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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생님 폐하 ㅣ 난 책읽기가 좋아
수지 모건스턴 글, 카트린 르베이롤 그림, 이은민 옮김 / 비룡소 / 1997년 10월
평점 :
절판
내가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외부의 강압에 의해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되었을 때의 억울함, 서글픔, 분노, 패배감, 자기연민 등등의 감정을 경험해보았는지.
이 책에 등장하는 스틸리아노 선생님은 자기 일을 무척 사랑하는 분이다. 교실은 선생님에게 있어 "하나의 우주이며 가정"이고 "다양한 모습과 행동과 꿈을 볼 수 있는" 사랑스런 작은 공간이다. 스틸리아노 선생님은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마저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자기 일을 존중하고 사랑할 줄 아는 선생님이다.
어떤 직업을 갖고 있든지간에 자기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마지못해 직업을 버리지 못하거나, 아니면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없기 때문에 자기 직업을 지겨워하면서도 계속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스틸리아노 선생님은 참으로 행복한 분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스틸리아노 선생님에게 <정년퇴직>이라는 형벌이 떨어진다.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간혹 "뜻이 있는 곳이 길이 있다"는 명언을.잊어버리곤 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 명언이 들어맞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무수히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일을 시작할 때면 늘 핑계를 대곤 한다. "그게 가능하겠어?" 하고.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외부적 강압에 의해 금지당할 경우라도 내가 그 일을 못하는 이유는 외부적 강압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한 나의 애정과 열망의 부족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으며,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언젠가 이루어진다는 명제의 글들이 이 책의 줄거리 속에 드러나지 않게 흐르고 있음을 느꼈다.
삶을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주체는 내 자신이라는 사실을, 일을 향하는 것이든 사람을 향하는 것이든, 무엇인가를 향한 애정의 에너지는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책이었다.
또 하나 가슴 속에 새겨진 글이 있다. 자신을 3인칭으로 표현하는 스틸리아노 선생님이 학생들의 과제 등이 맘에 들지 않을 때 쓰는 말이 있다.
"스틸리아노 선생님이 만족스러워하지 않으면 여러분에게 뭐라고 할까요?"
모두 대답한다.
"다시 하라고 하십니다!"
그래, 지금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다시 해보면 된다. 정년퇴직이라는 막강한 외부의 압력을 무너뜨린 우리의 스틸리아노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다.
만족스럽지 않다면 다시 하면 된다.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승산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