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한 사람˝이라고?
이 말을 짧은 시간에 두 사람에게서 들었다면...
˝당신의 착한 마음˝




"괜찮으세요? 당신, 떨고 있잖아요. 무엇 때문에 ・・・・・… 무엇 때문에 그렇게 흥분하는 거예요? 도대체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성냥개비의 작은 불꽃이 꺼졌고, 나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았다.
에디트는 당황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내 바보 같은 이야기에 당신이 그렇게 흥분하다니……… 아빠 말이 맞았어요. 당신은…..… 당신은 정말로 특이한 사람이에요." - P103

"당신은 정말 특이한 사람이군요. 미안해요. 나쁜 뜻으로 한 말은 아니랍니다. 하지만 특이한 건 사실입니다. 그건 당신도 인정해야 해요. 아주 특이하답니다. 내가 듣기로 당신이 그 집에 드나든 지 벌써 몇 주 됐다고 하던데. 게다가 당신은 소도시에, 그것도 이런저런 말이 많이 나도는닭장 같은 작은 도시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케케스팔바를 귀족으로 여기고 있군요. 동료들이 케케스팔바에 관해 무어라 하지 않던가요? 그를 업신여기는 말은 아니더라도 그가 결코 진정한 귀족은 아니라는 식의 이야기도 들은 적이 없나요? 아니, 무슨 말이라도 들었을 것 아니에요?"
"아니요." 나는 단호하게 대답하며 슬슬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 남에게 ‘특이하다‘, ‘기이하다‘라는 평을 듣는 일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유감스럽게도 아무한테서도 그 어떤 말도 듣지 못했습니다. 저는동료들하고 한 번도 케케스팔바 씨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습니다." - P131

"이상한 일이군." 콘도어가 중얼거렸다. "이상한 일이네요. 나는 케케스팔바가 당신에 관해 이야기할 때마다 그가 과장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어차피 오늘은 내가 계속해서 오진하는 날인가 보네요・・・・・… 그가 그토록 당신에게 열광하는 것이 약간 미심쩍었습니다. 나는당신이 단순히 무도회 때 저지른 실수 때문에 그 집을 드나든다는 것을믿을 수 없었습니다. 단지 연민 때문에 그런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죠. 사람들이 얼마나 그 노인네의 돈을 뜯어내려 하는지 당신은 모를 겁니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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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학자의 열대 인문여행> 제3부. 열대의 삶을 그들 입장에서 바라보다.
















오후에 마지막 제3부를 읽느라 제법 집중해서 시간을 투자했다. 내일이 반납일이어서... 책 한권을 읽는데 거의 3주 가까이 걸렸다. 그냥 남기고 반납하기 싫어서 집중, 또 집중! 결국 다 읽었다. 어려운 내용은 하나도 없고 술술 읽히는데... 뭔지 모를 아쉬움.



책의 제목이 "인문여행"이어서 내 나름으로 기대가 컸었나보다~~^^  열대가 넓긴 넓고 거기에 열대의 기후와 식생, 지리정보, 사람들, 그리고 식민 지배와 착취의 역사, 인문, 여행 정보까지 담으려다 보니 "인문여행"에 포커스를 맞춘 것이 아닌 책이 되어버린거 같다. 이영민 교수님은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나 보다. 심층적인 분석을 통한 인문서는 아니었지만 읽을 때는 그래서 편했다. 



책 표지에 분명 이렇게 쓰여있다. "최고의 인문 여행서", "무얼 망설이는가? 이 책을 집어 들고 그냥 떠나라! 당신도 열대와 사랑에 빠질 것이다."(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여행에 대한 같은 시선고 방향성을 지닌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것 같아 책을 읽는 내내 짜릿했다."(<걸어서 세계 속으로>,<세계테마기행> 오성민 PD). 표지는 제대로 보지도 않고 그림만 봤나봐 ㅎㅎ. 책을 다 읽고 이제서야 찬찬히 보니 보인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이 되어 있고 오늘은 마지막 3부의 내용을 집중해서 휘리릭 읽었다. 내용 자체는 딱히 어렵거나 한 것이 아니어서 금방 읽을 수 있다. "제1부 우리는 열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제2부 열대의 자연은 아름답고 풍요롭다."  그리고 오늘 읽은 "제3부 열대의 삶을 그들 입장에서 바라보다"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열대 아프리카는 미개하고 열악한 기반 시설을 가진 후진국, 거기다 오랜 내전을 치르느라 피폐해진 사람들의 삶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아프리카의 그 땅이 무려 우리 인류 탄생의 기원지라는 것을 상기해본다면 우리의 편협한 시각으로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되는 곳이라는 생각을 금방 하게 될 것이다. 



이 제3부를 읽으면서 얼마 전 읽었던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가 많이 생각났는데, 좀 더 보완해서 <지리의 힘 1,2>를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다시 들었다. 자꾸 읽어보고 싶은 책은 늘어나는데 시간은 한정적이라 아쉬울 따름...! 



열대에 관한 한 최고의 여행 입문서란 문구답게 나도 동화되어버리고 말았다..ㅠ.ㅠ  코로나 동안 잠들어 있던 여행 욕구가 마구 샘솟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싫어하던 더위도 참을 수 있을 거 같고, 계절을 잘 맞춰간다면 오히려 쾌적하고 색다르고 즐거운 여행을 계획할 수 있을거란 걸 이제는 알게 되었다. 싱가폴도 가보고 싶고(내 주위에 나만 안갔나 봐) 열대 우림의 코타키나발루도 가고 싶어졌다. 카리브해의 칸쿤은 말할 것도 없고 지중해와 카리브해의 풍광을 즐길 수 있는 크루즈도 생각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즐길 수도 있다니 가보고 싶다. 언젠가는...  가장 큰 수확이라면 내가 정말 그곳을 가게 될지 자신할 순 없지만(진짜 진짜 나도 의외였는데) 아프리카의 세렝게티 사파리 투어도 가보고 싶어진거다. 이 책이 나를 이렇게 물들여버린 거다. 이 이상 더 어떤 설명이 필요할까...  책을 읽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뿜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여행 욕구 뿜뿜은 정말 자제하고 싶지가 않다는 거다.  

아... 여행 가고 싶어 ㅈ.ㄱ.ㄷ!  ㅁ.ㅊ.ㄱ.ㄴ!



우리가 신석기 혁명이라 부르는 농경문화는 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물질적 혁신과 진보가 이루어졌으나 개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구성원 모두의 삶의 질이 개선된 것은 아니다. 단일 작물로 특화된 식량자원 생산 방식은 자연환경 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기에 생산 계층을 구성한 대부분의 민초들은 높은 강도의 노동을 강요당하면서 고단하고 궁핍한 삶을 살아야만 했다 이러한 삶이 영양상태의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했음이 고고학 발굴을 통해 증명되고 있다.(231)

이와는 달리 열대 지역에서는 비록 문명에 다다르지는 못했을지언정 집단의 규모를 적절하게 제한하는 방식으로 개인과 공동체가 채워야 할 욕망의 그릇을 작게 빚음으로써 오히려 풍요와 행복을 취할 수 있었다. 이러한 ‘원초적 풍요 사회‘는 자연환경과의 조화, 공동체 생존을 추구하는 평등의 정신 등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이러한 전통적 생활방식은 오늘날 아프리카에도 이어져 ‘우분투ubuntu‘라고 하는 공동체 지향적 정신의 뿌리를 이룬다. 이 정신의 핵심은 자연환경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공동체 모두가 함께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조화롭고 평등한 관계다. ‘우리가(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다‘는 집단 지향적 인식은 개인보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정신이다.(231~232)

희망봉 발견과 인도 항로 개척
기니만을 돌파한 후 남반구 아프리카의 대서양 연안을 따라 이어진 포르투갈의 신항로는 거침없이 연장되었고, 1488년에는 마침내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희망봉을 ‘발견‘한다. 여기서 잠깐!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이 ‘발견‘이라는 용어는 사실 유럽 중심의 세계사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도 마찬가지다. 유럽 사람들이 공식적으로 처음 그곳에 도착하였기에 유럽 사람들에게 발견된 것은 맞지만, 그곳에 이미 살고 있던 현지인의 입장에서는 ‘발견‘이라는 말이 탐탁지 않았을 것이다. ‘발견‘이 단순한 조우와 상호교류로 끝난 것이 아니라 정복과 착취의 제국주의 역사로 이어졌기 때문이다.(263)

이 책에서 나는 열대의 자연과 문화가 ‘아름답고 풍요롭다‘고 예찬했다. 그런데 이 시댕[ 그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의 혜택을 더 많이 향유하는 것은 중위도 선진국 사람들이다. 이 같은 풍족한 일상과 우아한 행복의 바탕에 열대의 생태계와 그들의 삶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다. 선진국 사람들이 누리는 혜택만큼 열대의 사람들이 그 대가를 충분히 받고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343)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극빈층의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들은 대부분 열대 지역에 위치한다. 2019년 세계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하루 소득액이 1.9달러 이하인 극빈층 비율이 가장 높은 10개 국가는 남수단, 적도기니, 마다가스카르, 기니비사우, 에리트리아, 상투메프린시페, 부룬디, 콩고민주공화국, 중앙아프리카공화국, 과테말라다. 모두 회귀선 안쪽 열대와 사막 지역에 속해 있으며 과테말라를 제외한 9개 국가는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해 있다. 극도로 가난한 이들 국가는 설상가상으로 난폭한 종족 간 분쟁을 겪고 있는 경우가 많다.(344)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 같은 불안정, 불평등, 극빈곤의 암울한 상황이 열대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책에서도 계속 이야기했듯 대부분 열대 지역이 처해 있는 정치, 경제적 후진성의 이유가 ‘열대‘라는 기후 조건 때문이라는 생각은 더더욱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즉 그 원인은 선진국 주도의 식민제국주의 역사와 그 잔재에 의한 현대 정치세력들의 부패와 갈등에 있지 결코 그 자연적 조건이나 인간 본연의 특성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그 속에서 안정된 로컬 사회를 이루고 평등의 전통을 실천하면서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보라. ... 함께 여행한 독자들에게도 우열의 관점이 아니라 다름의 관점에서 "피부색, 말은 모두 달라도 우리는 자랑스런 인간이다"라는 노래 가사를 실감할 수 있는 그런 열대여행이 되었기를 바란다.(344~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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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나도스 : 고예스카스 Op.11 [180g 2LP]
그라나도스 (Enrique Granados) 작곡, 백건우 (Kun-Woo Paik) 연주 / 유니버설(Universal)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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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지 않은 레퍼토리들. 그래서 턴테이블에 바늘을 자꾸 올리면서 여러번 집중해서 들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연주는 언제나 좋다.

늘 오케스트라 연주만 가다가 어느 날 넓은 객석 한가운데 그랜드 피아노 한 대 덩그러니 놓인 그곳에 연주자 백건우 한 사람만이 등장하고 곧 뭐라 표현하기 힘든 맑음? 청량함? 혹은 건조함? 단아함? 유려한 선율 같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던 그의 연주를 들었던 그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왼쪽으로 약간 비켜난 객석에 앉아 피아노 소리 외엔 숨소리조차 내쉬기 조심스러울 정도로 조용해서 오로지 피아노 선율만 흐르던 그 시간 이후로 백건우의 음반을 열심히 사 모아서 들었다.

그래서 다시 여러번 더 듣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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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운동 이후의 중국이 배경.
지식인 청년 라오리는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부정하고 암담한 현실을 인식하지만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탓에 어떠한 일도 실행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준다. 자신을 끊임없이 탓하기만하고 무엇하나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다. 가족도 아내도 자신의 신념도... 읽는 내내 답답했다!

라오리는 불 옆에 앉아 물을 한 주전자 들이켰지만 마음의 갈증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머리가 쭈뼛 서고, 답답해서 가슴에 불이 날 것만 같았다. 그는 아내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비록 그녀가 추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다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는 스스로가 제일 원망스러웠다. 어째서 샤오자오에게 밥을 사겠다고 나섰을까? 단지 친해 보이려고? 아니, 아내가 추해 보이는 것을 막고 싶었다. - P145

하지만 많은 돈까지 쓰고도 끝내 추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아내가 추해 보이는 게 뭐가 대수였을까? 아무리 샤오자오가 떼를 써도 밥을 사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다고 제가 날 어쩌겠어?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면 되는 거지! 피하고 숨겨서 뭐하게? 너야말로근본적으로 부패한 사회의 화신이야. 무료하고 쓸모없는 사회에 감히 맞서지도 못하다니. 너는 사람도 아니야! 왜 샤오자오그자의 면상에 냅다 술을 뿌리지 못했지? 그게 아니면 그 자식코를 쥐고 식초라도 부었어야지! 그저 혼자 답답해하기만 했을 뿐, 감히 제 마누라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어! 항상 자신은 신세대이고 이상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영락없는겁쟁이잖아. 별 볼 일 없는 과원들에게 틀렸다는 말도 제대로못 하고, 그들의 웃음거리가 돼도 아무 말도 못 하지! - P146

라오리는 가슴이 답답했다. 여자하나가 한 남자, 아니 어쩌면 여러 남자의 인생을 망칠 수 있어. 마찬가지로 남자들 또한얼마나 많은 여자들을 망가뜨렸을까? 이것은 남녀 개인의 문제가 아니야. 결혼 제도가 문제인 거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저 나 자신이나 딩얼 영감을 보며 가슴 아파하는 수밖에 없는 거야. - P180

라오리는 실망보다 창피함이 더 컸다. 실망 속에는 그래도 희망이 있지만, 이런 종류의 자괴감은 모든 문제를 남 탓으로 돌리지 않는 이상, 그저 빨리 죽어버리라고 스스로를 저주하게 될 뿐이다. 묘회에서 간신히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다가갔는데, 결과는 깨진 기와 조각에 얻어맞고 거름 더미에 엎어진 격이었다. 그녀를 탓하면 화를 가라앉힐 수도 있겠지만, 라오리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오직 자신을 탓했다. 자신은 너무나 평범한, 아니 너무 평범해서 남들이 희한하게 볼 정도로 평범한 사람이어서 아무도 라오리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딩얼 영감도 나보다는 나을 것이다. 흥, 네 주제에 감히 낭만을 꿈꿔? 그렇게 오랜 시간 참고 참다가 마침내 모험을 감행했고 잠시나마 가슴이 뛰었는데 결과는 망신뿐이다! 둘을하나로 엮는다고? 누구 맘대로? 라오리는 전신주에 머리를 들이박고서야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 P187

장다거 일이 급했지만 쑨 선생이 가고 혼자만 남게 되자 라오리도 마지못해 나가는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쑨 선생이 한 말을 곰곰이 되씹었다. 남자는 이러면 안 된다. 그는 생각했다. 순진한 여자는 저 스스로 함정에 빠진 것이고, 예쁜 여자는 스스로 족쇄를 채운 셈이며, 못생긴 여자는 생지옥에 사는 거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여자는 잘될 수가 없다. 남자가 못됐기 때문이다.

아니, 이것은 단지 남녀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보다 큰 문제이다. 절대로 개인의 문제로 생각해선 안 된다. 굳이 멀리서 예를 찾을 필요도 없이 관청 사람들을 좀 보라. 
소장이 어떤 사람인가? 관료 겸 토비다. 샤오자오? 사기꾼 겸 과원. 장다거? 남자 중매쟁이. 우 태극? 밥통 겸 무술쟁이. 쑨 선생? 건달 겸 베이핑 속담 수집가. 추선생? 고민의 상징 겸 과원. 이런 인물들 가지고 관공서를 꾸린다는 것 자체가 이미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 P209

그 부인들을 또 어떤가? 장다사오, 떡판, 쑨부인, 추부인,
거기에 내 마누라까지. 한 명도 제대로 된 여자가 없었다. 이런 남녀들이 사회의 중견 인물이고, 다음 세대를 키우고, 민족의 발전을 도모한다고? 웃기는 소리! 틀림없이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어.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처럼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인물들이 존재할 수 있겠어? 하지만 존재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니 그들이 쓸데없는 짓 말고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냐고.
- P210

"라오추, 자네 보기에 이렇게 사는 게 재미없는 것 같지 않아?"
추 선생은 한참을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웃었다.  "재미없지! 삶이란 것이 울타리에 갇히게 되면 마치 새장에 갇힌 새처럼 재미가 없어져. 꼭 내가 어렸을 적엔 거친 야생마였지만, 나이가 들어 장가들고, 일을 하게 되면서 아주 뺀질뺀질한 당나귀로 변한 것마냥. 나중엔 더성먼德勝門 밖으로 끌려가 큰솥에서 삶겨 고기로 팔리겠지. 이제는 울타리 밖으로 도망칠 수도없어. 누구도 못 해. 지금은 그저 순간순간 뜨거워졌다 차가워졌다 하며 사는 거지. 뜨거워졌을 때에는 발끈했다가, 차가워지면 살살 비위를 맞추는 거야. 학질 걸린 삶이야. 방법이 없어. 내가 처음부터 말단 관료가 되고 얌전한 남편이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니야.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또 어쩌겠어?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자네가 나보다 단수가 높기는 해도 그래 봤자 거기서 거기야. 그저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 똑같이 한 솥 안의 요리 신세인 거지. 이런 얘기 그만하고, 잡담이나 하자고. 그저 잡담할 때가 제일 즐거워."
내가 라오추를 잘못 알았구나. 그도 자신이 누군지 알고 있고 있었던 것이다. - P237

"리 선생님, 리 선생님, 다 끝났습니다. 생각보다 아주 쉽더라고요. 아주 쉬워요! 리 선생님, 일이라는 게 처음 마음먹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막상 하고보니 꼭 못 할 것도 아니더군요."
라오리는 그 말의 의미를 바로 알아차렸다. 딩얼 영감을 보니 문득 그가 입은 모시 다산이 새하얀 광채를 발하는 것 같았다. "일이라는 게 처음 마음먹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이 한 마디가 연신 그의 귓가를 맴돌았다. 마치 깊은 연못에 바위가 떨어지면서 튀어 오른 물방울처럼 가벼우면서도 힘이 느껴졌다
샤오자오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당얼 영감 자체가 기적이라는 느낌만 들었다. 딩얼 영감조차 그저 밥 먹고 차 마시고 관청에 나가는 것 말고 다른 일을 할 수있다니! 그는 술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켜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찔끔 마신 술은 목구멍에 달라붙어 넘어가질 않았다. - P341

라오리는 그저 술잔을 든 채 딩얼 영감이 술을 들이켜는 것을 쳐다보기만 했다.
독한 술맛에 목을 추켜세우는 딩얼 영감의 표정이 아주 의기양양해 보였다. 
"그 자식, 보내버렸습니다. 정말 쉽더군요. 슈전 아가씨가 너를 기다리고 있으니 허우하이에서 만나자고 했지요. 그가 왔더군요. 얼마나 신나 하던지. 여자들 능력이 참 대단합니다. 제가 잘 알고말고요. 별로 어둡지는 않았는데 다행히 주위에 사람이 없더라고요. - P342

저는 미리 와서 갈대숲속에 숨어 있었는데 모기가 되게 많았어요. 온몸이 물어뜯겨서여기저기 큼지막하게 부풀어 올라도 꼼짝 않고 있었네요. 

그때 그가 오더군요.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어휴, 가슴이 쿵쾅거리는데 꼭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더라고요. 정말로요! 제 앞을 지나칠 때까지 기다리다가 귀신이 사람 몸 가로채듯 두 손으로 그의 목을 꽉 졸랐지요. 거의 혼이 빠질 뻔했지만 그래도다른 것은 다 잊고 오직 두 손만 생각했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이 두 귀로 똑똑히 들었는데, 마치 잠자는 강아지가 가끔 낑낑대듯이 두어번 낑낑대더라고요. 그게 다였습니다요. 발도 제대로 버둥거리지 못하고 아주 얌전해지데요. 이 딩얼보다도 더 얌전하더란 말입니다요! 갈대밭 속으로 끌고 들어가 몸을 뒤졌더니 이 집문서가 나오데요. 지갑하고 시계는 건드리지도 않았습니다. 
일을 끝내고 나니 맥이 풀려서 나오지 못하겠더라고요. 걷지도 못하겠던걸요. 그가 반듯하게 누워 있는데 얼굴이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어요. 되게 무섭더군요. 갈댓잎이 한 번 흔들릴 때마다 마치 누가 뒤에서 내 목을 조를 것 같아 깜짝깜짝 놀랐습니다요."
딩얼 영감은 다시 술을 한 모금 들이켜고는 목덜미를 더듬었다. 목이 제대로 붙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 P343

라오리의 희망이 사라졌다. 
세상은 한 점 빛도 없는 암흑천지였다. 더 이상 이곳에서 살 수 없었다. 이 정원도 저 괴물 관청과 마찬가지로 무료하고 무의미했다. 라오리는 딩얼 영감을 깨웠다. 가슴속에 있는, 어렴풋하지만 분명히 아름다운 시골의 풍경을 그에게 들려주었다. 
"좋지요, 리선생님과 같이 시골로 갈래요, 암요! 베이핑에서는 조만간 총에 맞아 죽을 것 같아요!"
딩얼 영감은 당장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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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바진과 함께 중국 3대 문호로 꼽히는 라오서.
유머로 중국 현대문학의 영역을 확장한, 라오서 자신이 꼽은 최고의 작품.
라오서 작품으로 처음이다.

장다거張大哥는 모든 이의 다거이다. ‘그 애비도 제 자식을 다거라고 부를 거야.‘ 보는 사람마다 이런 생각이 들게 할 만큼 그는 딱 봐도 ‘다거‘였다. - P7

장다거에게는 일생을 바쳐 이루고 싶은 신성한 사명이 있다. 바로 중매와 이혼 퇴치다. 그는 모름지기 처녀에게는 적당한 남편이 있어야 하고, 총각 역시 그에 걸맞은 아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짝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장다거의 몸은 그 자체로 현미경이자 저울이었다. 그의 현미경은 처녀 얼굴에서 마맛자국을 발견하면 즉시 수많은 인파 속에서 말을 좀 더듬거나 보는 게 시원치 않은 남자를 찾아냈다. 저울에 올려놓고 보면 마맛자국과 근시는 피장파장이라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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