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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아이 - 하 ㅣ 영원의 아이
덴도 아라타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레오 버스카글리아,『상처받은 자존심은 더 강해진다』를 참 좋아했었다. 한창 상담자가 되고자 꿈꾸었던 시기이기도 했었고, 모두가 똑같은 교복을 입고 아무에게도 존중받지 못하는 여고생이기도 해서 그 책이 위로가 되었다. 베티 아줌마와 닮았다는 소리를 듣지만 그래도 너는 너야. 하고 하찮은(?) 내 존재를 인정해 준 그 글귀가 힘이 되었다.
이 책을 읽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을 것 같다. 묵직한 것이 가슴을 짓눌러서 숨이 턱 막혀오니까. 1권이 잘 읽히지 않는 것은 곳곳에 복선이 깔리기는 하지만 확실한 이유가 드러나지 않아 답답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이유가, 주요 사건이, 이야기의 절정부분이라서 일찍 드러낼 수도 없음을 알기에 작가 탓을 할 수도 없고... 꽤 오랜 시간이 걸려 1권을 읽은 후 2권은 그야말로 눈깜짝 할 사이에 읽었다. 답답함과 묵직함이 턱끝까지 올라와 견디기 힘들지만, 읽지 않을 수가 없는 거다.
아득한 안개 속을 혼자서 헤매고 있는 것 같던 때 1년 동안 개인 상담을 받으며 한 인간에게 최초의 환경(가족)이 얼마나 중요한 지, 어쩌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물론 어려운 "가족사"를 극복하고 환경과 관계없이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도 많지만 죽을 때까지 가족이라는 질긴 고리는 심약한 우리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이승환의 "가족"이라는 노래의 가사에도 나오지 않는가. '가족이어도 할 수 없는 얘기, 따로 돌아누운 외로움이 슬프기만 해요, 아무 이유도 없는데...' 가족이어도 할 수 없다기 보다는 가족이어서 할 수 없는 게 아닐까. 가족은 그렇게, 하기 싫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숙제같다.
제목이 무척 어색하다고 생각했다. 역시나 일본식이라 와닿지 않는다. 영원의 아이라니. 일본식 "노(~의)"가 너무나 거슬렸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그 뜻은 알겠으나 여전히, 이렇게 제목을 붙일 수밖에 없었나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우리식 어법을 쓸 수는 없었나 싶어서.
덴도 아라타의 또다른 작품을 책이 아닌 드라마로 먼저 만났다. "가족 사냥". 이 이야기 또한 가족잔혹사? 라고 할 수 있겠다. [가족 사냥]도 [영원의 아이]도 내 추리는 틀렸지만. 이 책에서는 참을 수 없는 존재, 가족의 천근만근같은 무게감이 때로 자신을 옥죌 때, 특히나 어린 아이가 느끼는 순진무구한 죄책감을 그리고 있다. 버림받게 될까 두려워 조마조마한 작은 심장이 애처로워 가만히 어루만져 주고 싶다.
주인공과 비슷한 경험을 한 친구 생각이 나서 더 괴롭고 가슴이 아파왔다. 그 아이의 삶을 생각해보면 그토록 허무한 눈빛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그 아이의 무엇을 이해할 수 있을까. 너무나 어린아이에게, 한계치를 넘는 충격적 사건으로 빚어진 상처가 그리 쉽게 극복될 수 있겠냐고. 레오 버스카글리아의 말처럼, 상처받은 자존심이 더 강해질 수 있는가 의심스럽다.
어쨌든 살아가야 하니까, 죽지 않을 거라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늘 우리는 생존의 문제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살아가야 하는데, 과연 살아가도 되는지. 죽은 자를 뒤로 하고 살아갈 자격이 있는지 늘 묻게 된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지독히 무겁다. 지금같은 세상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결론은 버킹검, 늘 딴길로 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