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분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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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일어나라, 너희,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는 자들이여"는 중국 국가 가사 중 일부분이라는데 국가 찬양이 주를 이루기 마련인 "국가"에 이런 가사라니, 정말 멋지다.

 

내 인생관과 닮은 소설. 나와 닮은 주인공. 언제나 내 안에는 세상을 향한 분노가 가득하다. 책의 첫부분부터 한국전 얘기가 나오며 흥미를 끌기 시작한다. 물론 책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아, 얘네들도 목숨걸고 싸우는 전쟁이었구나 싶지만 여전히 그들의 "원조"라는 이름 아래 뺏긴 자주, 주체와 그 외 수많은 것들이 한탄스럽다.

 

나처럼 삐딱한 젊은 아해가 아버지와 갈등하며-동아리 생활 하느라 날이면 날마다 술에 쩔고, 집에 안들어오고 공부는 뒷전이고......대학 내내 엄마랑 싸웠던 나와 어찌 그리 비슷한지. 주인공은 나와 달리 무척 착실하지만, 부모와 갈등하며 힘들어하는 것은 비슷하다.- 자신과 다른 또다른 청춘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또 채플이라는 구시대적 유물(1950년대 미국이 배경이니 지금도 국내 몇몇 대학은 그짓(?)을 계속하는 걸로 안다. 왜 저항하지 않는가! 중학교 때 미션스쿨에 다녔는데 필수로 듣던 성경과목 시간 중 목사랑 싸우는 바람에 전교에 소문이 쫙 퍼졌다. "아, 목사랑 싸운 애?" )에서 쉽게 놓여나지 못하는 상황이 그려지며 기득권을 대표하는 학장 앞에서 결국 폭발하고 만다. 학장과의 대화에 감정이입이 되면서 답답해 죽을 뻔 했다. 싸움신(?)이 강림한 듯 학장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다. 그런데 그 작은(울분을 토해내는) 사건 이후 "아주 작은 일, 아주 사소한 일이 정말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오지요" 라고 했던 주인공의 말이 복선이 되어 그토록 노심초사하던 아버지의 염려대로 결말이 내려지고 만다. 이 부분도 책이 좋아서 두 번 읽게 되면서 발견한 거다. 문장은 또 얼마나 멋진 지. 필립 로스라는 작가에게 빠져버렸다.

 

얼마 전 대학에 다니던 조카녀석과 시국(?)을 논하다가 시국선언 얘기도 하고, 니네 대학은 어쩌고 있냐고 묻고, 철도같은 대규모 자본이 들어가지만 전국민의 복지를 위해 반드시 국가가 운영해야 하는 공사는 민영화되면 안되는 이유 등등을 늘어놓았는데 그 뒤에 철도 민영화 뉴스가 터진다. 정말 천불이 난다. 조카녀석에게 "Angry Young Man" 이라고 분노하라고 충고했다. 난 도무지 철이 안들어 오늘도 화가 부글부글 끓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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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초콜릿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75
앤소니 버클리 콕스 지음, 손정원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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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일찍(어린 나이에) 읽었다면 혹시(글쎄?) "와 괜찮다, 재밌다" 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추리소설을 읽는 이유는 어쨌거나 뛰어난 "재미"에 있다. 물론 문학성도 본다. 『벌집에 키스하기』 같은 소설은 반전보다는 문학성이 뛰어나서 읽을 맛이 났다. 그런데 이 책은 아무런 '끌림'이 없다. 그냥 범죄학입문(?) 또는 추리입문(?) 등의 개론서 같은 느낌이다. 사건 해결에 관심이 많은 여러사람들의 추리를 종합해 진범을 알아내는 마지막 사람. 너무 뻔~해서 지겨워 죽을 뻔~했다. 정말이지 누구에게도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서평이 좋아서 구매한 책인데 정말 실패다. 신파, 전형, 상투 아무튼 지루하고 그저그런 극본으로 만든 한 편의 연극같다. 한 가지 딱 훌륭한 점은 추리과정을 낱낱이 밝혀내간다는 거다. 그렇지만 그것도 억지스러워 공감하기 힘들다. 


처음에 알라딘에서 구입했는데 곰팡이 냄새가 너무 심해서 반품했다가 영풍문고에서 재구매하고 다른 책 두 권은 반품하고 그 책들보다 상대적으로 냄새가 덜하다는 착각에 읽게 됐는데 읽을 때마다 찜찜한 곰팡이 냄새를 참아가며 이 책을 다 읽는 동안 손을 수십번은 씻어야 했다. 그리고 결국 재활용으로 버리고 말았고.(책을 버리는 일도 없었는데, 도서관에 기증하거나 친구에게 몽땅 주거나 해왔건만) 이제까지 수많은 책을 구매했지만 처음으로 책을 반품했는데 그것이 죄다 동서문화사책이라 보관도 문제지만 출판사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이렇게 냄새나는 책을 파는 서점을 이해해주기 어렵다. 도무지 상도가 없다. 손님보다 더 높은 줄 알아 연신 불러대는 "고갱님"에게 이래도 되는가. 편하게 손님이라 불렀으면 좋겠다. 언제부터가 비꼬듯(?) 부르는 고갱님이라는 이상한 호칭이 무척 거북하다. 처음에 책을 받았을 땐 냄새를 없애고자 통풍 잘되고 햇볕 잘드는 곳에 두어도 보았는데 도무지 해소가 안되는 거다. 알아보니 전문가들은 건식 알콜을 사용해 책곰팡이 냄새를 없애기도 한단다. 그것도 일본에서는... 그렇게 하더라는 글을 얼핏 본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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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트 특급살인 애거서 크리스티 추리문학 베스트 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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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만큼의 충격과 공포는 없었다. 통쾌한 복수극이라는 데서 오는 카타르시스 같은 게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고 조금 아쉬운 느낌이 있다. 피붙이들은 그렇다쳐도 또 전쟁에서 목숨을 구해준 것에 대한 보은도 그럴 수 있다지만 나머지 고용인들에게 목숨까지 걸 만한(범죄자가 된다는 건 인생을 저당잡히는 일도 되지 않을까. 범죄사실이 드러나면 얼마나 옥살이를 해야할지 모르는 일이니) 의리가 있었을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 부분이 가장 납득이 안갔다. 다만 그 많은 사람들이 "심판"의 뜻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도모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배심제도를 빗댄 의도적인 발상은 어떻게 보면 사회개혁적일 수도 있겠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의식도 깨어있구나. 어떻게 된 사람이 이렇게 완벽하냐고. 


사건을 일으키기 전에 모여서 얼마나 연기연습을 했을까 궁금하다. 그들 중 분명히 발연기하는 사람이 있을텐데 그건 어찌 대비하려고 했을지. 아, 강력한 연기지도자가 있어서 가능했겠다. 이 책은 그러고보니(이제야 생각해보니) 다분히 "극"적인 효과를 노렸구나. 처음부터 유명한 배우의 집안에서 일어난 일에서 착상해,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끌어내다니. 내가 "극"에 관심 많아 그런 요소가 무척 특징적이고 감각적이라고 칭찬해주고 싶다. 


그 많은 사람들이 의외의 벽(탐정)을 만나서 계획을 성공시키려 속이 시커멓게 탔을걸 상상하니 짠한 마음이 든다. "욕봤소, 다들"

끊임없이 모든 사람을, 모든 상황을 의심하고 탐구하는 추리의 과정은 철학, 과학과 닮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가설을 세워 관찰하고 실험해서 이론을 정립하는 과정 그 자체네. 또한 그 과정에서 느끼는 긴장감은 중독성을 불러일으킨다. 추리소설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는 까닭이다. 가끔 미치도록 추리소설을 읽고 싶다. 어릴 때 셜록 홈즈에게 반해 탐정을 꿈꾸기도 했었구나. 중학교 때, 꿈이 탐정이라는 아이의 얘기에 친구들이 웃을 때 속으로 '나도 탐정' 그러면서 움찔 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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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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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책장의 책들을 곧잘 하나하나 살펴보는 버릇이 있는데 제목이 뭐 이래? 하며 한 구석에 처박아 둔 책이다. 작가만 보고 이 책을 산거라서. 책을 읽다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은 제목이다. 영어라는 게 또 단순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참으로 다양한 표현법이 있는 우리말과 영어, 일어를 비교하다 보면 참 남의 나라 말은 단순하기도 하구나 느낄 때가 많다. 외국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 정도는 안다. 


마이클 코널리의 작품을 알게 모르게 접했던 것 같다. 별로 기억나지 않지만. 통속소설을 쓰는 작가이고 영화화된 소설이 많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 영화들도 몇 편 봤을텐데 가물가물한 것이 그다지 큰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은 다르다. 소설 속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다 중요하고 작가가 딴 길로 새는 게 아닌가 싶다가도 인물들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감탄하게 된다. 그래서 책을 읽다보면 등장인물들 모두가 반짝거린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나의 큰 사건이 다른 사건, 의뢰인들과 맞물려 있음을 발견하고 하나씩 추리해가는 과정이 뛰어나다. 이렇게 치밀하게 이야기를 엮을 수 있는 작가의 역량이 놀랍다. 역시 아무나 작가 하는 게 아니여. 


거물 의뢰인이 주인공인 속물 변호사와 처음 얘기를 나눌 때부터 딱 알아봤다. 어이쿠 이녀석 보통내기가 아니구나. 며칠동안 수면부족인 상태에서 반신욕을 한 뒤 자리에 누워 책을 읽다가 꾸벅꾸벅 졸았는데 한 10분쯤 졸았을까. 그냥 그대로 잠들었으면 좋았을걸. 주인공이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지가 못내 궁금해서 책을 덮고 자기가 아까워서 밤늦게까지 다 읽어버렸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도 이 작품에 가장 큰 공을 들였다고 했다. 단순히 가벼운 통속소설이라고 보기에 아까운 참 괜찮은 소설이다. 빤하지 않고 꽤 재미있다. 도입부가 조금 밋밋해 초반에는 이야기에 집중하기가 힘들지만 조금만 참고(?) 읽다보면 점점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된다. 


이 책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는 오노. 정말 별로다. 인물들의 특성을 하나도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 원작을 뛰어넘는 아니, 원작만큼 괜찮은 영상물이 참으로 드물다. 그러니 책을 읽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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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에 키스하기
조너선 캐럴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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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사두고 읽기를 미루다 이제야 읽었다. 제목이 영 께름칙했다. 팜므파탈류(?) 얘기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팜므파탈은 남녀 모두에게 불편한 존재인 듯하다. (일부?)남자들이야 백치미 대신 매력적이면서도 똑똑하기까지 한 여성이 부담스러울 테고 내겐 남성적인 시각에서 만들어 낸 것 같은 그 용어가 거슬린다. 농업발생으로 잉여생산물을 가지고 피터지게 싸우던 정복전쟁 이후 보통의 수컷은 자기들보다 똑똑한 암컷을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중세시대엔 그런 여자들을 마녀로 돌려세워 불태워 죽이기까지 하지 않았는가. 어느 시대, 어느 위치에서든 주도권 싸움은 치열하고 중요하다. 죽음을 불사(살해까지)하고 주도권을 얻으려는 일들은 지금까지도 계속된다. 연애 또한 더 사랑하는 사람이 성장하는 법이니까. 성장없는 연애가 무슨 의미인가. 단순히 화학반응 주고받기로 끝내는 아해들은 누나들한테 댐비지 말지니라.

 

문학성이 드러나는 추리소설이라 신선하고 운치있다. 단순히 미스테리를 파고드는 것 뿐이라면 그냥 시간죽이기 영화 한 편 같겠지만 소설 속 풍경이 아주 잘 그려질 만큼 작가가 글을 잘 다듬었다. 살인의 이유는 기대와 달리 시시하기 그지없지만 글 전체에 서정성이 녹아있어 읽을 맛이 난다. 주인공이 작가일 경우 조금 더 흥미롭다. 누구보다도 그 직업에 익숙한 작가가 작가이야기를 하는 것은 확실히 실감나게 마련이지. 미쿡드라마 캐슬(Castle) 주인공이 "Writer"라고 쓰인 방탄조끼를 입었을 때 얼마나 배꼽을 잡았는지.

 

딴지일보 편집장을 지낸 전력이 있는 역자의 번역이 매끄럽고 편안하다. 이 역자의 책을 또 읽었었구나. 최고의 추리소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빌 밸린저,『이와 손톱』도 이 사람이 번역했다.(이 책 참 좋아했는데 몇 년 전에 도서관에 기증해버리고는 아까워서 땅을 쳤네.) 번역은 이런 역자처럼 정말 책을 많이 읽어보고 글도 좀 쓸 줄 아는 사람이 해야 마땅하다.    

 

반전이나 손에 땀을 쥐는 긴장도는 떨어진다. 우리는 어쨌거나 치밀한 복수극에 끌리고 시원스럽게 복수를 해내는 주인공에게 심하게(?) 감정이입하게 마련인데 이 책은 그런 맛은 없다. 그래서 재미가 크지는 않지만 치명적인 독을 지닌 아름다운 생명체에게 끌렸던 사람이라면 그 느낌을 알거다. 얼굴값하는 것들은 자고로 신뢰하지 않는 난 도무지 공감하기 어렵지만. 아름다움은 위험을 무릅써야 얻을 수 있는 게 아닌가. 그게 껍데기 뿐일 때는 허탈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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