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만두님의 ‘명절을 견뎌내려는 각오’라는 분노에 찬 비장한 페이퍼를 읽다가 아아아!!! 맞다 소심한 소생도 명절을 버티기 위해서는 무언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시다시피(모르시는 분은 모르시겠지만) 소생 일전에 ‘대범한 당신’에 등극했으나 천품이 소심한 돼지가 일시일야에 대범해지기는 어려운 것이 세상 돌고돌아가는 이치란 말이다. 소생은 타고난 성질이 모나서 여러사람과 같이 어울려 잘 지내지를 못하고 돼지 우리같은 곳에서 혼자 똥밭에 뒹굴며 꿀꿀거리기를 좋아하는 성정이라 명절날 사람들이 모이고 꼬이면 도무지 적응을 못하고 몹시 불편해서 어떻게든 집구석에서 빠져나오려고 온갖 궁리를 만들기도 하는데, 명절날 아침부터 차례도 안지내고 어디 친구 만나러 간다고 뽕치기도 참 난감한 일이고, 골육인 친지들이 달그락거리며 뽁닥하게 모여있는데 독서랍시고 혼자 책을 들고 있기도 웃기는 일인 것이다. 어쨌든간에 금차 명절을 버텨볼 마음을 다지고 또 위로라도 하기 위해서는 소생에게도 한 주문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만두님의 페이퍼를 보자 번쩍 들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소생은 승효상의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3>, 장정일 <악서총람>, <땡스북 13호> 이렇게 50,490원어치를 구입했다. (소생에게 소박한 꿈이 하나 있다면 이 총 주문금액을 정확하게 똮!!! 똭!!! 50,000원에 한번 맞추어 보는 것이온데. 대범한 당신에도 등극한 소생이니 이도 아마 실현 가능하리라고 본다.) 특히 <악서총람>에 이르러서는 감회가 새롭다. <아담이 눈 뜰 때> 이후였는지 아니면 <햄버거에 대한 명상> 이후 였는지 어쨌든 간에 불초한 소생은 롱롱타임어고부터 장정일 선생을 사부로 모시고 사사하기로 혼자 작정을 했었다. 당근한 이야기지만서도 소생이 무슨 공문십철이나 예수의 12사도처럼 적전 제자가 될 주제가 아닌고로 그냥 방구석에 앉아 저 혼자 스승으로 모시고 힘써 배우고 삼가 따르고자 했을 따름이다. 비록 턴테이블과 타자기는 못 구했지만 그래도 소싯적 구차하고 곤궁한 살림에도 뭉크화집은 몇 권 구해서 모셔놓고 있었던 것이다.
사사의 연유에는 당근지사 선생의 고매하신 인품과 박람강기한 학식에 매료되었음이 명명백백할 것이나 선생과 소생이 동향이라는 점 또한 일말 추호의 영향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관데, 소생 소견에 사부와 소생이 이 반도의 남반부 변두리인 한 직할시(광역시 이전에는 직할시였다.)의 구석지고 후미진 골목 어디에선가 서로 스쳐 지나가 듯 만난 적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사부께옵서 계명대 불문과 다니던 사모님 용숙이(신이현 작가)와 연애하던 시절에는 대명동의 어느 술집에서 한심한 소생이 초저녁부터 꽐라되어 횡설수설하던 그 옆에 옆에 옆에 테이블 쯤에 앉아 계셨을 것도 같고 아니면 그 옆에 옆에 식당 쯤에서 일잔음주하고 계셨을 것도 같다는 같잖은 생각도 드는 것이다.
치기 넘치고 재기 발랄하며 호기 왕성하시던 사부께옵서 어느순간 부터인가 창작의 에너지가 고갈되었는지 작품을 쓰지는 못하고 일기만 주야장창 얼마나 많이 쓰셨는지 세상 사람들이 그 행장을 꾸려보니 무려 10책이나 되었다. 소생이 사부로부터 서서히 멀어지게 된 것도 그 즈음 어디인 것 같다. 사부의 일기를 7권쯤 읽고보니 더 이상은 읽기가 어려웠다. 희미해지는 옛 사랑의 그림자를 붙여잡고 버텨보려고 했으나 마음이 떠나니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독서일기 7권도 모두 중고로 팔아치워 버렸다.
스승을 떠난 후로 동가식서가숙하며 혹은 주지육림에서 헐떡벌떡이고 혹은 풍찬노숙의 고단함 속에서 질곡의 세월을 견디며 방황하던 소생도 어느듯 50줄을 바라보게 되니 스승께옵서 이제는 글쓰는 글쟁이 예인이 아니라 공부하는 학인이 되신 것을 불현듯 알겠고 더불어 스승이 문득 그리워진다. 소생 혼자 방구석에 앉아 사사한 것이니 무슨 돌아온 탕자처럼 늙은 애비 앞에 꿇어 엎드려 울며 용서를 빌 바는 아닐 것이나 송구한 마음이 영 없는 것 또한 아니다. 여우는 죽을 때 대가리를 어찌한다고 했던가? 오늘 선생의 <악서총람>을 주문한 연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