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폭주 돼지를 고발한 일이 있었다. 그후로 잠시 정말 잠시 쭈뼛거리며 주춤하던 돼지가 어디가 근질근질한지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다시 폭주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며칠 전에 《풀잎관》 세트를 포함 5만 주문했다. ‘대범한 당신을 위한 고액마일리지’는 역시 꽝이었다. 박복한 팔자의 돼지다. 지난 3개월간 순수구매총액이 854,690원이다. 순수구매총액이란 구매액 – 구폰결재액 - 적립금결재액이다. 나의 계정 멤버쉽 등급 옆에 있는 자세히 보기를 클리학면 나온다. 소생의 경제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지출이다. 일종의 쇼핑 중독되겠다.
이러다가 어느 달빛 교교한 밤에 문득 아내의 분노에 찬 철퇴를 받아내야 할지도 모른다. 터진 돼지머리에서는 ‘피가 네 낮익은 거리의 포도를 적시며 흘렀다’(한심한 소생은 옛날에 이 ‘포도’가 먹는 ‘포도’인줄 알았다. 왜 피가 포도를 적셔야 하는지 의아하게 생각했다. 비슷한 게 또 있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역시 먹는 포도인 줄 알고 ’분노한 포도‘라니 정말 대단한 포도다 라고 생각했다. 소생이 뭐 그렇게 굶주린 유년을 보낸 것은 아니지만 역시 천성이 식탐이 승하고 또 아둔한 탓이다.)...라고 처음에 썼는데 별족님께서 지적해주셔서 확인해 보니 포도는 바로 먹는 포도가 맞았습니다. 소생이 먹는 '포도'를 포장도로의 '포도'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ㅜㅜ 별족님께 감사드립니다.^^
아아!!! 낭자한 유혈 위로 달빛은 교교히 흐르고....으으... 생각만해도 끔직하다. (혹시 몰라서 첨언한다. 아내는 부드러운 여자이고, - 근자에 들어 한번씩 남성호르몬이 분비되는 것 같다고 말씀하신 적은 있다. - 평화주의자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소생이 아내의 철퇴를 감당해야한다면 이는 아내가 평화주의에서 폭력주의로 변한 때문이 아니고 소생의 무분별한 폭주 때문일 것이다.) 소생 나름의 구차한 변명은 있다. 그래도 소생은 음주가무에 빠져 주지육림에서 헐떡거리지는 않았다. 담배도 끊었다. (이게 뭐 책 살려고 담배 끊은 거는 아니지만.) 말인즉슨 육신의 쾌락을 쫓아 유흥에 탕진한 지출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요즘 소생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분들을 소개한다.
1. 《동주 열국지》
열국지 5권과 사전을 낱권으로 구입할 경우 10%할인가 137,700원인데 세트는 88200원이다. 민음사판 김구용 열국지를 가지고 있지만, 이 판은 문헌고증완역 정본이라고 하니 솔깃하다. 김구용 열국지와 그 옛날 아버지가 보시던 오래된 열국지(누구판인지 모르겠음. 지금은 없어졌음. 2단 세로쓰기였던 것 같음), 고우영 열국지 등 적어도 세종류 이상은 읽은 것 같다.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열국지의 이야기들은 정말로 흥미진진진하다. 숱한 영웅호걸들과 온갖 인간군상들의 파란만장과 흥망성쇠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그야말로 양손에 땀을 쥐어짜게는 이야기들이다.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
2. 《중세 1》
나온지 한 참되었다. 72,000원이다. 충동적으로 구입한 《전설의 땅 이야기》는 아직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했다. 그렇거나 말거나 이 책은 꼭 구입해야할 것만 같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문제는 이것이 1권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년까지 총4권 출간 계획이다. 중세를 총체적으로 총망라하는 대저술이다. 소생은 이 시리즈를 언제 구입해도 구입하긴 할 것이다. 문제는 때다. 목욕할 때 나오는, 뜨끈한 물에 살을 푹 삶듯이 불려야 많이 나오는 그 ‘때’가 아니다. 돈도 다소 여유가 있고 읽을 책들도 많이 밀려있지 않는 그런 적절한 ‘시기’말이다. 그런 시절은 영원히 안 올 수도 있고 바로 지금 이미 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3. 《왕좌의 게임 가죽 장정본 세트》
이분들은 정말 순수하게 소장 혹은 관상 목적으로 꼭 모시고 싶다. 67,900원이다. 가죽 장정이라고 한다. 아아!!! 쓰담쓰담해보고 싶다. 책등을 중심으로 봤을 때 위, 아래와 반대 부분에 금박이 칠해져 있으면 더 좋겠다. 성경처럼 말이다.(이미지를 보니 그건 아닌 것 같다. 금박이면 좋은데..뭐 아니라도 상관없다.) 이걸로 영어공부를 할 수도 있을 것이나, 소생도 염치가 있는 물건이라 더는 헛된 다짐을 못하겠다. 일전에 정말 충동적으로 구입한 펭귄 블랙 미니북 80권은 배송온 그날 책장 제일 윗 부분에 모셔진 이래로 한번도 내려오신 적이 없다. 그때도 명분 중에 큰 부분이 영어공부였다. 문제는 이게 아직 덜 나왔다는 것인데, 소생은 다만 이 책들이 품절될까 두려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