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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륵 평전 - 105년 만의 귀환
박균.정규화 지음 / 이로 / 2025년 3월
평점 :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아빠가 얼마 전에 이미륵
님의 <압록강은 흐른다> 독서편지에서 이야기했듯이
<이미륵 평전>에 대해 이야기를 해줄게. 이 책은 박균 님과 정규화 님 공저란다. 2010년에 초판이 나왔고, 2025년에 개간본이 나왔는데, 아빠는 2025년 개간본으로 읽었단다. 그
15년 사이에 공동저자이자 평생을 이미륵 님과 그의 작품들을 세상에 알리려고 노력하신 정규화 님께서 고인이 되셨고, 이미륵 님은 고국을 떠난 지 105년만인 2024년에 비록 유해이지만 우리나라로 돌아오셨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이 책의 부제를 <105년 만의 귀환>으로 하셨구나. 더욱 뜻 깊은 개간본이 된 것 같다.
아빠가 이 책을 보고 유튜브로
이미륵 님을 검색해 보니, 옛날 영상이긴 하지만 몇몇 다큐멘터리가 있어서 찾아 보았단다. 그 영상에는 앞서 이야기했던 고 정규화 교수님이 등장하는데, 정말
이미륵 님을 세상에 알리는데 많은 노력을 하신 것 같더구나. 자, 그럼
이미륵 님이 어떤 삶을 사셨는지 간단히 이야기해볼게.
1.
이미륵의 본명은 이의경으로 미륵이라는
이름은 아명으로 이미륵의 어머니가 딸만 셋만 낳고 절에 치공을 드린 후 낳은 아들이라서 아명을 이미륵으로 했다는구나. 이 책에서는 본명 이의경과 아명이자 필명인 이미륵을 모두 사용했지만 아빠는 이미륵으로 통일해서 이야기를 할게. 이미륵은 1899년 3월 8일 황해도 해주군에 태어나셨어. 그의 삶에 대한 읽다 보면 얼마
전에 읽은 그의 자전적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에
대한 내용과 겹치는 내용이 많단다.
이미륵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이동빈의
뜻에 따라 서당에서 한학 공부를 했단다. 하지만 나라 정세는 급격하게 기울고 있었어. 너희도 역사를 배웠으니 1900년대 초반 우리나라의 암울한 역사들을
알고 있겠지. 어느 날, 아버지가 쓰러지셔서 1910년부터는 신식 학교에서 공부하게 되었어. 이미륵의 아버지는
회복을 하시고 다시 안 좋아지기를 반복하다가 1913년에 돌아가시고 말았어.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결혼을 시키려고 했는지, 이미륵은 11살 나이에 결혼을 했단다. 결혼 후 7년 만에 딸을 얻었지만 세 살 때 그만 죽었다고 하는구나.
1917년에는 독학해서 경성의전에 합격하여 의학 공부를 시작했단다. 의대를 다니던 1919년 3.1운동에
참가했다가 수배령이 내려져서 고향으로 피신했고,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망명하여 유럽에 가서 공부하라고
하셨어. 그렇게 그는 중국 상하이로 갔단다. 유럽 유학을
준비하면서, 짧은 기간이지만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한적십자사에서 간호사를 육성하는 일을 맡았단다. 그리고 1920년 4월
여권을 발급받고, 1920년 5월 상해를 출발하여 유럽에
도착하게 된단다. <압록강은 흐른다>에서 이야기했듯이
함께 유럽에 간 안봉근의 도움으로 그는 독일 남부 뷔르츠부르크에 있는 뮌스터슈바르차하 수도원에서 지냈어. 뮌스터슈바르차하
수도원을 검색해보았더니 아직 있더구나. 그곳에서 지내다가 1922년
뷔르크부르크 대학교에서 의학 공부를 시작했단다. 하지만 낯선 언어로 하는 의학 공부는 쉽지 않았어. 당시 독일 남부 지역에는 수십 명의 한국 유학생들이 있었다는구나. 생각보다
많은 숫자로구나. 그런데 친일파의 자식들이 많이 있었다고 하는구나. 이미륵은
한국에 이어 독일에서 공부했던 의학을 중단하기로 결정하고 뮌헨 대학교에서 생물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단다.
…
1927년 유덕학생회(옛날에
독일을 덕국이라고 불렀는데, 유덕 학생회는 덕국에 있는 학생들의 모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구나.) 소속의 이극로가 연락을 해왔단다. 세계 피압박 민족 결의 대회에
조선 독립을 의제로 제출하려고 한다고 했어. 이극로, 김법진, 이미륵은 함께 <한국의 문제>라는
글을 써서 세계 피압박 민족 결의 대회에 제출했지만, 안타깝게도 부결되어 안건에 상정되지 못했다고 하는구나.
1927년 하반기, 이미륵은
알 수 없는 신열로 고생을 했다는구나. 오랜 타지 생활로 몸에 탈이 난 것이 아닐까 싶구나. 그는 스위스에서 세 달 동안 요양을 하고 치유가 되어 다시 뮌헨으로 돌아왔어.
다시 뮌헨으로 돌아와서 로자 마우러라는 여자와 만나 교제를 했다는구나. 그런데, 나중에 로자는 나치의 육군부대에 들어가 통역사로 일하면서 멀어졌다고 하는구나.
…
생물학을 전공하던 이미륵은 1928년 ‘재생’이라는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발표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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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의경은
강인한 생명력이란 결국 ‘생’에 대한 항구적이고 독자적인
재생 의지에 달려 있음을 인식했다. 살아남은 개개의 객체들이 때로는 잘려나간 부위를 때로는 상처 입은
부위를 스스로 복원시켜 생명을 연장하였고, 자율적인 복원 능력을 상실한 것들은 결국 도태되고 소멸해버리고마는
‘진정한 생명의 원리’를 의경은 오히려 생물학의 연구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그는 ‘작고 보잘것없는 생명체’의 놀라운 재생력에서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생의 신비’에 감동했다. 그것은 단지 실증적 실험의 결과로써 뿐 아니라, 그 속에 깃든 생의 본질을 직접 볼 수 있게 하는 특별한 경험세계였고, 의경은
바로 그 본성에 포진해 있는 다양한 변화의 가능성과 그 실재를 ‘재생’의
의미로 정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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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이미륵은
직업을 바로 가질 수 없어서 가난하게 지냈단다. 동양 문화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에게 서예를 가르치면서
지냈단다. 그러다가 친구의 소개로 자일러 박사의 초대를 받았어. 자일러
박사와 식구들은 이미륵의 서예와 동양 철학에 매료되었단다. 특히 자일러 박사의 아내가 감동을 많이 받아
이미륵에게 잘해 주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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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107)
한국의
지성인들은 대부분은 아주 어려서부터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습자를 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서체를 획득하게 됩니다.
그것은 개개인이 지향하는 정신적 이데아를 미적인 것으로 표상하는 하나의 도구였습니다. 사람들은
개성을 담은 서체로써 그때그때 강하게 혹은 유연하게 자기 사상을 표출하기도 하고, 동시대인과의 예술적
세계관을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서예는 그 자체로 한국의 전통문화입니다.
그것은 나를 한국인으로서 살아가게 하는 생명의 원동력이면서, 동시에 언제 어디서든 나의
영혼을 역동적으로 표현하게 하는 예술혼의 원천이지요. 사람들은 가장 독특하면서도 난해한 글자체인 초서로
운(韻)에 갇혀 있는 시 문학을 아주 자유분방하고 추상적인
회화예술로 바꾸어 놓지요. 붓은 나 자신을 아주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도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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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이미륵은 자일러 박사의
가족과 연을 이어가 그의 집에서 지냈단다. 자일러 박사 부부는 이미륵을 양아들이라 생각하고 지원해주었어. 이미륵도 이때부터 오랫동안 타지의 불안한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해.
2.
이미륵은 1931년부터 단편 소설을 비롯하여 글을 쓰기 시작했대. 동양과 서양의
문화 차이를 소재로 한 소설 등을 썼어. 그리고 한국의 종교와 사상 등을 발표하여 우리나라를 독일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어. 독일에서는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에 대해 알게 된 사람들도 생기게 되었지. <압록강은 흐른다>의 첫 번째 이야기 <수암과 미륵>을
1935년에 발표했어. 이때부터 필명을 이미륵이라고 했다고 하는구나. <수암과 미륵>을 통해 한국의 역사와 한국인의 삶을 독일어로
소개를 했단다. 한국 역사뿐만 아니라 중국 문화에 관심이 있는 독일 사람들을 위해 중국어 사전도 편찬하려고
했는데 독일어를 잘하는 중국인을 찾기 어려웠다고 하는구나.
1942년에는 <어느
한국인의 유년에 대한 회상>을 발표했어. 그 즈음 이미륵은 1927년 뮌헨 대학에서 철학 강의를 가르쳤던 스승 쿠르트 후버 교수를 다시 만났어. 쿠르트 후버 교수는 동양 사상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이미륵과 교류를 하면서 동양 사상에 대한 공부를 했단다. 그런데 쿠르트 후버 교수가 나치에 저항하는 비폭력 저항 단체 ‘백장미’에 참여를 했다가 발각되어 잡혀간 뒤 처형당하고 말았단다. 이미륵은
그의 가족을 위로하고 그를 기리는 글을 쓰기도 했단다. 그런 행동은 나치에게 끌려갈 수도 있는 위험한
행동이었어.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와 나눈 정(情)이 아니겠니..
…
이미륵은 유년 시절부터 독일에
정착할 때까지의 소재로 쓴 단편소설들을 모아서 1944년 <압록강은
흐른다>라는 제목으로 출판사와 계약을 하게 된단다. 당시
세계 2차 대전의 말기로 세상이 어려운 시절이라서 그런지 바로 출간되지 못하고 전쟁이 끝난 뒤인 1946년 5월 출간되었다고 하는구나. 책이 출간되고 독일 문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어. 인간성이 말살된
전쟁이 끝난 뒤 출간된 <압록강은 흐른다>는 인간미가
풍부하면서 신비한 동양의 이야기였단다. 책이 출간된 지 삼 일만에 한 매체에서 시작된 좋은 평가는 계속
이어졌단다. 그러면서 <압록강은 흐른다>는 독일 세계에서 유명해졌어. 책을 통해 그려진 고귀한 문화를
가진 한국을 알렸고, 일본의 야만성을 폭로했단다. 독일 여러
매체들에서 책에 대한 리뷰는 이어졌단다. 그 중에 하나를 소개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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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205)
독일에서
이름난 잡지와 지역신문에서 연이어 화려한 찬사의 글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책은 매혹적인 삶으로 충만한
낯선 문화의 먼 나라 신비로운 이야기일 뿐 아니라, 마지막 행에 이르러 깊은 감동으로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의 고국 땅에서 나온 큰 울림이다. 그곳에서 모든 것은 격정과 힘을 얻는다. 우리는 작가가 고향이라고 말하는 동양의 신비한 나라, 수천 년 동안
유지해온 심오한 정신과 본성 그대로의 순수성을 강탈했던 일본 군대의 포악성에 밤새도록 생각의 끈을 놓지 못했다.
이미륵의 어린 시절은 아버지의 유산으로 울쳐 있었고, 부유하게 태어난 그의 정신적 기질은
비슷한 성향을 지닌 중국의 문화를 섭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후,
그는 그때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로 뛰어들어가게 된다.(…)
그는
자신의 이별이 그토록 오랜 세월 계속될 거라는 걸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독일에서 학업을 계속했다. 그리고 이곳 독일에서 제2의 고향을 찾았다. 그러나 그의 가슴은 늘 연평도와 고요한 송림, 고향의 언덕, 그리고 한국에 두고 떠나온 사랑했던 사람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너무도
섬세하고 순수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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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록강은 흐른다>가
성공하면서 이미륵은 그 뒷이야기들을 준비했단다.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가 널리 유명해지면서 독일에서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제대로 된 전문가는 부족했어. 그래서 이미륵은 해니쉬 교수의 추천으로 1947년 뮌헨 대학에서
동양학과 교수로 일하기 시작했어. 한국에 대한 강의도 하고 한국어를 소개하기 위해 <한국어 문법>을 저술하기도 했단다. 동양 철학도 강의했는데 특히 <맹자>를 자세히 가르쳤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한시를 번역하여 소개했어. 그에게 배운 제자들 중에는 나중에 뮌헨대학의 동양학부 교수가 된 사람들도 있었어. 그가 계속 독일에서 우리나라를 알리는 일을 하면 좋았을 텐데, 하늘은
그를 가만 두지 않았단다.
1950년 1월 갑자기
심한 발작과 통증이 찾아왔어. 병원에 갔더니 위암이라고 했단다. 수술을
하고 나서 요양소에서 지냈어. 양어머니 자일러 부인과 제자 애파가 병상을 지켰어. 하지만 그는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1950년 3월 자택에서 세상을 등졌단다. 너무 갑작스런 죽음이구나. 그의 작품을 사랑했던 많은 독일인들이 이미륵을 추모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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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
“이미륵은 절대 자유의 신봉자였다. 그는 오늘날의 교육이 개성을 억압하고 획일화시킨다고 인식했다. 그는
부모가 원하는 것들을 아이들에게 주입하고 있고, 아이들은 스스로 지식을 깨우치기보다는 부모가 숟가락으로
떠넘겨주는 것을 떠받아 먹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아이들에겐 자유가 필요하고, 그 자유를 통해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충분히 쉬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이론과 정치적 주제 포스터가 생을 구원하고 치유할 수 있는 게 아니며, 오직 인간 영혼의
가장 내면적인 가치를 울리게 했을 때 삶을 구할 수 있게 되고, 치유 받을 수 있게 된다고 역설했다. ‘인간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가장 내적인 것으로부터 일어나야 하고, 의사는
피딱지와 오물딱지를 씻겨줄 뿐, 진정한 치유는 자기 속으로부터 새 살이 돋아나 아물 때까지 내버려 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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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독일 펜클럽 부회장인 리하르트 프리덴탈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어. 그 때 그는 시간을 내어 이미륵의 누나 이의정을 만나 이미륵의 독일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전해주었다고 하는구나. 이 책의 지은이 정규화 교수 등은 이미륵을 한국에 알리기 시작했고, 그의
독립 운동과 한국을 독일 세계에 알리는 공로를 인정받아 1963년에는 대통령 표창을 받고,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단다.
…
이미륵이 우리나라를 떠난 것은 1919년, 우리나라 나이로 스물한 살. 고국에 돌아오고 싶은데 돌아오지 못한 채 인생의 절반 이상을 타국에서 지내는 것이 어떤 마음인지 상상이 가지
않는구나. 이미륵은 고향과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글로 표출하신 것 같구나. <압록강은 흐른다>는 전쟁이 끝난 1946년 삭막한 독일 사람들을 따뜻하게 위로를 해주었단다. 어떤
평가는 1946년의 최고의 독일 문학은 한국 사람이 독일어로 쓴 작품이라는 극찬도 있었다는구나.
<이미륵 평전>을
읽으면서 중간중간 이미륵 님에게 감정이입을 해서 읽었는데 그때마다 가슴에 콱 막히는 느낌이었단다. 그런
감정들이 쌓여 병이 생기신 것은 아닌가 싶구나. 얼마 전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의 500번째가 출간되었는데 바로 이미륵 님의 <압록강은 흐른다>라고 하는구나. 이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알아주고 <압록강은 흐른다>를 읽었으면 좋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2024년 11월 14일 이른 아침 시간, 독일 뮌헨 근교의 작고 조용한 도시 그래펠핑의
공원묘지.
책의 끝 문장: 1996년에 발간된 “압록강은 흐른다”의 서문을 이미륵의 애제자였고, 훗날 뮌헨대학교에 봉직하던 Wolfgang Bauer(1930~1997) 교수가
써줘서 더욱 돋보였다.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은 세례를 받았고, 오직 이 종교만을 추종했다. 그들은 다른 모든 가르침을 그릇된 교리라고 비난했다. 그들은 미신이니, 우상숭배이니 하는 말들을 했고, 사람들을 기독교와 이교도로 신앙인과 비신앙인으로 분류했다. 그리고 진리라는 것이 오직 하나의 가르침에만 주어져야만 한다고 했다. 정말 새로운 개념 "종교"가 나타났다! 이후 사람들은 구교인지 아니면 신교인지 둘 중 어디에 속하는지를 물었다. 기독교인들은 한국 땅에서 자신들의 선교 임무를 수행해나갔다. 그들은 기독교 학교를 설립했고, 시민들을 교육하였다. 그들은 이 땅의 모든 우상 숭배자들을 몰아냈고, 당목을 베어냈고, 미신적인 종이형상과 신모(神帽)를 불태워버렸다. 새로운 가르침은 빠르게 퍼져나갔고, 곳곳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 P125
늘 신을 향한 믿음 속에서 성장해온 한국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세 개의 낯선 종교들을 받아들였다. 중국의 유교, 인도의 불교, 팔레스티나의 기독교가 그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이 모든 종교를 숭상했지만, 오히려 그 낯선 객들이 서로 화합하려 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서로 싸우고 또 서로를 무너뜨리려 했다. 그런데 그런 종교들마저 이젠 유물론에 위협을 받고 추방당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 종교들이 언제 이 땅에서 유기될지, 또는 어느 하나가 다른 것들을 정복하게 될지 예단할 수는 없다. 다만 오늘날까지 한반도에서는 단 한 번도 종교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 다행스러울 뿐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한국 민족은 그들의 땅에 들어온 모든 가르침에 감사하지 않았던가. 유교에서는 도적적 질서를, 불교에서는 절제를, 기독교에서는 이웃사랑을 배웠다. 그런데 유물론을 통해서는 무엇을 배워야 한단 말인가? - P127
"창공의 어두운 벨벳 속에 박혀있는 작은 은빛 점으로 빛나고 있는 허공의 별을 가리키며, 서양 사람들에게 저 별들은 아득히 먼 별 무리 어딘가에 있는 Altair와 Wega이지요. 두 별은 저기 하늘에서 서로를 바라보고는 있지만, 자존심이 강한 청년별과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소녀별은 서로를 찾을 수도 만날 수도 없지요. 그것은 두 성좌 사이에 바로 강물이 놓여 있기 때문이겠죠. 그 두 별 사이에 있는 너무도 광대한 은하수, 우리 고향에선 그 희뿌연 우윳빛 길을 은하수라고 부르지요." - P142
"그는 결코 우리 곁을 떠난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 같다. 한국인 이미륵의 내면 깊숙이 깃들어 있었던 그의 사상과 그의 유산들. 그것은 지혜의 단편이고, 동양의 질서이고, 조화이며, 신의 장소이다. 꽃잎의 그림자는 꽃잎 아래 드리우고, 강줄기는 강바닥 속에서 결코 넘치는 일이 없으며, 밤을 배회하는 사람의 길 위에 뜬 달과 저 멀리 떠난 친구를 기다리며 잠들지 못하는 책상 위의 갓등도 그대로이다." -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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