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회 먹고 돌아오면서 우리 부부가 싸운 이유

봄이라고는 하지만 하루건너 비가 오는 날씨이고 보니 일조량 부족으로 시설농가의 채소, 과일의 작황이 저조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창 꽃이 피어야 할 시기에 꽃이 피지 못하고 있으니 올 여름 과일값도 만만치 않을 거란 우려도 듭니다.
일조량 부족으로 인한 문제는 비단 농가 뿐만 아니라 우리 집에도 해당이 됩니다.
햇빛을 충분히 쬐지 못한 탓인지 그렇잖아도 티격태격, 아웅다웅, 이러쿵 저러쿵 하는 부부가 드디어 선전포고도 없이 전쟁에 돌입을 했습니다.

요즘 들어 부쩍 저녁모임이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부탁을 했지요. 될 수 있는 대로 저녁식사 모임은 피할 수 있게 해 달라구요.
근대 우리 남편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간 큰 남자입니다.
보통 점심을 좀 제대로 먹으면 저녁은 가볍게 먹고 넘어갑니다.
물론 남편은 삼시 세 끼 다 밥 한 공기, 국 한 그릇입니다.
그나마 집에서는 저보고 억지로 먹으라고 하지 않는 것이 다행이지요.
저녁모임에 갔습니다.
가볍게 먹어야지 했지만 제가 좋아하는 회가 나오자 생각이 달라졌어요.
부산에서 나서 여덟 살까지 산 저는 바다에서 나는 것을 좋아합니다.
회를 맛있게 먹고 제 몫의 밥까지 한 공기를 먹었겠지요.
사건의 발단은 여기에서부터입니다.
점심을 좀 일찍 먹었던 터라 좀 시장했던지 초대하신 분이 권하자 남편은 밥을 조금 더 먹겠다는 것이었어요.
이런 일은 좀처럼 없어요. 절대 한 공기 이상은 안먹는 남편이에요.

오래 전, 신혼여행을 마치고 친정에 갔었어요.
저는 대대로 딸이 귀한 집의 외동딸이라 하나 밖에 없는 사위가 얼마나 귀했겠어요.
친정엄마가 말씀하셨어요. “좀 더 드시게.”
그런데 남편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더 못먹는다는 자세로 버틴 거 있죠?
어른이 권하시는데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거나 아니면 받아두었다가 저를 주어도 될 일이잖아요.
저는 이 일 땜에 친정에서의 첫밤을 눈물바람을 했어요.
엄마는 엄마대로 서운해 하셨지요. 나중에사 말씀하셨어요.
‘그땐 정말 딸 하나 있는 거 시집 잘못 보낸 줄 알았다.’
그런 사람이니 말 다했죠.

그런데 이 날은 밥을 한 공기를 더 시켰어요.
그리고 반을 덜어가면서 저 보고 반을 더 먹으라는 것이었어요.
저는 “됐어, 난 그만 먹어야겠다” 그랬더니
“그럼, 이 남은 밥은 어떻할 거냐? 깨끗하게 먹어야지, 나머지 먹어라, 여보, 조금만 더 먹어라, 남겨두면 좀 그렇잖아.”
이렇게 여러 소리를 하면서 기어이 남은 밥 반 공기를 제 빈 밥그릇으로 옮겨놓는 것이었어요.
지금도 인구의 절반은 굶고 있고 그 중의 반은 절대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는데 벌 받을 소리지요.
제가 안 먹고 버틴다면 남편의 체면이 말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그 밥을 먹었지요.
부부가 밥 반 공기 땜에 모양 사납게 음식점에서 티격태격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요.

아, 제 속에도 이런 이중성이 있었는지는 잘 몰랐어요.
만면에 웃음을 띠고 정중하게, 조신하게 허리를 굽혀서 인사를 했지요.
“저녁 잘 먹었어요. 감사합니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전화 드릴께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남편은 감을 잡았을 거에요.
제 말이 이렇게 길어지는 건 화가 많이 났다는 증거지요,

그렇게 헤어져서 자동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전쟁을 시작되었어요.
제 말의 요지는 이거였어요.
“왜 그만 먹겠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먹게 하냐? 이 나이에 밥 먹고, 안먹고 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냐, 밥이 남았으면 음식점 사람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요즘은 음식물 쓰레기로 활용을 하잖아. 한 그릇 더 먹을 자신이 없으면 거기서 멈췄어야지. 당신 그런 것에는 대쪽 같은 사람이 왜그래?” 속사포처럼 쏘아붙였어요.
그리고 제가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말을 기어이 하고 말았어요,
사실은 밥 문제가 아니었어요.
체중을 한 삼사 킬로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과체중은 아니지만 나이가 들어 체중이 느는 것이 심리적으로 좀 힘이 들었어요.
자기관리가 제대로 안된 사람처럼 느껴져서요.
기어이 울면서 남편에게 소리쳤어요.
“그거 몰라? 돈이 없으면 몸이라도 돼야지. 돈도 없고 몸도 안되는 건 내 자존심 문제야. 그렇게 내 마음을 몰라? 정말 마누라가 뚱뚱한 아줌마 되는 게 당신 소원이야?”
저의 속사포 선제공격에 전의를 상실했는지 남편은 그저 묵묵히 운전만 했어요.
사실 경제적인 문제도 상대적인 것이지 우리 형편이 절대 빈곤에 있는 건 아니었어요.
그래도 아내의 마음을 이렇게 모르나, 제가 남편에게 이런저런 요구사항이 많은 사람도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사실 남편이 왜 그랬는지 알고 있어요. 살아온 세월이 얼만데 그것 모르겠어요.
남편의 생각은 오직 한 가지였어요.
‘절대 밥을 남기면 안된다’
이날 전쟁은 남편의 응수가 없었으니 그냥 싱겁게 막을 내렸어요.
아무래도 일조량 부족으로 인한 우울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디 따뜻한 봄햇살 불러오기 할 데가 있을까요?

*** 그저께 저는 친구들이랑 ‘패밀리가 떴다’에 나온 영해 괴시마을에 가서 사진도 찍고 봄 햇살을 만끽했답니다.
집에 혼자 있었던 남편을 위해 내일은 섬진강쪽으로 가볼까 하는데 날씨가 좀 그렇다네요. 그래도 일단 마음을 먹었으니 움직여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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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0-04-11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식 아까워서 먹는거 이제 그만해도 될텐데..의외로 남자들이 더 아까워 하지요.
옆지기도 가끔 아이들 밥까지 먹는거 보면 미련해 보여서 제가 구박합니다.
오전에는 햇살이 좋았는데 아직도 일조량 부족하세요?
과체중은 자기 관리가 안된 사람이라는 표현에 전적으로 동감하면서도 제 맘 같이 안됩니다. 요즘 전 식욕이 동해요.

gimssim 2010-04-13 12:16   좋아요 0 | URL
나이탓인지 그렇게도 멀리한 병원에도 가끔 갑니다.
남편에게 좀 과장해서 얘기했지요.
나랑 오래 살려면 저녁 과식은 절대 안된대.
그랬더니 우리 남편은 또 음식 먹을 때마다 묻습니다.
"여보, 당신 이건 먹어도 돼나?"
으이구...앓느니 죽지!

프레이야 2010-04-12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감기로 몸이 안 좋다는 이유로 어제 오늘 무지하게 먹고 지냈어요.
한 끼 그랬다고 체중이 쉽게 불어나진 않으니 염려마시구요.^^
섬진강변으로 잘 다녀오시기 바래요.

gimssim 2010-04-13 12:17   좋아요 0 | URL
하동 갔다가 돌아오는 길...
매실 열아홉 그루 심어놓은 '농장주'는 밭에 들렀다 가야 한다고.
열심히 땅 파는 동안, 저는 복지회관에 와서 책보다가 이러구 있네요.

비로그인 2010-04-12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들며 사소하게 보이는 일에 쉽게 마음이 상하는 것 같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바깥 일과 아이들 일에 매이므로 부부사이의 일에 다소 둔감한 편인데,
집에 두 사람만 남으며 자신과 배우자의 언행에 더욱 집중하게 되는 듯합니다.
집중하는 그만큼 타격도 크고요..
여자분들만큼 남자들도 말 한마디에 상처를 많이 받는답니다.
심리적으로 약해지는 거지요. 일부는 여성화 영향도 있고요.

먼 산을 쳐다보며 현실을 받아들이려 애쓰지만 뜻대로 안되는 경우도 많지요.
배우자는 나이들수록 서로 격려하고 감사하는 표현을 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gimssim 2010-04-13 12:20   좋아요 0 | URL
한사님은 꼭 '정답'만 얘기하시는군요.
그러면 사는 게 별로 재미없는데...
우리 집에 또 한 사람 그런 사람이 있어서 잘 알지요.
그렇지만 말씀은 새겨 들을께요.

순오기 2010-04-14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관리 안 된 사람 여기 있어요~ ㅋㅋ 그래도 전 이대로 살래요.
우리 엄니, 시엄니 보니가 그 좋던 풍신이 살 빠지니까 어째 짠해보이더라고요.
두 분의 애정표현이 제 보기엔 염장질인데요.^^

gimssim 2010-04-24 21:57   좋아요 0 | URL
우씨~~~ 전 아직 봐줄만은 합니다.
팔랑팔랑 돌아다니려면 그래도 무게를 좀 줄여야지요.
염장질이라~~~.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