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아니, 많이
사용했지” 하고 소장이 대답했다. “그러나 그저 그뿐이었어.” 프리뮬러꽃과 전원 풍경은 한 가지 중대한 결점을 가지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그것들은 그냥 손에 들어온다는 점이다. 자연에 대한 애착은 공장을
분주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하층계급의 경우는 자연에 대한 애착은 포기하도록 결정했던 것이다. 자연에 대한 애착은 포기시키지만 운송가관을 사용하는 경향은 그대로 보존시킨다.
다시 말해서 자연을 증오토록 하면서도 그들을 시골로 보내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단지 프리뮬러꽃이나 전원 풍경에 대한 사랑보다 운송기관을 사용케 할 보다 건전한 경제적 이유를 찾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을 발견되었다는 것이었다.
(59-60)
그런데 가정은 물질적으로 누추할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누추했다. 물질적인 관점으로 보면 그것은 토끼집과 같았다. 지독히 협소하고
밀집생활의 마찰로 열기가 가득 차고 감정이 새어나왔다. 가족집단의 성원들 사이에는 질식시킬 것 같은
친밀감이 있었고, 위험하기 짝이 없고 광적이고 추잡한 관계가 있었다.
어머니는 자식들을 광적으로 애지중지했다. (물론 자신이 낳은 자식을 말한다.) 마치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를 품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어미 고양이는 이야기를 할 줄 알았다.
“우리 아기, 우리
아기” 하고 한없이 반복하여 말할 줄 알았다.
(86-87)
“자, 이것이
바로 진보라는 것이야. 노인도 일하며 노인도 이성과 교합하며 노인에게도 시간이 없게 되었지. 쾌락으로부터 벗어날 여가가 없으며 잠시도 앉아서 생각할 시간이 없어졌지. 또한
불행히도 그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무의미한 시간의 터널이 입을 벌린다면 항상 소마가 대기하고 있는 거야. 유쾌한
소마가 있지. 주말에는 반 그램, 휴일에는 일 그램, 호사스런 동방으로 여행하기 위해서는 이 그램, 달나라의 영원한 암흑
속에서 잠자고 싶으면 삼 그램, 그곳에서 돌아오면 시간의 터널을 빠져 저쪽편에 와 있게 되는 거야. 매일매일의 노동과 기분전환이라는 견실한 대지에 안착되는 것이지. 촉감영화로부터
다른 촉감영화로, 이 여자로부터 탄력 있는 여자로, 전자
골프 코스로부터 다른……”
(269-270)
‘이 필자를 감시하기 바람. 세인트 헬레나 섬의 해양생물학 연구소로 전보발령을 내릴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서명을 하면서 가엾게 되었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것은 걸작이다. 하지만 일단 목적론적 해석을 용인하기 시작하면-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누가 아는가! 그것은 상층계급 사이에서 확고한 사상을 지니지 못한 자들이 받은 조건반사 교육을
백지로 돌릴 가능성이 있는 사상이다. 지고의 선(善)으로서의 행복에 대한 그들의 신념을 상실케 하고 그 대신 인간의 최종목적이 어느 피안에 있다고 믿게 할 위험이
있는 사상이다. 최종목적이란 현재의 인간 영역 밖에 있으며 인생의 목적이란 행복의 유지가 아니라 의식의
강화와 세련이며 지식의 확대라는 믿음을 심어 줄 위험이 있는 사상이다. 사실 그것이 옳은 생각인지도
모른다고 총통은 생각했다. 그러나 현재의 여건으로서는 용인할 수 없다.
그는 다시 펜을 들어 출판불허라는 단어 밑에다 두 번째 줄을 그었다. 먼저 그었던 줄보다
더 두껍고 더 진했다. 그는 다시 한숨을 지었다. ‘행복에
대한 사색을 허가할 수 없다니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하고 그는 생각했다.
(336)
“우리의 세계는
<오셀로>의 세계와 같지 않기 때문이야. 강철이
없이는 값싼 플리버 승용차도 만들 수 없어. 사회의 불안정이 없이는 비극을 만들 수 없는 것이야. 세계는 이제 안정된 세계야.인간들은 행복해.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고 있단 말일세. 얻을 수 없는 것은 원하지도
않아. 그들은 잘 살고 있어. 생활이 안정되고 질병도 없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행복하게도 격정이니 노령이란 것을 모르고 살지. 모친이나
부친 때문에 괴로워하지도 않아. 아내라든가 자식이라든가 연인과 같은 격렬한 감정의 대상도 없어. 그들은 조건반사 교육을 받아서 사실상 마땅히 행동해야만 되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없어. 뭔가가 잘못되면 소마가 있지. 자네가 자유라는 이름으로 창 밖으로
집어던진 것 말일세, 자유라!” 총통은 여기서 웃음을 터뜨렸다. “델타 계급들이 자유가 무엇인지 알기를 기대하다니! 그들이 <오셀로>를 이해하기를 기대하다니! 정말 자네답군!”
(339)
“우리는 행복과 안정을 신봉하네. 알과 계급으로만 이루어진 사회는 불안정하고 비참해지지 않을 수 없는 걸세. 알파
노동자로 채워진 공장을 상상해 보게-다시 말해서 좋은 유전인자를 지니고 자유로운 선택을 하고 책임을
떠맡는 일이(제한이 있겠지만) 가능하게끔 조건반사적으로 단련된
개별적으로 상호연관이 없는 인간들로 채워진 경우를 상상하란 말일세. 그것을 상상해 보란 말일세!”하고 그는 반복했다.
(343)
벌써 일세기 반 전에 실험이 행해졌었지. 아일랜드
전역에 걸쳐 네 시간 노동제를 실시했던 거야. 결과가 어떠했는지 알겠나? 다만 불안과 소마 소비량의 증가라는 결과가 따라왔었네. 단지 그것뿐이었지. 세 시간 반이나 늘어난 여가는 행복의 원천이 되기는커녕 그 여가로부터 어떻게 하면 도피할 수 있을까 하는 강박관념이
사람들을 사로잡고 말았단 말일세. 발명국에는 노동절약을 위한 계획이 산적돼 있네. 수천 가지의 계획서가 작성되어 있단 말일세.”
(358)
“바로, 우리들, 즉 현대 세계야. ‘앞길이 창창한 젊은 시절에만 신에 의존하지 않는다. 신으로부터의 독립은 최후까지 인간을 안전하게 인도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었지? 그런데 우리는 지금 죽을 때까지 청춘과 번영을 잃지 않게 되었단 말일세. 그 결과가 무엇이냐고? 분명 우리는 신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게 된
걸세. ‘종교적 감정이 모든 손실을 보상해 줄 것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네만 우리에겐 보상할 손실이란 것이 없는 형편인걸. 종교적 감정은 쓸데없는 것이 되고 말았어. 젊음의 욕망이 쇠퇴하지 않는 마당에 왜 구태여 그것의 대용품을 찾아나서겠는가?
최후까지 옛날의 모든 바보스러운 유희를 즐길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기분 전환의 대용품을
찾아나서겠나? 우리의 심신이 계속적으로 활동의 기쁨을 누리는 마당에 왜 휴식을 필요가 있겠나? 소마가 있는데 위안이 무슨 소용 있단 말인가? 사회의 질서가 있는데
불변부동의 그 무엇이 왜 필요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