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이 지나고 새해가 된지 벌써 보름이 되어간다.  지난 한 해를 좀 정리해보고 싶었는데 차분히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이 없었다.   

1. 지난 12월, 기말고사를 열흘 정도 앞둔 아들 녀석이 학교에서 돌아와서는 갑자기 "엄마, 나 학원 다니지 말까?"하고 말문을 열었다.  평소에도 너무 학원에 시달리는 것 같아 안쓰러웠던 터라, 냉큼 "그래, 잘 생각했어.  집에서 해도 엄마 생각엔 성적이 많이 떨어질 것 같진 않아."하고는 곧바로 학원에 전화를 걸어 그만두게 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방학을 맞고 나서도 아들은 계속 집에서 공부 중이다.   덕분에 사교육비로 아들의 영문법 인강 신청비 6만원만 지출되는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득이 있으면 실이 있는 법.  세 아이가, 일주일에 두서너번은 작은 딸 친구까지 다섯 아이가 집에서 바글바글대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책을 읽는 것도, 컴 앞에 앉아 몇 자 끄적이는 것도 좀처럼 잘 되질 않는다.  그러니 지난 2009년 나에게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친 사건은 "아들 녀석, 학원을 끊다"인 건가...   

2. 큰아이들 둘이 모두 학원을 안다니다 보니 가장 걱정되는 게 수학.  "엄마, 이 문제 어려워서 잘 모르겠어."하고 가져오면 중학교 수학까지는 '정답 및 해설'을 봐가며 어떻게 대충 무마가 되기도 하는데 큰딸 고딩수학은 바로 주눅이 들고 만다.  (나 고등학교 졸업한지 20년도 더 됐거든! 하며 넘어가려해도 소용이 없다. 원래 수학을 못했던 사람이니..) 그런데 참으로 고맙게도 옆라인에 사는 유빈이 친구 신이 엄마가 수학을 봐주기로 했다.  큰딸은 여름 무렵부터 봐주기 시작했고, 명보는 시험이 끝나자마자 12월부터 일주일에 두세번씩 봐주기 시작했다.  물론 돈도 안받고, 우리 애들 봐주는 동안 그 집 4살, 3살짜리 연년생 남매를 데려와 우리 막내와 놀게 해주면 되는 거였다.  K대 수학과를 졸업한 그 엄마는 자기도 나중에 임용고시라도 보려면 어차피 공부를 해야한다며, 애들한테 시달리는 것보다 우리 큰녀석들 수학 봐주는 게 더 낫다며 내가 부담스러워할까봐 걱정해주는데, 오히려 그게 더 미안하다.   

3. 작년에도 창비어린이에 서평이 실렸다.  내게는 너무 과분한 일인 동시에 행복한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행복한 일을 만들어주고 도와준 분께 늘 감사하다.  책을 더 잘 읽고('많이'가 아니라 '잘'), 허접한 글이라도 '즐겁게' 써야지, 하는 결심을 하게 된다.  아마 올해엔 막내가 어린이집에 가게 되니까, 봄만 되어도 좀 가능해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4. 쓸개없는 인간, 우리 남편.  지난 해 여름, 남편이 여의도 건강검진센터에서 종합검진을 받았다.  특별히 무슨 이상이 있어서는 아니고, 남편의 대학동기의 매제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대학동기가 건강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고 본인의 건강검진을 신청하면서 남편에게 '너도 같이 받자'고 청한 게 동기였다.  그 건강검진에서 담낭에 결석이 발견되었다.  10월 5일 쯤, 서울 아산병원에서 담낭제거수술을 받았다.  수수알만한 것에서 오징어땅콩 과자만한 것까지 예닐곱개의 결석이 나왔다.  사람 몸 속에서 어떻게 그런 돌멩이가 생길 수 있는 건지.  병실에서 '쓸개도 없는 인간'이 되었다고 남편을 놀리곤 했지만, 처음 만났던 열다섯 소년의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마음 한 켠이 자꾸 시려오기도 했다.   

5. 남편이 그렇게 담낭없이 누워있던 병실에서였다.  알라딘 4기 서평단으로 뽑혔다는 문자를 받은 건.  올해 서평을 별로 많이 쓰질 않았기 때문에 신청하면서 뽑힐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그러다가 남편이 수술을 하네 마네 하던 때라 정신이 없어서 신청해놓고도 잊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문자를 받고는 "헉!"하고 가슴이 철렁했다.  10월엔 마무리 지을 일들이 쌓여있었던 것이다.  10월 말엔 어린이도서관 행사가 있었고, 11월 중에 책고르미에 필요한 네 꼭지의 글을 써야 했고, 책고르미에서 추천도서목록을 뽑아야 했다.  '할 수 있을까?', '괜찮을까?' 걱정이 앞섰지만 '어떻게 되겠지.'하는 마음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2009년을 마무리하면서 서평단 활동도 끝났다.  5기 서평단은 신청하지 않았다.  내게는 너무 버거운 일이었다. 

6. 도서관 책고르미 모임얘기를 빠뜨릴 수가 없다.  책고르미 모임은 그렇게 일이 많은 모임은 아니었다.  그런데 유난히 지난 해엔 일이 많았는데, 권윤덕 선생님과의 그림책 만들기 작업은 무엇보다도 부담인 동시에 뿌듯했던 일이다.  그림은 스케치를 어느 정도 마쳤지만 아직도 먹선뜨는 일을 제대로 완성시키질 못했다.  권윤덕 선생님 특유의 꼼꼼함과 치밀함에 다들 자극받고 긴장하면서도 애 키우고 살림만 하던 주부에게는 아무래도 그림 그리는 일이 어렵고 어렵고 다시 어렵고 또 어렵다.  우리의 작업은 아직도 그냥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있지만 지난 한 해 내가 한 일 중 가장 놀라운 일 가운데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다.  

7. 그러자고 작정한 건 아니었는데 매년 한 편씩 뮤지컬을 관람하게 되었다.  지지난해엔 명성황후를, 지난해엔 뮤지컬 캣츠를, 그리고 올해엔 뮤지컬 일 삐노끼오를 봤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지난해엔 난 못 보고 남편과 큰딸, 아들이 봤다.  명성황후 때에도 캣츠 때에도 남편이 막내를 보느라 공연을 보지 못했다.  늘 미안했더래서 올해만큼은 내가 막내를 볼테니 당신이 공연을 보고 오라고 억지로 등을 떠밀었던 것.  그런데 일삐노끼오를 보고 온 큰딸과 아들녀석이 캣츠보다도 더 멋졌다는 거다!!!!  무대도 어지간히 화려했던 듯..  이런, 어쩐지 좀 배가 아파지고, 쿨하고 멋진 척 남편에게 양보했던 게 좀 후회되기도 하고... ^^;;  지난 해 가장 아쉬웠던 일 중 하나. 

8. 시댁이 이사를 했다.  28년만의 이사였다.  이사하기 전에 살던 집은 우리가 분가하기 전까지 시조부모님, 시부모님, 시동생, 그리고 그 때는 아기였던 우리 큰딸까지 4대 아홉 식구가 복닥복닥 모여살던 2층집이었는데, 할아버님, 할머님이 돌아가시고 시동생마저도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나자 시부모님 두 분만 커다란 2층집에서 지내시는 모습이 좀 썰렁하고 허전해보였었다.  처음으로 아파트 생활을 시작하셨는데, 자식된 입장에서는 한결 마음이 놓인다.  이사하시던 날 가서 청소며 짐정리를 도와드리면서 내가 덩달이 신이 났었다.  특히 올 겨울엔 눈이 많이 오고 추워서 단독주택에 그대로 계셨으면 눈 치우시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을 것 같다.  새로 지은 아파트라서 그런지 거실이며 방들을 확장했는데도 전에 살던 단독주택처럼 우풍도 없고 춥지도 않고 참 좋다.  세간살이들도 싹 새로 바꾸셔서 마치 신혼집 같다.  우리는 안방에 붙박이장을 해드렸고, 시누이네는 거실장과 식탁을 해드렸는데 가서 볼 때마다 뿌듯하다. 16층인 시댁 거실에서는 소래 바다도 보인다.  ......  참 좋은데,,, 참 잘된 일인데,,, 가끔 문득문득 오래된 2층 단독주택 그 집이 그리워지는 건 왜일까.  

9.  남편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 하기 시작했다.  눈이 많이 내리거나 너무 춥거나 하는 날들은 어쩔 수 없지만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한 날이 꽤 된다.  어제는 기록적인 한파가 몰아친 날이었는데도 중무장(?)을 하고 아침에 자전거로 출근했다.  특별히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어서는 아니다. 굳이 왜?냐고 따진다면, 담낭제거수술을 받은 후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데다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연배 높은 지인께서 선물해주신 자전거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집에서 남편의 사무실이 있는 신사동 가로수길까지 20km정도가 된다는데 좀 두툼한 파커를 입고 자전거를 탄 날이면 안에 입은 셔츠가 땀에 흠뻑 젖어서 들어오기도 한다.  아무튼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운동밖에 모르던 사람이라 자전거 타주는 것만으로도 기특하고 고맙다.  문제는 나다.  나도 운동을 좀 해야할 텐데.  

10. 무엇보다 행복했던 일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그 인연을 흠내지 않고 잘 이은 일이다.  앞에서 얘기한 신이엄마도 그렇지만 유빈이 덕분에 나보다 한참 어린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그런데 그 어린 친구들이 얼마나 괜찮은 친구들인지 모른다.  다들 마음씀이 어찌나 넓고 부드러운지 나이 많은 내가 놀라고 부끄러워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어린이 도서관에서 책고르미 일을 하며 인연을 맺은 친구들과 선생님들도 그렇다.  서울살이가 각박하다고 했던가.  서울로 이사온 지 만 5년이 되어가는데 난 내 삶이 오히려 풍요로워진 걸 느낀다.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을 나누고 먹을 것을 나누고 정을 나누고 옷을 나누고 심지어 자기가 가진 재능을 나눠주기도 한다.  신이엄마는 수학지식을 우리 큰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있지만 새해부터 OO이 엄마는 자기 아이와 함께 어울려 노는 유빈이를 포함한 아홉명의 꼬마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 영어를 가르쳐주기로 했다. (오랜 외국생활로 이 엄마의 영어실력이 원어민 수준이다) 물론 이 또한 무상교육이다.  내 십대의 사춘기 시절 이후 최고의 인복을 누리고 있는 요즘이다.  새해에도 이렇게 맺은 인연이 슬프고 아픈 일까지도 나눌 수 있는 더 깊은 인연으로 자리잡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새해엔 '좀 더 즐겁게' 살고 싶다.  책에 대해서도 당분간은 무거운 리뷰를 내려놓고 수다떨듯 즐겁게 떠벌여 볼 생각이다.  물론 읽는 일도 '즐겁게'다.  마음이 가는대로 읽고 싶은 책을 무작정 잘 읽고 싶다.    

'운동하기'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는데, 처음엔 요가를 할까, 헬스를 다닐까 고민을 했다. 헬스는 답답할 것 같고, 요가는 어쩐지 너무 진지하다.  그래서 지금은 '하염없이 걷기' 쪽으로 마음이 끌리고 있다.  막내를 어린이집 버스에 태운 후, 그냥 말 그대로 하염없이 걸어보는 거다.  처음엔 내가 아는 길로만 뱅뱅 돌겠지만 어느날 갑자기 모험심이 발동하면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로 걸음을 내딛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길눈이 어두운 나로서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설레는 일이다.  아무튼, 내 살들을 덜어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건 부정하기 어려운 끔찍한 사실이다.

큰아이들이 새학년에 올라가서도 여전히 학원을 다니지 않게 될지, 그건 모르겠다.  특히 아들은 학원에 다니지 않는다는 사실이 좀 불안하기도 한가 보다.  하지만 인강에 의존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학원은 되도록 보내지 않을 작정이다.  어차피 공부는 스스로 익혀 다지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으니까.   

도서관 책고르미 모임에서는 옛이야기와 어린이책에 대한 공부를 하기로 했다. 창비에서 나온 <옛이야기와 어린이책>이라는 책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난 후, 직접 옛이야기 그림책들을 찾아보고 비교,분석해보는 작업을 해보려고 한다.  너무 어려운 일을 선택한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살짝 되기도 하지만 분명히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해나가게 될 거라 기대하고 있다.  제대로 된 '밥'을 지어내지 못한다면 멀건 '죽'이라도 쑤게 되겠지. 새까맣게 태운다고 해도 별 수 없고!!!   

새해 중요 사건이 될 것 중에 하나는 유빈이가 어린이집에 가게 된 게 아닐까.  무려 2년6개월을 기다려 입학하게 되었다.  출산장려를 한다면서 구립어린이집 들어가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뭐, 가장 맘에 들고 엄마들 사이에 인기도 있는 어린이집에 보내려니까 더 오래 기다리게 된 거지만) 어린이집 가방을 메고 어린이집 버스에 올라 탈 유빈이 모습을 상상하면 뿌듯하다.  늦둥이로 막내를 낳고 '언제 다 키우나...'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여섯 살.  힘들기도 했지만 기쁘고 행복한 일이 더 많았다.  요 꼬맹이가 없었으면 집안이 얼마나 적막하고 따분했을까 싶을만큼 유빈이 덕분에 집안이 활기차고 밝게 유지되고 있는 건 확실하다.  그런 유빈이가 너무 고맙고 예뻐서 "유빈아, 넌 어느 별에서 왔니?"하고 물으면 꼭 "별똥별!"이라고 대답한다.  유빈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별똥별을 타고 왔다'는 것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나는 아이를 놀리고 싶어서 '똥별'에서 왔구나, 하면서 코를 감싸쥔다.  똥별에서 왔다고 해도 좋다.  이만큼 건강하게 탈없이 자라준게 고맙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프레이야 2010-01-14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반가워요.
지난해 좋은일들 많았네요. 올해도 내내 행복하고 즐거운 일
많이 이어가시기 바래요. 무엇보다 좋은인연에 흠집 안 나게
잘 이어나가셨다는 글귀가 참 좋아요. 그게 제일이지요.^^

섬사이 2010-01-15 08:16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구요.
사람 사이에 흠집 나는 게,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어이없이 생기기도 하는 거라 더 조심스럽고 돌아서서 뒤늦게 후회하기도 하고.. 뭐, 그런 것 같아요. 인연도 하늘이 도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니까요. ^^



하늘바람 2010-01-14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다섯 소년이요? 우아
정말 일찍 만나셨네요
올해 님 댁에 좋은 일 가득하길 바랍니다

섬사이 2010-01-15 08:18   좋아요 0 | URL
열다섯 시절엔 그냥 알고 지내는 성당 친구였더래서 '만났다'는 말을 붙일만큼 그렇게 의미가 있지는 않았어요. ^^
하늘바람 님도 올 한 해 기쁘고 행복한 일들로만 꽉꽉 채워지길 빌어요.

hnine 2010-01-14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숨에 읽어내려갔습니다.
세자녀 돌보시면서 자신의 일과 계획도 쉼없이 추진해나가시는 모습이 참 좋습니다. 배우고 싶어요.
그러고보니 새해가 시작된지 이제 보름밖에 안되었네요. 저는 훨씬 더 지난 줄 알았어요 ^^

섬사이 2010-01-15 08:21   좋아요 0 | URL
아이구, 이런, 제가 사는 꼴을 직접 보셔야 하는데!!! 계획하고 추진하고, 뭐 그런거 없어요. 그냥 억지로 마지못해 굴러가는 꼴인 거예요. -.-;;


마노아 2010-01-14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의 1년을 같이 들여다볼 수 있어서 참 좋아요. 인복이 있다는 건 누군가에게 인복이 되어주고 있다는 증거일 거예요. 서울살이 각박한 게 아니라 이렇게 훈훈하고 덕도 된다는 걸 보여주셔서 또 참 좋아요. 유빈이가 벌써 이리 컸네요. 이제 3월이 되면 섬사이님도 기지개 켜시고 가끔은 게으름도 부리시고 여유도 한껏 부리셔요.^^

섬사이 2010-01-15 08:23   좋아요 0 | URL
더이상 게으름을 부렸다간 큰일이게요.^^;; 누군가의 인복이 되어주는 사람이, 정말 되어야 할 텐데... 안그랬다가는 지난 해 들어온 인복들이 모두 달아날까봐 겁이 나요.
이집트 여행 준비는 잘하고 계시죠?

순오기 2010-01-15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8년에 이어 2009년을 돌아보는 페이퍼에 님의 마음이 다 들어있네요.
저는 재작년에 이어 말로만 꼽아보고 페이퍼는 또 못 쓰고 말았네요.ㅜㅜ

섬사이 2010-01-18 16:23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은 저처럼 간단하게 정리되질 않을 것 같아요.
활기가 넘치고 부지런한 순오기님은 저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일들이 있지 않았을까요.....??
아마 순오기님은 분기별로 나누어 정리하셔야 할 듯.. ^^

꿈꾸는섬 2010-01-17 0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엔 좀 더 즐겁게, 저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어요.^^

섬사이 2010-01-18 16:21   좋아요 0 | URL
우리 같이 즐겁고 가볍게 살아요~~^^
 
<하버드 박사의 초등영어 학습법>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하버드 박사의 초등영어 학습법 - 미국식 커리큘럼으로 배우는
정효경 지음 / 마리북스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난 아이들에게 집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곳이어야 하고,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엄마가 아이들의 학습매니저가 되거나 과외선생님이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아이들의 인성이나 예절 등의 부분에서까지 손을 놓으라거나 아이들의 학습에 전혀 관여치 말라는 말은 아니다.  적어도 학교와 학원에서 공부하느라 힘들었을 아이에게 집에서까지 더,더,더를 목청껏 외치고 싶진 않다는 말이다. 지친 아이가 돌아와 편히 쉴 수 있는 곳, 마음 속에 쌓였던 스트레스와 욕구들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 집이며 엄마여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뿐이다. (이런 생각은 내가 슈퍼맘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걸 합리화하기 위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이런 책들이 아이가 공부에 어려움을 느낄 때 한 마디 툭 던져줄 수 있는 '참고 사항'이 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엄마가 아이의 영어공부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시간이라는 2400시간을 채워주기 위해 하루에 2-3시간씩 투자하는 건 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부터 든다.  하긴 태아 때부터 영어로 태교를 하고 태어나자마자 영어로 말을 걸고 영어 그림책을 읽어줘야 한다는 다른 영어학습도서들에 비하면 초등 1학년을 영어교육의 시작점으로 보는 저자의 의견은 소박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영어를 유창하게 잘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끔 아이들이 영어 때문에 속상해 할 때면, 난 농담삼아 "넌 나중에 동시통역사가 따라붙을 만큼 훌륭하게 자랄 테니까 영어를 너무 잘 할 필요없어."라고 말해준다. 동시통역사가 늘 따르붙을 만큼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될 확률은 거의 0%에 가깝겠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영어에 올인하는 것도 무모해 보인다.  

가끔 EBS에서 방영하는 '극한직업'이라는 프로그램을 본다.  사람들이 기피한다는 3D업종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그 삶이 고단해보이더라도 숭고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출세하고 성공해서 최고가 되라'는 말보다는 '주어진 인생을 성실히 살아가라'는 말을 더 많이 들려줘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감상에 젖어든다.  내 아이가 그런 '극한 직업'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면 난 속이 상할까?  다른 사람들에게 내 아이는 극한 직업을 가졌어요, 라고 말하는 게 창피할까?  그렇게 위험하고 고된 일들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려는 아이가 오히려 기특하지는 않을까...    

이 책에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의 영어교육 커리큘럼도 들어있다.  초등 1학년 때에는 알파벳과 파닉스를 익히고 단어를 인지시키고, 초등 학년 때에는 스토리북을 읽게하고 기초생활회화와 기본문법을 익히라고 되어 있는 식이다.  분명 이런 과정을 잘 따라오지 못할 아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혹시라도 사회로 나서기도 전에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줘야 하는 엄마에게 먼저 '부족하고 모자란 아이'로 찍히는 아이가 생길까봐 미리부터 걱정이 앞선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최고가 되라고, 상위 1%가 되라고,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경쟁에서 진 무능한 낙오자가 되어선 안 된다고  외칠 때마다 아이들도 부모를 향해 똑같은 말을 외칠 거라는 생각에, 난 소름이 돋는데... 

 


댓글(7)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10-01-12 0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말씀에 동감, 저도 이 책 읽고 책에 반하는 리뷰를 썼거든요.
온 국민이 영어에 목매야 하냐고욧!
나도 학습매니저 절대 안(못)한다에 한표 추가하지요.^^

섬사이 2010-01-14 16:54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온 국민이 영어를 잘해야 할 필요는 없죠.
학습매니저 하라고 해도 이제 기운딸려서 하지도 못하구요. ^^

2010-01-14 0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14 16: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5 0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유 2010-01-14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섬사이 2010-01-14 16:55   좋아요 0 | URL
배꽃님도 저랑 같은 편인 줄 진작에 알았어요. ^^
잘 지내시죠?
 
<똘레랑스 포로젝트 1권, 2권, 8권>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모두를 위한 인권 선언문 - 인권 똘레랑스 프로젝트 8
안드레이 우사체프 지음, 이경아 옮김, 타티야나 코르메르 그림 / 꼬마이실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읽은 똘레랑스 프로젝트 시리즈 세 권 중에서 이 책이 가장 마음에 든다.  <빅뱅과 거북이>, <내 가족과 다른 가족들>에 모두 키릴이라는 소년이 등장해서 이 시리즈가 전부 그 소년을 주인공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나 보다 했는데, 이 책에선 정원 돌보는 일을 하는 초록색 작은이가 주인공이다.  책을 읽을 수록 이 초록색 작은이가 '인권'을 이야기하는 책의 주인공을 맡기에 얼마나 적절한 인물인지 깨닫게 되었다.  

재력이나 권력, 그것도 아니면 다수의 힘이라도 가진 사람들 속에서 초록색 잔디가 덮인 화단에 있으면 눈에 띄지도 않는 초록색 작은이로 살아가는 것이 녹록치 않다는 건 뻔한 일이다.  그렇게 살아가던 작은이는 어느 날 이 책의 제목과 같은 <모두를 위한 인권선언문>이라는 책을 만나고부터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자기의 권리를 찾는 일에 용기있게 나서게 된 작은이의 행로를 지켜보는 일은 흐뭇하다.  

인권은 약자를 멸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는 제대로 피어날 수 없다는 것, 인권이 약자를 포함한 '모두'를 위한 인권으로 바로 서려면 약자에 대한 배려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는 것도 새삼 느끼게 된다.  '인권'에 대해 모르던 사람들이 작은이의 외침을 듣고 변화하기 시작한다. 친구들이 '당신은 '정말 대단한 일'을 해내고 있어요!'하고 칭찬하자 작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지 않아요.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리에 대해서 알게 되었지만 아직도 변한 것이 별로 없어요. 무슨 권리가 있는지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요. 그 권리를 싸워서 손에 넣는 것도 중요해요. 게다가 우리나라는 너무 커서 천 년이 지나도 나는 바꿀 수 없을 거예요.  
   

싸우지 않고도 권리를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약자들의 권리는 싸움을 벌이고도 쥔 것 없는 맨손으로 싸움을 끝낼 때가 더 많다.  게다가 '듣는 귀'가 사라진 사회는 약자들을 무력감에 사로잡히게 만들고 더 어둡고 구석진 곳으로 내몰기도 한다. 약자의 억울함이 많은 사회는 결코 좋은 사회라고 할 수 없을 터, 우리는 과연 어떤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지 묻게 된다.  '우리'의 권리가 아니라 '모두'의 권리에 대해 논의하고 배려할 수 있는 사회를 아이들이 꿈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똘레랑스 포로젝트 1권, 2권, 8권>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내 가족과 다른 가족들 - 가족 똘레랑스 프로젝트 2
베라 티멘칙 지음, 이경아 옮김, 스베틀라나 필립포바 그림 / 꼬마이실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세계 문화의 다양성과 그에 대한 관용과 포용의 정신을 강조하며 출간된 '똘레랑스 프로젝트 1015'의 두 번째 책이다.  부모가 이혼하여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키릴과 할아버지와 할머니,부모님, 고모, 누나, 남동생 둘로 이루어진 아홉 명의 대가족 속에서 살아가는 다우트가 친구가 되어 오가면서 상반된 가족환경에 대해 서로 이해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이다.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기준으로 가족을 만들어가는 키릴네 가족은 혈연을 중심으로 뭉쳤던 전통적인 가족관으로 바라본다면 그런 콩가루 집안이 없다. 그러나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가족관은 동성혼을 비롯한 가족의 다양한 형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포용력을 갖는다.  예를 들자면 키릴의 엄마 마리나는 음악가인 '필'이라는 남자와 사귀고 혼전임신을 한다. 그러고도 결혼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할 정도로 '대범'(?)하다. 그런 키릴의 엄마가 동성혼을 인정하는 발언을 하자 키릴네서 집안일을 봐주는 뉴라할머니가 발끈한다.

   
 

"아니, 애들에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아이들이 왜 그런 걸 알아야 해? 내가 젊었을 때만 해도 그런 것들이 있으면 몽땅 감옥에 처넣었다고!" 
하지만 마리나는 빙그레 웃으며 침착하게 대답했어요.
"성경 시대에는 돌로 쳐 죽였고요. 저는 제 아들이 동성애자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러는 거예요."

 
   

우리가 누군가를 향해 비난의 돌을 던지는 것은 어쩌면 타인을 이해하는 것보다 비난하는 게 자기를 방어하는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익숙한 삶의 체계들, 그것이 가족이든 국가든 세계관이든간에 익숙해져서 편안해진 체계들을 지키려는 보수적 관념들이 다양성과 차이에 대한 이해와 포용을 방해하는 것이 아닐까.  흔들리다가 무너질까봐 우리는 두려운 것이다.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책을 통해 그 두려움을 얼마나 극복할 수 있을까.  

개방적인 키릴네 가족은 각자의 의견과 결정을 존중한다는 장점이 있다. 한 마디로 아주 쿨하다. 한편 전통적인 가부장적 대가족의 틀 안에 있는 가우트네 가족은 가족의 명예를 중요시하고 연기학교에 가고 싶은 레일라를 간호학교에 보낼만큼 개인의 의견보다 가족의 결정권이 더 우선시된다. 가족간의 결속력은 더 견고해보이고 엄격한 규율과 예절이 가정 내에 자리잡은 것 같다. 책을 읽다보면 키릴 네 엄마가 키릴과 다우트에게 "가족이 뭐라고 생각하니?"하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그 물음에 키릴은 "엄마, 제가 생각하는 가족은요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에요."라고 대답하고 다우트는 "가족이란 핏줄이 같고 함께 사는 사람들"이라고 대답한다.  키릴과 가우트의 대답은 각 가정의 가족에 대한 생각과 기준이 확연히 다름을 보여준다.

키릴네와 다우트네 가족을 비교해 볼 수는 있지만 우열을 판가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족이란 어떤 형태로 꾸려졌느냐 보다는 오직 그 내적인 유대감의 밀도와 질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는 키릴네 가족도 다우트네 가족도 나쁘지 않다. 두 가족은 상반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서로 이해하고 교류하며 도움을 주고 받는다. 적어도 두려워하거나 비난하지는 않는 것이다.   

마리나가 키릴의 동생을 낳고 집으로 돌아온 날, 다우트네 가족을 초대해 파티를 연다.  다우트의 부모가 집으로 돌아가면서 나눈 대화는 그래서 의미가 있다.  다우트네 아빠가 키릴 네 가족을 두고 "이혼한 남편에, 그 남편의 아내에, 또 재혼한 남편에, 전남편, 새 남편의 의붓딸에, 새 딸에 헌 아들에, 쌍둥이까지, 정신은 없지만 얼추 가족이 되었다'며 키릴 네 가족형태를 인정한다. 그러고는 아버지는 절대 이해하지 못할테니 말씀드리지 말라며 아내에게 경고를 하지 키릴 네 엄마는 말한다.

   
  당신은 아버님을 잘 모르세요. 현명한 사람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다른 사람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법이라고요.  
   

근친혼, 동성혼,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  다양한 결혼형태들이 나오지만 다문화가정이나 입양가정에 대한 글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러시아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 나라 현실에서는 다문화가정을 찾아보기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책에 나와있지는 않더라도 "현명한 사람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다른 사람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법"이니까 두려움보다는 현명함으로 서로의 다름을 극복하고자 노력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똘레랑스 포로젝트 1권, 2권, 8권>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빅뱅과 거북이 - 우주 탄생 똘레랑스 프로젝트 1
아나스타시야 고스쩨바야 지음, 이경아 옮김, 표트르 페레베젠쩨프 그림 / 꼬마이실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네스코의 지원을 받아 세상의 다양한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고 관용함으로써 '자신과 다른 것을 무조건 미워하고 공격하는 현상을 사회가 그냥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취지'로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책이다.  그 첫 권의 제목이 <빅뱅과 거북이>인데 우주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주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시작에 대한 궁금증은 고대부터 시작되었을 터.  현대과학으로 밝혀진 빅뱅이론이 성립되기 훨씬 오래 전부터이다.  각 나라와 온갖 민족들의 우주탄생신화와 창조기원설들은 민족적 특성을 엿보는 좋은 자료이기도 하지만 그 특유의 상징성들은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현대과학의 힘에 밀려 점점 옛날 사람들의 엉뚱한 이야기 쯤으로 전락한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의 장점은 현대 과학이 밝혀낸 우주기원의 비밀 빅뱅과 세계 곳곳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창조설을 같은 무게로 다루었다는 점인 것 같다.  예를 들어 빅뱅이 일어나기 전 '거기'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하는 물음을 던지며 세계 여러 곳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알'에서 탄생하는 설화들을 제시한다.  알에서 인간이나 동물 등 세상이 창조되었다는 이야기는 빅뱅이 일어나기 전의 엄청난 밀도의 물질의 폭발로 우주가 시작되었다는 과학이론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과학을 맹신하고 신을 폐기처분하려는 현대인들에게 이 책이 말하려는 바는 이 문장들에서 드러난다.

   
  너에게 두 시간동안 줄곧 이렇게 말하고 있잖니. 세상엔 수많은 생각과 관점이 존재한다고. 네 생각이 가장 좋아 보인다고 해서 그 생각이 유일한 진리인 것은 아니란다. 앞에서 말한 톨텍족의 설화와 신화를 잘 연구해 보렴. 어떤 내용인지 자세하게 연구해 본 후에 쓰레기장에 버리려면 버리려무나. 그런데 너는 핵폭탄과 생화학 무기를 발명한 과학이 고대의 신들보다 더 적은 희생자를 냈다고 생각하는 거니? 각각의 신을 숭배한 민족들만큼이나 다양한 신들이 있단다.  
   

이야기의 설정도 흥미롭다.  키릴이라는 소년이 언덕 위의 신비한 박사님 사마일의 집으로 몰래 숨어들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할 것 같다.  그러나 다분히 판타지적인 요소로 가득찬 사마일 박사의 집이나 박사가 맡고 있는 '행성의 조정자'역할이 이야기 속에서 그 질감을 살려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크다.  아이들에게 뭔가를 가르쳐주고 알려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너무 컸던 걸까. 이야기가 중반으로 흐르면서 사마일 박사의 설명이 너무 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처음 키릴이 사마일 박사의 집에 숨어들었을 때 세계수 중 하나인 무화과 나무를 쓰러뜨리는 바람에 인도네시아에 지진과 쓰나미가 일어나게 되는데, 이야기가 이런 사건들을 군데군데 더 짜임새있게 이어갔다면 훨씬 더 흥미로우면서도 아이들이 저자의 의도를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책이 되었을 것 같다. 소년 키릴이 박사에게 일방적인 가르침을 받는 수동적 인물이 아니라 스스로 깨우쳐가는 능동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편이 이 책을 읽는 아이들 편에서도 훨씬 신나는 일이 될 것이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책의 편집에 관한 문제인데, 본문의 이야기가 흘러가는 중간에 커다랗게 끼어있는 설명자료글 때문에 이야기의 흐름이 끊어진다는 것이다.  '창조론', '다윈의 진화론', '우주달력' 등등 설명글들이 많은데 이야기의 흐름에 방해되지 않도록 각 장 끝에 모아 실는다던가 아니면 작게 박스 처리를 한다든가 하는 편이 더 좋지 않았을까.  

여러 가지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았지만 '세계의 문화다양성과 관용과 포용의 정신'을 표방하며 기획된 책이라는 점에 그 의의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이들이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 점이 좀 걱정스럽긴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