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값 하고 살라시는 스승님 말씀이 늘 들리는 것 같다. 지금 하는 일이 너무 바빠 5월 이후 집회에 내내 못가다가 이제야 나섰다.

늘 행동은 하지 않으려는 남편에게 집회에 같이 가는 것이 내 생일 선물이라고 하고서, 그리고 뭣모르는(?) 철부지 대학생 조카 둘도 겨우 꼬셔서 나섰다. 조카들 데려간다고 하니 다음날에도 근무 있어 안온다던 언니도 중학생 아들들을 데려와 우리식구만 일곱이 되었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큰 힘이다.

날씨는 무덥고 울보인 나는 집회 내내 눈물이 났다. 순천시국회의 깃발이 보여 틀림없이 아는 선배 한 명 있을 것 같아 가보았다가 정호선배와 조우^^ 했다.

단식 33일째라 건강을 염려한 사람들이 권해 준 구급차를 타고 온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의, "광화문광장에서 죽겠다"는 말에 우리 백성이 울고 호소하고 죽어갔던 그곳의 역사가 떠올라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흑산도라 검은 섬 암벽에 부서지는 하얀 파도 없다면 남해바다 너 무엇에 쓰랴
전라도라 황토길 천군만마 휘날리는 말발굽소리 없다면 황산벌 너 무엇에 쓰랴 무엇에 쓰랴
천으로 만으로 터진 아우성 소리 없다면
이 거리 이 젊음 무엇에 쓰랴
살아라 형제여 한번 살아라 한번 죽어 골백번 영혼으로 살아라
창대빛 죽창에 미쳐 광화문 네거리 후두둑
떨어지는 녹두꽃 햇살에 미쳐
4월의 자유에 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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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8-17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참석을 하지 못했습니다. 간다 간다 해놓고 못갔네요. 부끄럽습니다. 이 나라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하다 보니 이제는 뉴스도 안 보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런 무관심이야말로 권력자가 간절하게 원하는 현상인데 말이죠.... 도대체, 이런일을 당하고도 이젠 없던 일로 하자,라는 국민성 앞에서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 미친 국가 같습니다.

samadhi(眞我) 2014-08-17 18:43   좋아요 0 | URL
저도 아주 오랜만에 갔는걸요.
국민을 우롱하고 바보로 만드는 능력은 최강인 것 같습니다. 지들끼리 그런 걸 리더십이라고들 부르는 것 같아요. 참을 수가 없습니다. 참지 못하는 시민이 점점 늘어나 거리를, 광장을 가득 메워야 하는데......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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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소재는 굉장히 신선하고 재미는 아주 뛰어나 책에 빠져들게 하다가, 일만 잔뜩 크게 벌려놓고 수습하지 않는 느낌에 끝까지 읽으면 무척 허탈해진다. 그래서 몇 권 읽고 난 뒤부터는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거다. 굉장한 작가와 그렇지 않은 작가를 구분하는 기준 하나가 맺음의 철학(?)이다. 법정 스님의 책 제목처럼 "아름다운 마무리" 를 할 줄 아는 작가가 진짜라고 믿는다. 그런데 하루키의 소설과 달리, 에세이는 꽤 괜찮다는 얘기에 읽기 시작했다. 에세이도 읽지 않는 편인데, 무척 존경하는 분의 글이거나, 이렇게 괜찮다는(?) 에세이는 읽기도 한다.

 

보통 "작가" 라고 하면 밤샘작업을 기본으로 하는 부엉이과 일 것이라 짐작하기 쉬운데, 하루키는 특이하게도 이른바 바른생활(아침일찍 일어나고 일찍 잠드는) 인간형이다. 심지어 규칙적인 운동까지 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나도 걷는 것보다 달리기가 좋아 하루키의 이야기에 공감이 간다. 특별히 아픈 데 없이 이십 여 년 동안 별탈 없이 달리기를 해왔다는 튼튼한 몸이 무척 부럽다. 이 부실한 선수는 이십대부터 무릎이 부실하야, 관절염 1기 라는 진단을 받았구만. 부실한 하체로 되지도 않는 봉산탈춤을 펄쩔펄쩍 뛰며 추었더니 탈이 나서 달리기 종류를 거의 하지 못한다. 그런 운동을 아주 좋아하는데도 마음만 청춘. 이러고 있구만.

 

하루키가 굉장히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것에 충격을 받는다. 내 좁은 편견이 부른 오해(?)였지만. 어쩌면 부럽고 질투가 나서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고, 아님 모든 이들이 나처럼 게을러주기를 바라는 바보같은 바람이었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역시,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보다. 언젠가는 글을 써보고 싶다는 욕심만 부린 채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그저 삶에 쫓겨 살고 있다. 그런데 "소설을 쓰고 싶다, 소설을 쓰자 " 고 마음 먹은 뒤에 바로 소설을 써서 소설가가 되다니. 소설가 되기 참 쉽구나. 얼마 전부터 웹툰을 그리는 후배의 글을 교정하고 있다. 제법 괜찮은 작품이 되어가는 걸 보며 대단하다 생각하고 부럽기도 하고 난 무얼하고 있나 싶다. 무르팍이 부서지더라도 한번 뿐인 인생 달려볼꺼나. 너무 바빠서 하루하루가 벅찬 요즘, 미뤄뒀던 운동을 시작하고 싶다. 나도 달릴거야. 나도 춤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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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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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이라는 뜻의 에브리바디, 에브리원은 당연하게 알았는데, "보통사람"이라는 뜻의 에브리맨은 모르고 살았다. 바로 우리들, 보통 사람의 인생을 그려낸 작품이다.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대체 무얼하며 살아가는지.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또 공허해지고 허무해지고 인생무상을 떠올리게 된다. 삶을 얘기하다보면 필연적으로 죽음을 빼놓을 수 없는데 그러다보니 인생 참 별 거 없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는 거지 뭐. 어린 시절의 추억과 그 속에 녹아있는 아픔, 기쁨, 충격들로 빚어진 세상살이. 고달픈 풍파 속. 

 

어린 시절에 어떤 일을 겪고 난 뒤 이러저러한 트라우마가 생겨났다고 하자. 그것을 극복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 금방 잊게 되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면 죽을 때까지 괴로운 기억이란 녀석에게 잡아먹히고 말 지도 모른다. 허무하고 허무하다, 인생이여. 아무리 기를 쓰고 벗어나려고 해도 삶에게 발목잡히고 마는 나약한 인간이라는 존재여, 무슨 짓을 해도 결국은 죽음을 찾아가는 우리네 인생이여, 참으로 헛되고 헛되다.

 

아무리 우울해도, 못나 빠져도, 손가락질 받아도, 죽도록 창피한 짓을 해서 낯을 들 수 없을 것 같은 날에도 우리는 기어이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친다. 이러라고 태어난 인생인가보다. 그러다 어느 날에는 가슴 한 켠에 굵직한 소나기 한바탕 쏟아져 호탕하게 웃기도 한다. 그러면서 눈물을 질질 짜던 그날은 새까맣게 웃고 이 맛에 산다며 큰소리 치기도 하지.

 

재미난 것은 마커스 주삭, 『 책도둑』에 나온 『무덤 파는 사람을 위한 안내서』의 내용을 알게 된다는 점이다. 『 책도둑』을 읽는 동안 『무덤 파는 사람을 위한 안내서』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궁금했는데(아주 조금 나오긴 하지만) 이 책에서 주인공이 무덤을 돌아보며 몸소 무덤을 파며 살아 온 사람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책을 읽다 보면 신기하게 서로 연결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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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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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조금 읽다가 말았던 책이다. 홀로 눈 떠 있는 여자에게 심하게 감정이입을 하는 바람에 두려워서 더 이상 책 읽기가 꺼려졌다. 이번 세월호 "사건"을 겪고 나니 이 책 생각이 난다. 국민을 짐짝, 짐승처럼 대하는, 아무 때나 버려버리는 끔찍한 정부의 행태가 똑같다. 저번 청계광장 촛불집회 때 청년연합(?) 대표가 한 말이 떠오른다. 정부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라, 재앙 컨트롤타워라고.

눈감고 싶은 현실에 차라리 눈이 멀어버렸으면 하고 바랐을 여자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세상 천지에 홀로 눈 떠 있다는 것은 너무 잔인하다.

 

작가의 상상이 섬뜩하면서도 가능한 일이라 여겨져 소설 속 상황이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이런 재난, 재앙 설정은 늘 불편함을 안겨준다. 그래서 가장 꺼려하는 장르가 "재난", "테러" 를 다룬 이야기들이다.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가능하면 끝까지 도망치고 싶어지니까. 세상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커다란 그물처럼, 벗어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 깊이 빠져버리고 마는 늪처럼 아무런 탈출구가 없는 지옥에서 나가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할 터이다. 다리 힘이 다 빠져 주저앉게 되고 말 지라도 온 몸으로 기어서라도 희미한 빛줄기를 찾아 어떻게든 나가서 고통 뿐인 인생이지만 살아남고 싶은 마음을 가진 인간이니.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는 순간이 오면 그때서야 인간의 본성을 알 수 있다. 평소에는 꽁꽁 감춰왔던 더러운 욕망, 야비한 습성을 막다른 길에 쏟아내게 된다. 원하지 않아도 열어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때에 이성을 잃지 않고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자문해 본다. 나를 버릴 수 있는가. 나 이외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는가. 평화로운 시기에도 너를 인정하지 못해 물어뜯고 사는데 너 아니면 내가 죽는 때에 나를 놓을 수 있을까.

 

작가는 인간들이 사는 세상을 참혹하다 말하는 것 같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인간에게 인식을 불어넣는다. 똥밭을, 진흙탕 속을 걸어가는 것이 인간이라고. 하지만 끝내 함께 붙안고 가는 것이 유일하게 살아남는 길이라고. 당신과 함께가 아니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혼자 살아남는 것은 그저 한 마리 짐승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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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5-13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 꽤 재미있죠 ? 전 의외로 소설이 재미있어서 의아했었습니다. 보통 이런 소설들은 재미가 없기 마련인데 말이죠. 후속작인 눈 뜬 자들의 도시'는 전작에 비해서 재미가 좀 떨어져서 실망을 했습니다.

samadhi(眞我) 2014-05-13 23:27   좋아요 0 | URL
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고 싶어졌어요. 안그래도 눈뜬 자들의 도시는 재미없을 것 같아서 안 읽으려고 했어요. ㅋㅋㅋ
 
아웃 1 밀리언셀러 클럽 64
기리노 나쓰오 지음 / 황금가지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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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 작가 정말 대단하다. 너무너무너무 재밌어서 책을 펼쳐 들면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1~2권 통틀어 725쪽을 단숨에 읽어버렸다. 이래도 되는거냐고. 이렇게 이야기를 재미나게, 빨려들게 만들 수 있냐고. 날카로운 이야기꾼이다. 작가가 소설 속 주인공인 마사코와 닮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추리소설이나 미스테리 소설에 감동을 할 수도 있구나. 그 감동이란 작가에게서 느끼는 거지만 예술성도 담겨있다고 본다. 이런 장르의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를 좋아해 엄청나게 보면서도 범죄자의 심리를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작가는 그 심층을 파고든다. 그 심리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이 작품만으로 전작주의 작가로 정하게 됐다.

 

전에도 언급한 적 있지만 삶의 가장 밑바닥으로 내동댕이쳐져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서 절망만을 안고 살아가 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늙고 한물 간 창부가 어느 폐광촌에서 부르는 쓸쓸한 노래처럼, 통속소설이었던 『가시나무새』의 여주인공이 사랑을 잃고 자신을 내팽개쳐 버리듯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져버리고 싶은 마음. 어쩌면 그것이 유일한 구원이기라도 하듯 새로운 꿈을 꾼다. 이 소설에 나오는, 참을 수 없이 공허한 마사코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이육사의 시,「절정」 중,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는" 절벽 끝에 선 네 여자에게 곪아 터져서 결국 벌어지게 된 사건을 통해 각자의 현실과 사건에 대처하는 생각들을 풀어놓았다. 수중에 돈이 없어서 당장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그렇게라도 해야 살아갈 수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주류에서 놓여난 주변인들의 이야기. 치열하고 초라하고 쪼잔하고 그렇지만 또 그게 삶이고 어쨌든 살아가야 하는, 지지리도 궁상맞은 형편 속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인생들의 이야기이다.

 

야간에 서서 도시락 포장하는 풍경에 대한 묘사가 섬세하다. 그것을 다른 작업과 비교하는 부분 또한 절묘하다. 욕실에서 작업(?)하던 요시에와 마사코의 대화를 읽다가 갑자기 강제구 영화, [공공의적]에서 자상(刺傷)에 대해 자세하고 꼼꼼하게 설명하던 유해진과 이문식의 능청스러운 대사와 행동이 떠올라 쿡쿡 웃었다. 생활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대화가 이렇게 와닿다니. 어지간히 내공이 쌓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얘기다. 이야기 곳곳에서 작가의 내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럴 수 있다면 이 작가처럼 글을 쓰고 싶다. 책을 다 읽은 뒤에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잠이 오지 않는다. 두근거리는 가슴이 진정이 안 될 만큼 아주 진한 여운에 사로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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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4-15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 으하하하하하하하... 제가 이 소설 끝내준다고 했잖습니까.
저도 이거 한 큐에 그냥 다 읽었죠. 미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미 여사'보다는 기리노 나쓰오 여사가 전 좋더라고요. 약간 미친 똘끼 같은 게 이 작가에게는 있어요. ㅎㅎㅎㅎㅎ

samadhi(眞我) 2014-04-15 16:17   좋아요 0 | URL
작가가 멋진여자! 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미야베미유키와 자연스레 비교하게 되던데 미미여사보다 기리노 나쓰오, 막 사랑하게 될 것 같은 작가예요. 곰발님 말씀대로 그 똘끼가 굉장히 매력적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