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관 가는 도중에 성북동 어느 파출소 앞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 비니.  

  집에서 들고 나온 쥬스를 마시며 사진 한 방 찰칵 찍었다.  

 

 

 

 

 

 

 

 

 

 



미술관에 들어섰을 때 우리를 환영하는 의미로 꼬리깃을 활짝 펼친 공작새.  비니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장본인.  근데 우아한 자태와 전혀 어울리지 않게 깩깩거리는데 목소리가 엽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웃었다.



  공작새 우리 곁에 서있는 석탑이다.  고려시대의 것이라는 데 세월의 오랜 흐름에 마모된 듯한 모습에 오히려 마음이 끌렸다.

 미술관 뜰, 인위적으로 다듬거나 꾸미지 않고 조금은 제 멋대로인 듯, 자연스럽게 자라난 풀과 나무들을 배경으로 서 있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석탑 곁에 서 있던 조각물..  뭔지 확인을 못했다는.. 

 비니의 시선은 여전히 공작새에게 꽂혀있다. 

  참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움직이는 동물들을 좋아하고,  어른이 될 수록 대부분의 사람들은  식물들과 좋은 경치에 더 끌린다.   

  이유가 뭘까?  풀과 나무, 좋은 경치의 내면에켜켜이 쌓인 시간의 겹을 느끼게 되기 때문일까?

  미술관에서도 비니는 공작새에, 나는 미술관 뜰의 정취에, 지니는 그 중간 쯤에서 각자 자기가 좋은 것을 누렸다.

 

 

 

 

 



   간송 미술관에 
   피어 있던 함박꽃.

 

 

 

 

 

 

 

 



  전시장 들어가는 입구에서.

  간송미술관의 매력은 '낡고 오래됨'에 있다.

  그래서 스며들기에 부담이 없다.

  세련되고 깔끔하고 화려한 것들을 뛰어넘는 
  특별한 매력을 지닌 공간이다. 

 

 

 

 

 

 

 

 

 

전시장 내부를 찍을 수는 없었고, 미술관 뜰에 놓인 그 낡고 오래된 특별함만을 올려본다. 


 
 

 

 

 

 

 

 

 

 

 

 

 

 







어떤 장소가 친숙해지려면 어린왕자의 여우 말처럼 그 장소도 길들여야 한다.  그러자면 시간이 필요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길든다"는 표현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적어도 어떤 것에 익숙해지고 그것과 나 사이에 어느정도의 영구성을 가진 특별한 감정이 생기려면 만남이 반복되어야 하고, 추억이 쌓여야 하고, 그 안에 이야기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헛말 말고~!!!  결론은 이거다.  다음에 다시 또 찾아야겠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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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5-29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궁 귀여운 비니!
전 작년 5월25일에 간송미술관 처음으로 가봤어요. 아침 일찍 도착했는데도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렸어요. 저 석탑은 그때 보았지요. 이야기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 와닿아요, 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섬사이 2007-05-29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좋은 전시를 하고 있을 때 다녀오셨나봐요. 저는 평일이어서 그랬는지, 아주 호젓하고 여유 있었어요.^^ 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홍수맘 2007-05-29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으로만으로는 부족해요. ㅠ.ㅠ
언젠가 가봐야지 하는 곳이 한 곳 더 추가됬네요. ^ ^. "~ 해서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에 저도 많이 공감합니다.

섬사이 2007-05-29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주도의 산굼부리(맞죠?)가 무척 좋았던 기억이 나요. 협재도 좋았구요. 협재의 옥빛 바다 속에서 수영을 했었죠. 그게 벌써 1989년도 이야기에요. ^^ 제주도에 열흘동안 있으면서 도깨비 도로며 우도까지 샅샅이 뒤지고 다녔었는데, 이젠 또 많이 바뀌었겠죠? 이상하게도 그동안 제주도에 갈 기회가 없었어요. ^^

책읽는나무 2007-05-30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송미술관....알라디너들 사이에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미술관이에요.
저도 가보고 싶어요..비니랑..^^

섬사이 2007-05-30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읽는 나무님, 님의 그 귀여운 세 아이들 틈에 저희 비니까지 끼워서 가고 싶으시다구요? 오호~~~ 저야 그래주시면 고맙지만, 님 쓰러지실까봐 걱정이 되네요. ^^
 


  영화보러 나가기 전 비니를 데리고 아파트 단지 안을 돌면서 찍은 사진. 

  비 속에서 자기 손으로 우산 받쳐들고 서있기가 처음이라서 그런지 꽤나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이다. 

  잔뜩 긴장한 듯한 표정. 

  우산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상표.  새 우산이라고 티 내려던 것은 아닌데, 비니가 하도 나가자고 졸라대는 바람에 상표 떼 줄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갖고 나왔더니만. ㅎㅎ

 

 

 

 

 

 


  사실 비니얼굴은 화장을 한 얼굴이다. 

  립글로스도 발랐고, 아이섀도우도 했고, 펜슬로 눈썹도 그렸다. 

  그래서 더 입을 앙 다물고, 표정이 굳어 있는 거다.  

  비가 와서 풀과 나무들이 더 싱그러워 보인다. 

  비 오는 날 꼬맹이 딸과의 데이트, 분위기 좋았다.

 

 

 

 

 

 

 

보너스로 죽순과 꽃 사진 몇 장.


  기세 좋게 뻗어 올라오는 죽순들.

  보고 있으면 참 신기하단 생각도 들고 그 왕성한 생명력이 기특하기도 하고..

  사람의 키가 저렇게 자란다면 어떨까?

  주택문제도 그렇고, 의류비 지출도 늘어날테고..  좀 골치가 아프겠다. 

그래도 다들 휘청휘청거리고 다니면 재미있을 듯..  ㅋㅋㅋ

 

 

 

 

 

 

 



단지 화단에 핀 초롱꽃이다.  비를 맞아서 더 예뻐 보인다.  사실, 실물보다 더 이쁘게 나온 것 같다.  초롱꽃이 들어면 서운해 하겠지만..



얼마전 페이퍼에 올렸던 우리 집 화단의 장미 봉오리가 꽃잎을 활짝 펼쳤다.  역시 장미는 좀 요염스럽다.   지금은 꽃이 시들어 떨어졌고, 대신 그 옆, 장미라기 보다는 찔레꽃을 더 많이 닮은 소박한 얼굴의 작은 장미꽃들이 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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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7-05-29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여기가 어딘가요?

프레이야 2007-05-29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롱꽃이 함초롬하니 수줍은 인상이네요.
집 화단의 장미꽃도 참 아름다워요. 저 이 색깔 장미 좋아하지요. 노란장미도
좋아하구요. 저 색깔은 마치 신부화장을 곱게 한 신부의 볼 같아요.^^

비로그인 2007-05-29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미도 이쁘고, 비니 우산은 저도 탐나는데요? ㅎㅎ

섬사이 2007-05-29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저희 아파트 단지 안이에요. ^^

배혜경님, 장미꽃에 떨어진 햇빛이 더 신비롭죠?

체셔님,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체셔님의 페이퍼에 올랐던 님의 속옷과도 아주 잘 어울릴듯..^^

홍수맘 2007-05-29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은 우산쓰기를 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우리 홍/수는 현관에서 애마까지 가는데도 극구 우산을 쓰고 가려해 펴 주고, 접어주고 하는라 더 번거롭답니다. ^ ^;;;;;

섬사이 2007-05-29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홍수맘님, 더구나 저 우산은 비니의 첫 우산이거든요. 처음으로 자기 손으로 우산을 받쳐들고 나갔던 거에요. 나중에 지니한테 들은 얘긴데 안들어오려고 해서 지니가 아주 애를 먹었나봐요. ^^

치유 2007-05-29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나무 올라오는것 너무 신기해요..
비니의 첫 우산은 너무 너무 이쁘구요..
진지한 비니얼굴을 보며 얼국 가득 웃음 반말하게 되네요..
저녁 진지는 드셨나요??소라가 방금 전에 와서 스파게티 먹고 갔어요..ㅈㅔ가 하루 종일 한 일이 스파게티 만드는 것 한가지였네요....

섬사이 2007-05-30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꽃님, 님과 제가 오늘 많이 겹쳤네요. 좀 전에 보니까 홍수맘님 페이퍼 댓글에서 숫자 캡처도 같은 수를 잡았던데, 저녁식사로 스파게티를 한 것까지 똑같아요.^^ 저녁먹고 온가족이 집 앞 찜질방에 갔다가 11시가 넘어 들어왔어요. 님도 혹시?^^

알맹이 2007-05-30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니 너무 귀여워요~ 섬사이님의 집 화단도 정말 예쁘구요.. 부럽네요 ^^

섬사이 2007-05-31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단에 꽃들은 심은 지 얼마 안돼서 아직은 빈약해요. 그래도 열심히 뿌리를 뻗고 적응하고 있다는 듯 새잎을 내주고 키도 자라줘서 즐거워요. ^^
 
햄, 뭐라나 하는 쥐 책읽는 가족 13
이금이 지음, 송진헌 그림 / 푸른책들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금이님이 쓰신 단편동화집은 처음 읽어본 것 같다.  난 이금이님이 장편에 강한 글의 호흡을 갖고 계시다고 생각했었다.  <너도 하늘말나리야>도 그렇고, <유진과 유진>이나 <주머니 속 고래>, 그리고 <밤티마을>시리즈까지 장편의 호흡을 가진 작가라는 생각을 갖기에 충분한 대표작품들 아닌가.. 그런데 이 책에 담긴 짧은 동화들은 그러한 나의 편견을 싹 뒤집어 버렸다.  이금이님은 단편에도 막강한 호흡을 가진 작가라는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된 것.

이 책에 담긴 열 세편의 동화들은 대부분 세대간, 더러는 계층간의 갈등과 마찰이 종국엔 화해와 어울림으로 변화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른들에게 무조건 어린이를 이해해야 한다는 설교도 아니고 어린이에게 어른들에겐 너희들이 알지 못할 복잡한 사정들이 있는 법이니까 어른 말씀 잘 들어야 한다는 교훈이나 연설도 아니다.  (물론 이금이님께서 그따위로 동화를 쓰실 리가 없다)  이 책에 흐르는 것은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교훈과 설교가 아니라, 서로 맞잡은 손에서 온기가 통하는 화해의 무드다.

화해에는 늘 쌍방이 함께이어야 하듯이, 난 이 동화책도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세대간 계층간이 벽으로 단절된 그 지점에 소통과 화해의 작은 통로라도 마련되기를 바래본다.  다행히 이야기 대부분이 예닐곱장 분량의 짧은 이야기들이니 아이들도 어른들도 긴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읽어낼 수 있으리라.  특히 이 책을 통해서 아이들을 향한 완고하고 메마른 어른들 마음에 따스한 이해심과 넓은 아량이 깃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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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28 15: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섬사이 2007-05-28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인 님, 전 찬밥에 물말아 열무김치 올려 먹었어요. 쑥떡, 맛있었겠네요. 군침돌아요. 언제나 제 리뷰를 관심있게 읽어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님도 오늘 하루 남은 시간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세요~~^^
 
우리 선생님 폐하 난 책읽기가 좋아
수지 모건스턴 글, 카트린 르베이롤 그림, 이은민 옮김 / 비룡소 / 1997년 10월
평점 :
절판


내가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외부의 강압에 의해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되었을 때의 억울함, 서글픔, 분노, 패배감, 자기연민 등등의 감정을 경험해보았는지. 

이 책에 등장하는 스틸리아노 선생님은 자기 일을 무척 사랑하는 분이다.  교실은 선생님에게 있어 "하나의 우주이며 가정"이고 "다양한 모습과 행동과 꿈을 볼 수 있는"  사랑스런 작은 공간이다.  스틸리아노 선생님은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마저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자기 일을 존중하고 사랑할 줄 아는 선생님이다. 

어떤 직업을 갖고 있든지간에 자기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마지못해 직업을 버리지 못하거나, 아니면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없기 때문에 자기 직업을 지겨워하면서도 계속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스틸리아노 선생님은 참으로 행복한 분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스틸리아노 선생님에게 <정년퇴직>이라는 형벌이 떨어진다.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간혹 "뜻이 있는 곳이 길이 있다"는 명언을.잊어버리곤 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 명언이 들어맞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무수히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일을 시작할 때면 늘 핑계를 대곤 한다.  "그게 가능하겠어?" 하고.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외부적 강압에 의해 금지당할 경우라도 내가 그 일을 못하는 이유는 외부적 강압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한 나의 애정과 열망의 부족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으며,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언젠가 이루어진다는 명제의 글들이 이 책의 줄거리 속에 드러나지 않게 흐르고 있음을 느꼈다.

삶을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주체는 내 자신이라는 사실을, 일을 향하는 것이든 사람을 향하는 것이든, 무엇인가를 향한 애정의 에너지는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책이었다. 

또 하나 가슴 속에 새겨진 글이 있다. 자신을 3인칭으로 표현하는 스틸리아노 선생님이 학생들의 과제 등이 맘에 들지 않을 때 쓰는 말이 있다.   
"스틸리아노 선생님이 만족스러워하지 않으면 여러분에게 뭐라고 할까요?"
모두 대답한다.
"다시 하라고 하십니다!"

그래, 지금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다시 해보면 된다.  정년퇴직이라는 막강한 외부의 압력을 무너뜨린 우리의 스틸리아노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다. 
만족스럽지 않다면 다시 하면 된다.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승산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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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28 15: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섬사이 2007-05-28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인님, 글을 저렇게 써놓았어도 저 역시 다시 시작하기 보다 포기하기를 더 쉽다고 여기는 사람 중에 하나랍니다. 저 글은 제 자신에 대고 다짐한 글인데 님의 마음을 두드렸다니 제가 어쩐지 머쓱해지네요. 아무튼 저도 고맙습니다. ^^

알맹이 2007-05-30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달, 수지 모건스턴과 이금이님의 달로 하신다더니.. 역시.. 이렇게 많은 책들이 있었네요. 나중에 추천 리스트도 한 번 만들어 주세요~

섬사이 2007-05-31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근데 5월 중에 다 읽기는 틀렸어요. 특히 이금이 님 책들은 아직 더 한참 걸릴 것 같아요. ^^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증보판 리라이팅 클래식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우선 저자 고미숙님께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 싶다.  나에게 연암을 그토록 생생하게 소개해준 데 대하여, 나의 무식을 그나마 조금이라도 개선해준 데 대하여 감사해야 마땅할 것이다. 

저자의 친절함이 아니었다면 아직도 연암은 내게 아득히 먼 존재로만 여겨졌을 터이고, 연암에게서 매력을 찾아내고 그 매력에 빠지는 일은 절대 불가능한 것이었을 터이다.  연암의 인간적 면모와 철학적 사유, 그 유쾌하고 호탕한 nomad와 '백탑의 청연'으로 대표되는 벗들과의 우정연대, 그의 거침없고 막힘없는 삶의 필적들을 소개하는 저자의 글을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가까이에서 연암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했다.

연암의 호모루덴스적인 유쾌한 필담들만큼이나 저자의 입담도 유쾌하다. 하긴 유쾌한 연암에 대한 이야기를 딱딱하고 건조한 문체의 틀을 가진 사람이 펼쳐간다면 그 또한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이 책을 만난 건 행운이라 할만 하다. 

얼마전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고미숙님이 펴낸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를 읽었다.  그 책을 읽으며 미진하게 느꼈던 부분들이 이 책을 통해서 많이 해소되었다.  <열하일기>라는 텍스트 분석 자체보다는 <열하일기>를 통해서 연암이라는 인물분석에 치중한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 책에서 얻은 것을 토대로 한다면 <열하일기>라는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어보게 만든다.

무엇보다 저자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책이다.  우선 책의 말미에 엮어진 부록 부분.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미리 읽어보면 도움이 된다.  등장인물에 대한 소개 뿐만 아니라 저자가 연암을 설명하면서 사용되는 주요 용어들에 대한 정리가 담겨 있다.  주로 들뢰즈/가타리의 철학적 개념 용어들(기계, 되기, 리좀) - 난 현대철학에 대해 문외한이다. 다른 시대의 다른 철학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지만 -  그리고 nomad(이 용어는 다른 책에서도 많이 애용되는 걸로 봐서 이제 일반상식 수준의 용어가 된 것 같다)라든가, 클리나멘(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사용한 개념이라고 한다), 홈패인 공간매끄러운 공간 같은 용어는 무척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뿐아니라 다른 책들에서도 종종 마주치곤 하는 용어들이어서 그렇지 않아도 개념정리가 필요한 것들이었다.

또 하나 인상깊었던 부분은 연암과 다산을 비교한 보론 부분이다.  동시대를 살았고 연암과 다산, 그 둘 모두 한 시대의 획을 긋는 인물이었으며 중세적 담론 외부에 있었다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서로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을 뿐아니라 서로 상반되는 평행선 같은 존재였음을  설명하는 글에서 나는 획일의 시대로만 여겨졌던 조선시대에 서로 다른 향기와 모습을 지닌 다양한 인물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 같아  흥분되기도 했었다. 

단지 내가 모를 뿐이었다.  나의 얄팍하고 보잘 것 없는 지식의 범주 안에서 연암과 마찬가지로 다산이든 유성룡이든 그 누구든 빛도 잃고 향기도 없는 지나간 시대의 지나간 인물들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김춘수 시인의 유명한 시 <꽃>에 빗대어 말한다면, 난 이 책을 읽는 행위로써 연암의 이름을 불렀고, 그러자 연암은 나에게로 와서 향기와 빛깔을 가진 꽃이 된 셈이다.  연암 - 독특한 향기와 개성적인 빛깔을 가진 아주 매력적인 꽃임에 분명하다.   그를 알게 되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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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미숙, 몸과 우주의 유쾌한 시공간 '동의보감'을 만나다
    from 그린비출판사 2011-10-20 16:55 
    리라이팅 클래식 15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출간!!! 병처럼 낯설고 병처럼 친숙한 존재가 있을까. 병이 없는 일상은 생각하기 어렵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나 역시 살아오면서 수많은 병들을 앓았다. 봄가을로 찾아오는 심한 몸살, 알레르기 비염, 복숭아 알러지로 인한 토사곽란, 임파선 결핵 등등. 하지만 한번도 병에 대해 궁금한 적이 없었다. 다만 얼른 떠나보내기에만 급급해했을 뿐. 마치 어느 먼 곳에서 실수로 들이닥친 불...
 
 
2007-05-28 1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홍수맘 2007-05-28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하일기>를 읽기는 부담이 이고 해서 선뜻 먼저 읽게 된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답니다. 읽고 연암관련 책을 더 읽어봐야지 하고 결심도 했었는데 어찌어찌 흐지부지 되어 버렸네요. 님의 리뷰를 계기로 다시 차근차근 챙겨봐야 겠어요.

섬사이 2007-05-28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인님, 무척 인상깊은 책이에요. 저는 요즘 우리 나라 옛것들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어요. 그 관심이 또 얼마나 길게 갈지 모르겠지만요..^^

홍수맘님, 님도 읽어보셨군요. 옛사람을 따라 흘러가는 책읽기도 꽤 멋졌죠? 저자의 가이드 역할이 무척 능숙한 탓이 크겠지만요.

알맹이 2007-05-29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하고 갑니다~ 저도 연암에 관심(만) 많은데.. 읽어보고 싶네요;;

섬사이 2007-05-29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앤디뽕님, 읽어보시면 님도 연암에게 빠져들걸요? ^^

fallin 2007-05-31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해두었다가.. 읽어봐야겠어요^^ 근데 쉬워보이진 않네요 ^^;;;

섬사이 2007-05-31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못알아먹겠다 할 정도로 아주 어렵지도 않아요. 저자가 워낙 설명을 재밌게 잘 해놓은 것 같아요. 웬만한 용어해설이나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은 책 뒷부분에 나와 있기도 하구요. 음.. 징검다리 같은 책이라고 해야하나.. 철학이든 고전이든 어느 쪽으로든 관심을 뻗게 만드는 징검다리 말이에요.^^

비로그인 2007-06-01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요즘 섬사이님 리뷰 너무 좋아요~ :)

섬사이 2007-06-01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님, 고맙습니다. 꾸벅~

프레이야 2007-06-02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굿모닝!
땡스투 하고 담아갑니다.^^ 전부터 미뤄뒀던 책인데 님의 리뷰를 보니 확!

2007-06-07 1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섬사이 2007-06-07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닉네임을 바꾸셨네요? 바꾸었다기 보다는 성을 떼고 이름만 쓴 건데도 분위기가 확 다르게 느껴지네요.^^ 책이 혜경님 마음에 들기 바래요.

속삭인님, 무척 바쁜 시간을 보내고 계시네요. 건강 챙기는 거 잊지 마세요. 과로는 만병의 근원이라구요. 이 책이 님에게도 유익한 책이 되길 바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