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같이 시장에 갈 때만 해도 지니는 엄마도 같이 가자며,  자기 혼자 어떻게 가냐며 심술 아닌 심술을 부렸었다. 

저녁 식탁에서 자신없어 하는 지니에게 남편은 자기가 20대 초반에 경험했던 유럽배낭여행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남편은 20대 초반에 배낭하나 달랑 매고 여비로 70만원 달랑 들고, 유럽으로 떠나 73일을 버티고 들어왔었다.  북쪽 노르곶에서 남쪽의 크레타와 터키까지 유럽 곳곳을 누비며 다녔었다.  그 때의 경험담을 지니에게 들려주며 남편은 잠시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소피처럼 잠깐 젊어지고 있었다.  여비를 아끼느라 마켓에서 흑빵과 우유, 오렌지 한무더기로 식사를 떼우기도 하고, 터키에선 당시 2000원 정도의 민박비를 아끼려고 노숙하다가 배낭을 잃어버리기도 했었다며, 여행은 그렇게 고생도 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마다 부딪쳐 해결해 가며 다니는 거라는 이야기를 듣는 동안 지니는 재밌어 하며 낄낄 웃더니, 갑자기

"기말고사 끝날 때까지 어떻게 기댜려. 빨리 가고 싶다. 나 한 3,4주 있다가 오면 안돼?"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얻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바람이 너무 빵빵하게 들어가 버렸다. ㅋㅋ

오늘 아침 식탁.. 남편이 식탁 위에 놓여있던 유럽여행가이드책을 다시 펼쳐보며, 지명 하나하나에 추억 하나하나를 되살리고 있었다. 

"지니아빠.  당신 말 듣고 지니가 바람이 빵빵하게 들어갔는데 좀 빼줘야 할 것 같지 않어?"

"내가 바람을 너무 많이 넣었나?"  흐뭇해하는 남편..

"근데.. 지니도 바람이 빵빵하게 들어갔지만, 당신도 지금 약간 공중부양하고 있는 것 같애. ㅎㅎ"

"그럼,, 나도 바람이 한 번 빵빵하게 들어갔던 풍선이잖아.  한 번 부풀었던 풍선은 그 다음엔 조금만 불어도 금방 쉽게 바람이 들어가는 법이거든.. ㅋㅋ"

지니는 유럽여행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불안하다. 

남편은 지니에게  유럽 여행을 떠나기 전에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읽을 것을 명령(?)했다.  유럽에 있는 도시들은 문화의 도시이고, 문화는 아는만큼 보인다는 사실을 우리 부부 모두 인정하고 있기에, 지니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착실하게 준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바르셀로나에 가기 위해서는 가우디에 대해서도 미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니에게 프라하를 들러볼 것을 추천한 남편은 프라하에서 오페라와 인형극을 꼭 보라고 권장했다.  대신 가서 볼 오페라에 대해서 미리 공부하고 음악을 충분히 미리 들어볼 것..

그리고 꼭 가고 싶은 여행지와 그 이유를 간단하게라도 미리 정리해 보고 우선 순위를 정할 것도 권했다.  

그러고 보면 이제 지니는 너무 바쁘게 생겼다.  여행을 준비하며 하는 공부가 학교 공부 보다 훨씬 더 중요한 공부가 될 것 같다. 

난 기도를 열심히 해야겠다.  소중한 나의 큰딸 지니의 보람있고 즐겁고 건강하고 안전한 여행을 위해서 ..  내가 엄마지만 가끔은 뒤로 물러나 기도해 주는 것만이 최선일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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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07-04-24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자상하고 세심하게 알려주시는 아빠시네요.. 멋있으세요!!
지니가 유럽에 가는게 이제 기정사실이 되어버렸나봅니다 ^^ (근데 지니 몇학년이에요? ^^;;)

섬사이 2007-04-24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스탕님, 유럽여행은 거의 확정되었는데, 제가 옆에서 내년에 같이 가자고 은근슬쩍 꼬시고 있는 중이에요. 근데 씨알도 안먹히네요.^^ 지니는 열다섯 중 2랍니다.

비로그인 2007-04-24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2에 유럽여행이라... 것도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지하에...
정말 환타스틱한 지니양이에요 :) 전 대학교때 유럽에 처음 가봤는데 ^^
그리고 멀리 가 있는 자녀에겐 그저 기도가 최고의 후원이랍니다.

섬사이 2007-04-24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님, 울냄푠얘기로는 대학 때 유럽 배낭여행을 하면서 자기가 너무 늦게 왔다는 생각이 들었더랍니다. 저도 모든게 다 정해져버린 어른이 되어서 여행을 다녀오는 것보다는 미래에 대한 꿈이 더 많을 때 여행을 경험하는 것이 더 좋을 거란 생각을 가졌었구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는 청소년기에 세계를 향해 떠날 수 있는 기회를 주자고 오래 전부터 얘기해 왔었어요. 그런데도 막상 닥치니까 엄마로서 불안한 게 한두가지가 아니네요. 아마 지니가 유럽여행을 떠나면 돌아올 때까지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을거예요. 그러니 저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기도는 필수겠죠? ^^

antitheme 2007-04-24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이 갔다오세요. 물론 경제적으론 부담이 되겠지만 그만큼 큰 추억은 없을 듯 합니다.

홍수맘 2007-04-24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어떻게든 같이 갈 방법은 없는 걸까요?
그래도 이래저래 아이에게 많은 얘기를 들려주는 아빠의 모습이 너무 부럽네요.

섬사이 2007-04-24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티테마님, 처음 뵙네요, 반가워요. 같이 나서고 싶지만 이제 갓 두돌을 넘긴 막내가 있어서요. 막내까지 데리고 가자니 유럽여행길이 고행길이 될 것 같고(아마 아기 짐가방만 해도 한짐이 될거예요), 두고 가자니 마음이 가시밭이 될 것 같아서요. 그래서 내년에 가자고 꼬시는데 큰딸이 안넘어오네요. 내년엔 자기가 공부해야 돼서 바쁘다나요? 참나..

홍수맘님, 지금 지니는 용기충천합니다. 혼자서도 다녀올 수 있을 뿐더러 한국인민박집이 아니라 외국인집에서 홈스테이를 한다고 해도 자신있다고 하네요. 초등2학년 때 만난 단짝친구에게 같이 가자고 한 모양인데 글쎄요.. 어떻게 될지.. 친구라도 한 명 같이 간다면 저도 딸아이 혼자 가는 것 보다는 좀 나을 것 같은데 말이죠.

hnine 2007-04-24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수한 여행을 목적으로 유럽에 다시 가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는 저는 오늘도 책 한권을 장바구니에 담았답니다. 중학교 2학년에 유럽 여행이라..적극 권장합니다! 섬사이님도 함께 겠지요? ^ ^

섬사이 2007-04-24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큰딸 지니 혼자서 떠나는 배낭여행이 될 것 같아요. 저는 다음을 기약했어요. 두돌배기 막내를 좀 더 키워놓은 다음으로요. 아마 뽀나 막내아이가 해외여행을 떠날 즈음엔 동행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예술가의 거리>라 저도 미리 읽어두어야겠는데요?

치유 2007-04-25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니를 후원하는 엄마아빠를 보며 더 흐뭇합니다.

섬사이 2007-04-25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꽃님, 저희 부부가 너무 무식하게 용감한 거 아닌가요? 우리 지니는 더 무식하게 용감하구요. 속으로는 얼마나 불안하고 걱정되는지 몰라요.
 

     <유럽 100배 즐기기>

지니의 유럽여행 계획을 위해 구입한 책.   잘 곳, 먹을 곳, 교통 편,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 등등 꽤 자세하게 잘 나와 있다.  지니는 어제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파리와 바르셀로나, 로마가 소개되는 페이지에 포스트잇을 붙여 표시해 놓고는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중간고사도 잊은 채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  거의 황홀경이 빠져 있다. 

 

 

 

    <유럽 단기 여행자를 위한 가이드 북>

이 책도 함께 구입했는데, (안내책자도 한권만 봐서는 안된다고 해서)  단점부터 말하자면 사진이 너무 우중충하게 나와 있어서 여행에 대한 설레임을 반감시키는 감이 없지 않고 지도가 일러스트화 되어 있는데 신용도가 떨어진다는 점...   꼭 먹구름 잔뜩 낀 흐린 날에 초점까지 흔들려 찍은 사진들 같다.  재밌는 점이라면 하루하루의 여행일정을 예시해 놓았다는 것이다.  만약 빠리에서 3일을 묵는다면 첫째날엔 몇시에 어디에 가서 무얼하고 그다음 몇시 부터 몇시까진 또 어딜가서 무얼하고.. 하는 식으로 하루하루의 일정이 자세하게 예시되어 있다. 

 

   읽고만 있어도 좋은 <노플랜 사차원 유럽여행>

정숙영이라는 여인네가 20대시절 IMF를 맞아 직장도 없이 방황하다가 어느날 훌쩍 배낭매고 유럽여행을 떠나 겪는 좌충우돌의 여행기다.  그녀는 유럽에 홀딱 반해서 그 후로도 유럽만 몇 번을 더 갔다오고, 그 덕에 여행전문기자로 일하며 맛집기사도 쓰고 여행가이드북도 쓰며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실컷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훌쩍 떠나기를 두려워하고 있는 지니에게 용기를 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사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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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도둑 한빛문고 6
박완서 글, 한병호 그림 / 다림 / 1999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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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중견원로작가의 반열에 든 박완서님이 쓰신 단편동화 6편이 담겨있는 책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달걀은 달걀로 갚으렴>도 있고 <옥상의 민들레꽃>도 들어있다.

물질적 가치가 정신적 가치보다 중요해진 현대사회에 대한 경고와 진정한 행복은 물질적인 것 보다는 정신적인 가치에서 찾을 수 있다는 메세지가 가득 담겨 있는 동화들이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에게 재밌게 읽힐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야기"보다는 "메세지"에 충실한 듯한 느낌이 강하다.  때문에 다분히 교훈적이다.  특히 <달걀은 달걀로 갚으렴>에서의 한뫼와 선생님의 대화와 <시인의 꿈>에서 시인과 소년의 대화가 그렇다.  대화체도 6,70년대의 문학작품에 나오는 글처럼 부자연스럽다.

읽으면서 내내 이 책은 '아이들이 읽고 싶은 동화'가 아니라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읽히고 싶은 동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이상적인 동화의 모습이 "아이들도 읽고 싶고 어른들도 아이들에게 읽히고 싶은 동화"라면 중견원로작가이며 우리나라 문학계의 거성이라 할 만한 박완서님이 쓰신 동화라고 해도 별로 높은 평가를 매기고 싶지 않은 책이다.  아무리 담겨 있는 메세지가 좋다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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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4-23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제목에 많이 공감하는 접니다. ^ ^.
저와 옆지기 역시 메세지에 공감은 했지만 홍/수에게는 조금 있다가 보여주려구요.

섬사이 2007-04-23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메세지엔 공감했는데,, 물이 한지에 스며들 듯이 메세지가 자연스럽게 마음에 스며들지 않아서 책을 읽는 동안 메세지 따로 이야기 따로 덜그덕거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문학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제가 박완서님 글을 두고 이런 얘기를 한다는 게 시건방진 얘기겠지만... 그냥 제 느낌이 그랬어요. 님이 공감해 주시니 마음이 좀 편해지네요. 까마득한 어른한테 버릇없이 덤빈듯한 느낌이었거든요. ^^

알맹이 2007-04-23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맞아요, 맞아. 저는 사실 꽤 감명깊게 읽었는데, 그런 감동이 아이들에게 스며들긴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섬사이 2007-04-24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앤디뽕님, 처음 뵙네요. 반가워요. 리뷰를 써놓고는 내가 너무 시건방지게 써놓은 건 아닐까.. 마음에 걸렸었는데, 앤디뽕님의 "맞아요, 맞아"라는 맞장구에 저에 소심함이 다 날아가버렸어요. 고맙습니다. 자주 뵈어요. ^^
 

지니가 작년부터 유럽여행을 하고 싶다고 은근히(?) 졸라왔다.  남편과 나도 지니만할 때에 나가서 넓은 세상을 보고 느끼고 오는 것도 중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했기에 특별히 "안된다"라고 말하진 않았고, 올 여름에 한 번 생각해보자고만 말했었다. 

문제는,, 단체패키지여행에 껴서 깃발 쫓아다니다가  돌아오는 여행을 보내긴 싫다라는 것이 남편과 나의 입장인데.. 그렇다고 아직 어린 여자애 혼자서 유럽 한 복판을 헤매고 다니게 할 수는 없고(남편은 그러면 좀 어떠냐는 입장이다), 고민이다.

남편은 나더러 같이 다녀 오란다.  그럼 비니는?  뽀는? 

비니도 데려가란다.  뽀랑 자기는 집에 있을테니까... (뽀는 가기 싫단다. 자기는 호주를 가고 싶다나?)  하지만 그 방법도 별로 마음에 드는 방법이 아니다.  나는 오히려 여름 휴가를 이용해서 남편이 지니 데리고 다녀온다면 더 맘이 편할텐데..

돈이 많다면야 가족끼리 다 함께 다녀오면 좋겠지만, 그럴만큼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제 알라딘에서 유럽여행가이드 책을 몇권 주문했다. 

남편과 나는 지니에게 유럽 전체를 다 돌아다닐 생각하지 말고 가고 싶은 곳 딱 두 세군데만 고르라고 했다.  지니는 파리와 바르셀로나, 그리고 로마를 선택했다. 

지니가 갈 수 있을까?  올해가 아니면 다시 내년,, 

지니의 꿈꾸기는 시작되었는데,, (중간고사를 코앞에 두고 이게 무슨 짓이람?)  여러가지 이런저런 문제 때문에 실현 가능할지 모르겠다.  믿음직한 보호자 격의 동행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면,  유럽은 대학 가서 가라고 해버릴까?  그럼 지니가 날 흘겨보겠지?  자기도 혼자 갈 용기는 없으면서... 쪼들리는 살림에 정말 큰 출혈을 각오하고 보내주려 한다는 걸 지니는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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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4-23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니가 중학생 맞죠? 전, 우선 기특한 생각이 먼저 들어요. 여행은 사람을 많이 크게 한다고 하잖아요. 큰 경험이 될 거예요. 그나저나 부모 입장에서는 정말 경제적 문제가 제일 걸리죠?

비로그인 2007-04-23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르셀로나는 정말 좋습니다. 스페인은 다른 나라들보다 상대적으로 덜 비싸구요. 무조건 관광을 하기보다 사람들이 다르게 사는 모습을 느끼고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는 면에서는 단체가 아닌게 낫겠지요. 찾아보면 또 경비를 절약할 방법들이 있을겁니다..

섬사이 2007-04-23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수맘님, 경제적인 것도 그렇고 혼자 그 먼 곳까지 배낭여행을 시킬 걸 생각하니까 더 걱정이예요. 고민만 무성합니다.

만치님, 저도 단체여행은 싫거든요. 민박을 시킬까 생각 중이구요, 지니더러 그냥 노천까페에 앉아 사람들 지나다니는 것만 구경해도 좋은 경험이 될거라고 하긴 했는데,,, 엄마로서의 제 마음은 많이 불안하네요.

비로그인 2007-04-23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린 생각을 갖고 계신거 같아요. 섬사이님은요.
애들은 참으로 인격적으로 대하려고 노력하시는 느낌...
보통 한국 부모님들은 애들이 별개의 인격체라는 걸 잘 인정하려 들지 않으시거든요. 멋지십니다 :)

섬사이 2007-04-23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님, 과분한 칭찬이세요. 전 오히려 제가 고리타분한 사람인 것 같아 고민인데요. 인간적으로 아이들을 대한다기 보다 아이들에게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 거에 더 가까워요. 행복은 한가지 모습이 아니잖아요. 아이들도 저마다 자기에게 어울리는 행복을 찾아가겠지요. 욕심을 부릴래도 아이가 셋이다 보니...-_-;;
 

우리 동네 미장원엔 18세의 남자 아이가 있다.  청년이라기 보다는 소년에 더 가까운 아직 앳된 티를 벗지 못한 아이다. 

지난 번에 미장원에 갔을 때부터 새로 들어와 일하고 있었는데, 아직 학교 다닐 나이인 것 같아서 몇살이냐고 물어보았더니 열 여덟살이라고 수줍게 대답했다.  미용실 원장에게 아직 어린 나이인데 어떻게 여기서 일하고 있냐고 물었더니, 일찍 이 분야 일을 하고 싶어서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과정을 패스하고 일을 배운 아이라고 했다. 

머리를 하는 내내 가만히 지켜보니 무척 싹싹하고 바지런했다.  머리를 감겨 주는데, 손길이 꼼꼼하고 부드러운데다가 손끝으로 꼭꼭 누르는 지압이 너무 시원했다.   그 아이가 입고 있는 무릎부분이 찢어진 청바지만이  그 아이가 아직도 반항끼있고 어린 십대라는 걸 증명하는 듯했다.

얼마나 힘들까.. 아직은 부모에게 기대서 섣부른 반항을 하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도 괜찮은 시기인데, 일찌감치 자기 길을 정하고 누가 뭐래든 묵묵히 걸어가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갑자기 아직은 어린 저 아이가 자기 길을 포기해버리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이 일었다.  커피를 가져다 주는 그 아이에게 베시시 웃으며 한 마디 했다.

"손끝 야무지게 일을 너무 잘하는 것 같네.. 머리 감길 때도 벌써 뭔가 다르던데, 일이 힘들진 않아요?  내가 보기엔 이 쪽 분야에 재능이 있는 것 같은데,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해요.  절대로 중간에 그만둬버리면 안되요."

아마 무지 이상한 아줌마라고 생각했을 거다.   나도 내 안에서 언젠가 저 아이가 한국 미용계의 전문가로 우뚝 선 모습을 보고 싶다는 욕심이 일어나는 걸 느끼며 피식 웃었다. 

엄마가 되어 아이를 키우면서 저렇게 자기의 갈길을 찾아 노력하는 아이들을 보면 너무너무 이쁘다.  그 길이 대한민국 교육의 주류에서 벗어난 길이라고 해도 너무너무 기특하고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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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4-23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이들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면 '네가 하고 싶은 일, 즐길 수 있는 일을 해라'라는 것이랍니다. 미용실의 그아이, 정말 제가 봐도 정말 대견하구요, 즐길면서 열심히 살아나갔으면 하는 바램이네요.

섬사이 2007-04-23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래요. 뽀가 요리사가 되겠다는 말을 하면 간혹 어이없다는 듯 웃는 분들이 계세요. 그분들 생각엔 요리사라는 직업이 거창하게 장래희망에 오를 만한 것이 못된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 같아요. 하지만 내 아이가 하고 싶어 하고 좋아하는 일이라면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열성적인 지지자가 되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즘 저는 동네 미용실 앞을 지날 때마다 그 아이가 일을 잘 하고 있나 눈 여겨 보게 되요. 그 아인 이런 제 마음을 모르겠죠? ^^

무스탕 2007-04-23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용분야라는게 겉보기엔 화려해 보여도 사실 꽤 중노동입니다. 그런 분야를 알고 혹은 모르고 뛰어든(?) 어린나이의 일꾼들을 보면 기특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하고그렇죠..
아직까지 우리나라가 그런 서비스분야, 특히 남자애가 여자들 머리를 만지는 [미장원] 이라는 저급 기준의 판단을 내리는 장년층이 많은 나라에서 학교도 일찍 땡겨서 마치고(그만둔것이 아닌 마무리 진!) 그 바닥으로 뛰어든 그 아이가 열심히 해서 대성하길 저도 조그맣게 응원합니다 ^^

섬사이 2007-04-24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럴 것 같아요.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직업이라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게 느껴져요. 게다가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니 까다로운 사람이라도 만나면 자기가 가는 길에 회의를 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어린 나이에 이리저리 치이며 고생할 것 같아서 그게 마음에 걸리더라구요. 뭐, 어차피 극복해 나가야할 것들이긴 하지만요. 무스탕님의 응원이 그 아이에게 지지직~하고 선한 기운을 불어 넣어 줄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