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엄마 마디는 용감했다고 생각된다.
큰 파도가 치는 폭풍 속 바다 한가운데서 처음으로 자식을 잃었다. 아빠 파타, 엄마 마디, 그리고 배에 타고 있는 5명의 자식들, 그리고 섬에 버려진 3명의 아이들은 앞으로 어찌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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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어미가 도대체 뭔가. 그녀는 지금까지 파타의 무모함을, 어리석은 희망을, 말이 안 되는 시도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나 로테를 잃어버린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그녀의 실책이었고, 그녀가 초래한 비극이었다. 왜 하필 로테일까? 언덕 위 집에 남겨진 아이들이 그러했듯이, 이번에도 이유 따위는 없었다. 우연을 어쩌겠는가. 사무치는 슬픔을 어쩌겠는가. - P178
솔직히 그녀는 어떻게 살든 상관없었다. 아, 하지만 다른 식구들이 있었다. 그녀는 마음이 서서히 치유될 거라고 믿지 않았다. 기껏해야, 치유 아닌 치유의 길에서 어정거릴 뿐이겠지. 그저 살아가기 위해, 여전히 아침에 일어나기 위해서 상처를 싸매는 정도겠지. 피가 흐르는 곳을 지혈하고 습포를 대는 정도겠지. 아이를 잃은아픔에 연고나 바르는 정도겠지. - P185
하지만 그 정도라 해도 아직은 너무 일렀다. 그녀는 생의 불가피성이 그 특유의 무관심과 체념으로 이런 유의 아픔도 잊게 할 거라고 상상할 수 없었다. 애절한 슬픔이 어머니를 집어삼키고 내쳤다. 그녀에게 시간이 있었다면, 그럴 정신이 있었다면 그래, 만약그랬더라면 그녀는 한쪽 무릎을 꿇고 몇 주 동안이라도 애원하며 버텼을 것이다. - P185
버텼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아이 다섯은 배에 타고 있고 셋은 언덕위 집에 남았다. 해류, 폭풍우, 굶주림은 방해 공작에 들어갔다. 게다가 그녀는 여전히 보트의 항적을 따라 그들을 뒤쫓는 바다 괴물의 흔적을 가끔 보았다. 애들 아빠는 몸이 부서져라 노를 저었고 리암과 마테오도 교대로 힘을 썼다. 저녁이 오고 비로소 노를 놓을 때그 손은 부들부들 떨렸고 그들의 낯빛은 허깨비처럼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모든 것이 긴급의 냄새를 맡았다. 마디도 그 점을 고통만큼이나 확실하게 느꼈다. 그래서 허리를 곧추세우기 위해 지팡이를 짚듯, 그녀도 무릎을 일으키고 제자리로돌아왔다. 어머니는다시 어머니가 되었다. 그녀는 유령 꼴이 되어버린 여섯 식구를 보았다. 그들은 이 열흘 사이에 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서서히 지워졌고, 이제 그림자 혹은 점으로 찍힌 형상에 지나지 않았다. - P185
그렇지만 예전과 지금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달랐다. 보트에 타고 있는 아이의 수가 달라졌으니까. 마디는 그 수를 헤아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다 기억하고 있었다. 하나하나. 꿈이라면 꿈, 망상이라면 망상처럼. 그녀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아홉번의 출산을 떠올렸다. 그 모든 난산과 순산을 모조리 돌아보았다. 시간을 죽이려고 그랬을까? 로테를 잃은 슬픔을 누그러뜨리고 그애를 상상 속에서라도 자꾸만 되살려내고 싶어서였다. 그 애를 낳을 때의 기억에 그녀는 좀 더 오래 머물렀다. 정말이지, 그 고통과환희의 순간을 다시금 살 때면 오만 감정이 다 북받쳤다. - P186
"내가 달려들면 그 틈에 배를 섬에 댈 수 있을 거예요." "뭐라고?" 아버지는 아들을 잡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아이는 주저하지도않고 그대로 몸을 던졌다. 마테오는 보트 너머로 뛰어내렸고 아버지는 말릴 겨를이 없었다. 조금 전에도 그의 옆에 있던 아들이 다음순간-1초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이미 배 안에 없었다. 그는 아들의 몸뚱이가 바다에 빠지는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 P209
아버지는 천지도 뒤흔들 것 같은 비명을 길게 토했다. 마디의 비명, 리암의 비명이기도 했다. 세 사람은 분명히 보았다. 소용돌이와 희끄무레한 물거품이 갑자기 반쯤 침몰한 배를 버리고 몇 미터 옆으로 재빨리 옮겨갔다. 칼날이 햇빛을 받아 번쩍하고 빛났다. 괴물이 울부짖는 소리, 아이의 비명, 그리고 시뻘겋게변해버린 그 주위의 바닷물, 다 부질없었다. 아버지는 듣지 않았고,보지 않았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는 노를 집어들었고 지옥에떨어진 자처럼 미친 듯이 육지를 향하여 노를 저었다. - P209
"죄송합니다. 부인, 실은・・・・・・ 섬이 아예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쓰러지는 순간 아버지는 얼른 팔을 내밀어 그녀를 부축했다. 그는 확인을 구하듯 이렇게 물었다. "뭐라고요?" 마디의 입이 벌어졌다. 천지를 찢을 듯한 비명이 그녀 속에 있건만, 밖으로 터져 나오지 못했다. 파타는 자기 몸까지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느꼈다. 드디어 마디의 입에서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가 나왔다. "뭐라고요?" "그 지역은 완전히 수몰되었습니다. 두 분이 말씀하시는 그 마을 소재지에도 순찰을 나가봤는데 완전히 바다가 되어 있더군요.거기에 남은 사람이 있었다고요?"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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