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장은 입술을 벌려 나를 쏘아보고는 말을 토해내려 했지만 나는 그걸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그가 고함치기 전에가능한 한 길게 내가 소리를 질러야만 한다.
"우리는 당신네 마을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어. 그리고 전염병이 유행할지도 모르는  마을에서 우리끼리만 지냈어.그러고는 당신들이 돌아와 
우리를 가두었지. 난 그걸 입 다물고 있진 않겠어. 우리가 당한 일, 우리가 보아온 걸 전부 말할 거야. 당신들은 군인을 찔러 죽였어. 그것도 그 군인의 부모와 형제에게 말할 거야. 당신들은 내가 질병을 조사하러 마을로 돌아와 달라고 부탁하러 갔을 때 내쫓았지. 전염병 속에 아이들만 떨어뜨려놓고 도와주지 않았어. 그걸 나는 말할 거야. 입 다물고 있진 않겠어."  - P220

"까불지 마!" 촌장이 소리쳤다. "어이, 까불지 마. 이봐, 넌자신을 뭐라고 생각하나? 너 같은 놈은 진짜 인간이 아니야.나쁜 유전자를 퍼뜨릴 뿐인 칠푼이야. 커봤자 아무짝에도못써."
촌장은 내 멱살을 붙잡아 나를 거의 질식시키고는 자신도분노에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알아? 너 같은 놈은 어릴 때 비틀어 죽이는 편이 나아. 칠푼이는 어릴 때 해치워야 돼. 우린 농사꾼이야, 나쁜 싹은 애당초 잡아 뽑아버려." - P225

나는 갇혀 있던 막다른 구렁텅이에서 밖으로 추방당하는참이었다. 그러나 바깥에서도 나는 여전히 갇혀 있을 테지.
끝까지 탈출하기란 결코 불가능하다. 안쪽에서도 바깥쪽에서도 나를 짓이기고 목을 조르기 위한 단단한 손가락, 우람한 팔은 끈질기게 기다리고 있다. - P228

광차가 멈추자 무기를 잡은 채 대장장이가 내리고, 나는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느닷없이 대장장이가 잇몸을 드러내며 덤벼들었다. 나는 몸을 앞으로 수그렸다. 대장장이의 쇠몽둥이가 내 뒤통수를 스치고 둔탁한 울림과 
함께 허공을쳤다. 나는 땅바닥에 닿은 무릎을 일으켜 쇠몽둥이가 반대쪽에서 되받아치기 전에 어둑한 관목 숲속으로 죽을 힘을 다해 뛰어 올라갔다. 얼굴이 잎사귀에 부딪치고 덩굴에 발이뒤엉키고, 어디 할 것 없이 피부가 찢어져 피를 흘리면서 어둠이 짙은 나무숲 속으로 연신 내달린 다음, 나는 기진맥진해 눈 속 깊이 풀고사리 속으로 쓰러졌다. - P228

그러나 나는 흉포한 마을 사람들로부터 달아나 밤의 숲을 내달려서 나에게 가해지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맨 먼저 무엇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나에게 다시 내달릴 힘이 남아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나는 녹초가 되어 미친 듯 분노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리고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불현듯 바람이 일고, 그것은아주 가까이까지 다가온 마을 사람들의 발소리를 실어 왔다. 나는 이를 앙다물고 몸을 일으켜 한층 캄캄한 나뭇가지사이, 한층 캄캄한 풀숲을 향해 뛰어들었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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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부 살인자의 성모> 페르난도 바예호
폭력의 굴레에 빠진 콜롬비아의 정치 사회적 현실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썼다. 소설인지 실재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인데 작가가 자신의 조국 콜롬비아의 상황에 대해 얼마나 비관적인지...
그가 조국을 떠나있었던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변해버린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어 보인다. 문장의 모든 비유와 조롱이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더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 맙소사. 그 총소리는 정말 끝내줘. 성수를 뿌리는 것처럼, 납 탄알이 비오든 쏟아져. 그러면 ‘인형‘들은 쓰러지고, 그런 동안 산토도밍고 사비오 성당과 후덥지근한 아침 위로 죽음의 여신이내뿜는 차갑고 시원한 돌풍이 불어와 산토 도밍고 사비오는 성스러운 것이라고는 성스러움을 뜻하는 ‘산토‘라는 단어밖에 없는 동네야. 그건 정말로 살인자들의 동네야. 그러고 나면 검찰청 요원들이 와서 시체를 치우고, 그런 다음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조용해. 산 사람들은 계속 그렇게 살아가고, 그러다가 다음 총격전이 벌어져야 비로소 권태에서 깨어나. - P129

그들에게 적을 남겨 두는 것 이외에도, 그들의 죽은 부모들과 형제들과 친구들은 각자 코무나에서 스스로 자기의 것을 얻어. 그리고 그가 살해되면, 그의 것과 그가 물려받은 것을 더해서 그의 아이들과 형제들과 친구들에게 대물림 돼. 
그건 피의 유산, 즉 범람한 강이야.  - P129

코무나는 이 증오와 원한의 엉킨 실타래를 풀면서 비로소 이해될 수 있어. 그러나 그건 불가능하며 소용도 없는 일이야. 나는 이 문제에 대한 그 어떤 해결책이나 구제책도 없다고 생각해. 알렉산드로스대왕이 단칼에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어버렸듯이 모조리 없애버리고 처형장을 만드는 수밖에 없어.  - P129

처형장은 흰 페인트를 바른 아주 긴벽인데, 거기에는 크고 까만 글씨로 ‘우로살리나(Urosalina)‘를광고하고 있어. 내가 어렸을 때 라디오는 간과 신장의 특효라는 그 기적의 약을 아주 빠른 속도로 ‘우-에레-오-에세-아-엘레-이-에네-오‘라고 한 글자 한 글자 읽어 주었어. 우로살리나! 그벽 앞에서 범죄자들은 쓰러졌고, 그 위로 독수리들이 내려앉았어.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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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중에 에밀리는 천사의 난폭함을 보이며 털어놓게 된다. 자신은 한번도 어머니를 가져본 적이 없다고. 어머니란 ‘우리가 불안에 사로잡힐 때 의지하게 되는 분‘이 아니겠냐고. 어머니란 무엇인가에 대한 완벽한 정의다. 우리가 무언가를 이해하려면 결핍보다 나은 것이 없다.˝(17쪽)

1886년 5월 15일, 아침 여섯 시가 채 안 된 시각, 정원에선 새들의 노래가 분홍빛 하늘을 흠뻑 적시고 재스민 향기가 대기를 정화하는 시각, 이틀 전부터 디킨슨가 사람들의 사고를 몽땅 마비시킨 소리가 멎는다. 힘들여 판지를 가르는 톱 소리랄지, 옹색하고 거북해도 꿋꿋한 숨소리다. 에밀리가 돌연 얼굴을 돌린 참이다. 2년 전부터 향 종이를 태우듯 그녀의 영혼을 소진시킨 보이지 않는 해를 향하여. 느닷없이 죽음이 방안을 가득 채운다. - P5

그 당시 부유한 가정에선 식구들 가운데 누가 죽으면 사진을 찍어 영원과 겨루는 게 관습이었다. 그날, 그런 사진은 없을 터였다. 임종을 지키던 이들의 안도 섞인 몇 마디, 그리고 백합꽃이 쏟아 내는 빛처럼 눈이 부시도록 흰 에밀리의 얼굴 앞에서 그들이 느끼는 놀라움이 있을 뿐.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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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데인 근교에 사바네타라고 불리던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이 있었어. 내가 익히 잘 알던 곳이었지. 그곳과 가까운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거든. 엔비가도에서 오는 길 한쪽에 또다른 마을이 있었는데, 사바네타와 그 마을 중간에 있는 산타 아니타 농장이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었어. 엔비가도에서 오는 길 왼쪽에 있는 농장이었지. 그러니 내가 그곳을잘 아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야. 그곳은 그 길의 끝에, 그러니까 오지중의 오지에 있었어. 그 너머로는 아무것도 없었어.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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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2일 IS 지휘관이 회관을 방문해 최후통첩을 했다. 지휘관은 이슬람으로 개종해서 이슬람 세계로 편입하든지 아니면 대가를 치르라며 선택을 종용했다. "결정할 말미를 사흘 주더군요. 우선 개종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된다고 했어요." 엘리아스가 집 마당에 서서 가족 모두에게 말했다. 그의 눈에 광기가 번득였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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