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더 무브 - 올리버 색스 자서전
올리버 색스 지음, 이민아 옮김 / 알마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예전에 아빠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란 책을 읽은 적이 있어. 그 책은 정신질환이나 신경질환에 대한 임상 사례를 모은 책이었는데, 지은이의 글솜씨 때문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으로 기억한단다. 그 책의 지은이는 올리버 색스라는 사람이었어. 몇 년 전에 인터넷 서점에서 그가 별세했다면서 그를 기리면서 그의 저작들을 소개해 준 적이 있었고, 얼마 뒤에는 그의 자서전이 출간되었단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자서전을 읽고 별 다섯 개를 주어서 귀가 얇은 아빠는 한번 읽어보겠다고 생각하고 그 책을 샀단다. 그리고 한참 동안 안 읽고 책장에 잘 보관하고 있었단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눈이 맞아서 특별한 계기 없이 읽게 되었단다.

평생 의사로 산 사람인데 정말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을 했단다. 자서전이라서 어렸을 때부터의 이야기를 해주는데, 그 먼 옛날 이야기를 어쩜 그렇게 자세히 이야기를 할 수 있나 했는데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일기를 참 열심히 썼다고 하는구나. 무려 1000권을 넘게 썼다고 하니, 시간만 나면 일기를 쓰지 않고서는 그것이 가능한가 싶더구나. 그의 글이 괜히 읽기 쉬운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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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

열네 살 때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장이 현재 1,000권에 육박한다. 늘 들고 다니는 작은 수첩형 일기장에서 큰 책만 한 것까지 모양도 크기도 가지각색이다. 나는 꿈속이나 밤중에 생각이 떠오를 경우를 대비해 항상 머리맡에 공책을 놔두고, 수영장이나 호숫가, 해변에도 웬만하면 한 권 놔둔다. 수영은 생각이 굉장히 활발해지는 활동이어서 특히 완성된 문장이다 단락으로 떠오르면 곧바로 나가서 써놔야 하기 때문인데, 이렇게 글을 완성하는 경우가 드문 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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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어렸을 때 일기를 거의 쓰지 않고, 어른이 되어서 가끔씩 일기를 쓰는데, 지금이라도 꾸준히 일기를 써볼까, 하는 생각이 있지만 책도 읽어야 하고, 책 리뷰는 잔뜩 밀려 있고, 유튜브는 항상 아빠를 유혹하고 있으니 일기를 쓸 시간은 정말연초마다 올해는 매일 조금이라도 써야지 마음 먹고는 이내 일기를 펴지 않는 일이 대부분이란다. 그렇게 어려운 일기를 1000권이나 썼다고 하니 이 사람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로구나.


1.

파란색 책 표지를 한 장 넘기면 모터사이클에 앉아 있는, 그의 젊은 시절의 사진이 한 장 있단다. 의사로써 평생을 살았던 그가 진료하는 사진이 아닌 이런 사진을 시작부터 넣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모터사이클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겠더구나. 그는 어렸을 때부터 모터사이클 광이었다고 하더구나. 사고도 여러 번 나서 위험한 경우가 있었지만, 모터사이클을 포기할 수 없었대. 그렇게 남성미 철철 넘치는 그였지만, 의외의 사실에 약간 놀랬단다. 그는 동성연애자였어. 그런 사실까지 스스럼 없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멋지더구나.

올리버의 부모님 두 분은 모두 의사였기에 그 또한 의사의 길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 옥스퍼드 대학교 의예과에 진학을 했단다. 대학 시절이라고 하면 혈기왕성하던 시기잖니. 하지만 그는 동성연애자. 그가 대학생이던 1950년대 영국은 동성연애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어. 그렇다 보니 그는 자신과 같은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았지. 그래서 그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까지 가곤 했었대. 동성연애라는 것은 자신이 그러고 싶어하는 것보다 그렇게 태어난 것이 더 크다고 알고 있는데, 그런 면에서 보면 그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더구나. 진정 사랑하고 싶은데 쉽지 않은 상황과 환경.

1958년 그는 미들색스 병원이라는 곳에서 인턴을 시작했고, 27살 살에 공군에 입대하기 위해 영국을 떠나 캐나다 몬트리올에 오게 되었어. 공군 입대가 의무 사항은 아니었나 봐. 공군 입대는 하지 않고 그는 캐나다에 와서 세 달 동안 여행을 했고, 미국으로 넘어가 미국 서부 여행도 했단다. 그 여행을 마치고는 미국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했다고 하는구나. 그가 레지던트로서 병원에서는 열심히 공부하고 일했지만, 병원 밖에 생활은 그야말로 자유를 누렸단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여행을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해서 역도 대회도 나가곤 했다는구나. 물론 그는 늘 사랑이 고팠고,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지만 그 남자는 이성애자로 올리버를 떠나게 되어 아파하기도 했어. 그런 힘듦 때문인지 그는 마약에 빠져 치료를 받기도 했어.


2.

이런 어려운 점들이 있었지만 신경과 의사로써 그는 실력이 점점 쌓여갔단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진료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출간하려고 했어. 지금이야 의사들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책들을 출간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의사가 책을 쓰면 좋지 않은 평과 좋지 않은 시선을 받았단다. 어느 정도냐면 의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책 출간한 것 때문에 올리버가 의사를 못하게 될까 봐 걱정하실 정도였대.

그런데 올리버의 첫 번째 책 <편두통>은 전문가와 일반인들에게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아서 그의 이름을 서서히 알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어. 그는 의료 연구에서 좋은 성과를 내기 시작했단다. 근육이 마비되어 혼자서는 움직이지도 못하는 뇌염 환자들에게 마약 성분 중에 하나인 엘도파가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밝혀냈단다. 하지만 그 효과가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일시적으로 정상이 되었다가 다시 뇌염 증상이 재발하게 되었어. 이 현상은 설명하기가 어려웠지만, 그 사례에 대한 내용을 <깨어남>이라는 제목을 책을 썼는데 이 책은 공존의 히트를 치면서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단다.

이 책으로 상도 타고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졌고, 나중에는 연극, 오페라도로 각색이 되었고, 이 책이 나온 지 한참 지난 다음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는구나. 당대 명배우인 로버트 드 니로,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을 맡아 영화도 흥행을 했다고 하는구나. 영화의 원제목은 <깨어남(Awakenings)>였는데, 우리나라에서 개봉할 때는 <사랑의 기적>이라는 제목으로 개봉을 했단다. 우리나라 제목이 더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이 영화에서 로빈 윌리엄스가 의사 역할을 했어. 그러니까 올리버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야. 올리버가 이 영화에 자문도 했는데 로빈 윌리엄스의 노력에 감동받았던 것 같구나. 로빈 윌리엄스는 아빠도 무척 좋아한 배우인데, 그의 충격적인 자살 소식에 놀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구나.

그가 이렇게 의사로서 작가로서 성공을 하고 있지만, 그의 사랑 전선은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구나. 이 자서전에는 그의 사랑에 대한 어려움도 솔직히 적혀 있단다. 그는 마흔 살 때 영국에서 우연히 만난 미국 청년과 마지막 사랑을 하고 그 이후 35년간 잠자리를 같이 한 이가 없다고 이야기도 담담히 했단다. 담담히 했지만 그로서는 무척 힘들었던 시간이 아닐까 싶더구나. 그는 <깨어남> 성공 이후 의사 일과 작가 일을 병행하였단다. 병의 사례를 모은 <아내를 모자로 생각한 남자>도 큰 인기를 얻게 되었어. 그는 그 이후에는 후천성 색맹 환자들에 대한 연구, 뇌와 의식의 재발견 등 많은 성과를 냈고, 많은 책들도 냈단다. 나중에 그런 업적들을 인정 받아서 대영제국 커맨더 훈장을 받기도 했어.

그런 그에게도 나이가 들면서 불행이 찾아왔단다. 2009년 눈에 흑색 종양, 그러니까 암이 생겼어. 치료를 하긴 했지만 오른쪽 눈을 실명하게 되었단다. 이후 인공무릎관절수술, 좌골신경통 등의 병을 겪으면서 그는 계속된 고통으로 자살까지 생각했었대. 자서전이니까 그의 죽음까지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그는 결국 2015년 간까지 전이된 암으로 향년 82세로 타계했다고 하는구나.


3.

아빠가 올리버 자신을 중심으로 짧게 이야기하다 보니 그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는데 그는 가족들과도 끈끈한 사랑을 유지했단다. 그리고 많은 편지들을 주고 받았어. 특히 그의 부모님과 세 형들그의 어머니가 좀 일찍 돌아가셔서 안타까웠지만 말이야. 그리고 레니 이모와도 사이가 좋았단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레니 이모와 편지도 많이 주고 받았어. 그가 일기도 많이 썼지만, 편지도 참 많이 썼다고 하는구나. 자기 인생의 큰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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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6)

편지 역시 내 인생에서 큰 자리를 차지한다. 편지는 쓰는 것도 받는 것도 다 좋아한다. 편지는 사람들, 중요한 사람들과 교류하는 매개체다. 글쓰기가 잘 안 될 때도 편지 쓰기는 무리 없이 잘되는 경우가 많다. ‘이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든지 간에 말이다. 나는 내가 받은 모든 편지를 보관할 뿐 아니라 내가 쓴 편지까지 사본으로 보관한다. 내 인생의 많은 부분(가령 처음 미국에 와서 많은 중대한 사건을 겪었던 1960년대)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위해 오래된 편지들을 다시 읽노라니, 이 편지들이 내 인생의 보물임을 새삼 깨닫는다. 잘못된 기억과 변덕스러운 기분으로 착각했던 온갖 오류를 바로잡아주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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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소식을 전하고자 하면 바로 전화를 하기 때문에 편지를 거의 쓰지 않는데, 좀 낭만이 사라진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구나. 일기와 마찬가지로 바쁜 이 시대에 편지 쓸 시간이 어디 있겠니 ㅎㅎ 그래서 아빠가 꼼수로 생각한 것이 독후감을 편지 형식으로 쓰는 것이란다일기는 쓰지 못하지만 그래도 편지는 자주 쓰는 편이라고 생각해야겠다^^ 그의 글쓰기 예찬에 깊게 공감하면서 오늘은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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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잘될 때는 만족감과 희열을 가져다준다. 그 어떤 것에서도 얻지 못할 기쁨이다. 글쓰기는 주제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나를 어딘가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 잡념이나 근심걱정 다 잊고, 아니 시간의 흐름조차 잊은 채 오로지 글쓰기 행위에 몰입하는 곳으로, 좀처럼 얻기 힘든 그 황홀한 경지에 들어서면 그야말로 쉼 없이 써내려간다. 그러다 종이가 바닥나면 그제야 깨닫는다. 날이 저물도록, 하루 온종일 멈추지 않고 글을 쓰고 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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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어릴 적 2차 세계대전 중에 기숙학교로 보내진 나는 무력하게 갇혀 있다는 느낌에 움직임과 힘을, 마음껏 움직여 다닐 수 있는 초자연적인 힘을 갈망했다.

책의 끝 문장: 처음 글쓰기를 시작하던 거의 70년 전의 그날 느꼈던 그 마음처럼.


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장난이 아니라고. 개별 학생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그 학생의 뛰어난 점이 보였을 뿐이고, 내가 모두에게 A를 준 것은 무슨 얼치기 평등주의를 실현한 것이 아니라 각 학생 고유의 두드러지는 점에 점수를 준 것이라고. 나는 어떤 학생이건 점수나 시험 성적으로 단정 지을 수 없다고 느꼈다. 어떤 환자든 그렇게 할 수 없듯이. 그 학생의 다양한 면면을 접해보지 않은 내가 어떻게 평가를 내릴 수 있겠는가? 그들의 공감 능력과 배려심, 책임감과 판단력 같은 점수를 매길 수 없는 자질은 또 무엇으로 평가한단 말인가? - P227

나는 글쓰기 행위를 통해서 글을 쓰는 동시에 생각을 발견하는 쪽인 듯하다. 어쩌다 깔끔하게 딱 완성되는 글도 있지만 그보다는 수차례 다듬고 잘라내야 하는 경우가 더 많은데, 같은 생각을 여러 가지로 표현해보는 내 스타일 탓인 듯하다. 글을 쓰다 보면 내 안에 숨어 있던 생각들이 중구난방으로 튀어나와 문장 중간에서 글의 주제와 결합해 발전하곤 한다. 그런 경우에는 괄호 안에 넣거나 종속절로 덧붙여 때로는 문장 하나가 단락 하나 길이가 되기도 한다. 형용사 여섯 개가 쌓여 더 적확한 문장이 될 수 있는데 다 쳐내고 하나만 쓰는 것은 결코 내 방식이 아니다. 내가 느끼는 세계는 온통 촘촘하고 빽빽하기만 하다. 이것을 글에 다 담으려다 보니(클리퍼드 거츠(1926~2006, 미국의 인류학자)가 말하는) "두툼한 기술(thick description)"이 되는 것이다. 그러자면 글의 짜임새에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쇄도하는 생각들에 도취해 올바른 구성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는 것이다. - P236

이처럼 뇌의 여러 영역에서 두루 일어나는 신경세포 발화의 상호작용과 동기화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뇌 지도들 간의 무수한 연결점(시냅스 synapse)이다. 양방향으로 신호를 전달하도록 연결된 시냅스는 수많은 신경섬유로 이루어지는데 많으면 수백만 가닥이 되기도 한다. 어떤 의자를 손으로 만졌을 때 오는 자극이 한 세트의 지도에 작용한다면, 의자를 눈으로 보았을 때 오는 자극은 다른 세트에 작용한다. 한 의자의 지각 처리 과정에서 이들 지도 세트 사이에서 신호 재입력이 일어난다. - P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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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6-29 07:1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올리브 색스 이 분이 글을 잘 쓰는 이유가 있었군요. 천권이 넘는 일기라니 진짜 대단하네요. 서양에서도 동성애자들이 살아가는게 참 쉽지 않은듯한데 우리나라는 더하겠죠. 그의 글을 보면 그는 정말 사랑이 많았던 사람이었는데 개인적인 삶도 좀 더 행복했었더라면 안타깝네요

bookholic 2022-06-29 19:03   좋아요 2 | URL
네, 소수자로 살아가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올리버 색스는 후회없는, 열정 넘치는 삶을 사신 것 같아요..

얄라알라 2022-06-29 20: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원없이ㅡ살아보다/저는 올리버.색스.떠올리면.그표현이.딱 떠올라요

bookholic 2022-06-30 00:07   좋아요 2 | URL
네, 딱 좋은 표현인 것 같아요..^^
그의 그런 삶에 대한 열정을 배우고 싶어요... 체력이 딸리지만...^^

scott 2022-07-02 21: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리버 색스 박사님의 열정은 대단하죠
쪽잠을 자면서 쉼없이 환자 돌보며
방대한 양의 논문 글도 쓰다 가신
환자로 대하지 않고 진정으로 인간으로 존중 해 주었던 것 같습니다. ^^

bookholic 2022-07-03 20:40   좋아요 1 | URL
정말 대단하시고, 자신의 삶과 다른 사람의 삶을 모두 사랑하셨던 분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