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테라 - 박민규 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20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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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직장을 휴직하고 글을 쓰겠노라 선언하며 문예창작학과 대학원에 들어간 국문과 출신의 우리 시누이를 어제 만났다. 박민규, 『카스테라』중 마지막 단편을 꼭 읽어보라고 한다. 재미없어서 읽다가 포기한 책인데, 언니(우리는 형님, 올케로 부르지 않기로 했다. 물론 내가 옛날 버릇대로 편하게 "언니"라 부르겠다고 졸라댄 거지만)가 자기도 그랬다며 소설수업 교수가 "고시원 얘기의 끝판왕"이라고 했다고 꼭 읽어보라고 한다. 처음으로 책 한 권을 다 읽지도 않고 단편 하나만 읽고서 서평을 쓴다. 책에 실린 다른 단편 몇 개도 읽었을 텐데 도무지 기억에 없다.

 

짧은 분량의 단편인데-짧은 문장이나 문구를 넣어 사이사이 의도적으로 문단을 띄어놓아서 실제로는 더 짧은 분량일 것이다.- 읽는 데 오래 걸렸다. 상념이 자꾸만 끼어들어, 읽다가 쉬다가 한숨 쉬다가, 울다가 겨우 읽기를 마쳤다. 어차피 단편이라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박민규답게 이 속에 참을 수 없는 웃음을 넣어놓았다. 우는 와중에 웃음이 빼꼼히 들어온다. 그리곤 또 눈물을 훔치고 만다.

 

고시원 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울지 않을 수가 없을 거다. 더럽고 서럽고 외롭고 서글퍼 어깨를 들썩이며 온 몸을 덜덜 떨면서 엉엉 소리가 옆집, 아랫집에 들리지 않도록 주의하며 울었다. 조그맣게 훌쩍이기는 어렵다. 그렇게 만만한 감정이 아니기에. 내 감정선이 보통 사람들보다 과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전에 청강한 문창과 수업 중 소피아 로렌 주연의 "해바라기"를 보면서 내가 온 학교가 떠나가도록 엉엉 울어대던 통에 소리죽여 울던 사람들 마저 통곡(?)을 하며 울음바다를 만들었으니까. 장거리 연애 초기라 감정이 더 격해서 그랬던 것이지만, 이놈의(?) 수도꼭지는 살짝만 건드려도 콸콸 쏟아진다.

 

고시원 생활을 한 것은 아니지만 고시원 못지 않게 지독한 공간에서 살아 보았다.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조여들고 힘들고 무거운 기억이 나를 옥죄는 잔인한 그 겨울, 시린 그 땅에서 처절하게 내팽개쳐졌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책도 읽을 수 없고, 음악도 들을 수 없었던 끔찍한 기억이 되살아 났다. 헛된 바람 때문에 내 스스로 뛰어든 불지옥이었지만 그곳에서 견뎌내지 못한 스스로를 한동안 꽤나 자책하기도 했다. 그게 내게 더 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이후로도 그 못지 않은 공간에서 지낸 기억이 떠올라 박민규의 글이 한 자 한 자 와 박힌다. 우와, 이토록 정확하게 표현할 수가 있는가. 도입부의 "나는 한 마리의 달팽이처럼 느리고 끈적하게 생활정보지의 곳곳을 기어다녔다." 이 부분을 읽는데 전율이 돋았다. 지금 세대 청년백수들 누구나(?) 겪어봤을 일을 가장 적나라한 짐승(?)으로 묘사해내었구나.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가 생각나는 반지하 자취방에서 살던 시절로 어느새 달려가고 있다. 그런 집들은 어찌 그리 외풍이 센 지 칼바람이 살을 엔다.

 

이 책은 완벽하다. 단편집 전체가 훌륭하지 않지만 「갑을고시원 체류기」이 한 편 만으로 제 몫을 하고도 남는다. 손에 꼽을 만큼, 김영하의 단편집 못지 않게 좋구나, 좋아. 이 글 만으로도 박민규를 존경하게 됐어.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표절 논란을 차치하고-,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무척 좋아했지만 잠들지 못한 새벽에 이 단편이 내게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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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6-21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는 단편집입니다. 처음에는 뭐냐, 이런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다시 봅니다. 갑을고시원... 뭐, 압권이죠.

samadhi(眞我) 2015-06-21 13:11   좋아요 0 | URL
책을 잘 읽지 않지만 장식용으로 두길 원하는 친구네로 보내려다가 그래도 박민균데 하며 책장 한 구석에 두길 잘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