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아니, 많이 사용했지하고 소장이 대답했다. “그러나 그저 그뿐이었어.” 프리뮬러꽃과 전원 풍경은 한 가지 중대한 결점을 가지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그것들은 그냥 손에 들어온다는 점이다. 자연에 대한 애착은 공장을 분주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하층계급의 경우는 자연에 대한 애착은 포기하도록 결정했던 것이다. 자연에 대한 애착은 포기시키지만 운송가관을 사용하는 경향은 그대로 보존시킨다. 다시 말해서 자연을 증오토록 하면서도 그들을 시골로 보내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단지 프리뮬러꽃이나 전원 풍경에 대한 사랑보다 운송기관을 사용케 할 보다 건전한 경제적 이유를 찾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을 발견되었다는 것이었다.

 

(59-60)

그런데 가정은 물질적으로 누추할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누추했다. 물질적인 관점으로 보면 그것은 토끼집과 같았다. 지독히 협소하고 밀집생활의 마찰로 열기가 가득 차고 감정이 새어나왔다. 가족집단의 성원들 사이에는 질식시킬 것 같은 친밀감이 있었고, 위험하기 짝이 없고 광적이고 추잡한 관계가 있었다. 어머니는 자식들을 광적으로 애지중지했다. (물론 자신이 낳은 자식을 말한다.) 마치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를 품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어미 고양이는 이야기를 할 줄 알았다.

우리 아기, 우리 아기하고 한없이 반복하여 말할 줄 알았다.

 

(86-87)

, 이것이 바로 진보라는 것이야. 노인도 일하며 노인도 이성과 교합하며 노인에게도 시간이 없게 되었지. 쾌락으로부터 벗어날 여가가 없으며 잠시도 앉아서 생각할 시간이 없어졌지. 또한 불행히도 그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무의미한 시간의 터널이 입을 벌린다면 항상 소마가 대기하고 있는 거야. 유쾌한 소마가 있지. 주말에는 반 그램, 휴일에는 일 그램, 호사스런 동방으로 여행하기 위해서는 이 그램, 달나라의 영원한 암흑 속에서 잠자고 싶으면 삼 그램, 그곳에서 돌아오면 시간의 터널을 빠져 저쪽편에 와 있게 되는 거야. 매일매일의 노동과 기분전환이라는 견실한 대지에 안착되는 것이지. 촉감영화로부터 다른 촉감영화로, 이 여자로부터 탄력 있는 여자로, 전자 골프 코스로부터 다른……”

 

(269-270)

이 필자를 감시하기 바람. 세인트 헬레나 섬의 해양생물학 연구소로 전보발령을 내릴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서명을 하면서 가엾게 되었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것은 걸작이다. 하지만 일단 목적론적 해석을 용인하기 시작하면-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누가 아는가! 그것은 상층계급 사이에서 확고한 사상을 지니지 못한 자들이 받은 조건반사 교육을 백지로 돌릴 가능성이 있는 사상이다. 지고의 선()으로서의 행복에 대한 그들의 신념을 상실케 하고 그 대신 인간의 최종목적이 어느 피안에 있다고 믿게 할 위험이 있는 사상이다. 최종목적이란 현재의 인간 영역 밖에 있으며 인생의 목적이란 행복의 유지가 아니라 의식의 강화와 세련이며 지식의 확대라는 믿음을 심어 줄 위험이 있는 사상이다. 사실 그것이 옳은 생각인지도 모른다고 총통은 생각했다. 그러나 현재의 여건으로서는 용인할 수 없다. 그는 다시 펜을 들어 출판불허라는 단어 밑에다 두 번째 줄을 그었다. 먼저 그었던 줄보다 더 두껍고 더 진했다. 그는 다시 한숨을 지었다. ‘행복에 대한 사색을 허가할 수 없다니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하고 그는 생각했다.

 

(336)

우리의 세계는 <오셀로>의 세계와 같지 않기 때문이야. 강철이 없이는 값싼 플리버 승용차도 만들 수 없어. 사회의 불안정이 없이는 비극을 만들 수 없는 것이야. 세계는 이제 안정된 세계야.인간들은 행복해.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고 있단 말일세. 얻을 수 없는 것은 원하지도 않아. 그들은 잘 살고 있어. 생활이 안정되고 질병도 없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행복하게도 격정이니 노령이란 것을 모르고 살지. 모친이나 부친 때문에 괴로워하지도 않아. 아내라든가 자식이라든가 연인과 같은 격렬한 감정의 대상도 없어. 그들은 조건반사 교육을 받아서 사실상 마땅히 행동해야만 되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없어. 뭔가가 잘못되면 소마가 있지. 자네가 자유라는 이름으로 창 밖으로 집어던진 것 말일세, 자유라!” 총통은 여기서 웃음을 터뜨렸다. “델타 계급들이 자유가 무엇인지 알기를 기대하다니! 그들이 <오셀로>를 이해하기를 기대하다니! 정말 자네답군!”

 

(339)

우리는 행복과 안정을 신봉하네. 알과 계급으로만 이루어진 사회는 불안정하고 비참해지지 않을 수 없는 걸세. 알파 노동자로 채워진 공장을 상상해 보게-다시 말해서 좋은 유전인자를 지니고 자유로운 선택을 하고 책임을 떠맡는 일이(제한이 있겠지만) 가능하게끔 조건반사적으로 단련된 개별적으로 상호연관이 없는 인간들로 채워진 경우를 상상하란 말일세. 그것을 상상해 보란 말일세!”하고 그는 반복했다.

 

(343)

벌써 일세기 반 전에 실험이 행해졌었지. 아일랜드 전역에 걸쳐 네 시간 노동제를 실시했던 거야. 결과가 어떠했는지 알겠나? 다만 불안과 소마 소비량의 증가라는 결과가 따라왔었네. 단지 그것뿐이었지. 세 시간 반이나 늘어난 여가는 행복의 원천이 되기는커녕 그 여가로부터 어떻게 하면 도피할 수 있을까 하는 강박관념이 사람들을 사로잡고 말았단 말일세. 발명국에는 노동절약을 위한 계획이 산적돼 있네. 수천 가지의 계획서가 작성되어 있단 말일세.”

 

(358)

바로, 우리들, 즉 현대 세계야. ‘앞길이 창창한 젊은 시절에만 신에 의존하지 않는다. 신으로부터의 독립은 최후까지 인간을 안전하게 인도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었지? 그런데 우리는 지금 죽을 때까지 청춘과 번영을 잃지 않게 되었단 말일세. 그 결과가 무엇이냐고? 분명 우리는 신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게 된 걸세. ‘종교적 감정이 모든 손실을 보상해 줄 것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네만 우리에겐 보상할 손실이란 것이 없는 형편인걸. 종교적 감정은 쓸데없는 것이 되고 말았어. 젊음의 욕망이 쇠퇴하지 않는 마당에 왜 구태여 그것의 대용품을 찾아나서겠는가? 최후까지 옛날의 모든 바보스러운 유희를 즐길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기분 전환의 대용품을 찾아나서겠나? 우리의 심신이 계속적으로 활동의 기쁨을 누리는 마당에 왜 휴식을 필요가 있겠나? 소마가 있는데 위안이 무슨 소용 있단 말인가? 사회의 질서가 있는데 불변부동의 그 무엇이 왜 필요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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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륵 평전 - 105년 만의 귀환
박균.정규화 지음 / 이로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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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아빠가 얼마 전에 이미륵 님의 <압록강은 흐른다> 독서편지에서 이야기했듯이 <이미륵 평전>에 대해 이야기를 해줄게. 이 책은 박균 님과 정규화 님 공저란다. 2010년에 초판이 나왔고, 2025년에 개간본이 나왔는데, 아빠는 2025년 개간본으로 읽었단다. 15년 사이에 공동저자이자 평생을 이미륵 님과 그의 작품들을 세상에 알리려고 노력하신 정규화 님께서 고인이 되셨고, 이미륵 님은 고국을 떠난 지 105년만인 2024년에 비록 유해이지만 우리나라로 돌아오셨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이 책의 부제를 <105년 만의 귀환>으로 하셨구나. 더욱 뜻 깊은 개간본이 된 것 같다.

아빠가 이 책을 보고 유튜브로 이미륵 님을 검색해 보니, 옛날 영상이긴 하지만 몇몇 다큐멘터리가 있어서 찾아 보았단다. 그 영상에는 앞서 이야기했던 고 정규화 교수님이 등장하는데, 정말 이미륵 님을 세상에 알리는데 많은 노력을 하신 것 같더구나. , 그럼 이미륵 님이 어떤 삶을 사셨는지 간단히 이야기해볼게.

 

1.

이미륵의 본명은 이의경으로 미륵이라는 이름은 아명으로 이미륵의 어머니가 딸만 셋만 낳고 절에 치공을 드린 후 낳은 아들이라서 아명을 이미륵으로 했다는구나. 이 책에서는 본명 이의경과 아명이자 필명인 이미륵을 모두 사용했지만 아빠는 이미륵으로 통일해서 이야기를 할게. 이미륵은 1899 3 8일 황해도 해주군에 태어나셨어. 그의 삶에 대한 읽다 보면 얼마 전에 읽은 그의 자전적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에 대한 내용과 겹치는 내용이 많단다.

이미륵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이동빈의 뜻에 따라 서당에서 한학 공부를 했단다. 하지만 나라 정세는 급격하게 기울고 있었어. 너희도 역사를 배웠으니 1900년대 초반 우리나라의 암울한 역사들을 알고 있겠지. 어느 날, 아버지가 쓰러지셔서 1910년부터는 신식 학교에서 공부하게 되었어. 이미륵의 아버지는 회복을 하시고 다시 안 좋아지기를 반복하다가 1913년에 돌아가시고 말았어.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결혼을 시키려고 했는지, 이미륵은 11살 나이에 결혼을 했단다. 결혼 후 7년 만에 딸을 얻었지만 세 살 때 그만 죽었다고 하는구나.

1917년에는 독학해서 경성의전에 합격하여 의학 공부를 시작했단다. 의대를 다니던 1919 3.1운동에 참가했다가 수배령이 내려져서 고향으로 피신했고,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망명하여 유럽에 가서 공부하라고 하셨어. 그렇게 그는 중국 상하이로 갔단다. 유럽 유학을 준비하면서, 짧은 기간이지만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한적십자사에서 간호사를 육성하는 일을 맡았단다. 그리고 1920 4월 여권을 발급받고, 1920 5월 상해를 출발하여 유럽에 도착하게 된단다. <압록강은 흐른다>에서 이야기했듯이 함께 유럽에 간 안봉근의 도움으로 그는 독일 남부 뷔르츠부르크에 있는 뮌스터슈바르차하 수도원에서 지냈어. 뮌스터슈바르차하 수도원을 검색해보았더니 아직 있더구나. 그곳에서 지내다가 1922년 뷔르크부르크 대학교에서 의학 공부를 시작했단다. 하지만 낯선 언어로 하는 의학 공부는 쉽지 않았어. 당시 독일 남부 지역에는 수십 명의 한국 유학생들이 있었다는구나. 생각보다 많은 숫자로구나. 그런데 친일파의 자식들이 많이 있었다고 하는구나. 이미륵은 한국에 이어 독일에서 공부했던 의학을 중단하기로 결정하고 뮌헨 대학교에서 생물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단다.

1927년 유덕학생회(옛날에 독일을 덕국이라고 불렀는데, 유덕 학생회는 덕국에 있는 학생들의 모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구나.) 소속의 이극로가 연락을 해왔단다. 세계 피압박 민족 결의 대회에 조선 독립을 의제로 제출하려고 한다고 했어. 이극로, 김법진, 이미륵은 함께 <한국의 문제>라는 글을 써서 세계 피압박 민족 결의 대회에 제출했지만, 안타깝게도 부결되어 안건에 상정되지 못했다고 하는구나.

1927년 하반기, 이미륵은 알 수 없는 신열로 고생을 했다는구나. 오랜 타지 생활로 몸에 탈이 난 것이 아닐까 싶구나. 그는 스위스에서 세 달 동안 요양을 하고 치유가 되어 다시 뮌헨으로 돌아왔어. 다시 뮌헨으로 돌아와서 로자 마우러라는 여자와 만나 교제를 했다는구나. 그런데, 나중에 로자는 나치의 육군부대에 들어가 통역사로 일하면서 멀어졌다고 하는구나.

생물학을 전공하던 이미륵은 1928재생이라는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발표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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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의경은 강인한 생명력이란 결국 에 대한 항구적이고 독자적인 재생 의지에 달려 있음을 인식했다. 살아남은 개개의 객체들이 때로는 잘려나간 부위를 때로는 상처 입은 부위를 스스로 복원시켜 생명을 연장하였고, 자율적인 복원 능력을 상실한 것들은 결국 도태되고 소멸해버리고마는 진정한 생명의 원리를 의경은 오히려 생물학의 연구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그는 작고 보잘것없는 생명체의 놀라운 재생력에서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생의 신비에 감동했다. 그것은 단지 실증적 실험의 결과로써 뿐 아니라, 그 속에 깃든 생의 본질을 직접 볼 수 있게 하는 특별한 경험세계였고, 의경은 바로 그 본성에 포진해 있는 다양한 변화의 가능성과 그 실재를 재생의 의미로 정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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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이미륵은 직업을 바로 가질 수 없어서 가난하게 지냈단다. 동양 문화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에게 서예를 가르치면서 지냈단다. 그러다가 친구의 소개로 자일러 박사의 초대를 받았어. 자일러 박사와 식구들은 이미륵의 서예와 동양 철학에 매료되었단다. 특히 자일러 박사의 아내가 감동을 많이 받아 이미륵에게 잘해 주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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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107)

한국의 지성인들은 대부분은 아주 어려서부터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습자를 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서체를 획득하게 됩니다. 그것은 개개인이 지향하는 정신적 이데아를 미적인 것으로 표상하는 하나의 도구였습니다. 사람들은 개성을 담은 서체로써 그때그때 강하게 혹은 유연하게 자기 사상을 표출하기도 하고, 동시대인과의 예술적 세계관을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서예는 그 자체로 한국의 전통문화입니다. 그것은 나를 한국인으로서 살아가게 하는 생명의 원동력이면서, 동시에 언제 어디서든 나의 영혼을 역동적으로 표현하게 하는 예술혼의 원천이지요. 사람들은 가장 독특하면서도 난해한 글자체인 초서로 운()에 갇혀 있는 시 문학을 아주 자유분방하고 추상적인 회화예술로 바꾸어 놓지요. 붓은 나 자신을 아주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도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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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이미륵은 자일러 박사의 가족과 연을 이어가 그의 집에서 지냈단다. 자일러 박사 부부는 이미륵을 양아들이라 생각하고 지원해주었어. 이미륵도 이때부터 오랫동안 타지의 불안한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해.

 

2.

이미륵은 1931년부터 단편 소설을 비롯하여 글을 쓰기 시작했대. 동양과 서양의 문화 차이를 소재로 한 소설 등을 썼어. 그리고 한국의 종교와 사상 등을 발표하여 우리나라를 독일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어. 독일에서는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에 대해 알게 된 사람들도 생기게 되었지. <압록강은 흐른다>의 첫 번째 이야기 <수암과 미륵> 1935년에 발표했어. 이때부터 필명을 이미륵이라고 했다고 하는구나. <수암과 미륵>을 통해 한국의 역사와 한국인의 삶을 독일어로 소개를 했단다. 한국 역사뿐만 아니라 중국 문화에 관심이 있는 독일 사람들을 위해 중국어 사전도 편찬하려고 했는데 독일어를 잘하는 중국인을 찾기 어려웠다고 하는구나.

1942년에는 <어느 한국인의 유년에 대한 회상>을 발표했어. 그 즈음 이미륵은 1927년 뮌헨 대학에서 철학 강의를 가르쳤던 스승 쿠르트 후버 교수를 다시 만났어. 쿠르트 후버 교수는 동양 사상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이미륵과 교류를 하면서 동양 사상에 대한 공부를 했단다. 그런데 쿠르트 후버 교수가 나치에 저항하는 비폭력 저항 단체 백장미에 참여를 했다가 발각되어 잡혀간 뒤 처형당하고 말았단다. 이미륵은 그의 가족을 위로하고 그를 기리는 글을 쓰기도 했단다. 그런 행동은 나치에게 끌려갈 수도 있는 위험한 행동이었어.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와 나눈 정()이 아니겠니..

이미륵은 유년 시절부터 독일에 정착할 때까지의 소재로 쓴 단편소설들을 모아서 1944 <압록강은 흐른다>라는 제목으로 출판사와 계약을 하게 된단다. 당시 세계 2차 대전의 말기로 세상이 어려운 시절이라서 그런지 바로 출간되지 못하고 전쟁이 끝난 뒤인 1946 5월 출간되었다고 하는구나. 책이 출간되고 독일 문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어. 인간성이 말살된 전쟁이 끝난 뒤 출간된 <압록강은 흐른다>는 인간미가 풍부하면서 신비한 동양의 이야기였단다. 책이 출간된 지 삼 일만에 한 매체에서 시작된 좋은 평가는 계속 이어졌단다. 그러면서 <압록강은 흐른다>는 독일 세계에서 유명해졌어. 책을 통해 그려진 고귀한 문화를 가진 한국을 알렸고, 일본의 야만성을 폭로했단다. 독일 여러 매체들에서 책에 대한 리뷰는 이어졌단다. 그 중에 하나를 소개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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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205)

독일에서 이름난 잡지와 지역신문에서 연이어 화려한 찬사의 글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책은 매혹적인 삶으로 충만한 낯선 문화의 먼 나라 신비로운 이야기일 뿐 아니라, 마지막 행에 이르러 깊은 감동으로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의 고국 땅에서 나온 큰 울림이다. 그곳에서 모든 것은 격정과 힘을 얻는다. 우리는 작가가 고향이라고 말하는 동양의 신비한 나라, 수천 년 동안 유지해온 심오한 정신과 본성 그대로의 순수성을 강탈했던 일본 군대의 포악성에 밤새도록 생각의 끈을 놓지 못했다. 이미륵의 어린 시절은 아버지의 유산으로 울쳐 있었고, 부유하게 태어난 그의 정신적 기질은 비슷한 성향을 지닌 중국의 문화를 섭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후, 그는 그때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로 뛰어들어가게 된다.(…)

그는 자신의 이별이 그토록 오랜 세월 계속될 거라는 걸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독일에서 학업을 계속했다. 그리고 이곳 독일에서 제2의 고향을 찾았다. 그러나 그의 가슴은 늘 연평도와 고요한 송림, 고향의 언덕, 그리고 한국에 두고 떠나온 사랑했던 사람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너무도 섬세하고 순수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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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은 흐른다>가 성공하면서 이미륵은 그 뒷이야기들을 준비했단다.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가 널리 유명해지면서 독일에서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제대로 된 전문가는 부족했어. 그래서 이미륵은 해니쉬 교수의 추천으로 1947년 뮌헨 대학에서 동양학과 교수로 일하기 시작했어. 한국에 대한 강의도 하고 한국어를 소개하기 위해 <한국어 문법>을 저술하기도 했단다. 동양 철학도 강의했는데 특히 <맹자>를 자세히 가르쳤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한시를 번역하여 소개했어. 그에게 배운 제자들 중에는 나중에 뮌헨대학의 동양학부 교수가 된 사람들도 있었어. 그가 계속 독일에서 우리나라를 알리는 일을 하면 좋았을 텐데, 하늘은 그를 가만 두지 않았단다.

1950 1월 갑자기 심한 발작과 통증이 찾아왔어. 병원에 갔더니 위암이라고 했단다. 수술을 하고 나서 요양소에서 지냈어. 양어머니 자일러 부인과 제자 애파가 병상을 지켰어. 하지만 그는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1950 3월 자택에서 세상을 등졌단다. 너무 갑작스런 죽음이구나. 그의 작품을 사랑했던 많은 독일인들이 이미륵을 추모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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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

이미륵은 절대 자유의 신봉자였다. 그는 오늘날의 교육이 개성을 억압하고 획일화시킨다고 인식했다. 그는 부모가 원하는 것들을 아이들에게 주입하고 있고, 아이들은 스스로 지식을 깨우치기보다는 부모가 숟가락으로 떠넘겨주는 것을 떠받아 먹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아이들에겐 자유가 필요하고, 그 자유를 통해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충분히 쉬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이론과 정치적 주제 포스터가 생을 구원하고 치유할 수 있는 게 아니며, 오직 인간 영혼의 가장 내면적인 가치를 울리게 했을 때 삶을 구할 수 있게 되고, 치유 받을 수 있게 된다고 역설했다. ‘인간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가장 내적인 것으로부터 일어나야 하고, 의사는 피딱지와 오물딱지를 씻겨줄 뿐, 진정한 치유는 자기 속으로부터 새 살이 돋아나 아물 때까지 내버려 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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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독일 펜클럽 부회장인 리하르트 프리덴탈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어. 그 때 그는 시간을 내어 이미륵의 누나 이의정을 만나 이미륵의 독일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전해주었다고 하는구나. 이 책의 지은이 정규화 교수 등은 이미륵을 한국에 알리기 시작했고, 그의 독립 운동과 한국을 독일 세계에 알리는 공로를 인정받아 1963년에는 대통령 표창을 받고,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단다.

이미륵이 우리나라를 떠난 것은 1919, 우리나라 나이로 스물한 살. 고국에 돌아오고 싶은데 돌아오지 못한 채 인생의 절반 이상을 타국에서 지내는 것이 어떤 마음인지 상상이 가지 않는구나. 이미륵은 고향과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글로 표출하신 것 같구나. <압록강은 흐른다>는 전쟁이 끝난 1946년 삭막한 독일 사람들을 따뜻하게 위로를 해주었단다. 어떤 평가는 1946년의 최고의 독일 문학은 한국 사람이 독일어로 쓴 작품이라는 극찬도 있었다는구나.

<이미륵 평전>을 읽으면서 중간중간 이미륵 님에게 감정이입을 해서 읽었는데 그때마다 가슴에 콱 막히는 느낌이었단다. 그런 감정들이 쌓여 병이 생기신 것은 아닌가 싶구나. 얼마 전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의 500번째가 출간되었는데 바로 이미륵 님의 <압록강은 흐른다>라고 하는구나. 이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알아주고 <압록강은 흐른다>를 읽었으면 좋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2024 11 14일 이른 아침 시간, 독일 뮌헨 근교의 작고 조용한 도시 그래펠핑의 공원묘지.

책의 끝 문장: 1996년에 발간된 압록강은 흐른다의 서문을 이미륵의 애제자였고, 훗날 뮌헨대학교에 봉직하던 Wolfgang Bauer(1930~1997) 교수가 써줘서 더욱 돋보였다.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은 세례를 받았고, 오직 이 종교만을 추종했다. 그들은 다른 모든 가르침을 그릇된 교리라고 비난했다. 그들은 미신이니, 우상숭배이니 하는 말들을 했고, 사람들을 기독교와 이교도로 신앙인과 비신앙인으로 분류했다. 그리고 진리라는 것이 오직 하나의 가르침에만 주어져야만 한다고 했다. 정말 새로운 개념 "종교"가 나타났다! 이후 사람들은 구교인지 아니면 신교인지 둘 중 어디에 속하는지를 물었다. 기독교인들은 한국 땅에서 자신들의 선교 임무를 수행해나갔다. 그들은 기독교 학교를 설립했고, 시민들을 교육하였다. 그들은 이 땅의 모든 우상 숭배자들을 몰아냈고, 당목을 베어냈고, 미신적인 종이형상과 신모(神帽)를 불태워버렸다. 새로운 가르침은 빠르게 퍼져나갔고, 곳곳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 P125

늘 신을 향한 믿음 속에서 성장해온 한국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세 개의 낯선 종교들을 받아들였다. 중국의 유교, 인도의 불교, 팔레스티나의 기독교가 그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이 모든 종교를 숭상했지만, 오히려 그 낯선 객들이 서로 화합하려 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서로 싸우고 또 서로를 무너뜨리려 했다. 그런데 그런 종교들마저 이젠 유물론에 위협을 받고 추방당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 종교들이 언제 이 땅에서 유기될지, 또는 어느 하나가 다른 것들을 정복하게 될지 예단할 수는 없다. 다만 오늘날까지 한반도에서는 단 한 번도 종교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 다행스러울 뿐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한국 민족은 그들의 땅에 들어온 모든 가르침에 감사하지 않았던가. 유교에서는 도적적 질서를, 불교에서는 절제를, 기독교에서는 이웃사랑을 배웠다. 그런데 유물론을 통해서는 무엇을 배워야 한단 말인가?
- P127

"창공의 어두운 벨벳 속에 박혀있는 작은 은빛 점으로 빛나고 있는 허공의 별을 가리키며, 서양 사람들에게 저 별들은 아득히 먼 별 무리 어딘가에 있는 Altair와 Wega이지요. 두 별은 저기 하늘에서 서로를 바라보고는 있지만, 자존심이 강한 청년별과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소녀별은 서로를 찾을 수도 만날 수도 없지요. 그것은 두 성좌 사이에 바로 강물이 놓여 있기 때문이겠죠. 그 두 별 사이에 있는 너무도 광대한 은하수, 우리 고향에선 그 희뿌연 우윳빛 길을 은하수라고 부르지요." - P142

"그는 결코 우리 곁을 떠난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 같다. 한국인 이미륵의 내면 깊숙이 깃들어 있었던 그의 사상과 그의 유산들. 그것은 지혜의 단편이고, 동양의 질서이고, 조화이며, 신의 장소이다. 꽃잎의 그림자는 꽃잎 아래 드리우고, 강줄기는 강바닥 속에서 결코 넘치는 일이 없으며, 밤을 배회하는 사람의 길 위에 뜬 달과 저 멀리 떠난 친구를 기다리며 잠들지 못하는 책상 위의 갓등도 그대로이다." -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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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힘들었다. 일이 고단해서가 아니라, 내가 진짜 보고 싶은 것과 실제로 보여줄 수 있는 것 사이의 간극 때문이었다. 결국 방송국을 나왔다. 대단한 철학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더는 내 성격을 속이기 어려웠다. 나는 원래 한곳에 오래 머무르기보다 직접 움직이며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에 가깝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보고 싶은 장면을 끝까지 따라가고 싶었다.


(22-23)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이다. 상을 받아도, 시청률이 잘 나와도 정작 내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았다. 그렇게 점점 내 이름을 걸고, 내 시선으로 세상을 담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한편으로는 무능하고 둔한 시스템 안에 갇혀 있는 것보다 차라리 나 혼자 하는 편이 낫겠다는 오만한 자신감도 있었다. 근거 있는 확신이었고 동시에 무모한 객기였다. 하지만 때로는 그 정도 객기가 있어야 인생의 방향을 틀 수 있다. 그렇게 나는 안전한 울타리를 부수고 다시 길 위로 나섰다. 남의 이름 아래 잘 만든 결과물을 납품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 이름으로 실패하고 내 이름으로 살아남는 기록자가 되고 싶었다.


(58)

나뭇잎으로 몸을 가린 원시의 아이들을 상상하며 33시간의 비행과 이틀간의 이동을 버텨온 우리에게, 정글 한복판의 미니마우스는 청바지를 입은 원주민만큼이나 강한 인상을 남겼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시간이 멈춘 박물관이 아니었다. 디즈니 캐릭터가 카누를 타고 들어오는 현대의 아마존이었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 뒤로 문명의 파도가 얼마나 깊고 빠르게 이 정글의 심장부까지 들이쳤는지 비로소 실감했다.


(71)

이들의 고민을 우리가 함부로 판단하거나 단정할 수는 없다. 전통을 지키는 것이 무조건 옳다고도 할 수 없고, 문명으로 나가는 것이 반드시 더 낫다고 말할 수도 없다. 다만 이들을 보면서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아마존이나 한국이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고, 내가 겪은 고생은 덜 겪었으면 좋겠고, 그러면서도 내가 소중하게 여기던 것들을 너무 쉽게 잃지는 않았으면 좋겠는 마음. 정글 깊숙한 곳에서 만난 그들의 고민은 낯설면서도 이상할 만큼 익숙했고,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106-109)

그 장면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는 마음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다. 죽은 원숭이도 안타까웠고, 크게 다친 개도 안쓰러웠다. 20년이 넘도록 다큐멘터리 PD로 현장을 다니며 이런 장면을 여러 번 보아왔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무뎌지지는 않는다. 여전히 불편하다. 그렇다고 내 기준으로 재단할 수도 없다. 하드자에게 사냥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 그냥 삶의 한 방식일 뿐이다. 인간도, 개도, 원숭이도 모두 각자의 생존을 걸고 있다. 직접 사냥하느냐, 돈을 내고 도축된 고기를 사 먹느냐의 차이만 있을 따름이지. 우리 역시 다른 생명의 죽음 위에서 살아간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그 과정을 보지 않을 뿐이고, 저들은 그 과정을 피하지 않을 뿐이다.


(126)

더욱이 최근 몇 년 사이 하드자를 둘러싼 풍경은 더욱 기괴하게 변했다. 내가 처음 이들을 만났을 때만 해도 그들은 카메라를 위해 준비된 연기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세계 여러 나라의 유튜버들이 하드자를 찾았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연출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똑 같은 구도로 불을 피우고, 똑 같은 자리에서 춤을 추고, 카메라가 보기 좋은 각도에서 사냥 장면을 반복한다. 우리는 이들과 함께 지내봤기 때문에 안다. 진짜 사냥은 그렇게 찍을 수가 없다. 그 거칠고 가시덤불을 뒤덮인 산을 짐승처럼 뛰어다니는 사람들이었다.


(134-135)

마네네라 불리는 이 축제는 우리 식으로 비유하면 설이나 명절에 가족들이 모여 조상을 기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토라자 사람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직접 무덤에서 시신을 꺼내 머리를 손질하고, 먼지를 털고, 새 옷으로 갈아 입히고, 함께 사진을 찍는다. 어떤 집은 고인의 입에 담배를 물려주고, 어떤 집은 선글라스를 씌워주고, 누구는 함께 산책을 하기도 한다.


(155-156)

토라자에서는 장례 전까지 고인을 완전히 죽은 사람으로 부르지 않고 아픈 사람이라는 뜻의 토 마쿨라로 여기며, 가족이 음식과 물, 담배를 바치는 관습이 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들은 죽음을 우리처럼 어느 한순간의 단절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아직 함께 있는 상태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니 아침마다 인사하고 물을 떠다 드리는 일이 가능해진다. 누군가는 그런 일을 건너뛰었다가 집안에 아픈 사람이 생기고 사고가 나고, 누구는 죽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그것이 우연인지 진짜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이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몸은 멈췄어도 관계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우리 눈에는 낯선 믿음이지만, 이해하고 나면 이들의 일상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관은 방 안에 놓여 있지만, 그 방은 무덤이 아니라 여전히 가족이 일상을 영위하는 공간이다.


(260-261)

이 위험한 곳이 이곳 아이들에게는 일종의 놀이터였다. 굶주린 악어가 도사리고 있는 악어장 위를 아무렇지 않게 뛰어다닌다. 심심하면 호수로 풍덩 뛰어들어 수영을 한다. 이 아이들에게 최고의 장난감도 새끼 악어였다. 입을 리본처럼 생긴 끈으로 단단히 묶은 새끼 악어를 붙잡고 이리저리 들고 다니며 놀았다. 물뱀을 잡아 장난감처럼 만지기도 하고, 악어장 주변에서 이것저것 주워 와 제 나름의 놀잇감을 만들기도 했다. 떠내려온 페트병이나 캔 같은 것들은 따로 모아 두었다가 고물상에 팔았고, 바퀴 빠진 장난감이나 깨진 생활용품이 떠내려오면 그걸 주워서 소중하게 가지고 놀기도 한다. 위험과 가난이 뒤섞인 환경이었지만, 아이들은 그 안에서도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놀고 있었다.


(273)

고민 끝에 우리가 악어를 한 마리 사기로 했다. 이곳에 묵는 동안 숙식비와 촬영비를 따로 지불했지만, 그사이 받은 호의와 도움을 생각하면 이런 방식으로라도 보탬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온전히 마음 편한 결정은 아니었다. 내가 온갖 오지를 다니면서 이것저것 잘 받아먹다 보니 그런 걸 좋아한다고 오해하는 분들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내 선택으로 한 생명이 죽는다는 건 아무래도 껄끄럽다. 이 악어도 생긴 게 무서워서 그렇지 사는 동안 편했던 생은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좁은 우리에 갇혀 일주일에 한 번 겨우 먹이를 받아먹는 것도 서러운 마당에 결국 사람 손에 잡혀 죽는다고 생각하면 그 처지가 안쓰럽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사랑들에게는 실제 도움이 되고, 우리에게는 이곳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이 되는 만큼, 내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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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창실 옮김 / 1984Books / 202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책을 읽긴 했는데, 그 책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를 해주어야 할지 어려운 책들이 있단다. 오늘 이야기할 책도 그런 책 중에 하나야. 크리스티앙 보뱅이라는 사람이 쓴 에세이 <작은 파티 드레스>라는 얇디 얇은 책이란다. 서문을 빼면 아홉 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는 얇은 책이지만, 글쓴이의 깊은 사유와 지식을 아빠가 공감하지 못한 탓도 있을 것 같구나. 지은이 크리스티앙 보뱅은 프랑스의 대표 시인이자 에세이스트라고 하는데, 아빠는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고 그의 책도 이번이 처음이란다. 이 책의 서문을 읽다 보면 책읽기에 관한 책인가 싶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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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그러다 어느 날 우리는 어느 페이지의 낱말을 알아보고 큰소리로 읽는다. 그 순간 신()의 일부가 사라져가고 낙원에 첫 균열이 간다. 그렇게 또 다른 낱말이 이어진다. 온전했던 우주는 이제 이어지는 문장들에 불과하고 백지 속 유실된 땅들에 지나지 않게 된다. 아이는 학교에 가고, 학생의 신분이 된다. 그런데 이 유실에는 실제로 엄청난 행복이 존재한다. 글을 읽는 첫 경험. 책의 한 페이지를 해독하고 어렴풋한 형체들을 감지할 수 있게 된 첫 경험. 그것은 행복을 넘어서는, 정확히 말해 기쁨이라고 할 만한 무엇이다. 기쁨과 공포라 할 만한 무엇. 기쁨을 어김없이 공포를 수반하고 책들은 언제나 애도를 수반하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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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이 전체적으로 지은이의 깊은 영혼 속의 글들을 적어서 공감이 가지 않다가 가끔씩 공감 가는 내용들이 있는데 오늘 독서편지는 그런 부분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해야겠구나.

실연 당하고 자살하려다 실패한 한 여자가 릴케를 읽고 다시 영혼을 되찾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빠는 릴케의 책을 읽은 적이 없어서 이 부분은 크게 공감이 가지 않더구나. 세상에는 읽어야 할 책들이 참 많구나. 이 에세이에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좋은 작품은 자살도 막을 수 있다는 것 같은데, 지은이는 실패한 자살이 성공을 거두었다고 이야기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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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7)

그렇다. 눈이다. 당신의 눈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그 두 눈은 이제 우는 일 말고는 쓸모가 없다. 울지 않을 때는 책을 읽는다. 어느 날 당신은 릴케의 한 페이지를 읽는다. 다른 한 페이지, 또 한 페이지. 그러다 잉크의 새장을 여는 순간 영혼의 새들이 우르르 당신에게 돌아온다. 실패한 자살이 모두 그렇듯 당신의 자살도 성공을 거둔 것이다. 당신이 잃은 건 생명보다 더한 것이었다. , 투명한 말의 맛, 참된 말에 대한 사랑, 그 모두를 잃은 것이다. 말 앞에서 당신은 먹을 것을 앞에 둔 아픈 아이 같았었다. 그런데 릴케가 당신에게 먹을 것을 다시 준다. 한 편의 시, 이어지는 또 한 편의 시, 한 편의 이미지, 또 한 편의 이미지. 헐벗은 말과 함께 온전한 사실이 돌아온다. 진실과 함께 온전한 영혼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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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쉽게 피로를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지은이가 이야기하기를 피로에 절은 사람들은 무언가를 쉴 새 없이 하는 사람이라고 하더구나. 아빠의 이야기 같아서 찔리더구나. 오늘도 야근으로 늦게 퇴근하고 나서도 듀오링고를 하고 유튜브도 보고, 밀린 독서편지를 쓰고 독서편지를 쓰고 나면 졸린 눈을 비비며 밀린 책읽기를 할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야. 피로가 가시기 쉽지 않은 생활패턴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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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9)

피로에 절은 사람들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그들은 무언가를 쉴 새 없이 하는 사람들이다. 휴식과 침묵. 사랑이 내면으로 파고들 여지가 없는 사람들이다. 피로에 절은 사람들은 장사를 하고, 집을 짓고, 경력을 쌓는다. 피로를 피하기 위해 그런 일들을 하지만 그러면서 오히려 피로에 빠진다. 그들의 시간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일을 더 많이 할수록 점점 더 적게 하는 꼴이 된다. 그들의 삶에는 삶이 부족하다. 자신과 자신 사이에 유리벽이 존재한다. 그들은 멈추기 않고 유리벽을 따라 걷는다. 피로는 그들의 용모와 손과 말에서 드러나 보인다. 그들에게 피로는 일종의 향수이며 불가능한 욕망과도 같다. 그들은 페르스발처럼, 어머니를 떠난 이 젊은 남자처럼, 들판과 강을, 강과 숲을, 산과 들판을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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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틈틈이 책을 읽으려는 것이 책읽기에 대한 즐거움도 있지만 책 한 권을 읽고 나서 얻는 만족감도 있는 것 같구나. 지은이는 사랑하듯 책을 읽는다고 하는데, 그것도 좀 공감이 되더구나. 특히 첫인상과 달리 너무 재미있게 읽은 책의 경우는 더욱 그런 것 같았어. 만나면 만날수록 좋아지는 사람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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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109)

우리는 사랑을 하듯 책을 읽는다. 사랑에 빠지듯 책 속으로 들어간다. 희망을 품고, 조바심을 낸다. 단 하나의 몸 안에서 수면을 찾고, 단 하나의 문장 속에서 침묵에 가닿겠다는, 그런 욕구의 부추김을 받으며, 그런 욕구의 물리칠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른다. 조바심을 내며, 희망을 품는다. 그러다 때로 무슨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어둠 속에서 들리는 이 목소리처럼, 일체의 조바심을 몰아내고 일체의 희망에 딴죽을 거는 무언가다. 그것은 위로하며 하지 않고 마음을 진정시키며, 유혹하지 않고 황홀감을 준다. 자체 안에 자신의 종말과 죽음의 슬픔, 어둠을 품고 있는 무언가다. 스스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그것에 귀 기울이는 자는 이제 자신이 피신할 데도, 의지할 데도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는 자신에게서 해방되어 자신에게로 돌아간다. 목소리가 어두워질수록 우린 더 분명히 보게 된다. 목소리가 격해질수록 숨쉬기가 한결 쉬어진다. 우린 일체의 문학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온전히 성스러움에 바싹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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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책은 아빠 취향이 아니라서 사랑하지 않을 것 같구나. 아빠가 이 책을 읽다가 당황한 부분들이 몇몇 있는데, 아래와 같은 부분들이야. 어떻게 한 번을 더 읽고, 발췌까지 해보았지만 어떻게 이해할지 모르겠더구나. 책읽기의 세계는 넓고도 너무 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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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55)

당신은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이제 이 두 사람에 대해서도 라신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는 당신은 제3의 문제에 골몰한다. 부부란 대체 뭘까. 열정은 뭐고 사랑은 뭘까. 당신은 머릿속으로 게임을 벌이며 하나의 규정을 마련한다. 집에 다다르기 전, 그러니까 5분 안에 해답을 찾아낼 것. 결국 게임 종료 직전에 당신은 답을 발견한다. 부부란 김빠진 삶의 장이고, 열정은 분열된 삶의 장이다. 그런데 사랑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이제 당신은 당신의 집 문 앞에 선 채로 웃음을 터뜨린다. 이 참담한 발견에, 이 모든 한심한 정의에 경의를 표한다. 당신은 17세기와 20세기를 싸잡아 비웃고, 사랑과 세상을 함께 품을 수 없는 이 영원한 무능을 비웃는다. 망가지기 쉬운 천사들과 튼튼한 개들을 두고 너무 한탄하지 않으려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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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앙 보뱅의 다른 책들은 좀 읽어볼 만한 것이 있나 검색을 해보니 낯익은 책이 한 권 있더구나. <흰옷을 입은 여인> 평점이 좋아서 아빠가 예전에 구입해서 아직 읽지 않은 책이란다. 나중에 이 책을 읽을 때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읽어야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처음부터 우리가 책을 읽는 건 아니다.

책의 끝 문장: 침묵의 희고 작은 드레스.



그런데 때론 어떤 사람들에게, 더 적은 수의, 훨씬 적은 수의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다름 아닌 독자들이다. 가던 길을 남들이 포기하는 여덟 살 혹은 아홉 살 무렵에 이 길로 들어서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독서의 길로 뛰어드는 그들은 언제까지나 걸음을 멈추지 않으며 그 길이 끝이 없음을 알고 기뻐한다. 기쁨과 공포를 동시에 느낀다. 그들은 출발점에, 첫경험에 집착한다. 결코 넘어설 수 없는 경험이다. 그들은 언제나 그 지점에 머무르며 삶이 다해가는 순간까지 책을 읽는다. 고독을 발견했던, 그러니까 언어들의 고도고가 영혼들의 고독을 발견했던 첫 경험의 언저리에 머문다. 그들은 황홀감에 취해 세상에서 물러나 이 고독을 향해 간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고독의 골은 깊어진다. 더 많이 많을수록 아는 건 점점 더 적어진다. 이 사람들이 작가와 서점, 출판사, 인쇄소를 먹여 살린다. - P14

위대한 책은 그 책이 시작되기 훨씬 이전에 시작된다. 어떤 책이 위대하다는 건, 그 책에서 점차 드러나 보이는 절망의 위대함을 의미한다. 책 위에 무겁게 드리워져 책이 태어나지 못하도록 한참을 가로막는 그 모든 어둠을 의미한다. 책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 책이 있기 전, 글이 써지기도 전에 모든 것이 시작된다. 즉 아버지의 떠도는 그림자가 있고, 번잡한 날들 속에서 첫 시구가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라신과 그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담갈색 밤이 있다. 사방에서 꿈은 짓밟히고, 자신과 지나치게 밀착되어 글쓰기는 불가능해진다. 불만에 찬 왕, 폭력적인 아버지로 인해 갈가리 찢긴 유년기에 너무 밀착된 상태로는 글쓰기가 불가능하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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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
콜럼 토빈 지음, 오숙은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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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몇달 전에 신간 코너에서 알게 되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읽은 콜럼 토빈의 <브루클린>이라는 소설을 이야기할게. 신간 코너에서 소개되어 얼마 안된 작품인줄 알았는데, 이 책은 2009년에 출간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열린책들에서 2011년에 번역 출간된 이력이 있더구나. 오래 전에 영화로도 만들어진 적이 있더구나. 책 제목이 브루클린이라서 미국 작가의 책인 줄 알았는데, 지은이 콜럼 토빈은 아일랜드 작가로써 이 소설 <브루클린>은 아일랜드 출신의 주인공이 뉴욕에 건너가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야기해준단다.

시대적 배경은 1950년대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된 시점으로 전쟁의 여파로 유럽 곳곳이 생활난을 겪고 있었는데,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아일랜드로 마찬가지였단다. 주인공 아일리시의 가족은 아버지까지 일찍 돌아가셔서 더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단다. 오빠인 마틴, , 잭은 모두 잉글랜드로 돈 벌러 가고, 아일랜드의 집에는 아일리시와 언니 로즈, 그리고 엄마가 함께 생활하고 있었어. 언니 로즈가 번 돈과 가끔 오빠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근근이 생활하고 있었어. 아일리시는 백수로 지내다가 미크 켈리의 제안으로 그의 가게에서 일요일에만 점원으로 일하게 되었단다. 일주일에 한 번 일하는 것이니까 돈이 얼마 되지 않았어. 그들이 이렇게 어렵게 생활하는 것의 근본적인 원인은 전쟁이었단다. 이렇듯 전쟁은 많은 사람들을 죽게 하고 다치게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도 오랫동안 어려움을 준단다.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전쟁으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을까.

 

1.

어느 날, 아버지의 지인인 미국인 신부님 플러드가 방문하였는데, 아일리시에게 일자리를 소개해주었어. 그런데 그 일자리라는 것이 미국 브루클린에서 일하는 것이라고 했어. 아일랜드에서 미국이 얼마나 먼 곳인데, 일자리 때문에 거기까지 가야 하나? 아일리시는 오랜 고민 끝에 가기로 했단다. 언니 로즈도 아일리시의 결정을 존중하고 아일리시가 미국에 갈 준비를 하는데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어. 아일리시는 배를 타고 아일랜드에서 리버풀에 도착했어. 리버풀에서는 오빠 잭의 도움으로 미국행을 준비했단다. 드디어 미국행 배를 타고 출발했단다.

미국까지는 일주일이나 걸린다고 했어. 처음 이렇게 큰 배를 일주일이나 타 본 아일리시는 뱃멀미가 그렇게 심한 줄 몰랐단다. 먹은 것을 다 토하고 고생을 하면서 힘들게 뉴욕에 도착을 했단다. 뉴욕에 도착해서는 플러드 신부님이 도와주어 키흐 부인의 집에서 하숙을 하고, 바르토치스 매장에서 일하게 되었어. 모든 것이 처음이라서 익숙하지 않고 서툴렀지만, 아일리시는 하루하루 지날수록 적응해 나갔단다. 처음 도착해서 몇 주 동안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몰랐어. 그러다가 가족들이 보낸 편지를 받고 나서 심한 향수병에 빠지게 되었어. 일상생활과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심한 향수병이 왔어. 처음에는 향수병인지 몰랐는데, 아일리시의 증상을 보고 상사인 포티니 씨가 알아차렸고, 플러드 신부에게 부탁해서 아일리시의 향수병을 치유하는데 도움을 주었어.

플러드 신부님이 이야기하기를, 바쁘게 지내다 보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하면서, 야간 대학에 등록하는데 도와주었단다. 그래서 이때부터 아일리시는 브루클린 칼리지에서 회계, 부기 관련하여 공부를 시작했단다. 미국에 건너와서 첫 번째 크리스마스를 맞이했어. 플러드 신부를 도와 행사를 준비하고 미국에 일하러 온 많은 아일랜드 사람들과 함께 소소하지만 파티를 열었단다.

새해가 되고 하숙집에서는 미스 키건이 나갔어. 하숙집 주인은 미스 키건이 쓰던 지하방을 아일리시에게 제안했단다. 미스 키건이 쓰던 방은 지하이긴 했지만 독립적이고 가장 넓은 방이었단다. 아일리시는 자신이 그렇게 좋은 방을 쓴다는 것에 부담감이 있었어. 그런데 알고 보니 다른 하숙생들이 모두 거절한 방이더구나. 미스 키건이 나건 것도 변태남이 지하방으로 계속 쫓아왔기 때문이라고 했어. 당시 뉴욕은 예상치 못하고 비상식적인 일들도 많이 일어나는 곳이었구나.

….

시대가 흐르다 보니 사회에서도 이런저런 변화가 일어났어. 바르토치스 매장에도 유색인 손님들이 오기 시작했어. 점원들은 유색인을 상대하는 것을 꺼리게 되었고, 사장은 아일리시에게 유색인을 담당하라고 했단다. 아일리시는 크게 개의치 않았기 때문에 알겠다고 했단다.

아일리시는 아일랜드 사람들이 연 무도회에게 가게 되어 토니라는 청년을 만났어. 아일랜드 출신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토니는 이탈리아 출신이라고 했어. 토니는 배관공으로 일하고 있었어. 아일리시는 토니와 사귀게 되었단다. 토니는 아일리시와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아서 함께 브루클린 다저스를 응원하겠다고 이야기했어. 참고로 지금은 LA다저스지만 예전에는 연고지가 뉴욕 브루클린이었단다. 토니의 이런 발언이 아일리시는 무척 불편했단다. 자신은 아직 결혼할 생각은 없었거든. 아일리시는 여전히 야간 대학에서도 공부도 하고 있는 상황이고 말이야. 그래서 토니와 헤어질 생각도 했지만, 그런 이유로 헤어지는 것도 이상했어. 아일리시는 결혼 이야기는 부담스러우니 하지 말라고 토니에게 솔직히 이야기했어.

 

2.

이제 향수병도 모두 치유되고 미국 생활도 잘 적응해 갈 즈음, 아일랜드에서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단다. 언니 로즈가 자다가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이었어. 아일리시는 충격과 슬픔에 빠졌단다. 미국에 있는 주변사람들이 아일리시를 위로해 주었지만 그녀의 뻥 뚫린 가슴을 채워줄 수 없었어. 얼마 후 오빠 잭의 편지가 도착했어. 언니 로즈가 죽고 난 이후 엄마가 너무 힘들어 하신다고 했어. 오빠는 아일리시가 돌아와서 엄마와 함께 지냈으면 좋겠다고 했어. 아일리시는 토니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토니는 아일리시가 아일랜드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을 것을 걱정했단다. 그래서 혼인 신고를 하자고 아일리시를 설득했어. 아일리시는 결혼은 아직 성급하다고 생각했는데, 토니의 계속된 설득으로 결국 혼인 신고를 했단다.

….

그리고 아일리시는 아일랜드로 돌아왔어. 로즈 언니의 묘지를 찾아가고, 집에 와서는 엄마와 함께 로즈 언니의 유품을 정리했단다. 그리고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단다. 그런데 아일랜드에서 짐 패럴이라는 남자와 점점 가까워졌어. 문화적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아빠는 아일리시의 행동이 이해가 가질 않더구나. 로즈 언니가 죽고 엄마가 힘들어서 집에 왔다면, 엄마와 슬픔을 이겨내는 것에 집중을 해야 하지 않겠니? 아일랜드 오기 직전에 미국에서 혼인신고까지 하고 온 사람이 다른 남자와 가까워지다니.... 가끔 친구들과 함께 만나는 것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애정 표현이 점점 깊어지더니 짐은 아일리시에게 약혼하자고 했어. 그런데도 아일리시는 자신은 이미 결혼했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고 침묵으로 답변을 대신 했단다.

아일리시는 아일랜드에 남아 있으려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아. 오랫동안 타지 생활로 힘들었는데, 집에 돌아오니 경제적으로 힘들긴 해도 심적으로 편안했으니 말이야. 엄마도 미국에 돌아가지 않고 아일랜드에 남아 있길 바라는 마음이었어. 일단 좀더 아일랜드에 남아 있으면서 생각해 보기로 했어. 그런데 세상은 좁다고 했던가어느날 미스 켈리가 호출해서 찾아가 보았어. 아일리시의 브루클린 하숙집 주인인 키호 부인이 미스 켈리의 친척이라고 했어. 그러면서 아일리시가 결혼한 소식을 알고 있는 듯한 이야기를 했어. 토니와 단둘이 혼인신고를 했는데 어떻게 알게 된 거지? 아무튼 미스 켈리는 결혼한 여자가 이곳에 와서 다른 남자와 만나고 있는 것을 은근히 질책을 했어. 아일리시는 창피하면서도 기분이 상했단다.

아일리시는 더 이상 애매한 상황을 만들면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그 길로 뉴욕행 배를 예약했단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엄마에게 자신이 결혼한 소식을 알리고 그래서 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했어. 엄마는 예상외로 놀라지 않으셨어. 엄마에게는 딸의 행복과 딸의 결정이 먼저겠지. 아일리시는 짐에게 편지를 남겨두고 뉴욕행 배를 타려고 집을 떠나면서 소설은 끝이 났단다. 아빠가 너무 고리타분한 사람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일리시가 고향에 와서 한 행동들이 이해가 가지 않더구나.

….

이 소설은 아빠가 책을 펴기 전에 기대했던 것에 많이 미치지 못했던 소설이었단다. 사람은 분명 동물이지만, 어딘가에 뿌리내리고 살려는 본능이 있는 것 같구나. 그런데 자리를 옮겨 뿌리내리는 것이 쉽지 않고 또 적응하기도 쉽지 않고 말이야. 그리고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선택의 기로가 있을 텐데, 늘 옳은 선택을 할 수는 없을 거야. 이 소설의 주인공의 마지막 선택은 과연 옳은 선택일까?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후의 주인공 아일리시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궁금하구나.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아일리시 레이시는 프라이어리가에 있는 집, 2층 거실 창가에 앉아 있었다.

책의 끝 문장: 그러고는 눈을 감고 더는 아무것도 상상하지 않으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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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소민아 2026-08-24 1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아버지의 독서편지...유익하고 따스합니다~~

bookholic 2026-08-24 19:28   좋아요 0 | URL
ㅎㅎ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