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0)

그 노트에는 아인슈타인이 ‘통일장이론(unified field theory)’이라 불렀던 궁극의 이른이 미완의 상태로 적혀 있었다. 그의 목표는 “신의 마음이 담겨 있는” 단 한 줄짜리 방정식으로 우주의 삼라만상을 설명하는 것이었으나, 끝내 신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12)

* 빅뱅 직전에 어떤 일이 있었으며, 무엇이 빅뱅을 유발했는가?

* 블랙홀의 내부(또는 반대편)에는 무엇이 있는가?

* 시간여행은 가능한가?

* 우리 우주에는 웜홀(wormhole)이 존재하는가?

* 4차원 이상의 고차원 공간은 정말로 존재하는가?

* 우리 우주 외에 다른 우주가 존재하는가? 즉, 다중우주 또는 평행우주가 존재하는가?


(27)

뉴턴이 발견한 운동 및 중력이론은 기존의 운동법칙을 하나의 원리로 묶은 최초의 통일이론이자, 인간의 지적 능력이 낳은 최고의 산물이다. 18세기 영국의 시인 알렉산더포프는 뉴턴에 대한 존경을 담아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자연의 법칙은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그러나 “뉴턴이 있으라!”는 신의 한마디에

 모든 것이 환하게 드러났다.


(39)

패러데이와 맥스웰이 전기와 자기를 하나로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수학적으로 대칭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맥스웰의 방정식에는 ‘이중성(duality)’이라는 대칭이 존재한다. 빛(전자기파)에 포함된 전기장을 E라 하고 자기장을 B라 했을 때, E와 B를 맞바꿔도 맥스웰의 방정식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런 이중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전기와 자기가 동일한 힘의 두 가지 측면임을 의미한다. 맥스웰은 E와 B 사이의 대칭을 이용하여 전기와 자기를 통일했고, 그 덕분에 19세기 과학은 위대한 도약을 이룰 수 있었다.


(55)

시간과 공간이 변한다면, 물질과 에너지를 포함하여 당신이 측정할 수 있는 모든 것도 변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빠르게 움직일수록 체중은 증가한다. 그런데 이 초과질량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움직이는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면, 초과 질량의 출처는 바로 운동에너지이다. 이는 곧 운동에너지의 일부는 질량으로 변환되었음을 의미한다.


(83)

양자의 개념은 1900년에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가 제기한 간단한 질문에서 탄생했다. ‘뜨거운 물체는 왜 빛을 발하는가?’ 물체를 불에 달구면 특정한 색의 빛이 방출된다. 인류는 이 사실을 수천 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릇을 만드는 도공들은 가마의 온도가 수천 도에 도달하면 그 안에 넣은 도기가 적색에서 황색을 거쳐 청색으로 변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이것은 성냥이나 촛불, 또는 라이터만 있으면 즉석에서 확인 가능하다. 촛불에서 가장 온도가 높은 아래쪽은 푸른색을 띠고, 위로 올라갈수록 온도가 낮아지면서 노란색-붉은색으로 변한다.)


(96)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두고 “성공을 거둘수록 더욱 멍청한 이론처럼 보인다”고 했고, 전자파의 개념을 처음 도입했던 슈뢰딩거조차도 자신의 이론에 대한 확률적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금도 일부 물리학자들은 파동이론의 철학적 의미를 놓고 난상토론을 벌이는 중이다. 당신이 어떻게 두 장소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인가? 노벨상 수상자인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양자역학과 관련하여 내가 단언할 수 있는 사실은 한 가지뿐이다. 그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


(119-120)

지난 100년 사이 최고의 발명품으로 손색이 없는 트랜지스터를 예로 들어보자. 이 조그만 회로소자는 장거리 통신 네트워크와 컴퓨터, 인터넷 등 정보혁명을 견인한 일등공신이다. 간단히 말해서, 트랜지스터는 전자의 흐름을 제어하는 일종의 밸브이다. 수도 파이프에서 장착된 밸브를 돌려서 수량을 조절하는 것처럼, 트랜지스터는 홍수처럼 밀려오는 전자들 중 극히 일부만 통과시키는 초미세 전자밸브의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트랜지스터를 이용하면 작은 신호를 크게 증폭할 수 있다.


(132)

약력은 다양한 원자의 핵을 단단하게 유지시킬 정도로 강하지 않기 때문에, 주로 원자핵이 더 작은 입자로 붕괴되는 과정에 관여한다. 앞서 말한 대로 지구의 내부가 뜨거운 이유는 그곳에서 방사성붕괴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화산폭발과 지진을 일으키는 막대한 에너지의 원천은 약력인 셈이다. 중성자는 상태가 불안정하여 양성자와 전자로 붕괴되는데(이것을 베타붕괴beta decay라 한다.), 붕괴 전과 붕괴 후의 물리량이 보전되려면 제3의 입자가 도입되어야 한다. 이것은 바로 유령입자로 알려진 뉴트리노이다.


(141-142)

둘째, 표준모형은 각기 다른 힘을 서술하는 여러 이론을 인위적으로 묶어놓았기 때문에 다소 부자연스러우면서 누더기 같은 인상을 준다(한 물리학자는 ‘표준모형을 칭찬하는 것은 마치 오리너구리와 땅돼지, 고래를 하나로 묶어서 희한한 동물을 만들어놓고 자연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명체라고 우기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 동물을 예뻐할 생명체는 엄마밖에 없다’고 말했다.)


(160)

블랙홀과 관련된 책과 논문을 읽으면 읽을수록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블랙홀에서는 아무것도 탈출할 수 없다고 했지만, 호킹은 이것이 양자이론에 위배된다고 생각했다. 양자역학에서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블랙홀이 완전이 검은색으로 보이는 이유는 빛을 비롯한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때문인데, ‘완벽한 암흑’이라는 개념 자체가 불확정성원리에 위배된다. 양자세계에서는 암흑조차도 불확실하다. 그리하여 호킹은 블랙홀이 아주 미약하게나마 양자복사quantum radiation를 방출한다는 혁명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179)

1920년대에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우주에 적용하다가 난관에 봉착했다. 당시 대부분이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팽창하지도, 수축되지도 않으면서 항상 정적인 상태를 유지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에서 얻은 해는 우주가 격렬하게 팽창하거나 수축된다고 강변하고 있었다(아인슈타인은 모르고 있었지만, 이것은 리처드 벤틀리가 제기한 질문의 해답이었다. 중력이 작용해도 우주가 붕괴되지 않는 이유는 팽창하는 힘이 중력을 압도할 정도로 강하기 때문이다).


(206)

* 대칭은 무질서에서 질서를 만들어낸다.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와 표준모형은 다양한 원소와 소립자로 매우 혼란스럽지만, 대칭을 도입하면 깔끔하게 정리된다.

* 대칭은 이론의 공백을 메워준다. 대칭을 도입하면 이론에 나타난 공백으로부터 아직 발견되지 않은 원소와 소립자를 예측할 수 있다.

* 대칭은 무관해 보이는 객체들을 하나로 묶어준다. 대칭은 시간과 공간, 물질과 에너지, 전기와 자기, 그리고 페르미온과 보손의 연결고리를 찾아서 더 큰 항목으로 통일시킨다.

* 대칭은 의외의 자연현상을 알려준다. 대칭은 반물질과 스핀, 쿼크 등 새로운 입자와 물리량을 예측했으며, 결국 사실로 판명되었다.

* 대칭은 이론을 망칠 수도 있는 의외의 결과를 제거해준다. 양자보정에서 나타난 무한대와 변칙은 대칭을 통해 제거할 수 있다.

* 대칭은 고전적인 이론을 업그레이드해준다. 끈이론의 양자보정은 매우 엄밀한 과정이어서, 원래 이론을 수정하여 시공간의 차원을 결정해준다.


(212-213)

홀로그램 원리hologram principle라는 기이한 이중성도 예상치 못한 발전을 이끌었다. 홀로그램이란 3차원 물체의 모든 정보를 2차원 플라스틱 평면에 저장하는 기술이다. 평평한 면에 레이저를 쪼이면 갑자기 허공에 3차원 입체 영상이 나타난다. 다시 말해서, 3차원 영상의 모든 정보가 2차원 평면스크린에 저장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 기술을 사용하면 영화 <스타워즈>의 레아 공주나 로봇 R2-D2를 실물처럼 볼 수 있고, 디즈니랜드에 있는 유령의 집처럼 허공을 날아다니는 유령을 만들 수도 있다.


(216)

스티븐 와인버그는 끈이론을 ‘북극점을 찾기 위한 인류의 노력’에 비유했다. 고대에 작성된 모든 지도에는 북극점에 커다란 구멍이 표시되어 있었는데, 실제로 그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구 어디서나 나침반의 바늘은 그 신비한 장소를 가리켰지만, 북극점을 찾으려는 노력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 북극점이 존재한다는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하나도 없었기에, 일부 사람들은 북극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09년에 미국에 탐험가 로버트 피어리가 마침내 북극을 정복했다.


(225)

초대형 가속기가 완성되면 끈이론에서 예측된 미니블랙홀의 존재 여부도 확인할 수 있다. 끈이론은 중력과 소립자를 모두 포함하는 만물의 이론이므로, 물리학자들은 가속기에서 미니블랙홀이 발견되기를 기대하고 있다(미니블랙홀은 진짜 블랙홀과 달리 에너지가 입자 몇 개 분량밖에 안 되기 때문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 오히려 매순간 지구로 쏟아지는 우주선의 에너지가 미니블랙홀보다 훨씬 크다. 그런데도 지구는 멀쩡하니까, 미니블랙홀이 지구를 삼킬 걱정은 붙들어 매도 된다.)


(233-234)

인류원리는 우리 우주와 관련된 이상한 실험적 사실을 설명해준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연의 모든 상수는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세팅된 것 같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미국의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은 ‘우주는 마치 우리가 등장할 것을 처음부터 예견했던 것 같다’고 했다. 핵력이 지금보다 조금만 약했다면 태양이 점화되지 않아서 태양계는 암흑천지가 되었을 것이고, 강력이 지금보다 조금만 강했다면 태양은 이미 수십억 년 전에 연료가 고갈되어 죽은 별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핵력의 세기가 기적처럼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252)

그러나 이 세상을 이해할 때에는 ‘증명 가능하고 재현가능하며 반증도 가능한’ 과학을 동원해야 한다. 이것이 논지의 핵심이다. 문학작품에 대한 평가는 시간이 흐를수록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면서 복잡해지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에 대한 평가는 평론가마다 각양각색인데, 이 상황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흐를수록 몇 개의 방정식으로 축약되면서 더욱 단순하고 강력해진다. 이것이 바로 물리학의 매력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과학을 넘어선 영역에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선뜻 인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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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와 천둥 - 2015 지역출판문화 및 작은도서관지원 우수도서
이규정 지음 / 산지니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몇 년 전에 이규정 님의 <사할린>이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어. 그 때 지은이 이규정 님에 대해 검색을 해보았는데, 그가 쓴 작품 중에 독립운동가이자 몽골에서 슈바이처급으로 의사 활동을 하신 이태준 님을 모델로 한 소설 <번개와 천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이태준 님은 독립운동 관련된 책에서 단편적으로 나와서 알게 되었는데, 안타깝게 삶을 마감할 수밖에 없어서 가슴이 아팠단다. 그런데 그런 이태준 님을 알리기 위해서 이규정 님이 소설로 쓰신 것이 있었다니, 뒤늦게 알고 아빠도 읽어보겠다고 리스트에 올렸다가 아빠의 게으름으로 인해 이제서야 읽었단다. 아빠가 당시 구입한 <번개와 천둥>은 2015년에 출간한 것인데, 작년에 개간본이 다시 출간되었더구나.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고 이태준 님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구나.

 

1.

그럼 소설 <번개와 천둥>을 통해서 이태준 님의 삶을 알아보자꾸나. 소설이긴 하지만 일부분만 작가의 상상력을 메운 평전이라도 해도 좋을 것 같구나.

대암 이태준은 1883년 경남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에서 태어났단다. 이태준은 인천 이씨인데, 조상을 따라 올라가보다 보면 가야를 세운 김수로의 김해 김씨가 나온단다. 이게 어떻게 된 사연이냐면, 김해 김씨의 시조 김수로는 자신의 아내 허황옥을 너무나 사랑해서, 자신의 아들 중에 두 명의 성을 허씨가 바꿔서 김해 허씨의 시조가 되고… 그들의 후손 중에 신라시대 허기라는 사람이 있었어. 그 사람이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당나라 황제 현종과 함께 안록산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우게 되었고, 당현종은 허기에게 고맙다고 자신의 성씨인 ‘이’를 하사하여 이허기가 되었는데 그가 바로 인천 이씨의 시조라고 하는구나. 아빠가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가 시조가 같은 동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인천 이씨도 김해 김씨와 동본이라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단다.

인천 이씨는 조선시대에는 조선시대 함안에 내려와 집성촌을 이루게 되었대. 이태준은 가난한 농사꾼 아들로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똑똑해서 부모님은 이태준을 동네 서당에 다니게 했단다. 옛날에는 다들 그랬듯이 이태준도 일찍 결혼하고 딸 둘 낳았는데 아내가 그만 일찍 죽고 말았다는구나. 이태준의 친한 고향 친구로는 조용관이라는 사람이 있었어. 조용관은 개신교로 교회에서 선교사에게 영어를 배우고 있었어. 영어를 독학하던 이태준도 조용관과 함께 교회에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단다. 하지만 개신교도가 되는 건 마음에 걸렸단다.

1905년. 너희들도 잘 아는데 을사늑약이 있었고 전국적으로 의병이 궐기를 했단다. 이태준도 조용관과 의병 도모했지만, 사전에 발각되어 경찰서에 치도곤 맞고 풀려났단다. 그리고 경찰의 감시대상이 되었어. 고향에서 계속 감시를 받게 되자, 이태준은 조용관과 한양으로 가자고 했단다. 마침 한양에는 용관의 누나와 자형이 삼천리 만물상회라는 가게를 하고 있었어. 마음에 걸리는 것은 딸들이었는데, 다행히 동생 태식 부부가 보살펴 주기로 했단다.

한양에 온 이태준은 용관과 함께 용관의 누나 집에 지냈단다. 그러다가 가게 단골인 세브란스 의대생 김필순을 알게 되었어. 그리고 김필순 소개로 세브란스 의학교 시험을 볼 수 있었는데, 세브란스 의학교 에비슨 박사가 진행하는 면접 시험을 보게 합격하여 세브란스 의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어. 1907년 10월 1일 부터 세브란스 의학교에서 의학 공부를 시작했어. 낯선 학문이라서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1911년 6월 21일에 졸업했단다. 그리고 지금까지 망설였던 세례도 받았어.

졸업 후에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기 시작했단다. 같은 병원의 간호부 민효례라는 사람이 이태준에게 연정을 품고 있었단다. 그런데 이태준은 김필순의 여동생 순애에게도 마음에 두고 있었어. 이태준은 필순의 여동생 순애와 효례 모두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자신은 기혼자이고 이미 딸이 둘이 있다는 거야.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서, 민효례에게 그 이야기를 하자 민효례는 이미 알고 있었다고 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태준에게 연정을 품고 있었던 것이란다.

그런 와중에 데라구치 암살 모의 사건과 신민회 사건으로 김필순에 대해 검거령이 내려졌어. 그래서 김필순과 동생 김순애는 중국으로 도망가기로 했고, 그 도망길을 이태준이 배웅을 했단다. 그들을 배웅해 주고 병원에 오자, 민효례가 알려주어 자신도 위험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두어 해 전에 도산 안창호를 치료하고 그가 추천해준 청년모임에 가입하여 은밀히 활동하고 김필순을 도와주었다는 일들을 일경들도 알게 된 거야. 이태준도 도망가야 했어. 민효례의 도움으로 안전하게 병원에서 도망 나와 무작정 경의선 기차를 타고 중국으로 향했단다. 그 때가 1911년 12월 31일이었어.


2.

이태준은 김필순이 가기로 했던 남경에 도착했단다. 하지만 김필순을 찾지 못했단다. 아는 사람 없이 지내야 했는데 이상섭이라는 사람을 우연히 만났어. 이상섭을 통해서 독립운동을 하는 신규식, 김규식을 만나게 되어 이태준도 그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게 되었단다. 그리고 이태준의 의사 경력을 살려서 기독회 의원에서 의사로 약 2년간 일하게도 했어. 하지만 여전히 김필순을 여전히 찾지 못해 걱정 되었어. 혹시 김필순의 행방을 알 수 있을까 해서 미국에 있는 안창호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어. 하지만 결국 김필순의 행방을 찾지 못했어.

김규식 제안으로 몽골에서 군사학교 창립하는데 이태준도 참여하기로 했어. 그래서 김규식, 서왈보, 우동열, 이태준은 남경에서 기차를 타고 북경으로, 북경에서 마차를 타고 장가구를 거쳐 울란바토르 도착했단다. 이 길은 무척 험해서 북경에서 울란바토르까지 가는데 11일이나 걸렸어. 하지만 몽골에서 군관학교를 세우는 것은 쉽지 않았단다. 어렵게 부지를 마련했으나 몽골 정부는 허락하지 않았어. 돈은 떨어지고 겨울이 다가와 김규식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지고 제안했단다. 그런데 이태준은 몽골에 만연한 매독 환자들을 보고 그냥 돌아갈 수 없다고 했어. 그 동안 이태준은 몽골의 길거리에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매독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었는데, 자신은 당분간 몽골에서 환자들을 치료하겠다고 했어. 그러면서 김규식에게 북경 도착하면 살바르산이라는 매독 치료를 위한 약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단다. 그 약을 몽골에서 구하기는 무척 힘들었거든.

이태준의 첫 번째 몽골 환자는 버르테라는 사람이었는데, 다 나은 다음 그는 이태준을 도와주었단다. 이태준의 실력은 금방 몽골 전체에 소문이 나서 환자들이 몰려들었어. 처음에는 처음에는 무료봉사였으나 돈을 조금씩 받기로 했어. 그 돈으로 약도 구입하고, 독립자금으로 보내기도 했어. 돈이 모이는 대로 독립운동자금으로 보냈단다. 그리고 동의의국이라는 병원도 세우고 버르테와 다른 몽골인들이 도와주어 잘 정착했단다. 이태준의 소문은 몽골 왕실에도 알려져서 어느 날은 왕실에서 사람이 와서 왕의 병 진료 부탁했단다. 왕의 병도 금방 호전되어 왕의 전담 의사 직함까지 얻게 되었어.

중국에서 김현국이라는 의사가 찾아와 자신도 몽고에서 이태준과 함께 병원도 하고 독립운동 하겠다고 했어. 하지만 이태준은 몽골보다 장가구에서 의원 차리라고 조언했단다. 장가구에서 의원을 차리면 몽골과 북경의 증간거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어.

한편, 김규식은 미국인 회사에 취직하여 장가구에서 일했어. 그리고 어느날 울란바토르 방문했단다.

김규식은 아내와 함께 방문했는데, 그 아내가 이태준이 그렇게 찾던 김필순의 여동생 김순애이었단다. 김필순과 김순애는 남경오는 중간에 다른 독립운동가들을 만나 함께 지냈다고 하더구나. 그렇게 만나기 어려웠는데, 이렇게 몽골에서 동지의 아내로 만나다니.. 김규식은 자신의 일을 도와주던 사촌여동생 은식도 함께 왔는데, 은식을 이태준에게 소개를 해주었단다. 둘은 서로 호감을 갖게 되어 결혼하게 되었어.


3.

시간은 흘러 1919년이 되었단다. 3.1운동 이후 김규식은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하기로 했어. 그런데 자금이 문제였는데 이것을 이태준이 지원했단다.

...

당시 몽골도 이웃 나라 러시아 때문에 정세가 어지러웠어. 운게른이라는 러시아 군인이 있었는데, 그는 소비에트 군대에 패배하고 쫓기고 있었어. 그는 패잔병을 이끌고 몽골로 들어와 몽골 점령한 중국군대를 몰아내주겠다고 몽골 왕을 설득했단다. 운게른과 그의 부대는 몽골군과 함께 중국군과 싸워 승리하여 중국군을 몰아냈단다. 이때 이태준과 친분이 있던 중국인 장군은 이태준에게 함께 중국에 가자고 했으나 거절했단다. 그 중국 장군에게는 의사의 윤리를 들어 거절했지만, 사실은 이태준은 소비에트의 자금 4만루블어치 금괴를 임시정부에 전달해야 하는 임무가 있었단다.

그런데 몽골군과 연합하여 중국을 몰아낸 운게른은 몽골인을 상대로 온갖 만행을 저질렀어. 운게른은 군대를 앞세워 몽골인들 약탈하고 잔인하게 죽였단다. 그제서야 그에게 속은 것을 안 몽골 정부는 몽골 군대는 운게른의 군대와 또다시 전투를 벌여야 했어. 운게른은 도망갔지만 여전히 그의 잔당들이 몽골에서 분란을 일으켰고, 몽골 정부는 소비에트 군대를 끌어들여 그들을 소탕했단다. 국력이 약하다 보니 이래저래 고생이 많구나. 그런데 운게른이 이렇게 몽골에서 만행을 저지를 때 이태준 식구들도 그들의 만행에 희생되고 말았단다. 안타깝지만 그 이야기를 해줄게.

...

그 사건이 있기 전 고향 후배이자 세브란스 의학교 후배 이세영이 찾아왔어. 이세영은 이태준에게 임시정부 군의관 감무 임명장을 주기 위해 왔지만, 자신도 몽골에서 일하겠다고 했어. 알고 보니 이세영은 함안 고향 후배로 이태준의 절친 조용관도 알고 있었어. 이세영은 함안에서 조용관에게 영향을 받아 3.1 주동자로 참여했다가 왜경에 쫓기어 상해로 망명했다고 했어. 그 이후 임시정부에 있다가 이태준의 이야기를 듣고 그를 돕기 위해 울란바토르에 찾아왔다고 했어. 처음에는 의심의 눈으로 봤지만 그제서야 이태준은 자신과 용관이 친구임을 이야기하고 이세정을 받아들였단다. 그리고 이세정에게 병원 일을 잠시 맡기고 김립과 함께 김립이 숨겨두고 있던, 소비에트로부터 받은 금괴를 전달하기 위해 상해로 떠났단다.

상해에 금괴를 안전하게 전달하고 여력이 되어 고향 함안에 며칠 들를 시간이 있었어. 얼마 만에 온 고향인가. 하지만 동생과 딸들은 그곳을 떠나 다른 곳에 있어서 만날 수 없었단다. 상해로 가는 배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아쉬움만 남긴 채 다시 상해로 왔단다. 그리고 북경에 가서 의열단장 김원봉을 만나고 의열단에 가입했단다. 김원봉이 폭탄전문가를 구한다고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환자 중에 마자르라는 사람이 떠올랐어. 헝가리인 마자르는 1차세계대전 포로로 몽골까지 오게 되었고 돈이 없어 헝가리에 돌아가지 못하고 거기에 병까지 걸렸던 거야. 그래서 이태준이 그를 무료로 치료해주고 그 이후 동의의국에서 이태준을 도와주면서 지내고 있었어. 그런데 그 마자르가 군대 있을 때 했던 일이 폭탄제조였단다. 이태준은 마자르에게 이야기해보겠다고 하고 몽골에 돌아왔단다.

….

1921년 11얼 1일. 이태준과 마자르는 군자금을 쓸 금괴를 차에 숨기고 장가구로 떠났단다. 금괴와 마자르를 장가구에 있는 요원에게 인수하고 이태준은 저녁 때쯤 다시 집에 돌아오려는 계획이었어. 그런데 그 시기가 앞서 이야기했던 운게르 군대가 울란바토르를 점령하고 살인과 약탈을 하던 시기였단다. 태준이 떠나고 난 집에 운게르의 부대가 쳐들어와 딸 수옥을 죽이고 아내 은식을 데리고 갔단다. 그리고 이태준과 마자르도 운게르 부대에 잡혀서 다시 울란바토르에 압송되었단다. 그런데 운게르 부대에는 일본군들도 있었어. 몽골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가를 잡으려고 일본군들이 운게르 부대에 합류했던 거야.

마자르는 외국인이라 다시 풀려나게 되었어. 이태준이 마자르에게 북경 가서 김원봉을 만날라고 지시했단다. 이태준이 의사였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 운게르 부대에서 환자들을 치료하라고 했어. 이태준은 의료기기를 핑계로 집에 왔는데, 딸은 죽고 아내가 사라진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어. 이 울분을 어찌 다 감당할 수 있었겠니… 그리고 다음날 일본인 군인들이 와서 그 마저 죽이고 말았단다.

이태준은 그렇게 허망하게 삶을 마감하고 말았단다. 환생이 꼭 있었으면 좋겠구나. 이태준 님 같은 이렇게 안타깝게 삶을 마감해서는 안 될 분인데 말이야. 다시 태어나셔서 그 전에 이어가질 못한 꿈을 이어나가셨으면 좋겠구나. 너희들도 이태준 님을 꼭 기억해주었으면 좋겠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태준은 경의선 기차가 막 출발할 때에야 가까스로 찻간에 올라탈 수 있었다.

책의 끝 문장: 타키가 큰소리로 한번 울면서 힘차게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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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메이커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박현주 옮김 / 소소의책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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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진주 귀고리 소녀>로 유명한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신작 <글래스메이커>라는 소설이야. 아빠는 <진주 귀고리 소녀>를 2004년에 읽고 그 이후로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책은 읽은 적이 없구나. 의도적으로 읽지 않은 것은 아니고 그 작가가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야. 그리고 <진주 귀고리 소녀>가 독특하긴 해도 아주 재미있다는 생각은 안 했던 것 같아. 이번에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책을 읽게 된 것은 몇 달 전에 신간코너에서 눈에 띄었기 때문이란다..

한 작가의 책을 22년만에 다시 읽게 되다니, 감회가 좀 새롭니다. 얼마 전에 읽은 것 같은데 22년이나 흘렀다니... 작가도 22살 더 먹고, 독자도 22살 더 먹고 말이지. <진주 귀고리 소녀>는 집 어딘가에 있을 텐데, 지난 22년 동안 잘 있는지 모르겠구나. 검색을 해보니 지은이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그동안 꾸준하게 작품을 쓰신 것 같구나.

그럼, 22년만에 다시 만난 작가의 책 <글래스메이커>를 이야기해줄게. 글래스. 유리. 메이커. 만드는 사람. 이 소설은 유리 공예품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란다. 베네치아 인근에 있는 무라노를 주무대로 이야기가 펼쳐진단다. 그런데 판타지 요소가 좀 더해져서 무라노 섬과 베네치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시간은 그 밖에 세상과 다르게 흘러간단다. 무라노와 베네치아 밖의 시간은 수백 년이 흘러도 무라노 섬에서는 한 소녀의 한평생 정도만 시간이 흐른단다. 수백 년 동안 유리 공예 제작자들이 어떻게 변했는지 이야기를 하되, 주인공들은 그대로 유지하려고 그런 판타지 요소를 적용한 것 같더구나.

..

 

1.

시작은 1486년 무라노 섬에서 시작한단다. 아홉 살 소녀 오르솔라 로소가 주인공이야. 로소 집안은 유리 공방을 대대로 하고 있고, 아버지 로렌초 로소가 장인으로 공방을 이끌고 있고, 두 아들이자 오르솔라의 오빠들인 마르코와 자코모, 도제인 파울로가 로렌초의 밑에서 함께 일을 하고 있단다. 오르솔라의 엄마 라우라는 주로 집안 일을 하셨어. 그들의 경쟁 공방으로 바로비에르 공방이 있는데, 사실은 바로비에르 공방이 좀더 잘 나가는 공방이란다. 아버지 안젤로 아래 아들 조반니와 딸 마리아를 중심으로 공방을 운영하고 있어. 유리 공방의 직책을 간단히 이야기 보면, 처음에는 가르초네트로 시작해서 실력이 늘어나면 가르초네, 세르벤테(도제)로 직책이 올라간다.

…

시간은 흘러 오르솔라는 17살이 되었어. 유리 공방에서 작업 중 직원의 실수로 유리가 깨지는 사고가 났는데 그 깨진 유리에 아버지 로렌초가 목에 찔려 출혈과다로 갑자기 돌아가시고 말았어. 두 아들에게 아직 기술을 모두 전수하지도 못하고 갑자기 죽게 된 거야. 첫 아들 마르코가 공방을 물려받아야 하는데 마르코는 실력도 안 되고 인성도 좋지 않아서 유리 공방을 운영을 제대로 운영할지 모르겠구나. 제품의 품질이 떨어져서 거래선이 줄어들기 시작했단다.

오르솔라는 길에서 우연히 경쟁 공방의 유리 공예사 마리아를 만났는데 그때 오르솔라가 작고 낡은 옷을 입고 있어서 그랬는지 마리아는 오르솔라에게 드레스 선물을 주었단다. 오르솔라는 마리아에게 유리장신구 만드는 것을 배우고 싶다고 하자 마리아는 사촌 엘레나에게 보내서 장식구슬을 배우게 했단다. 이후 오르솔라는 유리구슬 만드는 것에 열심이었어. 평상시에도 꿀을 이용하여 연습했어. 마리아와 오르솔라의 인연이 나중에도 중요하게 이어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더구나.

...

어느 날 큰오빠 마르코가 유리잔을 팔기 위해 베네치아 본토에 있는 상인 클링엔베르크를 만나러 갔는데 하루가 지나 올 시간이 지나도 오질 않아서 둘째 오빠 자코모와 오르솔라가 마르코를 찾으러 베네치아에 갔단다. 당시에도 베네치아의 주요 이동수단은 곤돌라였어. 클링엔베르크를 찾아갔더니 마르코가 가지고 온 유리잔은 품질이 떨어져 받을 수 없다고 거절했다고 했어. 그러면서 공방에서 잘하는 것부터 서서히 하라고 조언해주었어. 오르솔라는 장식유리구슬도 받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했단다. 그건 그렇고 마르코는 어디에 있는 거야? 자코모와 오르솔라는 술집을 돌아다니며 찾다가 술에 만취해 있는 마르코를 발견해서 섬으로 데리고 왔단다.

 

2.

얼마 후 마르코는 니콜레타라는 여자와 결혼했고 엄마 라우라는 딸 스텔라를 낳았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엄마는 임신 중이었거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선물이었나 보구나. 오르솔라는 어린 동생을 돌봐야 했단다. 그렇다 보니 유리구슬 만드는 연습을 거의 하지 못했어. 어느날 베네치아의 어부로 일하던 안토니오라는 사람이 찾아와 유리 공예를 배우겠다고 했어. 일전에 마르코가 약속했다면서 말이야. 그래서 안토니오도 마르코의 유리 공방에서 일하게 되었단다. 그런데 오르솔라의 눈에 자꾸 안토니오가 거슬렸어. 그에게 자꾸 끌린 거야. 오르솔라는 장식유리구슬을 만들어 클링엔베르크에게 보냈는데 소식이 없었단다.

그런데 몇 달 뒤 클링엔베르크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한 달에 100개씩 제작해 달라고 했어. 오르솔라의 첫 수입이 성사되는 순간이었지. 오르솔라의 유리구슬 주문량도 점점 늘어나게 되었어. 안토니오는 유리공예에 재능이 있었어. 금방 배우고 창의적인 디자인에 대한 아이디어도 내놨어. 그래서 유리공방이 그럭저럭 다시 자리를 잡아갔단다.

....

그런데 역병이 돌아서 베네치아 전체가 폐쇄되었어. 이제 자리를 잡아가던 공방도 중단할 수밖에 없었어. 무라노 섬에도 감염자가 생기더니 마르코의 아내 니콜레타가 그만 감염되고 말았어. 당시 둘째를 임신하고 있었는데 큰일이구나. 감염이 되면 신고하고 격리시설로 보내야 하는데 어머니 라우라는 격리시설에 가면 무조건 죽을 거라는 생각에, 몰래 집에서 돌보기로 했단다. 집에 있는 아기들, 스텔라와 마르코의 첫째 아기 마르콜린은 할머니 댁으로 보내고, 집에서 일하던 시녀도 혹시 몰라서 집으로 보내고, 안토니오에게 특효약을 찾으러 베네치아에 보냈어. 그리고 라우라와 오르솔라가 번갈아 가면서 니콜레타를 보살폈단다. 그런데 집으로 보낸 시녀가 역병 증세가 나타나 죽고 말았어. 그래서 조사단이 라우라의 집에 와서 조사를 했고, 니골레타의 감염 사실도 발각되어 니골레타도 격리시설로 가야 했어. 그런데 엄마 라우라가 함께 가겠다고 했단다. 책임감과 희생정신이 대단한 엄마구나.

오르솔라, 마르코, 자코모, 파울로도 감염자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40일간 집에 격리해야 했어. 다행히 안토니오가 집밖에 머물고 있어서 생필품과 음식, 물 등으로 창문으로 넣어주었단다. 역병의 상황은 점점 안 좋아져서 죽는 사람들도 늘어났어. 함께 격리하고 있던 파울로도 그만 감염이 되어 얼마 못 가 죽고 말았어. 할머니도 감염되어 이모와 아기들도 격리해야 했단다. 오르솔라는 구슬을 만들어 역병퇴치구슬이라고 하여 팔기 시작했단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사람들이 그 구슬을 사기 시작해서 돈을 좀 벌어들였지만 인기는 이내 시들었단다.

...

격리한 지 40일이 지나고 격리가 해제되었단다. 다행히 오르솔라, 마르코, 자코모는 병에 걸리지 않았어. 그리고 격리시설에 갔던 엄마 라우라가 아기만 데리고 돌아오셨단다. 니골레타는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죽은 거야. 그 아기 이름은 라파엘레라 지었단다. 역병은 베네치아의 3분의 1이 죽고 나서야 역병이 사라졌단다.

..

 

3.

바깥 세상은 시간이 흘러 흘러 1631년이 되었어. 마르코의 둘째 딸을 위한 유모 모니카라는 사람이 일하게 되었어. 모니카는 로셀라라는 딸이 있었단다. 그런데 얼마 안가 모니카는 마르코와 결혼했단다. 어찌 보면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집안일 도와주는 하녀로 모니카의 사촌 이사벨라가 왔는데 얼마 안가 이사벨라는 자코모와 결혼을 했단다. 어찌 보면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오르솔라도 결국 안토니오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단다.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 임신이 되어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안타깝게 유산을 하고 말았어. 어찌 보면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

이제 공방도 다시 정상궤도를 찾는 듯 했어. 오르솔라도 다시 장식용 유리구슬을 만들었어. 안토니오의 실력도 점점 좋아져서 순리대로라면 마르코의 도제가 되어야 하는데 마르코가 안토니오를 싫어했어. 이웃에 있는 바로비에로 공방에 있던 스테파노를 스카우트해 와서 도제가 되었단다. 아니, 더 큰 공방에서 일하고 있던 스테파노가 왜 작은 공방의 도제로 왔을까. 오르솔라는 자신 때문이라고 눈치챘어. 역시나 얼마 후 스테파노는 마르코에게 오르솔라와 결혼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고 마르코도 허락을 했단다. 아마, 사전에 이야기가 다 되어 있었을 거야. 물론 오르솔라는 싫다고 했지.

안토니오는 도제 건으로 화가 나서 공방을 떠나 북부 지역으로 갔단다. 오르솔라는 안토니오에게 남아달라고 하고 안토니오는 오르솔라에게 함께 떠나자고 했는데 결국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안토니오는 홀로 길을 떠났단다. 마르코는 안토니오가 기술을 빼돌렸다면서 그를 신고하여 추적하게 했단다. 역병이 돌았을 때 안토니오가 도와준 일, 공방을 유지하는데 큰 힘이 된 것을 마르코는 잊은 것인가. 나이를 먹어도 그 더러운 성격은 그대로이구나. 스테파노의 계속된 청혼에 안토니오가 떠난 지 1년이 지나고 오르솔라는 스테파노와 결혼을 하게 되었어. 하지만 마음 속에는 여전히 안토니오가 있었단다.

...

8년이 지나고 오르솔라는 네 번의 유산 끝에 딸 안젤라를 낳았단다. 그 8년 사이에 자코모의 아내 이사벨라가 딴 남자와 눈이 맞아 도망을 갔단다. 오르솔라는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겸 (그런데 사실은 혹시 안토니오를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테라페르마에 갔다가 길거리에 말똥이 널브러져있는 등 너무 더러워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로 했어. 그런데 곤돌라에서 어떤 남자가 추파를 던졌어. 얼마 후 그 남자가 어떻게 알고 공방에 구슬을 사러 왔는데 그의 속셈은 오르솔라를 보려고 왔던 거란다. 그런데 그 남자 이름이 카사노바였어. 바람둥이로 유명한 실존인물 카사노바였단다. 굳이 이 사람을 등장시킨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실존 인물의 갑작스러운 등장이었단다. 카사노바가 베네치아 출신이라서 그랬나?

아무튼 카사노바는 오르솔라를 어찌해보려는 이유인지 샹들리에를 포함하여 엄청난 양의 유리 공예를 주문했단다. 공방이 한동안 바쁘게 움직였는데 물건이 거의 다 만들어질 즈음 카사노바가 빚쟁이 사기꾼으로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들었어. 다 만들어놓은 샹들리에는 팔지도 못하게 되었고, 들어간 비용도 받을 길이 없었단다. 공방은 이 일로 몇 년 동안 힘든 시기를 보냈고 다시 신뢰를 되찾는데 몇 년이 더 걸렸단다.

....

또 시간이 흘러 1794년이 흘렀어.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조금만 나이를 더 먹었단다. 당시 나폴레옹이 유럽 전역을 휩쓸던 시기였어. 나폴레옹은 베네치아를 오스트리아에게 넘겨버렸어. 이 때가 베네치아와 무라노 섬의 암흑기였어. 망하는 유리 공방들도 늘어났어. 마르코의 공방도 주문량이 줄어 힘든 시기를 보냈어. 다행히 나폴레옹의 부인인 조세핀의 유리 목걸이 주문이 들어와서 좀 숨통을 트였단다. 또 한번의 실존인물 출현.

....

바깥 세상의 시간은 또 흘러 1915년이 되었어. 하지만 소설 속 인물들은 나이를 조금만 먹어 오르솔라는 이제 마흔네 살이 되었어. 오르솔라는 얼마 전부터 만들기 시작한 씨앗구슬을 만들고 있었어. 다른 유리 공예품으로 영역을 넓혀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어. 그런데 1915년이면 1차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절이겠구나. 전쟁은 그들도 피해가지 못했어. 전쟁 중 조카 한 명도 참전하여 그만 죽고 말았단다. 그리고 여동생 스텔라는 간호사로 전쟁에 참여했는데 역시 폭격으로 죽고 말았단다. 전쟁이 끝나고 베네치아는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어. 오르솔라네 공방도 유리 공예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가게를 열어 유리 공예품을 팔았단다.

....

시간이 또 흘러 2019년이 되었어. 이제 오르솔라 나이는 65세가 되었어. 이제 베네치아는 관광도시로 한 해에 480만명이 오곤 했어. 그리고 베네치아 풍경도 많이 변했지. 무엇보다 예전에 드물던 홍수가 예삿일이 되었단다. 기후 변화가 그렇게 만든 거야. 2019년 11월에는 대홍수로 베네치아 대부분이 물에 잠기기도 했어. 이 사건을 실제로 있었던 일이란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너희들도 잘 알고 있는 코로나19 때문에 전세계가 격리되었단다. 베네치아도 마찬가지였어. 남편 스테파노가 이때 코로나19에 감염되어 황망하게 죽고 말았단다. 오르솔라는 그 옛날 역병이 생각났을 거야.

…

시간이 또 흐르고 이제 60대 후반이 된 오르소라. 어느 날 손님이 왔는데, 깜짝 놀랐단다. 안토니오를 꼭 닮은 손님이었어. 알고 보니 그는 안토니오가 아니고 안토니오의 몇 대 후손이었단다. 안토니오가 당시 간 북부 지역은 시간이 제대로 흘렀던 거야. 안토니오는 이미 수백 년에 죽고, 안토니오가 남긴 유언에 따라 그의 후손들은 정기적으로 베네치아의 어떤 집의 주소로 돌고래 모양의 유리 공예를 보냈던 것이야. 그렇게 돌고래만 보내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방문한 것이라고 하는구나. 결국 안토니오의 만남은 끝내.이루어지지 않았구나.

소설은 그렇게 끝을 맺었단다. 아빠가 시작할 때 이야기했듯이 이 소설은 두 세상의 시간의 속도가 다른 판타지 요소가 있었는데, 아빠는 그런 구성에 다소 반대였단다. 소설의 시작부분인 중세 시대 베네치아의 유리 공예가들의 삶과 그들만의 철학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소설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 거라 생각이 드는구나. 지은이 트레이시 슈발리에 소설을 22년만에 읽었는데, 다음에 또 22년만에 읽는다면 아빠 나이가? 아, 상상하고 싶지 않구나. 지난 22년이 휙 갔는데, 앞으로 22년은 더 빨리 가겠지만….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물 위로 납작한 조약돌을 던져 솜씨 좋게 물수제비를 뜬다면, 돌은 떨어지기 전까지 길게, 혹은 짧게 간격을 두고 물 위를 여러 번 통통 퀴어갑니다.

책의 끝 문장: 그를 위해서, 그렇게 할 것이다.


안토니오가 떠날 때마다 로소 가족 세 사람은 그가 길을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의 자유를 부러워하고 자기들도 폰다멘타 데이베트라이를 따라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날을 기다렸다. 걷다가 캄포산토 스테파노에 들러 굴을 먹고 로모 살바데고에서 술 한잔하고, 산티 마리아 에 도나토에 들어가서 기도를 올리거나 바닥의 모자이크를 감상하고, 북쪽의 정원들을 느긋하게 산책하거나 체리를 따고 은방울꽃 향기를 맡아보고 싶었다. 또 캄포 산 베르나르도에 서서 누가 다투고 누가 결혼했는지, 누가 아이를 가졌는지, 누가 육아로 고생하는지, 어떤 공방이 다른 공방을 앞섰는지, 누가 사업을 그만두었는지, 누구의 와인이 상했는지, 누구의 치즈가 남아도는지, 로소가의 도제가 누구를 만나고 그가 정말로 좋아하는 건 누군지 같은 소문을 얻어듣고 싶었다. 인생에서 사소하지만 중요한 일들. - P187

인생은 다양한 자극 없이는 지루했다. 장소, 소리, 사람들. 오르솔라는 자기 자신에게 싫증이 났고 다른 사람들이 그리웠다. 전화로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는 건 그들과 같은 방에 함께 있는 것과 같지 않았다. 이 사실을 인정하면 루치아나가 비웃겠지만, 그래도 오르솔라는 베네치아가 그리웠다. 낯선 사람의 존재, 산 마르코 광장 주위를 어슬렁거리다가 유리 제품을 집어 들었다 다시 내려놓고, 로셀라가 구슬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던 관광객들이 그리웠다. 오르솔라가 직접 만든 사람이라는 것도 생각하지 않고 작품을 무례하게 평하는 짜증스러운 손님들까지도 그리웠다. - P487

그 여행 후, 라파엘라는 각 카지노가 어떻게 모두 다른 주제, 대개 장소들을 본떠 지어졌는지 설명해주었다. 파리, 로마, 이집트, 그리고 물론 베네치아까지. 라파엘라는 모형 캄파닐레, 두칼레 궁전, 리알토 다리, 수영장처럼 맑고 푸르게 염소 소독한 물이 가득한 운하들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곤돌라까지도 있었지만, 어떤 사공들은 노를 틀린 방식으로 젓고 있었다. 심지어 베네치아에서 정통성 있는 곤돌라 사공들을 데리고 간 거라고 하는데도 그랬다. 라파엘레가 그들 베네치아인 중 한 명에게 그것을 지적하자 그는 정통 베네치아식으로 욕을 내뱉더라고 했다. "사람들이 좋아하더라고요." 라파엘레는 이 ‘베니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어떤 미국인이 이러는 거예요. ‘굳이 이탈리아까지 한참 비행기 타고 갈 필요가 있겠어? 라스베이거스의 베네시란 리조트에 가면 똑 같은 게 다 있는데, 게다가 도박도 할 수 있잖아! - P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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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을 처방해드립니다
루스 윌슨 지음, 이승민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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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작년 말 제인 오스틴 탄생 250주기에 맞춰 출간된 여러 책들 중에 하나란다. 루스 윌슨이라는 오스트레일리아 할머니가 쓴 <제인 오스틴을 처방해 드립니다> 라는 책이란다. 책 내용을 이야기하기 전에 지은이 루스 윌슨의 이력부터 이야기해야겠구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늦은 때란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하는 삶을 살고 계시더구나. 지은이 루스 윌슨은 예순 살까지 평범한 가정을 일구며 살아왔단다. 그러다가 예순 넘어서 가까운 사람들이 문득 낯설게 느껴지는 등 외로움이 느껴지고 지난 자신의 삶에 회의감을 느끼고 뭔가 잘못된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시골에 자기만의 방을 만들어 홀로 지내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의미를 찾아보기로 마음먹었어. 나이 70살에 졸혼을 하고 혼자 시골집에 혼자 칩거하면서 생활하게 된다. 그때 루스가 선택한 것이 바로 제인 오스틴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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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

가족과 일 외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뭘까 생각하니 예나 지금이나 소설 읽는 즐거움만 한 것이 없었다. 읽은 소설을 통틀어 내 즐거움이 비교 기준은 제인 오스틴의 작품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오스틴의 여자 주인공들에게서 내가 되고 싶은 여성상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 작품들에 대한 향수가 가슴에 밀려들었다. 그래서 나는 재활 치료라 생각하고 다시 독서에 열중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우선은 오스틴의 소설 여섯 편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나를 오스틴의 애독자로 만들어준 그 촌철살인의 위트와 귀가 닳도록 인용되는 문구들과 생기 넘치는 대화들을 다시 읽어보고 싶었다. 당시에는 미처 몰랐지만, 나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독서법에 발을 들이고 있었다. 오스틴의 작품을 출발점으로 삼아서 그 세계관의 프레임에 비추어 내 인생의 만족과 불만족을 탐색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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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소녀 시절 처음 읽었던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을 70대가 되어 다시 읽은 지은이는 제인 오스틴의 대표 장편 소설 6편을 다시 읽으면서 침체되었던 삶을 회복시킬 수 있었다고 했어. 그리고 다시 대학에 진학하여 88살에는 독서 관련된 내용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90살에는 이 책 <제인 오스틴을 처방해 드립니다>라는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자기인생의 첫 번째 책을 나이 아흔에 낸 사람이 있을까 싶구나. 기네스북에도 기록될 만 기록이 아닐까 싶구나.

아빠 이 책을 산 것은 지난 연말인데 막상 이 책을 읽으려고 하니 제인 오스틴의 책을 너무 적게 읽어서 공감하지 못하는 내용이 많을 것 같아서 먼저 제인 오스틴의 책을 좀 읽고 읽어야겠다고 미뤄두었어. 그 이후 <설득>, <이성과 감성>을 읽었어. 이제 그 전에 읽은 <오만과 편견>까지 포함하여 세 권을 읽었으니 이제 이 책 <제인 오스틴을 처방해 드립니다>를 읽어봐도 될 것 같아서 읽었단다. 이 책에 소개된 여섯 권을 모두 읽고 읽으려면 너무 늦어질 것 같기도 해서 지금 읽은 거야. 물론 제인 오스틴의 책을 읽지 않고 이 책을 읽어도 문제되지는 않지만 읽고 나서 읽으니 지은이의 어떤 의견에는 공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의견에는 공감하지 않으면서 읽다 보니 책 읽기에 도움이 많이 되더구나. 좀 늦어지더라도 나머지 세 권도 읽고 나서 이 책을 읽을 걸, 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나머지 세 권은 <에마>, <노생거 수도원>, <맨스필드 파크>란다.

 

1.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 책은 지은이의 자서전이기도 해. 제인 오스틴의 책들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이야기해주었어. 1932년생인 지은이는 15살 때 선생님의 추천으로 처음 <오만과 편견>을 읽었다는구나. 그러면서 10대 학창시절의 이야기를 해주는데 엄청 자세히 당시 있었던 대화까지 이야기를 해주었어. 기억력만으로는 할 수 없을 것 같고, 아무래도 일기를 꾸준히 썼을 것 같구나. 지은이는 영어교사를 하다가 은퇴를 했고 1974년부터 5년 동안 가족들과 함께 이스라엘로 이주했었대. 지은이는 유대인이었지만, 2차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레일리아에 있어서 다행히 유대인 핍박 등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했어. 하지만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기도 하고 같은 민족들이 핍박 받고 희생당하는 것에 슬프고 힘들었다고 하는구나. 그런 민족들이 오늘날은 이웃 나라에 무자비하게 폭격을 가해 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니…  악마는 멀리 있지 않는 것 같구나. 지은이는 지금 네타냐후와 이스라엘의 악마와 같은 만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문득 궁금해지는구나. 이스라엘에 이주할 때 원래 그곳에서 살다가 쫓겨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연민의 정이 있었는지도...

...

이 책에 소개된 여섯 편의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 각 챕터 별로 소설들의 줄거리도 소개해 주었는데, 아빠가 아직 읽지 않은 작품들은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대충 읽었단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속의 개성 넘치는 주인공들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었지. 소설 속 주인공들을 이야기하면서 지은이의 주변 사람들과 매칭해보기도 했어. 그리고 이 책에서는 제인 오스틴의 책들뿐만 아니라 다른 책들도 소개해 주었는데 아빠기 좋아하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도 소개되어 반가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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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듯이 60대에 들어선 지은이의 불안한 마음을 제인 오스틴의 소설로 완전 치유가 되었대.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을 통해 전문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관계의 복잡성, 우정의 가치, 사랑의 의미, 삶의 균형 등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졸혼했다고도 했는데 그렇다고 남편과 헤어진 것은 아니고 오히려 사이가 더 좋아졌다고 하는구나. LAT(live-apart-together)족 생활을 했다는구나. 따로 살면서 같이하는 삶을 실천했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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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7)

소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들은 가능성의 영역이고, 현실의 우리는 우리 나름의 선택을 내리고 이럭저럭 그 선택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그렇게 보면 내가 한때 나의 남주인공으로 착각했던 사람, 그러나 먼 길을 돌고 돌아 결국 나의 친밀한 동반자가 된 사람과 따로 또 같이 사는 지금의 내 인생에는 소중한 우정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남편과 내가 공유하는 관계도 있고 애정의 방향이 갈라질 때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 나한테 더 중요한 건 ‘정녕 진실로’ 만족스러운 인생을 꾸려갈 두 번째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준 일등 공신이 지금도 내 책상에 앉아 있는 나의 길잡이 제인 오스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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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의 꼼꼼한 책읽기를 보면서 아빠의 책읽기도 생각해보았어. 어린 시절에 책을 거의 읽지 않던 아빠는 이십 대 중후반 문득 책 좀 읽어볼까 하고 시작한 독서생활은 2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단다. 하지만 내적 성장이라든가, 글솜씨가 좋아졌다든가, 지적 성장이 있었다든가, 하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더구나 ㅎㅎ 아빠의 독서법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그냥 재미있으니 읽는다는 생각으로 읽어서 그런가. 힘들고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책이 치유를 해준다기보다 오히려 책읽기가 힘들어지고 독서생활에 슬럼프가 찾아오는데 말이야. 아니면 힘들 때 고른 책들이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제인 오스틴의 책들을 골랐어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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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지은이가 한 것 중에 아빠도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단다. 지은이는 오랜 친구와 함께 책을 낭독해서 읽기를 했단다. 아빠는 함께 읽기를 너희들과 함께 하고 싶은데 너희들은 지금 너무 바쁘니 뒤로 미뤄둬야겠구나. 아무튼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번 강조하고픈 것은 늦은 때라는 것은 없다는 것. 아빠도 나이가 들고나서 무엇인가 새로 배우거나 새로 시작하는 것에 거부감이 생겼는데 반성해야겠구나. 그리고 이 책에서 소개한 아직 읽지 않는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 세 편도 올해 안에 꼭 읽도록 하마.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행복이 대체 뭐란 말인가.

책의 끝 문장: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준 일등 공신은 지금도 내 책상에 앉아 있는 나의 길잡이 제인 오스틴이다.

 


제인 오스틴이 보여준 언어의 가능성을 활자로, 또 내 귀로 발견했을 때 내 앞에 소설로 통하는 새로운 문이 열렸다. 그와 동시에 다른 문이 닫혔다. 어머니와 내가 일주일에 한 번 울타리 너머에서 우리 앞마당에 던져놓고 가는 잡지를 손꼽아 기다리다가 어머니는 유명 인사의 가십에 대한 갈증을 채우고 나는 틈새에 실린 단편소설을 읽어치우던 그런 시절이 안녕을 고했다. 클리셰니 스테레오타입이니 하는 말은 모를 때였지만, 햄릿식으로 말하자면, 그런 작법과 인물들이 어딘지 "식상하고 밋밋하고 쓸모없다"는 걸 깨달았다. 하루아침에 흥미가 사라져버렸다. - P51

사춘기에 접어든 그때 나는 현실에서처럼 빛과 그림자가 불가분하게 뒤섞인 세상으로 들어가 그것들을 체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것은 신이 창조한 세상이 아닌 한 작가가 창조한 허구의 세계였다. 그가 소리와 인격과 생각을 불어넣어 완성한 정연한 패턴 안에 단순한 결혼 플롯을 뛰어넘는 인생의 비전이 담겨 있었다. 내가 평생 이어갈, 궁극적으로 내 삶의 암흑기에 빛을 비춰줄 허구의 경험 읽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 P157

나는 세월이 쌓이고 과거를 기억하는 일이 호락호락하지 않게 느껴질수록 소설 안에서 역사가 다뤄지는 방식에 관해서 관심이 증폭되다 못해 이제는 역사적 호기심의 노예라고 해도 될 판이다. 소설이 어떻게 과거로 현재를 재구성하는지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고 소설 안에서 인생살이에 대한 신선한 시각을 발견하는 유익한 효과도 따라온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캐서린은 역사책이 온통 "짜증 나고 지루한" 이야기뿐이라고 불평을 늘어놓는데, 그 말을 듣고 있는 틸니 양은 친구의 의견을 받아주는 것 같으면서도 역사를 집필하는 사람들 쪽으로 슬쩍 주제를 선회한다. "역사가들은 기꺼이 공상의 나래를 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군요. 흥미를 자아내지 않더라도 그들도 상상력을 발휘하긴 하죠." 이런 식으로 대화가 이리저리 튀며 두 아가씨의 정신세계를 비춰 보인다. - P167

그리하여 나는 팔십 줄에 접어들어서도 여전히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모든 여학생들이 졸업 앨범 방명록을 간직하던 시절, 브레인 선생님으로 짐작되는 이가 내 졸업 앨범 방명록에 대략 이런 의미의 글귀를 남겼다. 공중에 누각을 지은들 어떠랴, 토대만 단단히 세우면 그만이지. 글귀 아래에는 철학자 소로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는 이미 나만의 누각에서 살고 있었고, 어쩐지 앞으로 10년 안에 그럭저럭 토대를 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 어떤 예감이 찾아오고 있었다. 흔히들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는 그런 황홀한 도취가 다시 한번 나에게 다가오는 느낌. 이번 상대는 인생이라는 것도. - P225

어떻게 해야 더 명료하게 내 뜻이 전달되려나. 나는 목소리를 조금 더 높였다. "까놓고 말하자면 관습의 틀 안에 살기로 결정했을 때 나는 스스로를 기망한 거야. 안전한 삶에 안주한 줄 알았는데, 언젠가부터 튕겨 나가고 있더라. 내 자리를 지키기는커녕 밖으로 밀려나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라니, 내가 고작 이 정도인가, 인생에서 얻은 게 고작 이 정도인가 싶어서 감당하기 힘들 만큼 좌절했어." - P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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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노인들은 도망치지만 어디로 갈지 모른다. 그들은 예전으로 돌아가는 길을 잊었다. ‘그들의 집’은 다달이 오르탕시아 요양원의 거주비를 대느라 매물로 나왔다. 그들의 정원은 텅 비고, 그들의 고양이는 다른 곳으로 보내졌다. 이제 그들의 집은 그들의 기억 속에서만, 그들 각자의 서가에서만 존재한다. 나는 그 각각의 서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157-158)

빨간색 윗도리를 입었어야지, 그게 더 어울리는데, 오늘은 머리가 엉망이네, 방 좀 정리해라, 물건들 좀 여기저기 두지 마, 네가 내 립스틱 가져갔었구나, 그래, 알았어 우리 강아지, 이건 벗기는 것 좀 도와주렴, 가게에 같이 가자, 오후 4시에 데리러 갈게, 네가 물어봐서 대답한 거야, 시간이 없구나, 숙제는 했니, 이게 다 뭐니, 저것 봐, 너무 예쁘지, 그건 안 돼, 이걸 사줄게, 아예 시작도 하지 마라, 식탁 좀 차려줘, 아니, 안 돼, 안 돼, 좋아, 알았어, 정말 이번 한 번뿐이다, 너무 늦게 들어오지 마, 저녁 6시 이후엔 초콜릿이나 탄산음료 금지야, 아침 안 먹으면 못 간다, 외투 입어, 밖이 추워, 이 난장판이 다 뭐니, 양치질은 했니, 언제 다 클래, 가서 샤워해, 염려 마, 괜찮으니까, 사랑해, 잘 자렴, 오늘 아침엔 왜 이렇게 예쁠까, 그거 너한테 아주 잘 어울린다, 네 역사지리 선생님이 전화하셨더라, 늦었다, 이제 그만 자렴, 수학이 얼마나 중요한데, 괜찮아, 우리 아기, 저 남자애는 누구니, 넨가 독서 싫어하는 거야 알지만 그대로 이 책은 좋아할 거야, 몇 시에 데리러 갈까, 그 애 부모님은 뭘 하시니, 전깃불 꺼, 맨발로 걷지 마, 병원 가자,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토 달지 말고, 이리 와서 안아줘, 말 안 들으면 아빠 부른다.


(297)

루이 할아버지네 카페를 매각한다는 소식은 밀리에 폭탄을 투하한 듯한 충격을 안겼다. 남자들 대부분이 거짓 루머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카페 앞에 모여들었다. 엘렌 엘이, 자기들의 엘렌 엘이 자기들의 카페를 판다니! 너나없이 모두 모였다. 늙은 사람들, 젊은 사람들, 은퇴자들, 알코올의존자들, 한창때의 노동자들, 농부들, 용감한 사람들, 게으른 사람들, 퇴역 군인들, 수공업자들, 사제, 노동자들, 관리반장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어떻게 그녀가 그들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떠날 수 있단 말인가? 그녀 없이 그들은 어쩌라고? 이제 그들의 바짓단 길이는 누가 맞춰주고, 주중에 그들이 먹고 마실 것은 누가 제공하며, 그들의 똑 같은 푸념은 누가 들어주고, 담배는 누가 팔고, 보들레르는 누가 돌보고, 1등처럼 3등까지 경주마 순위는 누가 예상해주고, 누가 그녀처럼 웃어준단 말인가? 그들 모두가 아침과 정오와 하루 끝의 진액을 잃은 기분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일상의 골칫거리, 돈 걱정, 아이들, 아내, 꼬박꼬박 가져와야 할 월급의 압박 속에서, 카페 문을 밀고 들어와 두서너 마디 흰소리를 주고받을 수 있는 오랜 친구를 만나는 것만큼, 이 술병들의 정원에 들어서는 것만큼 위안이 되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루이 할아버지 카페는 그들이 마주치고, 악수를 나누고, 공장과 납품과 가축과 고용주의 수확에 대한 정보와 최신 뉴스들을 교환하는 교차로였다. 그곳은 겨울에도 늘 따뜻했다. 엘렌 엘이 직접 난로의 장작을 지켰기 때문이다. 또한 그곳에선 늘 좋은 냄새가 났다. 그것이 정오에 제공되는 단일 메뉴의 냄새든 장미 향이든. 좀 취했다고 장미 향 좋은 걸 모르는 건 아니니까. 라디오가 뉴스와 사랑 노래를 흘려 보내며 시간에 리듬을 부여했고, 그들이 한 잔의 커피나 술에 입술을 적시는 사이 삶은 제각각 흘러갔다. 가볍게, 너무나 가냘파서 한 손가락으로도 들어 올릴 수 있을 것만 같은 이상화된 여인 엘렌 엘만큼이나 가볍게.


(308-309)

그동안 그녀는 이 순간을 수천 가지 상황으로 상상해왔다. 낮에, 잠에, 저녁에, 겨울에, 정오에, 일요일에, 여름에. 하지만 그녀가 카페 밖에 있고 그가 안에 있는 이런 상황은 결코 상상하지 못했다. 카페 문을 미는 것이 그가 아닌 그녀가 되리라는 것은. 그녀는 자신이 달려가 그의 품에 안기면 그가 그녀를 안아 올려 빙 돌리고, 그 순간 모든 것이 폭발하여 찬란한 광휘와 환희가 분출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왜 항상 우리가 기대하는 일들은 우리가 그것을 더 이상 기대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것일까? 왜 모든 것이 결국 타이밍의 문제일까?


(402)

그녀가 명언을 남기고 떠났다. 세상엔 사람 수만큼의 새들이 있다. 그리고 사랑이란, 여러 사람이 같은 것을 나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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