들어가는 건 부자연스러웠고 뽀에게도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학원에 보내기 시작했다.  아.. 우리 첫애 지니의 5학년 시절은 얼마나 자유롭고 행복했는데.. 불쌍한 우리뽀는 학원에 묶기기 시작한 거다.  학원에 보내기로 결심하면서 내 속이 얼마나 뒤숭숭했는지 잠을 제대로 못이룰 정도였다.  우리 뽀, 학교에 다녀오면 집에서 게임도 하고 뒹굴거리며 놀다가   친구들과 논다고 나가서 여덟,아홉시가 되어서야 기쁜 얼굴을 하고 집에 들어오던 녀석이었다.  그런데 이제 학교에서 오면 숨 좀 돌리고 간식을 먹은 후에 학원버스시간에 맞춰 집을 나선다.

웃기는건 이놈의 학원이 시험때라고 툭하면 보충이다 뭐다 해서 애를 심하면 너댓시간씩 학원에 잡아둔다는 거다.  이러다간 공부에 질려서 어디 고등학교 때까지 버티겠느냐고 초등학생이 시험을 보면 무슨 대단한 시험을 본다고 한달쯤 전부터 애를 혹사를 시키느냔 말이다.

어느날 결심을 하고 뽀에게 물었다.  "뽀야, 힘들지 않어? 학원, 끊어줄까? 끊고 예전처럼 집에서 엄마랑 해볼까?"  그랬더니 우리 아들 뽀가  "안돼, 학원 끊으면 나 성적 떨어져. 그리고 쉬는 시간도 있고 친구들이랑도 친해져서 괜찮아."한다.  학원에 다닌지 석달도 안됐는데 벌써 학원에 중독됐다.  벌써 학원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벌써 학원에 안다니면 성적이 떨어진다고 쇄뇌당했다.  "아니야, 뽀야.  집에서 열심히 하면 학원에 다니는 것보다 더 공부 잘 할 수 있어." 식겁을 하고 학원에 다녀도 공부 못하는 아이들 많다, 학원에 다닌다고 공부를 다 잘할 수 있는 거면 대한민국 아이들  전부 일등하겠다며 반론을 폈는데  "집에서 공부하려면 의지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좀..."하며 말끝을 흐린다.

그래서 우리 뽀는 어제도 학원에서 장장 네시간을 머물다가 왔다.  학원에 가서 먹으라고 볶음밥을 싸줬더니 학원 아이들이 모두 부러워하더라며 행복해했다.  오늘 아침 피곤해하며 일어나 잠이 덜깬 눈으로 식탁에 앉아 기계적으로 밥을 먹고, 소파에서 엄마 무릎 베고 10분동안 더 자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어가며 학교에 갔다.  내일은 놀토니까 오늘만 더 힘을 내라는  내말에 우리 뽀가 하는 말'

"놀토면 뭐해? 또 학원에 가야 하는데.."

우쒸~~ 기분같아선 내일 학원에 가지 말고 그냥 놀아라 하고 싶은데, 이눔의 학원이  학원빠진 날 보충이라며 평일에 애를 또 붙잡아 앉힐 걸 생각하니 그것도 못하겠다.  도대체 공부가 뭐길래.. 요리사가 꿈인 우리 아들 뽀, 한국조리과학고등학교에 가려면 공부도 열심히 해야한다며 견디고 있는 우리 아들이 너무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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