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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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영화 <<일 포스티노>>의 원작소설이다. 영화가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 탓인지 원작에 대해서는 궁금해 하지도 않았었다. 최근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원작을 찾아 읽게 되었다. 작가 연보에 따르면 이 책의 원래 제목은 <불타는 인내> 였다. 작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는 이 작품에 상당한 애정이 있었던 것 같다. 14년 만에 이 책을 탈고하면서 연극으로 라디오 극으로 다시 영화로 만들었다니 말이다. 원래의 제목은 영화로 만들어진 후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로 바뀌었다. 영화로 만들어진 이후 그러니까 제목이 바뀐 이후 20여 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니 네루다의 이름값을 톡톡히 한 모양이다. 물론 네루다의 이름값으로 작가의 공들임을 깎아내리자는 뜻은 아니다.  

네루다는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지상의 거처』등의 시집으로 우리에게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반파시스트 운동, 공산당입당 및 상원의원, 정치적 탄압으로 인한 망명생활 등 정치가로서도 이름 높다. 시를 떼고 정치가 네루다를 이야기 할 수 없고 정치를 떼어놓고 네루다 시를 얘기하기도 쉽지 않다. 이러한 네루다의 면모를 이 책은 고스란히 담아 놓았다.

네루다는 19세 때 시집『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를 냈다. 남미의 정부들은 젊은 시인들한테 영사 자리를 줌으로써 격려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한다. 네루다는 23세 때 시인으로 인정받았고 칠레 정부는 그에게 극동지방 영사자리를 주었다. 이후 그는 5년 동안 중국, 인도, 일본 등지에서 살았다. 그 후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스페인, 멕시코 주재 칠레 영사를 역임했다. 1944년 칠레의 질산염광지대인 안토포가스타의 노동자들이 자기네 지역 상원의원으로 출마해줄 것을 요구해 그는 출마했고 당선되었다. 네루다는 당시의 독재자 곤잘레스 비델라를 칠레의 헌법을 위반했다고 공격했고, 네루다는 반역죄로 몰려 망명길에 오른다. 비델라 정부가 무너졌을 때 칠레로 돌아온 네루다는 산티아고 인근 해안 앞바다 있는 작은 섬 이슬라 네그라에서 살았다. 이 책은 이 섬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슬라 네그라는 몇 가구 살지도 않는 아주 작은 섬이다. 네루다는 이곳에서 아내와 단 둘이 칩거하고 있다. 그에게 찾아오는 사람이라곤 마리오 히메네스라는 우편배달부뿐이다. 몇 킬로그램의 편지를 짊어지고 매일 네루다를 방문하던 마리오는 어느 날, 네루다와 몇 마디 말을 주고받고는 메타포(詩)에 발을 빠트리고 만다. 마리오가 빠진 것은 메타포만이 아니다. 그는 마을의 처녀 베아트리스와 사랑에도 빠졌다.

메타포와 사랑. 마리오는 메타포의 씨줄과 사랑의 날줄 두 가닥으로 자기 생을 짜고 있다. 늙은 아버지는 동트기 전에 일어나 고기잡이를 나가는데, 감기에 추파를 던지면서 이불속에서 뒹굴던 마리오가 네루다의 영향으로 정치적 의식을 가진 한 주체로 거듭나기까지의 씨줄은 길기고, 베아트리스를 향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 마리오가 부딪치는 난관들은 그에게는 고통이었을지 모르지만 읽는 이에게는 통쾌함과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날줄이다. 그러나 민주선거에 의해 사회주의 정부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던 칠레의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가 피노체트 정권에 의해 축출되고 네루다마저 산타마리아 병원에서 최후를 맞게 되는 역사적 배경이나, 욕 마저도 모두 메타포가 되는 이슬라 네그라 주민들의 대화를 놓친다면 이 책의 가치는 반감될 것이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말야

그렇게 얼굴 없이 있는 나를

그건 건드리더군

 

'詩'라는 제목을 가진 네루다의 시 첫 연이지만 이 시를 읽을때면  마리오가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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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분방한 자연주의자의 우화 경쾌하게 고전읽기 4
이인호 지음 / 천지인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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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읽고도 읽었다고 말할 수 없는 책들이 있다. 그런 책이 한두 권이겠는가마는 장자는 그런 책 중에서도 유난한 책 중의 하나다. 장자에 나오는 수많은 우화들은 어디에선가 한번쯤 눈동냥이나 귀동냥 했던 것들이 많다. 출전을 밝히지 않은 아이들의 동화책에서부터 출전뿐만 아니라 그 원문까지도 정확하게 밝혀놓은 해설서들까지, 어릴 때 장자인지도 모르고 들었던 옛날 얘기에서부터 교수님께 들었던 강의까지, 멀고도 가까운 것이 장자이다. 그런데도 읽을 때마다 처음 읽는 듯하고 들을 때 마다 처음 듣는 듯한 이 낯설음을 도대체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이란 말인가? 읽을 때마다 내가 새롭게 갱신되고 있다고 하면 자뻑이고 나이를 한 살씩 더 먹을 때마다 내가 먹은 밥그릇 수만큼 기억이 사라지는 쪽이 더 가까운 듯하다.

  이런 이유로『장자, 분방한 자연주의자의 우화』는 내게는 또 새 책이다. 『장자, 30구 - 분방한 자연주의자의 우언』의 개정판으로 새로 나온 이 책은 천지인이라는 출판사에서 새로 기획한 ‘경쾌한 고전읽기’ 시리즈 4번이다. 그린비 출판사에서 나오는 리라이팅 클래식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도 시리즈 4번이고보니 공교롭기도 하다.

어쨌거나 『장자』라는 책은 반고본과 곽상본이 있는데 우리가 보는 『장자』는 장자로부터 600년 뒤인 위진시대에 편찬된 곽상본이라고 한다. 장자는 내편 7편, 외편 15편, 잡편 11편 도합 33편으로 구성되어있지만 『장자, 분방한 자연주의자의 우화』에는 28개 구절의 장자가 현대적인 해설과 함께 실려 있다. 이것을 통해 장자라는 인물의 성격, 시대적 배경, 사상 등을 재미있게 개괄할 수 있다. 책 말미에는 ‘장자가 아인슈타인을 만난다면’과 ‘장자와 매트릭스’가 부록으로 실려 있다. 아인슈타인과 장자를 대담형식으로 한자리에 부른 ‘장자가 아인슈타인을 만난다면’은 전혀 상이해 보이는 물리학과 철학이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 ‘장자와 매트릭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어쩌면 프로그래밍 되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영화 매트릭스를 장자의 나비 꿈에 관련지었다.

장자의 나비 꿈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나비가 되어 꽃 사이를 날아다니다가 깨어난 장자는 자신이 나비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지금 꿈속에서 장자가 된 것인지, 과연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다.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나는 정말 나일까 혹시 털이 거친 여우 한 마리가 꾸는 꿈속에서 나는 인간 여자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었다. 깨어나야 할지 말아야할지 심히 고민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가 이 책에는 이상하게 나와 있다.

아까 꿈에서 깨고 보니 나는 분명 장자가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정말 장자인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장자가 된 것인가?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정말 장자인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장자가 된 것인가? 나는 나고 나비는 나비인데 어찌 된 일인가? 이것이 현실인가?

똑같은 구절이 반복되고 있는 이 구절이 내가 알고 있는 장자의 나비 꿈인지, 나비의 장자 꿈인지, 후주로 원문이 실려 있음에도 확인하고 싶지 않은 까닭에 대해서는 나를 탓하지 말라.

2009년에 만난 장자는 여전히 그 유별난 과장으로 인해 황당하기도 하지만 왠지 멀리 둘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그가 추구하는 자유로움 때문이리라. 어디에도 얽매이고 싶지 않은 정신의 자유를 추구하면서도 또 사랑의 올가미에 목이 졸리고 싶은 갈증이 더해지는 이 가을에 특히 가까이 두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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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9-10-06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요즘 제가 장자책을 하나 찾고 있었어요~. 공자나 노자책도 함 소개해 주세요~.

근데 글씨체 때문에 읽기 힘드네요~.^^;;

반딧불이 2009-10-06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나비님. 제가 '자'씨 아저씨들하고 별로 친하지를 못해요. 그냥 장자씨 책만 세권 갖고 있어요.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강신주, <우화로 즐기는 장자>-윤재근, 그리고 이 리뷰의 책이죠. 앞의 책은 장자의 사상을 현대철학자들(들뢰즈 가타리,부르디외 등등)의 개념과 비교하면서 설명해요. 노자와의 차이도 짚었구요. 뒤의 책은 장자 33편을 전부를 번역하고 짧은 해설을 덧붙여두었더라구요. 통째로 읽지는 못하고 궁금할때마다 찾아보기로 써요. 오늘 리뷰의 이책은 저같은 무지랭이가 접하기에 가장 편한듯해요.

글씨체는 한글 바탕체인데 어떻게 보이는지 궁금....(돋음체로 바꾸었어요)

라로 2009-10-06 10:19   좋아요 0 | URL
돋음체가 보기 좋아요,,바탕체는 스크린에 너무 꽉차고 커서 깜짝 놀랐어요~.ㅎㅎㅎㅎ
저도 '자'짜 오빠들과 안친하지만 나이가 들다보니 그분들 책을 찾아 읽고 싶은데 데 아는게 없어서~.ㅎㅎㅎㅎ
 
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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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19년, 에밀 싱클레어라는 이름으로 『데미안』을 발표했다. 이 작품으로 독일의 문학상인 폰타네 상을 받게 되지만 익명의 이름을 밝히고 상을 되돌려 주었다고 한다. 당시의 헤세는 이미 작가로서 이름이 알려진 상태였고 오로지 작품만으로 평가받고 싶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싸르트르가 작품에 대해 언급하자 유명인사가 되어버린 로맹가리가 비평가에 의해 만들어진 자신의 이미지를 깨뜨리기 위해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자기 앞의 생』을 발표하고 콩쿠르 상 수상자로 지명되자 수상 거부 편지를 보낸 것과 유사하다.

헤세가 사용한 필명 에밀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주인공 이름이기도 하다. 싱클레어는 책의 첫 페이지에서 말한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데미안』은 질문 같기도 하고 회한 같기도 한 이 첫 구절에 대한 성찰의 기록이다.

열 살이 갓 지났을 무렵 싱클레어는 황당무계한 도둑 이야기를 꾸며대어서 동네의 불량소년 크로머의 손아귀에 빠져든다. 크로머의 온갖 협박에 시달리면서 싱클레어는 이 세계가 그동안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뿐만 아니라 또 다른 세계와 함께 어우러져 있음을 깨닫는다.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의 햇빛이 충만한 세계와는 반대편에 있는 음침하고 폭력적이며 불안이 두근거리는 또 다른 세계를. 싱클레어가 처음 알게 된 이 세계로부터 싱클레어를 구해준 사람은 데미안이었다. 

 데미안은 카인과 아벨,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와 함께 못 박혔던 도둑의 이야기 등을 새롭게 해석하여 싱클레어가 성서 설화와 교리에 대해 보다 개인적이고 자유롭게 풀이하는데 익숙해지도록 도움을 준다. 또 밝음과 어둠, 허용된 세계와 금지된 세계, 선과 악의 세계 등 이분된 세계로부터 완벽하게 자기 자신만의 세계 속으로 몰입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각자의 길을 가면서 서로 만나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고 싱클레어에게는 오랜 방황의 시기가 찾아온다. 방황기간 중에 만난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는 싱클레어가 그토록 궁금해 하던 압락삭스에 대해 이야기를 해준다. 신적인 세계와 악마적인 세계를 동시에 간직한 압락삭스를 이해할 무렵 데미안을 다시 만난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과의 만남을 갖는다. 싱클레어에게 에바부인은 어머니이면서 연인이기도 하고  자기 내면의 상징이기도 하다. 

데미안과 에바부인 곁에서 싱클레어는 그들과 연대감을 느끼며 평온을 되찾는다. 어느 날 싱클레어는 구름 속에서 거대한 새가 푸른 혼돈을 깨치며 날아오르는 것을 본다. 데미안 역시 낡은 세계가 와해되고 새로운 세계가 시작될 것을 예감한다. 전쟁이 선포되었고 그들은 전장으로 나갔으며 부상당한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조우한다. 부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은 에바 부인의 입맞춤을 전한다. 싱클레어가 눈을 떴을 때 데미안은 사라졌지만 그러나 그가 사라진 곳은 언제든 싱클레어가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는 곳, 바로 자기 자신 속이었다. 데미안은 외부세계에 실재하는 인도자인 동시에 내 안에 존재하는 자아의 다른 이름이 되었다. 

 천양희 시인은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고 “모든 생은 자기에 이르는 길”이었으며 “길의 모든 것은 걷고 싶지 않아도 걷게 되는 것”이라고. 싱클레어가 자기 안의 데미안에 이르는 길은 시인의 시 <뒷길>의 삼행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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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9-09-28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고려쩍에 읽었던 책!!!!그땐 그저 읽었는데 리뷰를 읽어보니 그런 심오한 뜻이~.

반딧불이 2009-09-28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등학교때 읽은것 같은데 그때는 제가 책을 읽으면서 그냥 한글떼기 공부를 한건 아니었나 싶을정도에요.근데요.나비님. 사진이 바뀌셔서 나비님인가 전도연인가 한참 들여다봤지만 아직도 잘모르겠어요~

2009-10-12 15: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13 0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백설 공주는 공주가 아니다?! - 발도르프 선생님이 들려주는 진짜 독일 동화 이야기
이양호 지음, 박현태 그림 / 글숲산책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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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검색을 하면 168권의 『백설 공주』가 쏟아져 나온다고 한다. 169번째는 『백설 공주는 공주가 아니다?』라고 한다. 그러니까 나는 168권의 『백설 공주』중 단 한 권도 읽지 않고 169번째 『백설 공주는 공주가 아니다?』를 읽은 셈이다. 책은 분명 백설 공주는 백설 공주가 아니라고 하는데 나는 이제야 백설 공주를 읽었다는 느낌이 든다. 소금과 설탕을 구별 못할 때 먹어보고 나서야 확연히 구분되는 것과도 같다.

  어쨌거나 나는 『백설 공주』를 제대로 읽어본 기억이 없다. 『백설 공주』가 어느 나라 동화인지 작가가 누군지도 몰랐다. 어느 나라 전래동화려니 여겼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것의 제목이 『Little snow-white』라고 해서 백설 공주는 저 말의 번역어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백설 공주를 낳은 여왕이 바느질을 하다가 하얀 눈 속에 피 세 방울을 떨어뜨렸다고 했지만 여왕이 왜 할 일없이 바느질을 하고 앉아 있었는지 왜 하필 바늘에 찔린 손가락에서 나온 피가 세 방울이었는지 한 번도 궁금해 하지 않았다. 백설 공주의 새엄마가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하고 물으면 대답하는 거울이 있었지만 왜 하필 그것이 벽에 걸린 말하는 거울인지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았다. 동화 속에서야 무슨 일이든 가능했고 황당한 이야기가 자주 나와 줘야 재미있으니까 하고 여겼다.

일곱 살이 된 백설 공주가 일곱 난장이를 만난 것도 나는 너무나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숫자 7은 행운의 숫자니까 하고 말이다. 장사꾼 할멈으로 변신한 계모가 띠와 빗과 독이든 사과로 백설 공주를 죽이려들었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언젠가 독서는 내게 영혼의 때를 벗기는 이태리 타월이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은 마치 오늘 처음 사용하는 이태리 타월처럼 시원하게 내 무지의 때를 벗겨주었다.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을 생각해보게 해주고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게 만든다. 이 책은 백설 공주에 관한 책이지만 백설 공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번역의 과정에서 책의 내용이 얼마나 윤색되는지 알려줄 뿐만 아니라 책을 읽는다는 행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어준다.

이 책에는 한글, 영어, 독일어로 된 백설 공주가 실려 있는데 덕분에 나는 그동안 한 번도 읽어본 적 없는 백설 공주를 2개 국어로 읽어볼 수 있었다. 나처럼 무식한 사람은 없겠지만 위에 적은 것들 중 하나라도 궁금하신 분들에게 일독 아니 이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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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9-09-22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맞아요~. 반딧불이님처럼 무식한 사람은 없을 거같아요~.ㅎㅎㅎㅎㅎㅎ
하지만 이 똑똑한 리뷰 때문에 백설공주 책도(168권은 아니지만) 여러번 읽어보고 디즈니 만화영화까지 섭렵한 저도 이 책만은 결코 놓쳐서는 안될것 같은 느낌이에요!
무식한척 하는 반딧불이님 오랫만이에요~.^^

반딧불이 2009-09-22 09:36   좋아요 0 | URL
앗. 그러고보니 저도 아이들 어릴때 디즈니 만화영화도 봤네요. 히~ 나비님께만 말씀드리는데요. 제 별명이 '헛똑똑이'에요~
 
어느 개의 죽음 그르니에 선집 3
장 그르니에 지음, 지현 옮김 / 민음사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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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보았던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 <희생>만큼이나 지루하게 장 그르니에의 『섬』을 읽었었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까닭을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두 작가 모두 내게는 수면제에 다름 아니었는데 어느 날 도서관에서 열람을 하다가 그르니에의 책이 나란히 꽂혀있는걸 보고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상적 삶』을 빼어들었었다. 선채로 읽었던 그 책은 여행, 독서, 담배, 비밀 등 그야말로 우리의 일상에 관한 글이었다. 짧은 글이었지만 깊은 사색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그르니에=수면제라는 최초의 내 등식을 수정해야했고 눈에 띄는 대로 그의 책을 사모아 두었었다. 책꽂이에 7권의 책이 모였는데 십 수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에게 손이 간다.

7권의 책 중 『어느 개의 죽음』은 타이오라는 자신이 기르던 개의 죽음에서 비롯된 단상들을 묶었다. 타이오는 때때로 그를 귀찮게 하기도 했지만 그 귀찮음 마저도 그에게는 기쁨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기쁨은 사라졌다. 한 존재가 사라지자 부재(不在)가 그 자리를 가득 채운다. 이 충만한 부재가 그에게 글쓰기를 종용한다. 부재 안에는 개와 인간, 사랑과 이별, 기쁨과 슬픔, 존재와 죽음 등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그는 개를 데리고 여행을 다니면서 나라마다 풍습이 다르다는 것을 확연히 깨닫기도 하고, 인간중심주의는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는다. 떠돌이 개중의 한 마리를 데려다 키움으로 해서 배고픔은 해결해 주었지만 개의 자유를 제한했음을 깨닫고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또 개를 안락사 시키면서 과연 그런 행동은 개의 고통을 끝내주기 위한 것인지 자신의 고통을 덜기 위한 것은 아닌지 묻는다.

그르니에에게 타이오의 죽음은 매순간 확실한 고통이었다. 그러나 그는 죽음 앞에서는 자신도 타이오와 같은 운명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고통을 덜어내는 하나의 방편으로 글을 쓸 수 있음을 위안 삼으면서 공허함도 함께 느낀다. 타이오의 죽음에 관한 안타까움에서 글은 시작되었지만 타이오의 부재를 통해 결국 그가 다다른 곳은 자기 자신이었다. 마지막 단락에 실려 있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짧은 글’에서 그르니에는 개에게서 친밀감을, 고양이에게서 거리감의 속성을 찾아낸다. 이 양극의 특징은 다시 결합과 결별로, 감성과 지성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마치 개와 고양이의 속성으로 두 부류의 인간을 얘기하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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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9-09-07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르니에의 섬만 하나 달랑 읽었는데,,,아직도 다 읽지 못했다지요,,,^^;;;;<일상적 삶>이라고요,,,,음 함 찾아 읽어 봐야겠어요,,,ㅎㅎㅎ

반딧불이 2009-09-08 10:11   좋아요 0 | URL
어? 나비님 오랜만이에요. 돌아오신건가요? 아무튼 반갑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