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되고 싶은 남편

늙지도 젊지도 않은 나이에 아이들이 떠나고 우리 부부만 남은 집은 고즈넉합니다.
최인호는 ‘독거노인’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 남편의 직업상 우리 부부는 밖에서는 그리 적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래된 부부만 남은 집안은 어떤 때는 고여 있는 물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미 수십 번이나 읽은 소설책 같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이 바로 행복이라는 생각은 합니다.

식사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밥 하는 것’에 별로 취미가 없습니다. 그 시간에 간단히 먹고 책이나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러나 몇해 전, 무슨 일 때문인가 제 스스로 크게 반성을 하면서 취미는 없지만 최소한 최선을 다하기는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적이 있어요.
어느 책을 읽으며 대충하는 식사준비는 가족에게 ‘영양’으로 가지 않겠구나. 그냥 허기만 면하게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지요.
그래서 나름 한 끼에 한 가지 이상은 새로운 반찬을 올리려고 애를 쓰지요.
사실 두 사람만 있는 터라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에요.
제일 작은 냄비에 된장찌개를 끓여도 두세 번은 먹어야 하거든요.
아침 준비 마치면 저는 여러 가지 말로 남편을 부릅니다.
“여보, 밥.”    “아저씨, 식사 나왔어요.”    “영감, 빨리 오시구랴.”
혼자 개그콘서트를 하는 거지요.

그런데 오늘 아침은 ‘유쾌한 식탁’이었어요.
남편은 쑥국, 마늘쫑 무침, 풋마늘 초고추장무침‘ 등등을 좋아하지요.
그런데 저는 마늘은 고기 구워먹을 때 먹는 마늘 외엔 별로 안먹습니다.
사실 쑥국도 먹을 수 있게 된 것도 몇 년 되지 않아요.
봄이 벌써 저만치 왔는데 이런 봄향기를 식탁에서 맡을 수 없는 남편의 불만이 터져나왔어요.
기어이 공사다망한 아내에게 목소리를 한 톤 높여 한 마디 합니다.
“여보, 나는 봄엔 쑥이나 마늘을 먹고 싶어.”
좀 켕긴 아내는 미안한 마음에 역시 한 마디 던집니다.
“당신, 사람이 되고 싶구랴?”

*** 들에 나가 당장에 쑥을 캐왔습니다.
저는 쑥뿌리가 이렇게 긴 줄은 몰랐어요.
겨우내 생명을 유지하여 살아남은 작은 식물의 무한한 의지가 느껴집니다.
봄에 지천으로 올라오는 작은 식물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보며 불평불만하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착한 생각을 해 봅니다.
남편은 아내가 끓인 쑥국을 먹고 드디어 ‘사람’이 되었답니다.
저녁식탁에 올렸지요.
근데 궁금해서 아내는 남편에게 또 한마디 합니다.
“여보, 사람이 되려면 생쑥을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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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4 14: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gimssim 2010-04-24 21:50   좋아요 0 | URL
제 서재에 처음 오신분이시지요?
반갑구요. 자주 들러주세요.^^

프레이야 2010-04-24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가 뜬금없이 뒷산에 가서 쑥을 좀 캤다고 하더군요.
전 한번도 직접 캐본 적이 없어서 다음엔 같이 좀 가자고 했어요.
볕을 받으며 쑥을 캐니까 마음이 참 좋아지더랍니다.
쑥뿌리가 저렇게 길군요.

gimssim 2010-04-24 21:52   좋아요 0 | URL
봄볕, 봄바람, 땅의 온기, 작은 식물들의 생명력,
함께 한 사람의 온기...이런 것들의 하모니가 아닐런지요.
다 '인간'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는 것들이잖아요.
며칠만에 뵙는 거죠?

페크pek0501 2010-04-25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책을 읽으며 대충하는 식사준비는 가족에게 ‘영양’으로 가지 않겠구나. 그냥 허기만 면하게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지요." - 위의 글 중.

어쩌나, 저도 찌개가 끓는 동안 시간이 아까워 식탁에서 책을 보고 있곤 하는데요.
ㅋㅋ 저도 집안일 중 음식만들기가 제일 싫어요. 설겆이는 좋아합니다. 물로 그릇을 씻으면 마음까지 시원해져요.

음식 만드는 시간이 가장 아까운데, 가족을 위해서 그 생각을 고쳐야겠군요.


gimssim 2010-04-25 18:01   좋아요 0 | URL
'먹는 것' 만드는 시간이 만만치가 않지요?
저는 거의 세끼를 집에서 다 준비해야해서
하루 두끼를 밖에서 해결하는 동서네가 부러워요.
그렇지만 이왕하는 거면 마음을 고쳐먹고 정성을 다하려고 애를 쓰지요.

꿈꾸는섬 2010-04-25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쑥 국 먹고 싶어요.^^ 쑥 향기가 여기까지 나는 것 같아요,

gimssim 2010-04-27 06:23   좋아요 0 | URL
요즘 나오는 봄 나물은 쑥 뿐만이 아니라 모두 보약이죠.
머위도 된장에 무쳐먹으면 맛있는데요.
약간 씁쓸한 게...실패한 첫사랑 맛이지요. ㅎㅎ

순오기 2010-04-26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쑥국을 먹으면서도 이렇게 글이 다를 수 있군요.^^
전쟁이 휩쓸고 간 들판에서도 쑥쑥 올라오는 것이 쑥이라지요.

gimssim 2010-04-27 06:5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쑥대밭이라고 하잖아요.
정말 지천입니다. 요즘 들에 나가면.
이젠 좀 세어지긴 했지만요.
그래도 뜯어다가 잘 갈무리 해두면 일년내내 쑥떡을 해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전 그 정도의 정열은 없어서리...

페크pek0501 2010-04-27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이 특종10에 뽑힌 것을 축~하~드~려~요.ㅋ

gimssim 2010-04-29 06:04   좋아요 0 | URL
네 감사드려요.
가끔 들러주시는 것두요.
마무리 하실 일이 있으시다더니 잘 되어가시는지요?

pjy 2010-04-30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쑥과 마늘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되고 싶은 곰입니다~ 근데 아무래도 날것이 아니라 아직도 곰은듯^^

gimssim 2010-04-30 06:10   좋아요 0 | URL
쑥과 마늘은 좋은 식물이니 건강에 매우 도움이 될 듯...
단군신화...그 시절엔 불이 발명되기 전이었을 터.

같은하늘 2010-05-05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보고 ??? 이러다가 글을 보고 한참을 웃었습니다.

gimssim 2010-05-05 19:15   좋아요 0 | URL
제가 좀 밝은 성격이 아니어서 글은 좀 재밌게 쓸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서 다행입니다.
좀 웃음을 주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웃을 일이 많지 않은 세상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