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아이들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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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유복하다할 정도는 아니지만 남들보다 더 잘살았다고 할 수 없지만, 내 나름대로 지금까지는 무난하게 별 고난없이 살았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이만큼의 복은 있나보다고 생각했다.  차갑고 다른사람들에게 쉽게 마음을 주지 못하고 푸석푸석하게 무미건조한 성격을 가졌는데도 주변에 항상 따뜻하게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어 나에게 인복이 있나보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늘 주는 것보다 받는 게 많은 사람이라며 자랑 아닌 자랑을 해왔다.

하지만 나의 사람들에 대한 생각은 어떤 것이었을까. 내가 사람들에게 마음을 주지 않게 된 건 왜일까. 그건 내가 사람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흔을 코 앞에 바라보는 나이에 여지까지 살아오면서 사람에 대한 불신감을 키워온 나는 하니타니 겐지로가 쓴 이 글들 앞에서 마음이 불편했다. 사람들의 상냥함을 믿어야 하는 걸까?  난 여지까지 진실한 상냥함을 가진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던 걸까. 내가 알던 사람들은 앞에서 친절을 베푸는 듯 하다가 뒤에선 흉을 보고 뒷통수를 치는 걸까.

누군가 나에 대해 이런말을 했다.  '도리'는 다하지만 '정'은 주지 않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대하기가 어렵다고.  나는 좀더 상처받아야 했을까. 지금의 내가 교만한걸까..

하이타니 겐지로.. 삶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은 사람, 그만큼 삶에 대한 고민도 많았던 사람...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와 <태양의 아이>를 지은 사람. 아쉽게도 난 이 사람의 작품을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어린이 문학 작가가 쓴 글이라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든 책이었는데 내용이 너무 무겁고 진지했다.  어린이 문학 작가들은 꿈과 상상의 세계, 밝고 환하고 순수한 어린이 나라 속에 영혼을 담가두고 사는 사람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를 읽었었다.  타샤 튜더의 삶과 하이타니 겐지로의 삶이 묘하게 맞닿아 있음을 느끼는 건 왜일까? 

어린이들 뿐만 아니라 만나는 사람들의 내가 "모르는 인생"을 사랑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더 가깝게 나를 통해 세상에 태어난 세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그들이 스스로 자기의 내면을 바라보고 원하는 찾아갈 수 있도록 지켜봐주고 믿어주는 일을 해낼 수 있을까.

교육은 사소한 일상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상처를 내기 쉽다는 작가의 말이 아이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더 조심스럽게 만들 것같다.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의 생각이 엉뚱하다는 이유로 아이의 말을 묵살해오지는 않았는지... 그로 인해 아이와 나의 마음이 따뜻하게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을, 아이의 마음이 더 깊어지고, 아이와 나의 생명이 더 단단히 더 견고하게 서로를 떠받칠 수 있는 것을, 그 기회를 너무 쉽게 내던지고 하찬게 내버리고 살았다. 

교육은,, 아이들과 함께 삶을 나누는 일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섬세하고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게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서두르지 말자.  쉽게 내뱉고 쉽게 화내고 쉽게 판단해서는 아이들 마음에 깊은 상처만 낼 일이다.

시중에 나와있는 다른 자녀교육도서들보다 훨씬 가치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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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장아장 걷다가 옹알옹알 아기그림책 1
허은미 지음, 이혜리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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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혜리씨의 그림은 인물의 몸짓 하나 표정 하나가 살아 있어 무척 재미있다.  어쩌면 그렇게 살아있는 듯 실감나는지.. 일곱번 책장을 넘기면 끝나는 유아용 그림책을 21개월짜리 아이에게 읽어주다가 그림들 표정과 몸짓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웃게 된다.

이혜리씨가 직접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 <비오는 날에>라는 그림책을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아직 보질 못했다. 이 그림책을 보고나니 기대가 더 커진다. 

글도 짤막하면서도 엉금엉금, 뒤뚱뒤뚱, 깡충깡충, 겅중겅중 등의 흉내말이 나오면서 반복되기 때문에 리듬을 타서 읽어주기에 참 좋다.  만족스러운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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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아이들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4년 5월
구판절판


"...... 야스코, 잘 생각해 봐.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하는 건 도둑질을 한 사실이 아니라 도둑질을 한 뒤의 마음이야. 사람은 나쁜 짓을 하고 나면 반드시 뭔가에 기대려는 마음을 품게 돼. 실컷 야단맞고 나면 어쩐지 마음이 후련해지지. 그게 바로 인간이 기대려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증거야. 아이들도 나쁜 짓을 했을 때 야단을 맞고 나면 훨씬 즐겁게 놀지 않니? 어른들도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깊이 반성했나 보다 하고 안심하지.
하지만 양쪽 다 터무니없는 착각을 하고 있는 거야.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한 번 저지른 죄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고 선생님은 생각해. 그 죄를 평생 지닌 채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고 생각해. -52쪽

인간의 상냥함이나 낙천성이 통하지 않는 사회는 분명 어딘가 심각한 병을 앓고 있다. 인간의 죄 가운데 가장 큰 죄는 다른 사람의 상냥함이나 낙천성을 흙발로 짓밟는 일일 것이다. -69쪽

러시아의 시인이자 아동 문학가였던 코르네이 추코프스키는 어린이 영혼의 뛰어난 특징, 곧 낙천주의를 이렇게 말한다.
" 낙천주의는 어린이에게 공기와 같은 것이다. 흔히들 죽음의 관념은 이 낙천주의에 큰 타격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린이는 이러한 비탄으로부터 자신을 꿋꿋이 지킨다. 어린이 영혼의 무기고에는 자신에게 필요한 낙천주의를 지킬 수 있는 무기가 충분히 저장되어 있다. 어린이는 다섯 살쯤이면 생명이 있는 존재는 결코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지만, 그 순간 자신만은 죽지 않을 거라고 스스로를 타이르려 한다. "-71쪽

사사오 스스무는 반항이라는 행동으로 자신의 내면 깊이 간직한 인간성과 상냥함을 끝까지 지켜 냈다. 그 아이의 상냥함을 보려 하지 않았던 교사들, 그 아이의 상냥함에 상처를 준 나, 그로 인해 우리는 지옥에 떨어졌다.
나는 그 아이를 통해 저항의 의미를 배웠다. "절망과 맞부딪쳐 이겨내지 않고서는 진정한 상냥함을 지닐 수 없다."는 노(老)철학자 하야시 다케지 씨의 말이 지금 이순간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그 말이 내 가슴을 찌른다.
새삼 나는 생각한다. 나는 지금껏 나를 길러 준 상냥한 사람들의 고독과 절망을 먹으며 살아왔다고.
상냥함은 정서의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변화시키고 타인까지도 변화시키는 힘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 것은 아이들이었다. -93~94쪽

"아름다운 것은 말이지, 참고 참고 또 참았을 때 만들어지는 거야."-130쪽

이들은 하나의 생명은 다른 무수한 생명에 지탱되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리라.
여기서 나는 또 한 번 생각한다. 그런 세계를 삶 속에서 온전히 실천하는 것이 바로 어린이라고. 그 증거는 아이들의 표현에서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144쪽

아이들은 생명이란 아무리 작고 보잘것 없는 것이라도 평등하다고 여기고, 순식간에 그 생명과 우정을 쌓을 수 있다. 개나 고양이와도, 나비나 새와도, 풀이나 나무나 바람이나 눈과도, 온갖 자연물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아이들은, 그리고 오키나와 사람들은 그런 세계를 갖고 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에서 멀어졌을 때 인간은 지옥에 떨어진다고, 나는 어렴풋이 생각하게 되었다. -146쪽

어린이는 작은 거인이다. 어마어마한 힘을 지닌 인간으로서의 어린이, 스스로 성장하려는 한없는 에너지를 지닌 인간으로서의 어린이, 내가 어린이를 이런 존재로 보게 된 바탕에 오키나와가 있다.
무거운 짐을 짊어진 어린이가 어떻게 낙천적일 수 있는가. 고통스러운 인생을 사는 어린이의 내면이 어떻게 상냥함으로 가득할 수 있는가. (중략)
진정한 거인은 어떠한 절망 속에서도 자신을 사랑하고 남을 사랑할 수 있는 인간이며 그러기 위해서 싸울 수 있는 인간이리라. -154쪽

어느날 마코토는 황당한 일을 벌인다. 갖가지 형태의 상자를 갖가지 끈으로 자유롭게 묶는 조형 놀이의 일종인 '묶기 그림' 시간이었다.
"뭐든지 묶어도 돼요?"
"응"
내가 대답하자, 마코토의 얼굴이 환해졌다.
마코토가 하려던 일은 학교를 묶는 것이었다. 어이없어하는 우리를 곁눈으로 보면서, 마코토는 의기양양하게 학교를 밧줄로 묶기 시작했다.
나는 마코토의 행동에서 한없이 뻗어나가는 힘을 본다. 마코토의 생명력이 힘차게 약동할 때,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과 창조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그것은 인간이 완전한 자유를 획득했을 때 연소되는 생명의 불꽃이다. 고통스러운 말이지만, 교육은 마코토를 짓누름으로써 그것이 비교육적 행위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었다. -159쪽

"<태양의 아이>를 완성했을 때 맨 처음 머리에 떠오른 것은, 나는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작품 속에서 내가 살고, 살아내고, 그리해서 생명이 끝난 느낌이었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 글 쓰는 이에게 행복한 일인지 불행한 일인지 잘 모르겠다."-162쪽

어린이, 그들은 당신에게는 단순히 미숙한 존재가 아닙니다. 가장 완벽한 창조물이며, 손상되어서는 안되는 인류의 원형이었습니다.
어린이는 결코 쓸모없는 존재이거나, 귀여운 애완동물이 아니라, 인간의 일생에서 가장 풍요롭고 의미깊은 노동을 하는 지적 노동자이자 인류의 창조성을 보장하는 원동력입니다. 어린이는 낙천적이고 진취적이고 자유로운 존재이며, 바라보는 것만으로 우리 마음에 평화를 깃들게 하는 사상가입니다. 이런 어린이들에게는 가르칠 것보다 배울 것이 많다는 점을 당신은 항상 지적했습니다. -103쪽

명령으로 아이들을 변화시킬 것이냐,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하고 자기 개혁을 일으키도록 아이들을 이끌 것이냐. 둘 중 어느 길을 택할 것인지 교사에게 묻는 말이기도 한다. -193쪽

"아이들의 불행은 교사 자신은 변화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만 변화를 요구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것 아닐까요?"
"아이들의 생활과 교사들의 생활이 분리된 지점에서 교육이 이루어지는 게 문제예요."
"교사는 외부에서 가해지는 차별에는 민감하지만, 교사 자신이 일상 생활 속에서 만들어 내는 차별에는 너무나 둔감해요."
"참된 상냥함은 절망을 헤치고 나온 사람만이 지닐 수 있습니다."-195쪽

창의성 없는 교사의 빈약한 수업이 정말로 공부하고 싶은 아이를 공부하기 싫은 아이로 만들고 있다. -198쪽

하야시 선생님 수업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아이들로 하여금 빌려 온 지식을 버리게 하는 데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온전히 어린이가 주체가 돼 수업이 이루어졌을 때 성적의 좋고 나쁨은 사라진다는 하야시 선생님의 지론은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208쪽

나는 오키나와에서, 그리고 아이들에게서 생명의 의미를 배웠다. 하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다른 무수한 생명이 그 생명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상, 내 생명 또한 다른 생명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상이 인간의 성실함을 낳고 상냥함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배웠다.
하나의 '생명' 속에는 수많은 '죽음'이 살아 있으며 온갖 고통과 번민이 깃들여 있다. 그것이 흙 속의 양분처럼 새로운 생명을 길러내고 미래를 만들어 나간다. 생명에는 끝이 없다는 생각이 이제야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다. -228쪽

인간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지 않는다.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는 까닭은 타인의 불행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너희가 모르는 곳에
갖가지 인생이 있다.
너희 인생이
둘도 없이 소중하듯
너희가 모르는 인생도
둘도 없이 소중하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모르는 인생을 사랑하는 일이다.

-<외톨이 동물원> 중에서-2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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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를 다시 빨아 버린 우리엄마 도깨비를 빨아 버린 우리 엄마
사토 와키코 글.그림, 엄기원 옮김 / 한림출판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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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만에 돌아온 이 빨래하기 좋아하는 엄마,  30년 세월이 흘렀는데 오히려 더 이뻐진 것 같다. 머리 웨이브도 더 부드러워지고 단정해진 것 같고... 무엇보다 전편에선 맨발의 아줌마였는데 단정하게 하얀 양말까지 챙겨신고 빨래를... 어쩐지 30년 전 아줌마가 더 친근하다. 

이번엔 빨래를 하고나서 빨랫줄을 매려는데 흐린날씨가 문제.. 해결책을 생각하다가 떠오른 게 연줄에다 빨래를 매서 구름위로 날려 올려버리는 것.. 연줄에 매달려 올라온 빨래들을 보고 구름위에서 놀던 도깨비들이 자기네들도 빨아달라고 떨어지기 시작한다.  엄마는 도깨비들을 통째로 빨래통에 넣고 빨아서 연줄에 매달아 말려준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뭔가 전편에 비해 매력이 없다.

저 도깨비들 지들이 빨래하는 법 좀 배우면 안되나? 전편에 비해 발전이 없잖아? 자기 옷들 좀 벗어서 빨래하기 좋아하는 엄마랑 같이 협동해서 빨면 어때서... 신나게... 그래서 "그 후로 도깨비들도 빨래하기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뭐, 그러면 안되는 거냐구.. 빨래가 장난인 줄 아나? 빨래하는 게 힘들다는 걸 아는 가정주부로서의 불평이 나온다.  아이들이 엄마가 빨래가 재밌어서 하는 줄 알까봐 은근히 걱정도 된다.

사토 와키코씨.. 다음편엔 <청소하기를 너무너무 좋아하는 아빠가 있었습니다> 나 <요리하기를 너무너무 좋아하는 아빠가 있었습니다> 뭐 그런 이야기 쓰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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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를 빨아 버린 우리 엄마 도깨비를 빨아 버린 우리 엄마
사토 와키코 글.그림, 이영준 옮김 / 한림출판사 / 199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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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그것도 손빨래는 가사노동 중에 중노동에 속한다.  근데 여기 빨래하기를 좋아하는 어느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첫 페이지에서부터 "빨래하는 것을 너무너무 좋아하는 엄마가 있었습니다."로 시작이다.  몸매관리 잘 한 일명 미시족 날씬하고 우아하고 세련된 엄마가 아니라서 마음에 든다.  그 다음 장으로 넘기면 빨래를 해본 엄마들이라면 보기만 해도 질릴 정도의 빨래감이 쌓인 커다란 바구니(그림에는 일곱 바구니나 된다) 를 놓고 수돗가에 앉아서 빨래판에 쓱쓱 비벼빠는 엄마가 나온다. (표정을 보니 정말 빨래하기가 좋은가 보다) 그런데 이 엄마 힘이 장난이 아닌가 보다. 금세 빨아버리고 눈깜짝할 사이에 빨아버린단다. 이쯤되면 존경스럽다.

그런데 이 아줌마, 집안에 있는 빨래를 다 해치우더니 애들한테 "아무거나 빨 것 좀 찾아오너라"한다. 이런 세상에...자, 이 아줌마 온갖 것을 다빨아놓고 이제 빨래줄을 매기 시작한다.  뜰만으로는 부족해서 숲 속 나무에도 빨래줄을 맨다.  빨래를 널어 놓은 장면이 압권이다.  우리 아이들은 여기서 물건 찾기 게임으로 들어가곤 한다.  찾을 물건들이 너무너무 많다.  빗자루, 고양이, 생쥐들, 오리, 시계, 바구니, 장화....

이 책을 읽으며 난 내가 씩씩하고 억센 팔을 가진 엄마가 되기를 꿈꾸곤 한다.  집안 일에 치여서 하루종일 정신없는 그런 엄마가 아니라 대장처럼 장군처럼 씩씩하고 밝게 집안을 끌어가는 강한 어머니를 꿈꾼다.  아이들도 그림책 속의 그런 엄마에게 반하는 것 같다. 

좀 더 비약하자면 이 그림책을 읽으며 아이도 나도 부조리하고 더러운 세상을 빡빡 빨아버리는, 그래서 하얗고 눈부시게 빛나는 세상을 만드는 일을 꿈꾼다.  그림책 속에 엄마처럼 더러운 모든 것을 기운차게 빨아 버릴 수 있는 그런 영웅을 그리며 웃음짓고 행복해 한다.

도깨비까지 싹싹 빨아서 예쁜 아이로 만드는 빨래를 좋아하는 엄마..   이제 보니 세상의 추하고 어둡고 때묻은 모습들을 푹푹 삶아 빡빡 비벼 빨아 깨끗하고 환한 세상으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이세상 모든 엄마들의 모습이다.  

<도깨비를 다시 빨아버린 우리 엄마>라는 제목을 달고 후속편이 나왔다.  흠... 또 리뷰를 써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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