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9)

스페인 내전은 제2차 세계대전과 뒤이은 냉전의 예고편이었다. 20세기의 모든 이념이 충돌해 참혹한 비극을 일으켰다. 독일 히틀러와 이탈리아 무솔리니는 프랑코에게 병력과 물자를 지원했고, 소련 스탈린은 세계 각국의 청년들이 결성한 반파시즘 국제여단에 무기와 자금을 제공했다. 프랑코는 1939 3월 마드리드와 발렌시아를 점령해 공화정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3만여 명의 정치적 반대자를 처형했다. 수십만 명의 공화주의자들이 가족과 함께 페레네산맥을 넘어 프랑스를 탈출했다. 내전에서 사망한 군인과 민간인의 수가 50만 명이 넘었다.

(31)


MAN에서 파악한 스페인의 역사를 요약해 본다. 역사를 몰라도 마드리드를 즐기는 데 큰 지장은 없지만 알면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베리아라는 지명과 관련이 있는 최초의 인간 집단 이베로부족은 3,600여 년 전 아프리카에서 바다를 건너거나 해변을 걸어서 들어왔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철기를 들고 남하한 셀따(켈트) 족이 이베로 부족과 결합해 오늘의 스페인 사람과 관련이 있는 셀띠베로(celtibero) 부족을 형성했다. 페니키아와 그리스 상인들이 찾아와 기술과 문화를 전해주었으며, 로마와 아프리카의 카르타고가 처절한 싸움을 벌인 끝에 로마 군대가 주요 지역을 점령했다. 라틴어로 이스빠니아라고 했던 이베리아반도는 기독교 세계에 포섭되었고 가스띠까, 까달루냐, 갈라시아 등 상이한 언어를 쓰는 열러 문화권이 무너진 5세기 이후에는 게르만의 일파인 서고트족이 토착민과 손잡고 똘레도에 왕국을 세웠다.


(40)

나는 MAN에서 이런 충고를 들었다. ‘스페인이 무엇인지 묻지 마. 마드리드에서, 바르셀로나에서, 스페인의 모든 도시에서 네가 보고 겪고 마주치는 것을 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스페인 땅에 있는 모든 것, 스페인 사람이 가진 모든 것, 그게 스페인이거든.’


(67)

나는 어둠의 그림들을 전쟁을 참상을 묘사한 판화와 같은 맥락에서 받아들였다. 인간 본성에 대한 절망과 세상에 대한 환멸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극소수 권력자들이 종교의 권위로 인간을 억압하고 세속의 권력으로 민중을 착취하며 국가의 대의를 앞세워 대학살을 저지른 시대였다. 괴물이 깨어난 시대를 살았던 그는 괴물을 다시 잠재우려면 잠들어버린 인간의 이성이 눈을 떠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 생각을 담은 그림으로 타인의 이성을 깨우려 했다. ‘어둠의 그림들을 보면서 예술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예술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예술이 무엇이라 하든, 괴물이 인간을 잡아먹었던 그 시대에 고야 같은 예술가 한 사람도 없었다면 예술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97-99)

마드리드가 어떤 도시라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스페인의 수도이지만 제일 잘사는 도시도 아니고 가장 아름다운 도시 또한 아니다. 하지만 이 도시가 무엇을 바라면서 어디로 나아가려 하는지는 분명했다. 총칼 앞에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수호했던 정치인의 이름을 국제공항에 걸었다. 폭력이 난무한 시대에 인간의 이성을 깨웠던 예술가를 잊지 않았다. 실패했지만 옳은 길을 가려 했던 지도자를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


(128)

바르셀로나 사람들한테 1714년은 우리의 1592년이나 1910년에 해당한다. 마드리드 편에서 펠리페 5세가 전쟁을 벌인 끝에 스페인 왕위 계승권을 지켰다고 했다. 전쟁의 발단은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군주였던 카를로스 2세한테 자식이 없다는 것이었다. 영토가 갈가리  찢어질지 모른다고 걱정한 그는 스페인 왕국의 통합을 유지한다는 조건을 걸고 프랑스 루이 14세의 손자 필리프 공작을 왕위 계승자로 지명해 스페인 왕 펠리페 5세로 옹립했다. 그러자 빈의 합스부르크 왕실과 독일 바이에른 왕실이 저마다의 연고를 내세워 스페인의 왕위가 자기네 것이라고 주장했다. 1701년 전쟁이 터지자, 해외 식민지 소유권과 노예무역 해상권을 두고 스페인과 대립하던 잉글랜드와 네덜란드가 끼어들었다. 중세 내내 벌어졌던 유럽 왕족과 귀족들의 영토쟁탈권이 스페인 땅에서 벌어진 것이다.


(167)

인간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 종교에도 명암이 있다. 종교는 삶의 도덕적 기초를 제공하며 자기중심성을 넘어서는 이타 행동을 격려한다. 그러나 종교는 또한 사람의 생각을 옭아매어 권력자가 민중을 착취하는 도구로 쓰인다. 신의 이름으로 타인을 증오하고 죽이도록 부추긴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모든 인간 집단에 종교가 있다. 어떤 진화적 이익이 있기에 호모 사피엔스는 종교 행위를 하는 것일까? 철학자와 생물학자들의 여러 설명을 들어보았지만, 확실한 답을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종교 없이도 우리가 도덕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을. 신앙심 없이도 이타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구원이나 다음 생 같은 것을 기대하지 않고도 삶에 의미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것을.


(229)

리스본 대성당은 작고 소박했다. 초라하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낡았다. 대주교가 있어서 간단히 대성당이라고 하는 그 집은 12세기 중반 레콩스키스타 직후 지었으니 리스본에서 제일 오래된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당시 건축 기술이나 국력으로는 그보다 크고 화려한 성당은 세울 수 없었을 것이다. 지진이 잦은 곳이라 자주 수리했고 수리할  때마다 유행하는 교회 건축양식을 덧붙였기 때문에 어떤 스타일이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건물은 로마네스크, 예배당 회랑은 고딕, 실내장식은 로코코 스타일이었다는데 대지진에 다 부서져 불타버렸다. 대성당은 두 가지가 특이했다. 첫째, 군사요새 같은 외관은 레콩키스타 시대의 전투적 분위기를 보여준다. 둘째, 중앙 설교대 위 넓은 공간에 성가대 나무 의자를 놓았다. 특별히 볼만한 게 없다는 걸 알았지만 가톨릭 국가의 수도를 방문한 여행자로서 예의를 지키려고 들렀다.


(246)

페소아의 정신은 외모보다 더 특이했다. 연금술, 신비주의, 마법, 비밀결사, 점성술에 심취했고, 셰익스피어와 나폴레옹 같은 역사 인물의 별자리 운세 모음집을 만들었으며, 바이런 스타일의 영국 낭만주의부터 보들레르가 대표하는 프랑스 상징주의와 엘리어트의 모더니즘까지 온갖 문예사조를 섭렵했다. 1935년 가을 복통과 고열 증세에 시달리다가 사망한 그는 영어로 된 책 네 권과 포르투갈어책 한 권밖에 출간하지 않았지만, 엄청난 양의 원고와 스케치를 남겼다. 포르투갈 국립국서관은 나무 트렁크에 들어 있었던 원고를 시민들에게 공개했고, 정부는 페소아의 관을 제로니무스 수도원으로 옮겼다.


(287)

부국강병(富國强兵)’을 목표로 설정한 유럽의 권력자들은 책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신과 교황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과 기술이 더 큰 부와 더 위력적인 무기와 더 강력한 권력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교회를 짓던 돈으로 도서관을 만들었다. 성서를 제작하던 정성으로 책을 모았다. 구원을 기도했던 절박함으로 교육과 학문 연구를 진흥했다. 신학을 과학으로 대체하고 책을 신의 자리에 올린 것이다. 주앙 5세도 그런 왕이었으니 도서관에 이름을 남을 자격이 충분하지 않겠는가.


(307)

여행지에서 무엇을 하는 게 좋은지는 각자의 취향에 달렸다.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객관적으로 더 고상하다든가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다. 책을 서점이 특별한 의미를 가진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책이 총포와 같았던시대는 지나갔다. 총포처럼 위력 있는 것은 새롭고 유용한 지식과 정보이지 문자 텍스트를 인쇄한 종이책이 아니다. 세상은 인터넷과 검색엔진의 시대를 지나 인공지능 시대에 들어섰다. 책은 지성의 상징이 아니며 숭배할 대상 또한 아니다. 책을 쓰는 일로 세상과 관계를 맺고 살아온 나는 책을 전성기가 지난 전통 미디어로 여긴다. 서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낯선 도시를 여행할 때는 통념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따르는 것이 좋다.


(336-337)

술을 마시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불법화할 수가 없는 마약이다. 어차피 마실 거라면 품격 있게 마시는 게 좋다. 음식과 궁합을 맞추고 철학과 문학의 향기를 입히면 최선이다. 와인은 그렇게 하기에 딱 맞는 술이다. 나도 그날 오후의 햇살에 잔을 비추어 보면서 포트와인을 마셨다. 내 인생에 제일 많이 마신 날이었지만 긴 시간 동안 마셔서 그런지 머리가 아프지는 않았다. 우버를 불러 숙소를 돌아오는데 운전사의 영어가 심상치 않아 물어보았더니 미국 사람이었다. 농구 관련 일로 뽀르투에 왔다가 너무 좋아서 눌러앉았고 뽀르투 여인과 혼인했으며 자녀도 있다고 했다. 이렇게 좋은 곳을 두고 왜 다들 미국 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그의 말에 공감했다.


(364-365)

한 가지 더, 중세와  근대 역사의 영향도 있었을 수 있다. 정복 전쟁을 일삼았던 포르투갈 왕국은 대항해 시대의 짧은 전성기를 지나 유럽의 변방 국가로 되돌아왔다. 공화주의 혁명을 이룬 뒤에는 살라자르의 장기독재를 겪었다. 그런 역사를 살아온 사람이라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힘을 다해 이웃과 싸우면서 남을 정복했지만, 승리는 오래가지 않았고 남은 것도 없다. 이기는 것보다는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 좋다. 이웃을 적으로 삼기보다는 서로 기댈 수 있는 친구로 만드는 게 낫지 않겠는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붐비는 거리에서도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는다. 친구나 사업 파트너를 만나면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충분히 들으면서 오래 이야기를 나눈다. 이방인에게도 경계하고 의심하는 표정이 아니라 여유롭게 환대하는 미소를 선사한다. 리스본과 뽀르투 사람들한테서 나는 그런 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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