썬킴의 거침없는 세계사 - 세계대전부터 태평양 전쟁, 중국 근대사까지 전쟁으로 읽는 역사 이야기 썬킴의 거침없는 역사
썬킴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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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작년에 우연히 <썬킴의 세계사 완전정복>이라는 팟캐스트를 들었단다. 세계사를 재미있게 이야기해주어서 출퇴근하면서 즐겨 듣곤 했단다. 나중에 그 이야기가 책으로도 출간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읽게 되었단다. 재미있게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져 가는 기억을 다시 새겨보고자 책을 읽었단다. 작년에 들었던 팟캐스트의 잊혀져 가는 기억들이 다시 기억났고, 책을 읽다 보면 지은이이자 팻캐스트의 진행자인 썬킴의 음성 지원이 되는 듯 했단다.

아빠가 어렸을 때는 역사를 무척 싫어했다고 했잖아. 어른이 되어 역사를 무척 좋아하게 되었는데, 굳은 뇌에 역사의 지식을 넣기가 쉽지 않구나.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를 너희들에게 해 주면 좋을 텐데 말이야. 썬킴 만큼은 아니지만 말이야.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너희들에게 이야기를 해주어야겠다고, 메모를 꼼꼼히 하면서 읽었더니 메모가 좀 많네. 이걸 다 편지로 쓰다 보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기도 하고이 메모를 또 줄여 이야기를 하려면 줄이는 데 또 시간이 필요할 것 같고아예 안 하자니 열심히 메모 적은 것이 아까울 것 같고. 일단 시작은 해볼게쓰다가 지치면 관두지,


1.

이 책은 거침없는 세계사라고 하지만, 고대부터 시작하는 그런 일반적인 세계사는 아니고, 굵직굵직한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주는 그런 책이란다. 먼저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단다.

먼저 1차 세계대전교과서에는 1차 세계대전이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태자인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가 암살되면서 시작되었다고 적혀 있단다. (사라예보 1914) 그렇다면 왜 이것이 세계대전까지 번졌는가. 그것을 알려면 그로부터 100년 전 상황부터 알아야 한다고 하더구나.

때는 1815. 당시 독일은 38개국의 연합체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어. 그 중에 가장 센 나라가 오스트리아, 두 번째가 프로이센이라고 했어. 당시 프로이센의 왕은 빌헬름 4세였는데, 그는 비스마르크라는 사람을 중용하였고, 독일 연방회의 대사로 보냈다고 하는구나. (1851년이었어) 연방회의에서 이상한 룰이 있었대. 가장 힘이 센 나라인 오스트리아의 대사만이 회의장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다고 했는데, 그 회의장에서 프로이센의 대사로 온 비스마르크도 같이 맞담배를 폈다고 하는구나. 이에 오스트리아는 강력하게 항의를 했고, 결국 비스마르크는 해고를 당하게 되었다는구나. 담배 한 번 피고 일자리까지 잃다니그 정도로 오스트리아의 힘이 셌던 모양이구나.

빌헬름 4세가 죽고 나서 빌헬름 1세가 왕이 되었는데, 그는 비스마르크를 다시 중용하여 수상에 임명하였단다. 비스마르크는 철과 피를 중시하는 정책을 펴서 역사는 그를 철혈재상이라고 불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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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강력한 프로이센 건설을 원하는 국왕의 의중을 파악한 비스마르크는 1862 9월 프로이센 의회에서 그 유명한 연설을 합니다. “프로이센은 자유주의, 민주주의가 아닌 무력을 더 중요시해야 한다. 의회의 다수결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독일의 통일은 철과 피를 통해서만 이룩할 수 있다라는 연설이었습니다. 여기서 철은 군대를 말하고 피는 군사의 희생을 일컫습니다. 이후 프로이센 국민들은 비스마르크를 철혈재상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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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마르크의 이런 정책은 오스트리아의 비위를 상하게 했고,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에 선전포고를 했단다. 하지만 이 전쟁에서 예상과 달리 프로이센이 우세하게 이끌어 갔어. 그 동안에 내실을 다지며 국력을 키워 왔던 거지. 결국 오스트리아는 평화 협정을 제안했어. 거의 패배를 인정한 거나 다름 없었지. 이젠 프로이센이 넘버 원이 된 거야.

이 즈음 스페인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나서 왕이 프랑스로 도망을 갔고, 쿠데타 세력은 스페인의 왕을 빌헬름 1세의 사촌으로 하자고 했어. 이 문제로 인해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갈등이 심해졌단다. 이 갈등을 해결하겠다고 프랑스 대사가 빌헬름 1세를 찾아왔는데 오히려 무례한 행동을 해서 양국 간의 갈등은 더 심해졌어.

결국 프랑스에서 선전 포고를 했단다. (1870 7 19일이었어) 당시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강한 나라 중 하나였는데, 이 전쟁에서 프로이센에게 크게 패하고 만단다. 1870 9월 파리는 완전 봉쇄가 되었고, 1871년 프로이센은 전쟁에서 승리를 하고 통일 독일을 선언했단다. 프랑스를 고립시키기 위해 독일은 오스트리아, 러시아와 동맹을 맺었어.

1888년 빌헬름 1세가 죽고 빌헬름 2세가 왕이 되었어. 빌헬름 2세는 해외 식민지를 확대하는 정책을 폈어. 그러기 위해서 해군력을 키웠지. 그 시절은 유럽 열강들이 해외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제국주의 시대였단다. 독일도 뒤늦게 그 제국주의 바람에 뛰어든 것이지. 이미 해외에는 영국이나 프랑스 등 유럽 열강들이 대부분 식민지를 만들었고, 특히 영국은 강한 해군을 가지고 있었어.

독일이 해군력을 강화하자 영국과 부닥칠 수밖에 없었어. 그래서 영국은 프랑스와 동맹을 맺게 된단다. 이런 빌헬름 2세의 정책에 반대한 이가 있으니 바로 비스마르크였고, 빌헬름 2세는 이런 비스마르크를 해고해 버렸단다.(1890) 빌헬름 2세는 인재를 쓰는데 서투른 사람인 것 같구나. 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동맹도 깨버렸어. 그러자 러시아는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독일을 압박했어. 어찌 되었던 독일은 해외 식민지를 탈취하려고 했고, 몇몇 남은 주인 없는 땅 중에 중국의 산둥반도의 칭다오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단다. 그렇게 칭다오를 점령한 독일사람들이 칭다오에서 맥주를 만들게 되었는데, 그것이 오늘날까지 유명한 칭다오 맥주가 되었단다.

….

다시 1차 세계대전의 직접적 원인이 된 발칸반도로 가보자꾸나. 보스니아와 세르비아는 모두 세르비아계 민족으로 된 나라란다. 보스니아와 세르비아 모두 오스트리아의 식민지였어. 그런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보스니아 사라예보에 방문을 했는데, 세르비아계 보스니아 청년 가브릴로 프린지프가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저격하여 죽였어. 어찌 보면 보스니아의 독립운동의 하나라고 할 수 있었지그런데 오스트리아는 보스니아가 아닌 세르비아 정부에 이 사건을 두고 항의 했어. 보스니아 청년이긴 하지만 세르비아계 청년이었다는 이유로세르비아는 넓게 보면 슬라브계인데 슬라브계의 거대 국가 러시아가 이 사건에 간섭을 하면서 세르비아를 후원해주었어. 오스트리아의 뒤에는 독일이 있었어.

이 사건은 이제 독일과 오스트리아 對 러시아와 세르비아의 대립을 번졌단다. 독일의 빌헬름 2세는 결국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했단다. (1914 8 1일이었어.) 당시 러시아와 프랑스가 동맹을 맺고 있다고 했잖아. 그래서 독일은 프랑스와 러시아의 협공을 받게 되었단다. 독일의 참모총장 슐리펜은 이 협공에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슐리펜 계획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러시아가 전쟁준비를 하는 7주 동안 먼저 프랑스를 공격해서 이기고 그 다음 러시아를 공격하면 된다는 작전이었어. 그런데 실전은 늘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지.

프랑스와 전쟁은 장기화되면서 독일은 오스트리아에 지원 요청을 했단다. 여기에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있던 영국도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어. 이로써 독일은 서부전선에서 프랑스 영국과 싸우고, 동부전선에서는 러시아와 싸우게 되었단다. 군대가 양쪽으로 분산될 수밖에 없었지. 서부전전의 경우 파이 인근 마른강에서 참호전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 참호전은 무려 4년 동안 이어졌다고 하는구나. 양쪽 진영에서 판 참호는 길게 1000km나 전선을 형성했대물론 많은 사람이 죽어나갔지. 그 와중에도 감동적인 일도 있었는데, 1914년 크리스마스에 일어난 일이 그런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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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1차 대전이 발발한 1914년도 7월에서 시간이 흘러 어느 12 24일 크리스마스가 되었어요. 바로 이때 ‘1차 대전 전장의 기적이라 불리는 일이 일어납니다. 어김없이 총격적인 끝난 24일의 밤, 독일군 참호 안에서 조용히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왔어요. 병사들이 부르기 시작한 겁니다. 노래를 들은 반대 진영의 프랑스 영국군도 맞받아 캐럴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서로의 참호 속에서 참혹한 전쟁 중에도 그들에게 크리스마스가 온 것입니다. 누가 약속한 것도 아닌데 그들은 마치 휴전한 듯이 각자의 진영에서 무인지대로 걸어 나와 서로 악수하고 포옹하고, 사진도 찍고 음식도 나눠 먹었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만큼은 서로 싸우지 말자고 하면서요. 그야말로 크리스마스가 가져다준 기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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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 대전은 그 이전의 전쟁과 다른 전쟁의 양상으로 신무기 경연장이기도 했다는구나. 탱크, 전투기, 전투용 잠수함이 이때 처음 등장했다고 하는데 다들 무서운 전쟁 무기로구나. 1915년 독일 U보트가 영국 여객선을 격침시키는 사건이 일어났단다. 아무리 전쟁이라도 민간인이 많이 타고 있는 배를 공격하는 것은 정말 비열한 일이로구나. 그런데 이 배에 미국인 128명도 타고 있다가 죽었대. 이 일로 미국도 1차세계대전에 참전하려고 했으나, 독일이 뒤늦게 사과를 해서 참전은 이뤄지지 않았단다.

1차 세계 대전의 동부 전선에서는 변수가 생겼어.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면서 러시아가 동부전선에 철수한 거야. 이제 독일은 모든 화력을 서부전선에 올인할 수 있었단다. U보트를 이용하여 미국 선박에 피해를 입혔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미국이 드디어 전쟁에 참전했단다. 이후 독일은 점점 밀렸어. 그러자 독일 내부 여론도 안 좋아지고, 킬에서 반란이 일어나 빌헬름 2세가 네덜란드로 도망을 갔단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바이마르 공화국을 세우고 항복을 하면서 1차 세계 대전이 끝이 났단다. (1918 11 11일이었어.)

1919 1 18일 베르사유 궁전에서 파리강화회의가 열렸는데, 독일의 전쟁 배상에 대한 회의였단다. 독일은 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엄청난 빚더미에 앉게 되었어.


2.

자 이제 2차 세계대전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게. 2차 세계대전 하면 빼 놓을 수 없는 인물 히틀러. 히틀러는 1889년 독일이 아닌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단다. 어린 시절에 미술에 흥미를 느렸고, 학교에서는 건축학을 전공했단다. 건축 공부를 더 하기 위해 독일로 이사를 갔고, 1차 세계대전 중 서부전선에 참전을 하기도 했단다. 전쟁이 끝나고 바이마르공화국이 세워졌을 때 히틀러는 우연히 독일 노동자당에 입당을 하게 되었어. 그 정당 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연설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연설로 인해 당내 인기가 급상승했단다.

그는 당의 입지가 커지면서 정상 이름을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 줄여서 나치(NAZI)로 이름을 바꾸었단다. 그리고 1923 11 8일 쿠데타를 계획해서 정권을 잡으려고 했지만. 실패 후 체포되었단다. 재판에서 그는 명연설을 하였고, 국민들은 열광하였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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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93)

무슨 의도로 폭동과 쿠데타를 일으켰는지에 대한 질문에 히틀러는 재판정에서 특유의 연설을 시작했어요. ‘나는 개인의 야망을 위해 쿠데타를 한 것이 아니다. 지금 독일을 보라. 전쟁에서 패한 후 나라는 무너졌다. 독일 국민들은 먹을 것이 없어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고 사는데 정치인이란 것들은 서로 권력 다툼만 하고 있다. 독일은 전쟁 전보다 더 혼란스러운 상황이 됐다. 나는 독일을 다시 위대한 독일로 만들고 싶어 봉기한 것이다. 독일 국민들을 위해 일어선 것이다!’라고 외쳤습니다. 이런 히틀러 법정 연설은 뉴스가 되어 독일 전역에 알려졌습니다. 당연히 독일 국민들은 열광했지요. 가뜩이나 패배감에 사로잡혀 살던 독일인들에게 구세주가 나타난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도대체 히틀러가 누구야? 이런 사람이 국가 지도자가 돼야지!’라며 열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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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국민들의 열광에 그는 5년형만 받고 그것도 13개월만에 가석방되었단다. 그 시절 세계는 대공황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히틀러는 이 어지러운 세상을 틈타 인기가 급상승했어. 결국 선거를 통해 1933 1월 총리가 되었단다. 히틀러는 총리가 되자마자 법률을 개정하여 히틀러와 나치당이 전권을 잡을 수 있게 했어. 그 전권을 이용하여 히틀러는 나치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은 불법정당으로 규정했어. 그러다가 대통령이 죽고 나자, 히틀러는 대통령과 총리를 한꺼번에 맡는 총통이라는 직에 오르게 된단다.

총통이 된 히틀러는 베르사유 조약을 파기하고 독일 재무장을 선언했단다. 1938년에는 오스트리아에 합병을 제안했는데, 오스트리아는 거절했고 독일은 무력 침공을 통해 오스트리아를 합병했다는구나. 그 다음은 체코를 눈독 들였어. 그러자 영국, 프랑스가 가만 볼 수 없어서 독일 뮌헨에 와서 독일과 협상을 했단다. 이게 그 유명한 뮌헨 협정인데, 이 협정을 통해 체코의 일부를 독일에 편입하기로 했어. 일단 그렇게나마 독일을 잠재우려고 했지. 그런데 체코 땅을 가지고 협상하는데 정작 당사자는 없다니이게 말이 되는가.. 영국과 프랑스도 똑같이 약소국 얕보는 강대국이었던 거야. 하지만 6개월 뒤 독일은 이 뮌헨 협정을 깨고 체코를 침공하게 된단다. 다음 타겟은 폴란드였어.

1차 세계 대전 이후 폴란드 땅이 된 땅을 돌려달라고 했어. 폴란드에서 이를 거부하자, 독일은 침공하게 되었단다. 이 때가 1937 9 1일로 2차 세계 대전의 시작한 날이었어. 그리고 독일은 뒤로 소련의 스탈린과 비밀협상을 했어. 폴란드를 둘이 반반 나눠 갖자고 했고 독소불가침 조약을 맺었어. 다음은 독일은 눈을 서쪽으로 돌려 프랑스를 공격했어. 프랑스는 마지노선이라는 방어선을 구축했는데 지하요새로 만들어진 이 마지노선은 길이가 무려 800km였어. 그런데 중간에 약 7km에 다다르는 아르덴 숲은 지하요새를 안 만들었어. 어차피 울창한 아르덴 숲이 막아줄 거라고 생각했으니 말이야. 그런데 독일 기계화 부대는 이 아르덴 숲을 뚫어 파리까지 진격하여 입성하였단다. 이 때는 1940 6 14일이었어. 그래서 프랑스는 보르도에 임시 수도를 정했어.

1940 6 22일 독일은 이번에는 소련까지 침공했어. 역사는 이 전쟁을 독소 전쟁이라고 했어. 독일은 모스크바 코 앞까지 진격을 했고, 독일과 소련의 최대의 전투가 스탈린그라드에서 이루어졌어. 1942 7 17일부터 1943 2 2일까지 이어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약 200만명이 희생하면서 독일은 지고 말았단다. 그 동안 세력을 확장하던 독일은 큰 타격을 입게 되었어. 연합군은 1944 6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성공하면서, 완전히 기선을 잡았지.

독일은 1944 12월 아르덴 숲으로 마지막 반격을 했는데, 날씨마저 안 도와줘 큰 패배를 했단다. 동부전선에서는 소련군이 진군하여 베를린까지 점령하게 되었단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던 히틀러는 1945 4 30일 아내 에바 브라운과 동반 자살로 삶을 마감했단다. 이로써 오랫동안 유럽 대륙을 피로 물들였던 전쟁이 일단락되었어.


3.

세계 2차 대전은 유럽뿐만 아니라 태평양 일대에서도 일어났단다. 빌런은 일본이었어. 아시아 여러 나라를 불법 점령한 일본은 1941 12 7일 미국 하와이에 있는 진주만을 공격하면서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었어.

이 전쟁을 이야기하기 전에 일본의 근대사에 대해 잠깐 이야기해보자꾸나. 일본은 상징적 존재인 일왕이라고 부르는 덴노가 있고, 실질적 왕인 쇼군이 있었단다. 1930년은 에도막부라는 나라가 있었어. 1853년 미국은 일본에 개항을 요구를 했고, 1854년 불평등 조약인 미일화친조약이 이루어졌어. 이 불평등 조약으로 사무라이들이 격분했단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무라이는 요시다 쇼인이라는 사람인데 요시다 쇼인은 서양을 물리치자고 하면서 정한론을 주장했단다. 정한론이란 한반도를 정복하자는 주장이었어. 그러면서 독도도 정벌하자고 주장했어.

요시다 쇼인은 힘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서 학교도 세워서 사무라이를 양성했어. 이 사람의 수제자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 유명한 사람이 바로 이토 히토부미란다. 조선총독부 통감이었고 안중근 의사에 저격 당한 사람너희들도 알고 그 나쁜 사람 맞아요시다 쇼인은 너무 급진적어서 29살에 처형당하고 말았어. 그가 처형 당하자 제자들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메이지 유신이라는 개혁 운동을 했단다.

메이지 유신이라고 부른 이유는 당시 덴노의 이름이 메이지 덴노였기 때문이야.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헌법을 만들기도 했어. 이 제자들은 요시다 쇼인을 기리기 위해 조슈 신사를 만들었는데, 이 조슈 신사는 오늘날 그 악명 높은 야스쿠니 신사가 되었단다. 그들은 권력을 잡고 첫 총리가 된 인물이 바로 이토 히로부미였단다. 그는 일본을 서구화시키고 서구열강을 따라 하기 시작했단다. 이때 만들어진 습성이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 같구나. 서구 열강들만 따라 하려는 습성 말이야. 그렇게 키운 국력은 일본은 요시다 쇼인의 뜻에 따라 조선을 침략했단다. 조선땅에서 이루어진 청일전쟁에서 압승한 일본은 시모노셰키 조약으로 중국의 랴오둥 반도까지 차지하게 되었어. 러시아의 개입으로 다시 중국에 돌려주어야 했지만 말이야. 그런데 이 일이 친러파인 명성황후가 개입되었다고 생각한 일본은 명성황후까지 죽였단다.

그리고 러시아까지 공격을 했는데,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일본이 러시아를 무찔렀단다. 일본의 뒤에는 미국의 지원이 있었단다. 러일 전쟁 이후 미국과 일본은 가쓰라 태프트 조약을 맺었고, 이 조약으로 미국은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를 지들 맘대로 인정했단다. 이 일이 있고 1905년 을사늑약으로 조선의 외교권은 일본에 넘어가게 된단다.

이후 무력으로 승승장구하던 일본은 1923년 관동대지진과 1930년 즈음 세계 대공황으로 위기가 찾아왔어. 이 위기를 탈출하겠다고 외국에 식민지를 확대를 하였고, 중일전쟁을 벌이게 되었어. 1931년 만주 침략하여 만주국을 세우고, 중국을 잇달아 공격하였어. 당시 중국의 수도는 난징이었는데, 예상보다 난징 정복이 오래 걸렸어. 1937년이 되어서야 난징을 점령하고 무차별 난징시민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단다.

유럽에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나서는 일본도 더욱 전쟁광이 되어 인도차이나를 점령하였어. 이런 일본의 확장에 미국은 불만을 나타내고 일본에 지원하던 석유 공급을 끊었단다. 이에 1941년 일본은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였고 미국과 전쟁에 돌입한 것이란다. 미국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어. 사실 일본이 당시 거대강국으로 성장한 미국을 공격한 것이 무모한 짓 아니었나 싶구나. 미국은 항공모함을 이용하여 도쿄를 공습했고, 일본도 미드웨이에 있는 미국의 항공모함을 공격했어. 하지만 일본의 이 작전은 사전에 들통나 미국이 대비를 하여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의 항공모함 4척이 모두 부서지는 대패를 했단다.

이후 시계추는 미국으로 기울어졌고, 1945년 도쿄 대공습으로 일본은 폐허 직전까지 갔어. 하지만 일본은 항복하지 않고 버텼대. 천황제를 유지하려면 소련이 개입해야 했는데, 소련이 개입할 때까지 버티다가 결국 핵폭탄까지 얻어맞게 되었단다. 소련이 태평양 전쟁 마지막에 개입을 하면서, 전쟁이 끝난 후 소련이 자신의 공을 내세우면서 한반도에 진격하게 되는, 이것이 한반도를 둘로 나뉘게 되는 원인이 되었으니, 남북 분단의 원인을 따라가보면 일본이 큰 원인이었던 거구나.


4.

마지막으로 중국의 근현대사를 짧게 이야기하고 마치련다. 1700년대 중반 영국은 청나라로부터 홍차를 대량 수입하게 되고, 이 불균형 무역을 항의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하지만, 청나라는 이를 외면하자, 보복성으로 영국은 중국으로 아편을 밀수출하기 시작했단다. 아편은 한번 중독되면 끊기 어려운 아주 무서운 마약이었단다. 아편의 밀수입이 점점 늘어나자 청나라 정부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강경 대응에 나섰어. 영국도 이에 지지 않고 무력으로 맞대응하여 홍콩을 점령했단다. 이렇게 영국과 청나라 사이에 소위 아편전쟁이 두 번에 걸쳐 일어났단다. 이 전쟁에서 패배한 청나라는 국력이 많이 쇠퇴했단다.

이 즈음인 1866년 쑨원이라는 사람이 태어났는데 이 사람이 커서 1894년 흥중회라는 혁명단체를 만들어 무장봉기를 했는데 실패했다. 그래서 일본, 미국, 영국 등지로 피신을 갔다고 하는구나.  청나라는 무너지고 있었고, 곳곳에서 민중봉기가 계속 일어났다고 하는구나. 1911 10월 신해혁명이 시작되면서 그 해 말 쑨원이 다시 귀국을 하여 정권을 잡게 되었대. 1912년 임시 대총통이 된 쑨원은 중화민국이라는 공화국을 만들었단다.

하지만 아직 북쪽에는 청나라가 있었어. 당시 황제는 어린 푸이라는 이가 황제였는데 실제는 위안스카이가 실세였단다. 쑨원은 청나라까지 중화민국에 끌어들이기 위해 위안스카이를 만났고, 위안스타이에게 총통을 제안하면서 청나라를 중화민국에 끌어들이려고 했어. 그래서 중국 전체가 공화국이 될 수 있으니 말이야. 하지만 쑨원이 위안스카이의 검은 속마음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 같구나. 위안스카이는 일단 쑨원의 제안을 받아들여 푸이를 황제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중국 전체 공화국의 총통이 되었단다.

총통이 된 위안스카이는 곧바로 쑨원을 배신하고 쑨원을 숙청하여 쑨원은 다시 일본으로 망명을 했단다. 그리고는 위안스카이는 다시 자신이 황제가 되어 중화제국을 세웠어.(1915) 망하는 나라는 다 이유가 있는 것 같구나. 이 일이 있고 다시 전국 곳곳에서 봉기가 일어나자 위안스카이는 1916 3월 다시 군주제를 취소했고 이후 홧병이 도져서 죽고 말았단다.

권력자가 사라진 중국은 10년간 내전이 일어나게 되었단다. 1919년 쑨원이 돌아와서 국민당을 창설하였지만 기반을 다질 만큼 오래 살지 못한 쑨원의 뒤를 이어 1925년 장제스가 국민당을 이어받았단다. 장제스는 철저한 반공주의자였어. 1921년 마오쩌둥이 세운 공산당을 두고 볼 수 없었지.. 그래서 국민당과 공산당 간의 전쟁이 일어났단다. 외세 일본의 침략으로 두 번의 국공합작이 있었지만, 생각이 다른 둘의 합작은 오래가지 못하고 이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었어. 그리고는 결국 공산당의 승리로 끝나고 장제스의 국민당은 대만으로 도망을 가게 되었단다. 이렇게 중국의 근현대사를 짧게 이야기해보았단다.

제국주의 시대 무서운 두 번의 세계전쟁과 그 즈음 아시아에서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해보았단다. <썬킴의 거침없는 세계사>가 이 시절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 풀어준 것 같았단다.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여러 영화들도 소개를 해주어서 좋았단다. 물론 이 시대를 다룬 책들은 정말 무수히 많단다. 깊이 있게 쓴 책들도 있지만, 이 책처럼 가볍고 재미있으면서 핵심만 짚어주는 책은 얼마 없지 않을까 싶구나. ,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결국 편지가 엄청 길어졌구나.


PS:

책의 첫 문장: 먼저 질문부터 해보겠습니다.

책의 끝 문장: 언제든지, 어디로든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독일에게는 소위 ‘슐리펜 계획’이라는 전략이 있어서 나름 든든했답니다. 이 계획에 대해서 설명해보겠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독일은 동서 양쪽에서 프랑스, 러시아와 동시에 전쟁을 치르는 것이 최악의 시나리오였어요. 만일 프랑스와 러시아 양국과 동시에 전쟁을 치른다면 ‘슐리펜 계획’이란 전력 카드를 꺼내 쓸 계획이었습니다. 이 계획은 1891년 독일 참모총장에 오른 알프레드 슐리펜 장군이 고안이 작전입니다. 만일 프랑스와 러시아, 동서 양쪽에서 전쟁이 동시에 일어난다면 러시아는 땅덩어리가 워낙 넓어서 총동원령을 내린다고 해도 전쟁 준비를 하는 데 최소 7주 정도 걸린다고 계산했어요. - P50

점점 ‘죽음의 블랙홀’로 변해가는 전투였습니다. 그리고 1942년 11월 19일이 되어 소련군은 새로 개발한 T-34 전차를 앞세우고 대대적인 반격에 들어갔습니다. 지원군이 도착한 겁니다. 이 T-34 탱크를 처음 본 독일군 장교들은 경악했어요. 하드웨어를 살펴보니 독일의 그 어떤 기갑 부대 전차도 당해낼 수 없는 극강의 전투력을 지닌 전차였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이 T-34 전차는 ‘소련을 구한 애국 전차’라는 칭송을 받고 있답니다. 하지만 우리 한국에겐 트라우마를 안겨준 전차예요.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바로 이 T-34 전차를 몰고 38선을 넘어와 한국전쟁이 일어났으니까요. 하여간 이 T-34 전차 덕분에 소련군의 대반격이 시작됩니다. - P128

일본 정부는 끝까지 미국의 항복 제안을 완전히 무시합니다. 그러고는 소련에게 매달리기 시작해요. 소련에게 빨리 참전해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야 자신들이 신처럼 모시는 일왕을 계속 그 자리에 앉힐 수 있으니까요. 소련은 만주와 한반도 지배권 그리고 쿠릴 열도 진출 등을 목표로 태평양 전쟁 참전 여부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이었답니다. 소련은 이미 시작된 미국과의 경쟁에서 태평양 지역의 패권 확보를 위해서 그리고 만주와 극동 지역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태평양 전쟁 막판에 일본과의 전쟁에 뛰어듭니다. 결국 소련은 히로시마 원폭 투화 이틀 후인 1945년 8월 8일, 일본의 소원대로(!) 일본에 선전포고하고 태평양 전쟁에 참전하죠. 그리고 결과적으로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점령, 38도 선으로 인해 남북한이 분단됩니다. 우리가 일본을 용서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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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6-22 08: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일본근대사 이토 히로부미의 등장과 중국근대사 아편전쟁에 관한 설명 좋은데요^^
이렇게 설명해주시면 자녀 귀에도 쏙쏙 들어올듯요^^~♡

bookholic 2022-06-23 00:52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아이들한테 한번 이야기해봐야겠어요...
역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지만 ㅎㅎ

레삭매냐 2022-06-22 11: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매불쇼 통해 영어 하시는 양반
으로 썬킴 아자씨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요즘에는 종목을 변
경하셔서 역사 이야기에 전념
하시는 것 같더라구요.

전문가가 아닌 시선으로 만나
는 역사 이야기, 환영합니다.

bookholic 2022-06-23 00:52   좋아요 3 | URL
역사 전공자는 아니지만,
썰렁한 아재개그와 함께 귀에 쏙쏙 들어오게 하는
선킴의 역사 이야기 좋습니다~~^^

mini74 2022-06-24 19: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산책할때 한 번씩 들어요 과학하고 앉아있네 와 번갈아가면서요. 책이 나왔군요 ~ 북홀릭님 리뷰는 책으로 내셔도 될것 같아요.

bookholic 2022-06-24 23:03   좋아요 1 | URL
앗 <과학하고 앉아있네> 저도 즐겨 들었던 팟캐스트인데요, 최근에는 많이 못들었지만...^^
오랜만에 다시한번 들어봐야겠네요~~
적어주신 마지막 문장은 쑥쓰럽고 고맙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