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선우 작가의 단편집.
3편의 단편과 작가의 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한 편의 에세이가 실려있다.
책은 작고 귀엽고 표지는 스카이 블루에 초록 잎 하나, 그리고 낙타 한 마리.
이 책에 등장하는 소재들이다.
초록 고래, 푸른 색 돌, 하얀 눈, 그리고 다시 초록...

♧초록 고래가 있는 방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찾아라. 그러면 찾을 것이다. 두드려라. 문을 두드리면, 계속해서 두드리면... 열리지 않을까? 새벽 세시, 내가 문을 두드리며 간절한 마음으로 구하고 찾는 이는 바로 윗집 여자였다. 일주일 전부터 내 방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는데, 윗집 여자는 줄곧 부재중이었다. 그 바람에 일주일간 전등도 켜지 못했고 방 안이 온통 곰팡이로 뒤덮이는 끔찍한 악몽에도 시달렸다. 그러나 조금 전 편의점에서 술을 사서 나오는 길에 나는 우연히 보았다. 빌라 꼭대기 층, 그러니까 내 윗집의 얇은 속 커튼 사이로 환한 빛이 구원처럼 흘러나오는 모습을. - P9

♧사려 깊은 밤, 푸른 돌
범인은 근처에 있다
빌라 CCTV 좀 확인해볼 수 있을까요? 추적추적 비 내리는 여름밤, 나는 빌라 화단 앞에서 집주인 겸 빌라 관리인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무슨 일인데요? 사고 났어요? 잠결에 전화를 받았는지 집주인은 잠긴 목소리로 되물었다. 장국영이 사라져서요. 장국영이 사라졌다고요? 아, 제가 기르는 야자나무 이름이 장국영입니다. 그러자 아이씨...… 하는 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들려왔다. 알겠으니 내일 아침에 다시 얘기합시다. 전화를 끊고 확인해보니 새벽 한 시였다. 이런. - P51

♧오키나와에 눈이 내렸어
오사카, 하고 영하 언니가 말했을 때 나는 
세 번째 샷을 내리는 중이었다. 
주영, 나랑 오사카에 가자. 그 순간 내가 떠올린 것은 오사카 근교에 있는 작은 고등학교 운동장. 삼 년 전 그곳에서는 한일 고교 친선 축구대회가 열렸고, 후반전 사십 분에 한국 팀이 한 골을 넣으면서 승리했다. 기념으로 학교 뒤뜰에 무릎 높이의 플라타너스 묘목을 한 그루 심었는데, 얼마나 자랐으려나. 어쩌면 어깨까지 자랐을지도.
- P105

♧초록은 어디에나
‘초록은 어디에나‘는 오래전 겨울밤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떠올린 문구이다. 
어두운 외투를 걸치고 거리를 걷다 보니 문득 초록이 보고 싶었다. 환한 초록, 자라나는 초록, 우글거리는 초록. 초록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나에게 초록은 따뜻한 슬픔의 색. 차고 단단한 파랑의 슬픔에 노란 빛이 한 줄기 섞인 푸르름. 
그러나 나는 질문하는 동시에 답을 알고 있다.
초록은 어디로 가는 법이 없다. 초록은 어디에나
있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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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는 느지막이 잠에서 깨어났다. 오전 열 시가 조금 지나 있었다. 조금도 누그러들지 않은 한결같은 무더위가 느껴졌다. 휴가를 보내려고 이곳에 와 있다는 걸 떠올리는 데는 늘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자크는 아직 자고 있었고, 가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사라는 부엌으로 가서 식은 커피 한 잔을 들이켠 뒤 베란다로 나갔다. 늘 제일 먼저 일어나 있는 건 아이였다. 아이는 베란다 계단에 홀딱 벗고 앉아, 정원을 기어다니는 도마뱀들과 강에 떠다니는 보트들의 움직임을 번갈아 지켜보고 있었다.
"모터보트 타고 싶어."
아이는 사라를 보자 말했고, 사라는 그러마고 약속했다.
아이가 말하는 모터보트의 주인은 이곳에 온 지 엿새밖에 되지않은 남자였다. 아직 누구도 그를 잘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사라는 아이에게 모터보트를 태워 주겠다고 약속했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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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누구의 이야기, 누구의 나라인가 중에서...

첫 문장부터 시원시원하게 하고 싶은 말 다하고 말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그래서 속이 후련해진다.

우리 앞에 떡 버티고 서 있는 이상하고 신경 거슬리는 문화적 서사에는 다음과 같은 공통분모가 있다. 우리 중에 누가더 중요한지, 이건 누구의 이야기인지, 그리고 누가 동정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가정이다. 누가 연민을 받아야 하고 누가 양손에 선물을 쥐어야 하고 누가 더 순수하고 누가 사랑받아야 하고 누가 레드카펫에 오를 자격이 있는가. 
궁극적으로 왕국과 권력과 영광이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는가. 
누구를 말하는지 익히 짐작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백인들, 특히 백인남성들, 더 구체적으로 이성애자 백인 프로테스탄트 남성들이다. - P27

이들 중 일부는 엄마들이 자주 하던 잔소리 중 하나인 ‘나눠 가져라‘를 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지만 앞으로 이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깊이 실망해 입을 댓발 내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제까지 이 나라의 역사는 백인들이 주인공이자 기록자였으며 아직도 언론은 그 방향의 논점으로 우리 모두를 끌고 가려고 한다. - P27

우리는, 우리 문화는 더 많은 사람, 더 많은 목소리, 더 많은 가능성이 함께하는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뒤쳐질 텐데, 미래가 그들을 참아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미래를 견디지 못해서다. - P42

주류 문화 속 백인 남성프로테스탄트는 환영받지만 
크리스 에번스가 지적한 대로 이 이야기는 항상 그들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언제나 그들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야기의 화자이자 주인공이 될 것이다. 
백인 프로테스탄트는 이미 소수이고 2044년 전후로 비백인이 투표권을 가진 주류가 될 것이다.
이 나라는 모든 사람을 위한 곳이라고 믿는 사람들을 수용할 충분한 공간을 갖고 있다. 그렇게 믿지 못하는 사람은 글쎄, 어떻게 행동할까? 그래서 지금 우리가 누구의 이야기를해야 하는지를 놓고 전쟁을 벌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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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 속의 영원> 우린 그렇게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1. 미래를 상상한 그리스‘를 오늘까지 읽었다.
‘2. 로마의 길‘은 다음 기회에...
오늘은 일단 반납해야 한다.




알렉산드리아는 그리스 너머의 그리스 도시이자 유럽의 외부에 있는 유럽의 배아라는 모호한 조건에서 자신에 대한 외부적 시선을 개시했다. 
도서관의 전성기와 알렉산드로스의 뒤를 이어 스토아 철학자들은 처음으로 모든 사람이 국경 없는 공동체의 구성원이며, 어떤 장소와 상황에서도 인류를 존중할 의무가 있다고 가르쳤다. 
알렉산드리아는 모든 마그마가 끓어오르고 이질적인 전통과 언어가 중요성을 획득한 곳이었으며 지식과 세계에 대한 이해가 공유된 곳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보편적 시민권이라는 유럽의 위대한 꿈의 선례를 발견할수 있다. 
글쓰기와 책, 그리고 도서관은 그 유토피아를 가능하게 한 기술이었다. - P318

망각, 말의 소멸, 국수주의, 언어 장벽은 늘 존재한다. 알렉산드리아 덕분에 우리는 번역가, 세계시민, 뛰어난 기억력을 지닌 사람이라는 희귀한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사라고사 학교의 왕따였던 나를 매료시켰다. 알렉산드리아가 모든 시대의 무국적자를 위한 종이의 나라를 발명했기 때문이다.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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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유네스코 주관으로 설계공모가 이루어지고 전 세계에서 기금을 모아 고대 도서관이 있던 자리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지붕의 천창으로 자연채광이 되어 지하까지 밝게 유지가 된다니 과연 얼마나 멋질지 궁금하긴 하다.
검색하니 모금에 참여한 국가의 글자가 건물 외벽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 세월, 강, 여름 등의 한글도 새겨져 있다. 아름다운 우리 말이다.^^


1억 2000만 달러를 들여 12년간 공사를 진행한 끝에 2002년 10월, 선조들이 머물렀던 바로 그 지역에 새로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장엄하게 문을 열었다. 
건물은 세계를 비추는 지식의 별을 구현하고 있다. 햇빛을 조절하는 수천 개의 패널로 구성된 단일 지붕과 거대한 7층짜리 독서실을 갖추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이집트 대통령과 전 세계 고위 인사 3000여 명이 참석했다. 이집트 국민에게 자랑스러운 순간이며, 대화와 이해와 합리성을 위한 공간이 다시 태어났고, 비판적인 정신이 날개를 달았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과거 영광의 부활을 알렸다. - P296

그런데 완고하고 비타협적인 유령이 그곳에 나타났다. 축하 행사를 취재한 BBC 기자가 이집트 종교 당국이 금지한 이집트 작가 나기브 마푸즈(Naguib Mahfouz)의 작품을 검색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결과도 찾지 못했다. 그의 작품이 없는 이유를 묻자, 고위 관계자가 "어려운 책은 천천히 입수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젊은 마케도니아인의 광기 어린 꿈은 그렇게 오랜 편견과 끝없는 싸움을 지속하고 있다. -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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