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0
허균 지음, 김탁환 엮음, 백범영 그림 / 민음사 / 200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민음사판 홍길동전에는 완판본, 경판본, 영인본이 차례로 실려 있다. 18세기 말 민간출판업자들이 영리를 목적으로 찍어낸 목판본을 통틀어 방각본이라고 하는데 이런 방각본 중에 서울에서 찍은 것은 경판본, 전주에서 출판한 것은 완판본이라 하고 영인본은 이런 방각본을 사진 찍듯이 찍은 것을 말한다. 때문에 이 책의 맨 뒤에 실려 있는 영인본은 뒤쪽에서부터 페이지를 오른쪽으로 넘기며 읽어야한다.

 경판본은 24장본이고 완판본은 36장본이다. 경판본보다는 완판본의 묘사가 훨씬 사실적으로 되어있어서 재미가 더하다. 고전소설이 대부분 내용이 단순하고 시간적 순서대로 서술되어 있어서 요즈음의 소설들에 비하면 상당히 쉽게 읽힌다. 그런 중에도 재미있었던 부분들은 더러 있다. 길동이 태어나기 전 길동의 아버지는 난간에 기대어 졸다가 용꿈을 꾼다. 그 꿈에 대한 묘사가 어찌나 장황하고 화려한지 그것을 읽고 있으면 신선도를 보는 듯하다. 그것이 태몽임을 직감하고 아내를 안으려하자 그 아내가 남편을 꾸짖는 장면도 재미있다. “승상은 한 나라의 재상입니다. 그 체면과 위상이 높으시거늘 한낮에 정실에 들어와 저를 노류장화 대하듯 하시니 재상의 체면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렇게 남자를 꼼짝 못하게 꾸짖는 모습을 보니 양반가의 여성들은 할 말은 다 하고 살았던 듯싶다.

뒷부분에서의 재미있었던 부분들은 대부분 길동이 신통술을 행하는 부분이다. 한밤중에 까마귀가 나타나 ‘객자와 객자와’ 세 번 울고 서쪽으로 날아가자 자객이 올 조짐이라 생각하고 조화를 부리는 장면, 허수아비를 이용해 일곱 명의 길동을 만들어내는 모습, 자신이 붙잡히는 조건으로 병조판서를 제수 받는 것 등은 판타지 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길동은 조선에서 더 이상 말썽을 부리지 않기로 약속하고 활빈당의 도적떼들을 데리고 제도로 갔다가 훗날 율도국을 정복한다. 이후 그는 삼 년 만에 도적떼가 사라지고 길거리에 물건이 떨어져도 주워가지 않는 태평세계를 만들었다. 그는 두 아내를 두었고 삼자이녀를 낳아 장자 현을 세자로 삼고 나머지는 다 군으로 봉하였다고 한다. 서자로써의 차별이 서러워 가출을 하고 도적떼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나 그가 한 나라의 왕이 되고 난 후에는 고스란히 장자에게 권세를 물려주는 것은 어떻게 읽어야할까.

저자인 허균은 선조 때 사람인데 『홍길동전』은 세종대왕 즉위 15년 되는 해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았다. 허균은 왜 하필 안정정인 이 시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았을까 궁금해 하다가도 어느 시대에나 탐관오리들은 들끓었고, 조선시대 내내 적서차별은 지속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태평성대한 나날이 소설의 배경이 된들 무슨 대수란 말인가. 길동이 해인사에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 승려들을 농락하고 창고에 쌓여있는 곡식을 탈취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을 보면 불교를 억압했지만 여전히 사찰의 창고는 두둑했던 모양이다. 당시의 시대상황을 읽을 수 있고 시대 비판적으로 읽을 요소는 많았으나 마지막 부분은 씁쓸했다.  

허균의 또 다른 저서 <성소소부고>에 실린 <호민론>은 백성에 관한 글이다. 그는 천하의 두려워할 바는 백성이라 칭하고 백성을 세 부류로 나눈다. “대저 이루어진 것만을 함께 즐거워하느라, 항상 눈앞의 일들에 얽매이고, 그냥 따라서 법이나 지키면서 윗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는 사람들이란 항민(恒民)이다. 항민이란 두렵지 않다. 모질게 빼앗겨서, 살이 벗겨지고 뼈골이 부서지며, 집안의 수입과 땅의 소출을 다 바쳐서, 한없는 요구에 제공하느라 시름하고 탄식하면서 그들의 윗사람을 탓하는 사람들이란 원민(怨民)이다. 원민도 결코 두렵지 않다. 자취를 푸줏간 속에 숨기고 몰래 딴 마음을 품고서, 천지간(天地間)을 흘겨보다가 혹시 시대적인 변고라도 있다면 자기의 소원을 실현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란 호민(豪民)이다. 대저 호민이란 몹시 두려워해야 할 사람이다” 

길동은 호민이었고 허균은 길동을 빌어 자기의 소원을 실현하려 한 듯하다. 그는 광해균 10년에 역적모의를 했다는 이유로 국문을 받고 생을 마감했다. 이때 허균의 죄상으로 거론된 내용들은 홍길동전에 나오는 이야기들처럼 스펙타클하다. 홍길동전의 결말은 과연 허균의 생각 그대로였을까? 어째서 허균은 소설을 이렇게 결론지었을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혹시나 다양한 판본이 나오는 와중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었을까?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당대의 문제들을 짚고 나갔지만 도무지 예견하지 못했던 결말을 보여주는 소설과는 달리 허균이 부안 기생 매창의 죽음을 애도한 시는  허균의 안타까움이 오롯이  묻어난다.    

“신묘한 글귀는 비단을 펼쳐 놓은 듯(妙句堪擒錦)  

 청아한 노래는 가는 바람 멈추어라(淸歌解駐雲) 

 복숭아를 딴 죄로 인간에 귀양 왔고(偸桃來下界) 

 선약을 훔쳤던가 이승을 떠나다니(竊藥去人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0-10-04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음사 전집은 우리나라 문학들도 소개하고 있어서 좋은거 같아요.
특히 인지도 낮은 고전이요^^ 감히 댓글에 책 추천하기에는 그렇고
반딧불이님이 이 책을 읽으실수도 있지만..^^;;
민음사판 홍길동전도 읽으셨다면 역시 같은 시리즈에서 나온
김시습의 <금오신화>도 읽어보세요.
다섯 편으로 구성된 내용인데 안 읽어보셨다면 반딧불이님도
이 책을 읽게 되면 재미 있어 하실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슬픈 멜로드라마를 보는 거 같은 이야기도 있어서 저는 좋았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ㅋ

반딧불이 2010-10-04 20:40   좋아요 0 | URL
아..금오신화도 나와있군요. 미처몰랐었는데..영양가 있는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