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되고 싶은 남편

늙지도 젊지도 않은 나이에 아이들이 떠나고 우리 부부만 남은 집은 고즈넉합니다.
최인호는 ‘독거노인’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 남편의 직업상 우리 부부는 밖에서는 그리 적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래된 부부만 남은 집안은 어떤 때는 고여 있는 물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미 수십 번이나 읽은 소설책 같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이 바로 행복이라는 생각은 합니다.

식사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밥 하는 것’에 별로 취미가 없습니다. 그 시간에 간단히 먹고 책이나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러나 몇해 전, 무슨 일 때문인가 제 스스로 크게 반성을 하면서 취미는 없지만 최소한 최선을 다하기는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적이 있어요.
어느 책을 읽으며 대충하는 식사준비는 가족에게 ‘영양’으로 가지 않겠구나. 그냥 허기만 면하게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지요.
그래서 나름 한 끼에 한 가지 이상은 새로운 반찬을 올리려고 애를 쓰지요.
사실 두 사람만 있는 터라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에요.
제일 작은 냄비에 된장찌개를 끓여도 두세 번은 먹어야 하거든요.
아침 준비 마치면 저는 여러 가지 말로 남편을 부릅니다.
“여보, 밥.”    “아저씨, 식사 나왔어요.”    “영감, 빨리 오시구랴.”
혼자 개그콘서트를 하는 거지요.

그런데 오늘 아침은 ‘유쾌한 식탁’이었어요.
남편은 쑥국, 마늘쫑 무침, 풋마늘 초고추장무침‘ 등등을 좋아하지요.
그런데 저는 마늘은 고기 구워먹을 때 먹는 마늘 외엔 별로 안먹습니다.
사실 쑥국도 먹을 수 있게 된 것도 몇 년 되지 않아요.
봄이 벌써 저만치 왔는데 이런 봄향기를 식탁에서 맡을 수 없는 남편의 불만이 터져나왔어요.
기어이 공사다망한 아내에게 목소리를 한 톤 높여 한 마디 합니다.
“여보, 나는 봄엔 쑥이나 마늘을 먹고 싶어.”
좀 켕긴 아내는 미안한 마음에 역시 한 마디 던집니다.
“당신, 사람이 되고 싶구랴?”

*** 들에 나가 당장에 쑥을 캐왔습니다.
저는 쑥뿌리가 이렇게 긴 줄은 몰랐어요.
겨우내 생명을 유지하여 살아남은 작은 식물의 무한한 의지가 느껴집니다.
봄에 지천으로 올라오는 작은 식물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보며 불평불만하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착한 생각을 해 봅니다.
남편은 아내가 끓인 쑥국을 먹고 드디어 ‘사람’이 되었답니다.
저녁식탁에 올렸지요.
근데 궁금해서 아내는 남편에게 또 한마디 합니다.
“여보, 사람이 되려면 생쑥을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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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4 14: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gimssim 2010-04-24 21:50   좋아요 0 | URL
제 서재에 처음 오신분이시지요?
반갑구요. 자주 들러주세요.^^

프레이야 2010-04-24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가 뜬금없이 뒷산에 가서 쑥을 좀 캤다고 하더군요.
전 한번도 직접 캐본 적이 없어서 다음엔 같이 좀 가자고 했어요.
볕을 받으며 쑥을 캐니까 마음이 참 좋아지더랍니다.
쑥뿌리가 저렇게 길군요.

gimssim 2010-04-24 21:52   좋아요 0 | URL
봄볕, 봄바람, 땅의 온기, 작은 식물들의 생명력,
함께 한 사람의 온기...이런 것들의 하모니가 아닐런지요.
다 '인간'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는 것들이잖아요.
며칠만에 뵙는 거죠?

페크pek0501 2010-04-25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책을 읽으며 대충하는 식사준비는 가족에게 ‘영양’으로 가지 않겠구나. 그냥 허기만 면하게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지요." - 위의 글 중.

어쩌나, 저도 찌개가 끓는 동안 시간이 아까워 식탁에서 책을 보고 있곤 하는데요.
ㅋㅋ 저도 집안일 중 음식만들기가 제일 싫어요. 설겆이는 좋아합니다. 물로 그릇을 씻으면 마음까지 시원해져요.

음식 만드는 시간이 가장 아까운데, 가족을 위해서 그 생각을 고쳐야겠군요.


gimssim 2010-04-25 18:01   좋아요 0 | URL
'먹는 것' 만드는 시간이 만만치가 않지요?
저는 거의 세끼를 집에서 다 준비해야해서
하루 두끼를 밖에서 해결하는 동서네가 부러워요.
그렇지만 이왕하는 거면 마음을 고쳐먹고 정성을 다하려고 애를 쓰지요.

꿈꾸는섬 2010-04-25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쑥 국 먹고 싶어요.^^ 쑥 향기가 여기까지 나는 것 같아요,

gimssim 2010-04-27 06:23   좋아요 0 | URL
요즘 나오는 봄 나물은 쑥 뿐만이 아니라 모두 보약이죠.
머위도 된장에 무쳐먹으면 맛있는데요.
약간 씁쓸한 게...실패한 첫사랑 맛이지요. ㅎㅎ

순오기 2010-04-26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쑥국을 먹으면서도 이렇게 글이 다를 수 있군요.^^
전쟁이 휩쓸고 간 들판에서도 쑥쑥 올라오는 것이 쑥이라지요.

gimssim 2010-04-27 06:5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쑥대밭이라고 하잖아요.
정말 지천입니다. 요즘 들에 나가면.
이젠 좀 세어지긴 했지만요.
그래도 뜯어다가 잘 갈무리 해두면 일년내내 쑥떡을 해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전 그 정도의 정열은 없어서리...

페크pek0501 2010-04-27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이 특종10에 뽑힌 것을 축~하~드~려~요.ㅋ

gimssim 2010-04-29 06:04   좋아요 0 | URL
네 감사드려요.
가끔 들러주시는 것두요.
마무리 하실 일이 있으시다더니 잘 되어가시는지요?

pjy 2010-04-30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쑥과 마늘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되고 싶은 곰입니다~ 근데 아무래도 날것이 아니라 아직도 곰은듯^^

gimssim 2010-04-30 06:10   좋아요 0 | URL
쑥과 마늘은 좋은 식물이니 건강에 매우 도움이 될 듯...
단군신화...그 시절엔 불이 발명되기 전이었을 터.

같은하늘 2010-05-05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보고 ??? 이러다가 글을 보고 한참을 웃었습니다.

gimssim 2010-05-05 19:15   좋아요 0 | URL
제가 좀 밝은 성격이 아니어서 글은 좀 재밌게 쓸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서 다행입니다.
좀 웃음을 주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웃을 일이 많지 않은 세상이서요.
 



영혼의 조표-샾

길을 가다가 문득 무언가에 이끌려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둥실 하얀 목련이 떠 있었습니다.
카메라를 꺼내 서너 장 사진을 찍었습니다.
얼기설기 전깃줄에 걸려있는 듯한 목련을 보며 오선지의 음표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천안함 함미 부분을 들어올려서 시신을 발굴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다 장성한 아들을 두고 있는 어미라서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의 삶이, 의식구조가, 사회제도가 조금만 더 천천히 가면서 인간을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목련 음표와 전깃줄 샾으로 그런 희망사항을 전송합니다.
이 조표처럼 인간의, 인간에 대한, 인간을 위한 일들이 반 음쯤 더 높여진다면
느닷없이 눈물 흘리는 이들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너무 순진한 생각일까요?
그래도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영혼을 위한 삶의 질을 반음만 더 높이고 싶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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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04-15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샾!! 파란 하늘에 그려진 반음올림 표시가 선명하네요.
영혼을 위한 삶의 질을 반음만 높이자~ 너무 좋은 말씀이에요.

gimssim 2010-04-16 21:13   좋아요 0 | URL
예수쟁이라 늘 목사님 말씀을 듣기 때문에 영혼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삼1:2'
제가 좋아하는 구절이지요.

hnine 2010-04-15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을 안드릴 수가 없어요.

gimssim 2010-04-16 21:1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카피 문구처럼 사람이 희망인 세상을 꿈꿉니다.

순오기 2010-04-16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마인드, 사랑합니다!

gimssim 2010-04-16 21:15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지난 주에 특종하셨더구만요.
축하드립니다. 침 맞으러 다니느라 인사가 늦었어요.
이번주에도...왕성한 에너지 부럽습니다.

같은하늘 2010-04-16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하늘에 전깃줄이 걸쳐 있는걸 언제 보았던가...
추천 꾸~~욱 누릅니다.

gimssim 2010-04-16 21:15   좋아요 0 | URL
가끔 하늘을 한 번씩 올려다 보는 것도 좋아요.
감사드리고, 좋은 봄 되세요.
 

 



  

   
  









   낙화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봄은 온통 꽃구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여행을 하면서 하늘에 떠있는 꽃보다는 이런 사진을 찍고 싶었습니다.
분분한 낙화...
1박2일의 여행을 하면서 욕심을 부려 오정희의 <가을 여자>와 윤광준의 <찰칵, 짜릿한 순간>을 챙겨넣었더니, 책은 펴보지도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조만간 <오정희론>에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어서이지요.
그러나 지금의 저에게는 ‘분분한 낙화’가 더 많은 메시지를 줍니다.
어느 고속도로를 타고 오다 보니<제발 천천히>라는 펼침막이 있었습니다.
그래요,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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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4-14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사진을 보면서 이형기의 낙화를 읊조리며 내려왔는데
낙화가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역시~~~ 알라딘에 올라온 수많은 꽃 사진 중에서
중전님의 사진이 최고예요!!

gimssim 2010-04-15 06:47   좋아요 0 | URL
나, 지금 비행기 어지러워요~~~ 내릴 때는 천천히요.

hnine 2010-04-15 0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좋지만 끝에서 두번째 사진에 제일 끌려요. 또 제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모셔갔습니다.
제가 그림을 잘 그린다면 그 사진은 서양화로, 혹은 동양화로 꼭 그려보고 싶네요.
다섯번째 사진과 여섯번째 사진은 촛점만 달리 해서 찍으신 것, 맞지요? 훌륭합니다.

gimssim 2010-04-15 06:38   좋아요 0 | URL
칭찬에 힘이 납니다.
배운 것 공부하느라 노출, 셔터, 맞춰가며 찍었더니 많이 햇갈렸어요.
그래도 오학년 아줌마의 가상한 노력의 결과입니다.ㅎㅎ

꿈꾸는섬 2010-04-15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진 사진이었어요. 저도 보면서 이형기 시인의 낙화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저도 깜짝 놀랐네요.ㅋㅋ

gimssim 2010-04-15 19:51   좋아요 0 | URL
분분한 낙화...
모짜르트를 질투한 살리에르처럼,
이런 시를 쓰신 이형기님에 대한 질투가...
노년에 쓰신 것인지 한 번 알아봐야겠네요.

세실 2010-04-15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한폭의 수채화네요. 님 땜에 제가 요즘 사진 배우고 싶은 강한 욕구가 밀려 옵니다.
책도 샀는데 정작 카메라는 똑딱이라는 ㅎㅎ
참 아름다운 사진과 시네요.

gimssim 2010-04-15 19:51   좋아요 0 | URL
요즘 똑딱이 성능도 만만치가 않아요.
제 카메라도 무늬만 DSLR인걸요.
제 친군 결혼기념일 선물 십년치 당겨서 백악관 기자들이 쓰는 카메라 장만했다고 자랑하더군요.
조언하자면 '사진찍기'를 좋아하셔야 합니다요.

프레이야 2010-04-15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마지막 사진과 끝에서 세번째 사진이 전 무지하게 좋아요.^^

gimssim 2010-04-15 21:37   좋아요 0 | URL
좋아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찍어야겠습니다. ㅎㅎ

비로그인 2010-04-16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구, 사진 좋습니다.
사진 얻어갑니다. 중전님

제 방에도 중전님 꽃 사진 올릴 겁니다. 하하


같은하늘 2010-04-16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과 시가 모두 너무 멋지십니다.
밖으로 나가 벚꽃이라도 한장 찍어 오려했는데 그만두어야겠습니다.^^

gimssim 2010-04-16 21:18   좋아요 0 | URL
아무려면 자신이 찍은 사진만 하겠습니까?
어서 찍으세요. 그리고 좀 올려주세요.
 



비싼 회 먹고 돌아오면서 우리 부부가 싸운 이유

봄이라고는 하지만 하루건너 비가 오는 날씨이고 보니 일조량 부족으로 시설농가의 채소, 과일의 작황이 저조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창 꽃이 피어야 할 시기에 꽃이 피지 못하고 있으니 올 여름 과일값도 만만치 않을 거란 우려도 듭니다.
일조량 부족으로 인한 문제는 비단 농가 뿐만 아니라 우리 집에도 해당이 됩니다.
햇빛을 충분히 쬐지 못한 탓인지 그렇잖아도 티격태격, 아웅다웅, 이러쿵 저러쿵 하는 부부가 드디어 선전포고도 없이 전쟁에 돌입을 했습니다.

요즘 들어 부쩍 저녁모임이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부탁을 했지요. 될 수 있는 대로 저녁식사 모임은 피할 수 있게 해 달라구요.
근대 우리 남편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간 큰 남자입니다.
보통 점심을 좀 제대로 먹으면 저녁은 가볍게 먹고 넘어갑니다.
물론 남편은 삼시 세 끼 다 밥 한 공기, 국 한 그릇입니다.
그나마 집에서는 저보고 억지로 먹으라고 하지 않는 것이 다행이지요.
저녁모임에 갔습니다.
가볍게 먹어야지 했지만 제가 좋아하는 회가 나오자 생각이 달라졌어요.
부산에서 나서 여덟 살까지 산 저는 바다에서 나는 것을 좋아합니다.
회를 맛있게 먹고 제 몫의 밥까지 한 공기를 먹었겠지요.
사건의 발단은 여기에서부터입니다.
점심을 좀 일찍 먹었던 터라 좀 시장했던지 초대하신 분이 권하자 남편은 밥을 조금 더 먹겠다는 것이었어요.
이런 일은 좀처럼 없어요. 절대 한 공기 이상은 안먹는 남편이에요.

오래 전, 신혼여행을 마치고 친정에 갔었어요.
저는 대대로 딸이 귀한 집의 외동딸이라 하나 밖에 없는 사위가 얼마나 귀했겠어요.
친정엄마가 말씀하셨어요. “좀 더 드시게.”
그런데 남편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더 못먹는다는 자세로 버틴 거 있죠?
어른이 권하시는데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거나 아니면 받아두었다가 저를 주어도 될 일이잖아요.
저는 이 일 땜에 친정에서의 첫밤을 눈물바람을 했어요.
엄마는 엄마대로 서운해 하셨지요. 나중에사 말씀하셨어요.
‘그땐 정말 딸 하나 있는 거 시집 잘못 보낸 줄 알았다.’
그런 사람이니 말 다했죠.

그런데 이 날은 밥을 한 공기를 더 시켰어요.
그리고 반을 덜어가면서 저 보고 반을 더 먹으라는 것이었어요.
저는 “됐어, 난 그만 먹어야겠다” 그랬더니
“그럼, 이 남은 밥은 어떻할 거냐? 깨끗하게 먹어야지, 나머지 먹어라, 여보, 조금만 더 먹어라, 남겨두면 좀 그렇잖아.”
이렇게 여러 소리를 하면서 기어이 남은 밥 반 공기를 제 빈 밥그릇으로 옮겨놓는 것이었어요.
지금도 인구의 절반은 굶고 있고 그 중의 반은 절대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는데 벌 받을 소리지요.
제가 안 먹고 버틴다면 남편의 체면이 말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그 밥을 먹었지요.
부부가 밥 반 공기 땜에 모양 사납게 음식점에서 티격태격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요.

아, 제 속에도 이런 이중성이 있었는지는 잘 몰랐어요.
만면에 웃음을 띠고 정중하게, 조신하게 허리를 굽혀서 인사를 했지요.
“저녁 잘 먹었어요. 감사합니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전화 드릴께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남편은 감을 잡았을 거에요.
제 말이 이렇게 길어지는 건 화가 많이 났다는 증거지요,

그렇게 헤어져서 자동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전쟁을 시작되었어요.
제 말의 요지는 이거였어요.
“왜 그만 먹겠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먹게 하냐? 이 나이에 밥 먹고, 안먹고 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냐, 밥이 남았으면 음식점 사람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요즘은 음식물 쓰레기로 활용을 하잖아. 한 그릇 더 먹을 자신이 없으면 거기서 멈췄어야지. 당신 그런 것에는 대쪽 같은 사람이 왜그래?” 속사포처럼 쏘아붙였어요.
그리고 제가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말을 기어이 하고 말았어요,
사실은 밥 문제가 아니었어요.
체중을 한 삼사 킬로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과체중은 아니지만 나이가 들어 체중이 느는 것이 심리적으로 좀 힘이 들었어요.
자기관리가 제대로 안된 사람처럼 느껴져서요.
기어이 울면서 남편에게 소리쳤어요.
“그거 몰라? 돈이 없으면 몸이라도 돼야지. 돈도 없고 몸도 안되는 건 내 자존심 문제야. 그렇게 내 마음을 몰라? 정말 마누라가 뚱뚱한 아줌마 되는 게 당신 소원이야?”
저의 속사포 선제공격에 전의를 상실했는지 남편은 그저 묵묵히 운전만 했어요.
사실 경제적인 문제도 상대적인 것이지 우리 형편이 절대 빈곤에 있는 건 아니었어요.
그래도 아내의 마음을 이렇게 모르나, 제가 남편에게 이런저런 요구사항이 많은 사람도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사실 남편이 왜 그랬는지 알고 있어요. 살아온 세월이 얼만데 그것 모르겠어요.
남편의 생각은 오직 한 가지였어요.
‘절대 밥을 남기면 안된다’
이날 전쟁은 남편의 응수가 없었으니 그냥 싱겁게 막을 내렸어요.
아무래도 일조량 부족으로 인한 우울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디 따뜻한 봄햇살 불러오기 할 데가 있을까요?

*** 그저께 저는 친구들이랑 ‘패밀리가 떴다’에 나온 영해 괴시마을에 가서 사진도 찍고 봄 햇살을 만끽했답니다.
집에 혼자 있었던 남편을 위해 내일은 섬진강쪽으로 가볼까 하는데 날씨가 좀 그렇다네요. 그래도 일단 마음을 먹었으니 움직여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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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0-04-11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식 아까워서 먹는거 이제 그만해도 될텐데..의외로 남자들이 더 아까워 하지요.
옆지기도 가끔 아이들 밥까지 먹는거 보면 미련해 보여서 제가 구박합니다.
오전에는 햇살이 좋았는데 아직도 일조량 부족하세요?
과체중은 자기 관리가 안된 사람이라는 표현에 전적으로 동감하면서도 제 맘 같이 안됩니다. 요즘 전 식욕이 동해요.

gimssim 2010-04-13 12:16   좋아요 0 | URL
나이탓인지 그렇게도 멀리한 병원에도 가끔 갑니다.
남편에게 좀 과장해서 얘기했지요.
나랑 오래 살려면 저녁 과식은 절대 안된대.
그랬더니 우리 남편은 또 음식 먹을 때마다 묻습니다.
"여보, 당신 이건 먹어도 돼나?"
으이구...앓느니 죽지!

프레이야 2010-04-12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감기로 몸이 안 좋다는 이유로 어제 오늘 무지하게 먹고 지냈어요.
한 끼 그랬다고 체중이 쉽게 불어나진 않으니 염려마시구요.^^
섬진강변으로 잘 다녀오시기 바래요.

gimssim 2010-04-13 12:17   좋아요 0 | URL
하동 갔다가 돌아오는 길...
매실 열아홉 그루 심어놓은 '농장주'는 밭에 들렀다 가야 한다고.
열심히 땅 파는 동안, 저는 복지회관에 와서 책보다가 이러구 있네요.

비로그인 2010-04-12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들며 사소하게 보이는 일에 쉽게 마음이 상하는 것 같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바깥 일과 아이들 일에 매이므로 부부사이의 일에 다소 둔감한 편인데,
집에 두 사람만 남으며 자신과 배우자의 언행에 더욱 집중하게 되는 듯합니다.
집중하는 그만큼 타격도 크고요..
여자분들만큼 남자들도 말 한마디에 상처를 많이 받는답니다.
심리적으로 약해지는 거지요. 일부는 여성화 영향도 있고요.

먼 산을 쳐다보며 현실을 받아들이려 애쓰지만 뜻대로 안되는 경우도 많지요.
배우자는 나이들수록 서로 격려하고 감사하는 표현을 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gimssim 2010-04-13 12:20   좋아요 0 | URL
한사님은 꼭 '정답'만 얘기하시는군요.
그러면 사는 게 별로 재미없는데...
우리 집에 또 한 사람 그런 사람이 있어서 잘 알지요.
그렇지만 말씀은 새겨 들을께요.

순오기 2010-04-14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관리 안 된 사람 여기 있어요~ ㅋㅋ 그래도 전 이대로 살래요.
우리 엄니, 시엄니 보니가 그 좋던 풍신이 살 빠지니까 어째 짠해보이더라고요.
두 분의 애정표현이 제 보기엔 염장질인데요.^^

gimssim 2010-04-24 21:57   좋아요 0 | URL
우씨~~~ 전 아직 봐줄만은 합니다.
팔랑팔랑 돌아다니려면 그래도 무게를 좀 줄여야지요.
염장질이라~~~.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니까요.
 

















나를 위로하는 사진 2 

김소월의 ‘영변의 약산’의 진달래꽃은 아니지만
경상북도 영해의 고려 말 충신 목은 이색 선생의 생가터 앞산의 진달래꽃입니다.
이렇게 지천으로 핀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작은 오솔길,
마을 한켠엔 산수유가 수천 개의 노란 등불을 매달고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떠있는 흰등불...목련
몇날 며칠 무거운 마음을 안고 지낸 자에게 주신 하늘의 축복인지요.
이 무슨 호사인지...마음 갈피에 잘 갈무리 하였다가
마음 꿀꿀할 때 가끔 ‘불러오기’를 해야할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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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04-12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꽃송이가 등불이었군요.^^
마음 속에 색색의 등불들을 켜고 그렇게 살아요.

gimssim 2010-04-13 12:11   좋아요 0 | URL
제가 사진 찍은 기술이 좀 더 좋았으면 더 아름답게 표현되었을 것인데...
아쉽지만, 더 나은 사진을 꿈 꿀 수 있겠다 싶어 아쉬운 마음 접습니다.
마음 속에 이렇게 많은 등불이면...정말 좋겠습니다. 그렇지요?

비로그인 2010-04-12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위 진달래 꽃밭 보니,
젊었을 적 진달래 '꽃속 키스' 생각이 납니다.
이런 말 하면 실례일까요?
봄이므로 부디 해량을.. 하하


gimssim 2010-04-13 12:12   좋아요 0 | URL
으흐흠...누구나 비밀은 있지요.
저는 고즈넉한 '호수가' 였는데...이런이런!

순오기 2010-04-14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달래 달래 진달래~~~~~~~~ 내 고향 뒷산이 생각나네요.
넘 근사해서 사진 잘 찍는 분들 보면 부러워요.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 편히 쉬세요.^^

gimssim 2010-04-15 06:33   좋아요 0 | URL
맞아요. 맨위 진달래 사진은 크게 확대해 보면 정말 좋은데.
자화자찬.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