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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로 다시 시작하는 일본어 - 사진으로 일본어 생초보 탈출!
김현근 지음 / 주영사 / 2010년 12월
평점 :
대학 1학년 때 일본어가 교양필수였다. 그때만 해도 내 속에 일본에 대한 반감이 하늘을 찔러서(반일감정은 여전히 강하지만) 일본어는 물론이고, 일본문화도 거부하던 시기였다. 모든 만화, 영화, 소설을 섭렵(?)하던 내가 유독 일본 것만 조금도 손대지 않았으니 일본어가 얼마나 낯설었는지, 결국 일본어 수업의 학점은 C+였다. 글씨도 어렵고, 알파벳이라 부를 말들이 뭐 그리 복잡하고 머리 아픈지, 내겐 그저 이상하고 정이 가지 않는 언어였다.
대학 내내 그런 상태였다가 졸업 후 백수로 지내는 시기가 길어져서 일본 문화에 서서히 접근하기 시작했다. 먼저 만화부터 빠져들기 시작했다가 일본 드라마를 보면서부터 흥미가 생겼다. "타이거 앤 드래곤" 이라는 드라마를 보고나서 무작정 일본에 가서 라쿠고(落語)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본이라는 나라가 새롭고 대단하게 다가왔다. 마음 한 켠엔 그것마저 우리 민족의 피를 쪽쪽 빨아먹으며 만든 문화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기회가 있다면 꼭 라쿠고를 배워보고 싶다. 직접 공연을 보기라도 해봤으면 좋겠구나, 라구요.
동아리에서 탈춤을 배우며 "극(劇)"을 접하면서 극에 대한 관심이 극(極)에 달했던 때라서 라쿠고 라는 1인극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일본의 만담이 유명한 줄은 알았지만 2인 만담만 알고 있다가, 혼자서 여러 등장 인물을 연기하는 1인 만담가에게 홀딱 반해버렸다. 라쿠고의 이야기 자체도 상징성을 담고 있고 완곡어법을 써 가며 일화 속에 재미난 때론 아픈 유래를 담은 것이 가슴에 깊이 남았다. 그랬음에도 게을러서 일어 공부는 전혀 하지 않고 그냥 숱하게 보아 온 일본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말로 먼저 익혔다. 대충 알아듣고 따라 읽는 수준이 된 것이다. 듣기는 대충 되는데 문자를 보고 읽지는 못 하는 상태이다. 그렇지만 나와 같은 접근법이 어학 공부에는 꽤나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을 한다. 중학교 때부터 영어를 글로 배운 우리는 성인이 되어서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데, 말을 먼저 익혔더라면 되든 안 되든 영어권 사람들과 대화는 할 줄 알았을 게 아닌가.
나처럼 일본어에 자주 노출되어서 듣기가 익숙해진 사람에게 더할나위 없이 좋은 학습서이다. 일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아주 편안한 안내서가 되리라고 본다. 그동안 일본에 관한 책, 매체 등을 접하면서도 궁금하긴 했지만 아무도 속 시원히 가르쳐 준 적 없던 것들이 이 책에 아주 쉽게 설명되어 있다. 히라가나, 가타가나의 순서대로 하나하나 예를 들어 가며 적절한 사진을 실어놓고 도레미송처럼 그 발음과 유사하거나 같은 말을 풀어서 뜻을 알려준다. 도레미송은 영어공부에 매우 도움이 된다. 아이들에게 그 노래를 가르쳐주면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발음이 어려워도 신나게 따라 한다. 저절로 어학이 쏙쏙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노래는 아니지만 노래처럼 쉽다. 나도 모르게 발음해보고 어색해서 조금 쭈뼛하기도 하지만 반복해서 익히게 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일본식 도레미송인 셈이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그 속에 들어가야 알 수 있는 그 나라만의 특성-그 나라 사람의 속성같은 것-을 꼼꼼히 일러준다는 것이다. 손이 닿지 않는 등 가운데 윗부분을 긁어줘 속이 뻥 뚫리는 것 같다. 처음부터 이렇게 일어 공부를 시작했다면 여태 히라가나도 제대로 모르고 살지 않았을 텐데, 이 책을 읽으면서 향학열이 불타올라 일본어 펜글씨 교본을 꺼내들었다. 외국어는 이렇게 공부하는 거야. 라며 친절하고 쉽게 설명하는 멋진 과외 선생같다. 왜 과외냐고? 1:1이니까. 읽어보면 안다. 그러니까 조금 더 친밀한 느낌이 드는 책이다. 언젠가 내가 일어에 자신이 생긴다면 조금은 이 책 덕분이라 말 할 수도 있겠다. 일어공부를 늘 망설이고 미루어 왔던 사람에게 불끈 자극을 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