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즐거운 그림책 읽기
엄혜숙 지음 / 창비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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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이렇게 마음을 푸근하게 하는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는 앞서 말한 미덕(함께 일하고 그 결과를 함께 누리는 공동체 생활상)이 있는 반면 아쉬운 점도 눈에 띈다. 우선, 사건이 모두 손큰 할머니의 성격과 의지에 따라 좌지우지된다. 주인공 손큰 할머니는 독자가 동일시하기보다는 감탄하고 놀라워하는 대상인데, 이로 인해 독자는 그림책 속에 흠씬 빠져들기 어렵다. 둘째, 글이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해서 상대적으로 그림의 역할이 작다. 셋째, 명절이 배경인 까닭도 있겠지만 음식에 접근하는 방식이 상투적이다. -13쪽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에서 글과 그림의 역할을 살펴보자. 이 그림책에서는 그림보다는 글이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야기성이 강한 그림책은 말(문장)이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할 때가 많다. 이런 경우에 그림책이라는 장르는 점차 삽화가 들어 있는 그림이야기책이라는 장르로 옮겨가게 된다.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에서는 글이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며, 글과 그림은 동시성을 지닌다. 글로 이야기한 내용이 다시 그림으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19페이지
글이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더라도 그림표현이 좀더 자유로웠다면 그림보는 재미가 더 컸을 것이다. (중략) 글이 표현하고 있지 않은 것을 상상하고 해석해서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일, 그것이 그림책에서 그림이 할 역할이라고 하겠다. -17쪽

어린이 그림책을 만드는 사람은 어른들이지만 독자는 어린이들이다. 그러므로 그림책에서 어른의 입장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들이 그림책을 즐겁게 보고 그림책 안에서 뛰놀 수 있어야 한다. 어린이 책은 어른이 어린이에게 건네는 말이고 어른이 어린이와 나누는 대화다. 따라서 '어떻게 말을 거느냐'가 중요하다. 독자인 어린이가 '네' '아니오'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지, 아니면 자유롭고 즐거운 대화가 될 것인지는 말을 건네는 어른의 자세에 달려 있다. 책을 만든 이가 어떤 입장에 서 있는가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19~20쪽

강아지똥은 골목길 담 밑에서 한겨울을 보낸다. 추운 겨울날 강아지 똥은 이렇게 중얼거린다. "난 더러운 똥인데, 어떻게 착하게 살 수 있을까? 아무짝에도 쓸 수 없을텐데..."(17면) <강아지똥>의 세계에서 '착하다'는 것은 바로 '쓸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이것은 우리 전통적 세계관과도 일치하는 대목인데, 예전에는 가장 심한 욕 중의 하나가 '저런 아무짝에도 쓸 데 없는 놈!'이란 말이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에 쓸 수 있어야 착한 것일까? <강아지똥>을 보면, 아름답게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쓸 수 있는 것'이 바로 '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22쪽

<강아지똥>에서 '똥'은 흔히 보는 똥이 아니다. 작가는 강아지똥을 통해 삶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하찮은 강아지똥이 삶의 본질을 묻는 '관념의 똥'이 된 것이다. 아이들은 감각적으로 똥과 친숙하다. 그러나 이렇게 친숙한 똥을 소재로 철학과 교훈을 담아내기란 그리 쉽지 않다. 이런 쉽지 않은 일을 <강아지똥>이 해내고 있다. 관념과 철학의 세계를 아이들에게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28쪽

<갯벌이 좋아요>는 여러 생물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삶을 보여주는 주제의식, 주인공 꽃발게를 내세운 허구적 기법, 다양하고 재미있는 시각적 표현, 신기한 모습을 한 갯벌생물 등으로 인해 독자의 눈을 끈다. (중략) 그러나 그림작가는 주관성이 앞서는 나머지 글과 그림의 어울림, 화면구성과 화면 전개의 개연성이라는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갯벌이 좋아요>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야기성과 정보를 함께 담으려는 이른바 '다큐드라마'식 그림책이 지닌 문제이기도 하다. 그림책을 보는 아이들은 이렇게 따져가며 보지 않는다. 그림책에 나오는 갖가지 생물들을 보면서 즐거워하고 기뻐할 것이다. 하지만 꼼꼼하게 따져보는 것이 우리 어른들의 몫이 아닐까. 우리 아이들이 더 나은 그림책을 보고 즐기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35~36쪽

<아씨방 일곱동무> 이영경 글,그림/비룡소/1998
원작(규중칠우쟁론기)에서는 바느질 도구인 '칠우'가 서로 공을 다투다가 주부인이 혼쭐을 내자 잠잠해진다는 데서 풍자성을 보여준다. 또 일하는 사람의 공, 손의 공이 가장 크다고 결말을 맺음으로써 노동의 귀중함을 부각하고 있다. <아씨방 일곱 동무>의 결말은 이와 다르다. 빨강 두건 아씨는 꿈속에서 일곱 동무가 없어지자 바느질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일곱 동무의 공을 깨닫게 되며 다함게 힘을 모아 즐겁게 바느질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그런데 이러한 결말은 교훈적이며, 빨강 두건 아씨가 꿈이라는 계기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 과정도 작위적이다. 함께 어울려 일하고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은 분명 미덕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이라 하더라도 풍자와 비판 정신을 담을 수 있고, 그것은 섣부른 교훈이나 화해보다 더욱 값질 수 있다. 우리나라 그림책은 갈등을 보여주다가도 '함께 살면 좋아요'라든가 '함께 하면 좋아요'식으로 끝맺는 경우가 많은데, 상투적인 결말이 아닐 수 없다. 아이의 세계에도 삶의 다양성과 진솔함이 있을 터인데,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어 풍자와 아이러니를 느끼게 하는 것도 아이의 눈을 넓혀줄 수 있는 방식이라고 하겠다.
-38~39쪽

몇가지 아쉬운 점을 짚었지만, 이 그림책은 고전의 패러디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우리 주변 어디에나 그림책거리는 있다. 문제는 상상력이고 해석력이다.' 이그림책을 보면서 내내 떠오른 생각이었다. -44쪽

놀이의 특징은 무엇일까?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어른들도 아이들처럼 논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하곤 했다. 미끄럼틀을 타든, 모래놀이를 하든, 물고인 웅덩이에서 철벙거리든, 빈 병에 웅덩이 물을 담든, 어떤 놀이를 하든지 아이들은 완전히 몰두하여 논다. 놀고 있는 아이에게는 '지금, 여기'야말로 '영원한 순간'이다. 스스로 주인이 되어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순간, 그 순간 아이는 놀이와 하나가 되어, 놀이 속에, 놀이와 함께 있는 것이다. -45쪽

정보그림책은 정보를 제시하는 형식 자체가 중요하다. 같은 정보라도 어떻게 제시되느냐에 따라 정보에 대한 이해가 달라진다. 정보 제시 형식이야말로 정보그림책에 차별성을 부여하는 요소라고 하겠다. -59쪽

아이에게는 상상이 현실만큼이나 생생하다고 한다. 그러나 상상세계는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평소에 겪은 모든 일이 상상의 질료가 된다. 풍부하고 다양한 현실 경험이야말로 풍부한 상상세계를 창조하는 바탕이라는 것을 이 그림책(비가 오는 날에.../이혜리 글,그림/보림/2001)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81쪽

우리에게 사회학적 상상력을 요구하는 것이다...-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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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보고 크는 아이들 - 그림책으로 시작하는 아이교육
이상금 지음 / 사계절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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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임상 유아 교육 센터는 '학교 성적의 향상은 지식의 축적이나 보다 이른 시기의 독해 능력 보다 오히려 정서적, 사회적 능력에 좌우 된다'라는 연구 보고서를 냈는데 그 속에 초등학교 입학 준비에 필요한 능력을 일곱 가지고 요약했다.
1. 자신 (自信) ; 자신의 신체, 행동 및 주변의 세계를 자신의 생각대로 조정할 수 있다는 감각. '나는 반드시 할 수 있을 거야.' '어른들도 나를 도와줄 거야.'라는 감각
2. 호기심 ; 무엇을 안다는 것은 좋은 일이며 즐거운 일이라는 감각
3. 계획성 ; 주위에 영향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끈기있게 노력하며 또 실제로 영향을 주는 능력. 이것은 자기 능력에 대한 자신과도 관계가 있다.
4. 자제력 ; 연령에 적합한 방법으로 자기 행동과 마음을 조정하는 능력.
5. 또래의식 ; 다른 사람은 나를 이해하고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주위 사람들과 사귀는 능력.
6. 의사 소통 능력 ; 언어를 통해 생각이나 기분을 다른 사람과 서로 나누고 싶다는 기대와 능력. 이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감과 주변 사람들하고 사귀는 것을 좋아하는 감각과 관계가 있다.
6. 협조심 ; 집단 행동에 임할 때 자기 욕구와 다른 사람의 욕구의 균형을 잡는 능력-79~80쪽

릴리언 스미스의 말을 다시 인용하면 지식의 그림책을 만드는 데 세가지 유형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지식을 전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한다. 둘째는 지식을 전하는 것과 동시에 그 주제의 본질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경우이다. 셋째는 지식을 전하고 설명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문학 작품으로 완성시키는 경우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지식의 그림책에는 정확한 지식, 명확한 설명, 적절한 표현의 세 가지가 필수 요건이라고 강조한다.
(중략)
앞으로 더 많은 지식의 그림책이 나올 것이므로 좋은 지식 그림책의 특성을 폴 아잘의 말을 빌려 다짐하고자 한다.
"너무 많은 내용을 과다하게 담아 어린이의 마음을 압도하지 말고, 하나의 씨앗을 뿌려 어린이의 마음속에서 자랄 수 있게 하는 그런 지식의 책이 좋다."
"나는 뛰어난 재주로 절도 있게 지식을 전하는 그런 책을 좋아한다."
"나는 지식의 본질에 대해서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서 지식이 모든 것의 우위에 있다는 등의 대담한 소리는 하지 않는 그런 책을 좋아한다."-83~84쪽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늙어가는 과정을 두 가지 유형으로 비유한 말이 있다. 하나는 옷갈아입기형이다. 영아기 옷을 벗어던지고 유아기 옷을 입고, 유아기 옷을 벗고 아동기 옷을 입고, 청년기,장년기도 먼저 입던 옷은 벗어 버린다. 그런 사람의 종착역은 늙은 옷 밖에 남지 않는 늙은이일 뿐이다. 다른 하나는 나이테형이다. 지난 세월을 속에 간직한 채 자라는 나무처럼 변해 간다. 나이테의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어린이가 있다. 그러기에 나이테처럼 늙는 사람은 영원히 살아있는 어린이를 보듬고 살아간다. -101쪽

유럽에서는 이런 말이 돈다고 한다. "출판되는 책의 반은 팔리지 않는다. 팔린 책의 반은 읽히지 않는다. 읽힌 책의 반은 이해되지 않는다. 이해된 책의 반은 오해되고 있다. "-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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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보고 크는 아이들 - 그림책으로 시작하는 아이교육
이상금 지음 / 사계절 / 1998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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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도 하기 전에, 대학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던 그 즈음에 갑자기 난 동화와 그림책에 푹 빠졌었다.  동화와 그림책에 대한 흥미는 이후로도 계속되어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고 첫 아이를 낳고 할 때까지 계속되었는데,,, 그래서 한동안은 동화를 직접 써보겠다고 끄적거리기도 했었고.. 첫아이 첫돌 선물로 "사랑하는 나의 첫아이 유진이에게"라는 헌정의 글을 달아서 동화를 완성시키기도 했었다.

그런데 점점 동화의 세계가 그림책의 세계가 정말 어렵고 복잡한 세계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감히 나 같은 사람은 범접해서는 안될 신성한 땅, 선택받은 몇몇 사람들에게만 허락되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세계였다.  나 같은 사람은 그저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꿈꾸며 그리워해야 하는 세계였다. 

어느덧 나는 아이의 성장에 따라 그림책에서 동화책으로 이제 중1이된 첫아이를 따라 청소년대상의 문학과 과학, 역사서등을 읽으며 그림책이나 동화의 세계와 멀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늦둥이 셋째를 낳고부터 다시 그림책의 세계로 빠져든다. 

예전엔 <어린이와 그림책>이라는 (그것도 벌써 결혼전이던가..) 그림책을 소개하는 글을 읽었었다.  지은이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그전에 읽었던 책도 같은 사람이 썼던 책인 모양이다.  그 당시에는 소개된 그림책이 서점에 나와있지를 않아 안타까워 했었다.  이제 그림책은 넘쳐난다. 오히려 그 안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일이 어려운 과제가 되었다.

다행히 요즘은 그림책과 동화책에 대한 이론서와 소개서도 많이 출판된 것 같다.  도전해 볼 맛이 난다. 

저자의 아동.유아문학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애정에 감사드린다.  첫애와 둘째 아이 때 사놓은 그림책을 아이들이 큰 다음에도 아까운 생각에 처분(?)하지 않았던게 참 다행이다.  코끼리왕 바바와 피터래빗, 존버닝햄의 그림책들과 작은 집이야기... 아이와 함께 나도 빠져들어 읽었던 보석같은 그림책들이다.

우리나라 그림책과 동화에대한 소개글도 있었다면 참 좋을  뻔했다.  없지는 않았지만 충분치는 않았다. 그점이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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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유빈이랑 같이 '한 번 가봐야지'하고 별러왔던 <책읽는 엄마 책읽는 아이> 어린이 도서관에 마침내 다녀왔다. 날씨가 더 추워지면 자꾸 더 게으름을 피우다가 못가게 될까봐 마음 내킨김에 집을 나섰다. 마을버스 08번을 타고 구립도서관 앞에서 내려 한양대 쪽으로 약간 걸어야 하는데, 가는 길에 회집들이 있어 유빈이는 회집 수족관에 있는 우럭이랑 고등어, 새우, 대게, 가리비 등을 보며 좋아라 했다. 덕분에 가는 길이 더 즐거웠다.

도서관앞에서 잠시 머뭇,, 뭐라고 하고 들어가야 하나? 기웃거리며 안을 들여다 보니(촌스럽기는..) <참좋은 엄마의 참 좋은 책읽기>의 저자이시며 도서관 관장님이신 김소희씨와 다른 여자분이 책을 정리하고 계신 듯했다. 늦은 아침이었는데 책을 보러 온 사람은 한명도 없고..(가까이 사는 엄마들은 다들 뭐하나? 이런 보물창고를 옆에다 두고..) 무작정 밖에 서있는 것도 웃기고, 유빈이도 엄마 뭐하나..하는 표정이고, 에라이 용기를 내서 문을 열었다. "들어가서 책 구경 좀 해도 될까요?" 최대한 예의바르고 얌전하고 조신하게..ㅎㅎ "네, 그럼요, 들어오세요" 두분이 다 웃으며 맞아주신다. 현관에서 유빈이 신발 벗기고 나도 실내용 슬리퍼로 갈아신고 들어섰다.

책을 정리하고 계신 줄 알았는데 새로 들어온 책을 도서용접착시트지로 싸고 계신 중이었다. (그렇지, 개구쟁이 아이들 손에서 책을 조금이라도 오래 보존하려면) 길을 향한 벽쪽이 유리로 되어있어 도서관 안이 환하다. 21개월 된 우리 유빈이가 볼 책은 빨간색과 주활색 스티커가 붙어 있다고 하시며 빨주도서가 있는 맨안쪽 책꽂이로 안내해주셨다. 구립도서관 보다는 훨씬 정감있고 편안한 분위기이다. 유빈이가 아직 너무 어려서 도서관에 가면 오히려 좀 산만해지는 경향이 있어 (엄마 무릎에 앉아 조용히 책을 보기 보다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주변탐색에 더 열심이다. 이 책 저 책 뽑아 놓고..)도서관에 가면 더 조심스럽고 미안해져서 "이렇게 어린애를 데려와도 괜찮을까요?"했더니 "얘보다 더 어린애도 와요. 걱정말고 편하게 오세요."한다. ㅋㅋㅋ 드디어 우리 유빈이와 나의 아지트를 찾은 느낌..

도서관은 2층으로 되어있는데 1층은 유아들과 엄마들을 위한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넓다란 나무바닥 공간에 키낮은 책꽂이들.. 아이들이 바닥에 누워 뒹굴며 책을 읽어도 참 좋을 것 같다. 안쪽에 따로 마련된 방안에는 엄마들이 볼 만한 책들과 영어도서, 비디오 테이프가 마련되어 있다. 정말 마음에 든다. 구립도서관에 가면 아이들 도서와 엄마들이 볼만한 도서들이 다른 공간 (예를 들어 아이들 도서는 1층에 있고 엄마들이 볼만한 도서는 다른 층에 있는 식의)에 있어 유빈이같은 어린아이를 데리고 내가 읽을 책을 찾겠다고 조용한 도서관안을 헤매고 다닌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도서 대출은 어떻게 해야 하냐고 했더니 와서 보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고 단지 대출을 하려면 회원가입을 해야 한단다. 월 5000원의 회비로 회원이 되면 1회에 3권씩 1주일간 대출이 된다고.. 기꺼이 회원에 가입.. 어린이 도서관이 더욱 발전하고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분명한 명분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이제부터 나와 유빈이의 아지트가 될 장소를 위해서 한달에 5000원을 못내놓으랴 하는 계산이기도 했다.

일단 유빈이 책은 구립도서관이랑 동네공공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 있으므로 내가 읽을 책을 두 권 골랐다. <그림책을 보고 크는 아이들>(이상금 지음, 사계절)과 <나의 즐거운 그림책 읽기>(엄혜숙지음, 창비)다. 요즘 그림책과 동화에 관심이 커져서 그렇지 않아도 이론서 몇권을 읽고 싶었는데 마침 잘됐다 싶었다. 그리고 유빈이의 작은 그림책 하나를 들고 회원가입을 하고 대출을 하려는데 관장님과 함께 계시던 여자분이 회원가입신청서를 받고 대출처리를 하면서 "엄마들 보는 책은 무료로 그냥 대출이 되니까 아이책 2권을 더 빌려도 돼요."한다. "정말요? 우와 땡 잡았네" (이게 무슨 점잖치 못한 표현이란 말인가? 본성은 언젠가 드러나게 된다는 건 알지만 너무 빨리 드러냈다.) 어쨌든 그래서 총 다섯권을 빌렸다. 회원가입신청서를 쓰고 대출을 받는 동안 우리 유빈이는 책을 싸고 있는 관장님 옆에 앉아 가위질을 하겠다고 가위들고 비닐을 오려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유빈아 이제 가자 하고 집에 갈 채비를 하는데 "벌써 가세요? 편안하게 더 읽다 가세요."하신다. 아침에 유치원에서 애들이 오는 바람에 책들이 정리가 안되어 있다며 오히려 미안해 하신다. 아하, 벌써 아침에 유치원애들이 한바탕 쓸고 갔구나.. 유빈이가 집에 가서 읽어줘야 더 집중을 잘한다며 나왔다. 화요일은 구립도서관에 목요일은 어린이도서관에 가는 날로 정했는데, 유빈이가 좀더 크면 화요일에도 가고 목요일에도 가고 그래야겠다. 암튼 어린이도서관.... 우리 유빈이와 나의 아늑한 아지트.. ㅎㅎㅎ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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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막내 늦둥이딸 비니,,,,,한달 전 엄마젖 끊고나서(요즘은 단유라는 말보다 완유라는 표현을 쓴다던데..아무튼 끊고)  잠도 더 잘자고 밥도 더 잘먹고  생각보다 의연하고 씩씩하게 엄마 찌찌 안찾고 잘 지내서 대견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그래도 나날이 행동반경과 함께 오지랍도 넓혀가고 있고, 기어오르기 매달리기 어디든 올라가 아슬아슬하게 서있기 등등의 기술도 하루가 다르게 익혀가고 있으며, 열살 열두살 차이 나는 언니오빠에게서 군것질의 재미도 배우고 하루가 다르게 엽기적 행동의 수위도 향상되고 있다.

어제 난데없이 까까를 내놓으라는 비니, 언니 오빠가 가르쳐준 군것질의 묘미가 생각난 모양이다. 집안에 주전부리가 똑 떨어진 상태.. 할 수 없지 ,,, 슈퍼에 가자 하고 나섰는데, 슈퍼가는 길에 비둘기를 만났다. 저 쪽에서부터 뒤뚱거리며 걸어오는 살찐 비둘기. 놀이터에서 놀다가도 흔하게 만나는 게 비둘기라서 나는 별 신경도 안쎴는데 우리 비니,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비둘기를 보면서 "안녕~"한다.

오호, 비둘기가 반가운 모양이군.. 아이의 천진함에 나도 웃으며 "구구구 비둘기네. 비둘기 안녕~"하며 같이 비둘기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는데,, 이 비둘기 계속 뒤뚱거리며 우리 쪽을 향해 걸어온다. (역시, 요즘 비둘기는 겁이 없군. 저러니까 다친 비둘기가 많아지지)그런데 비니가 주춤거리며 내 뒤로 숨는다. 계속 안녕 안녕하면서.. 되풀이되는 안녕이라는 말이 점점 울먹임으로 변하고 마침내 으앙~~~~울면서 나더러 안아달라고 난리다. (오호 유빈아, 너도 무서운 게 다 있냐?)  나는 킬킬거리며 안아줬다

슈퍼에서 이것저것 먹을 것을 사가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비니는 자기가 고른 과자 한봉지를 들고 신이 났다.  내가 언제 울었냐는 듯이 춤을 추듯 걷는다. 가을 햇빛도 좋고 선선한 바람도 좋고, 아직 잎을 다 떨어뜨리지 않고  서 있는 나무들도 좋고..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서 걷고 있는데 잘 가던 유빈이가 또 뭔가에 놀라서 갑자기 매달리며 운다. (왜 그러지?)  또 안녕타령..  이번엔 누구더러 안녕이야? 비니가 안녕을 외치는 쪽을 보니까 하하하 파리다 파리. 길 위에 할일없이 앉아 가을볕을 즐기고 있던 파리가 비니 눈에 띈 것이다.  괜찮아  이리와 이리와 비니를 달래고 길위에서 쉬고 있던 파리를 발길질로 쫓아 날려보냈다. (미안해, 파리야.) 

비니는 금방 울음을 그치고 파리를 쫓던 내 발길질을 흉내낸다.  "어이~!"하던 내 기합소리까지 따라한다. "엄마가 그렇게 파리 쫓아줬지? 엄마 디게 용감하지?" 파리 한마리 쫓아주고 우쭐대는 엄마.. ㅋㅋㅋ 남들이 보면 코메디지만 그 순간 비니에겐 내가 슈퍼맨베트맨스파이더맨 다 합친 것보다도 위대한 영웅이다.

나이 많은 엄마는 행복하다.

근데 비니야, 너가 말하는 안녕은 혹시 "저리 꺼져~!"의 뜻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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