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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에 키스하기
조너선 캐럴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오래 전에 사두고 읽기를 미루다 이제야 읽었다. 제목이 영 께름칙했다. 팜므파탈류(?) 얘기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팜므파탈은 남녀 모두에게 불편한 존재인 듯하다. (일부?)남자들이야 백치미 대신 매력적이면서도 똑똑하기까지 한 여성이 부담스러울 테고 내겐 남성적인 시각에서 만들어 낸 것 같은 그 용어가 거슬린다. 농업발생으로 잉여생산물을 가지고 피터지게 싸우던 정복전쟁 이후 보통의 수컷은 자기들보다 똑똑한 암컷을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중세시대엔 그런 여자들을 마녀로 돌려세워 불태워 죽이기까지 하지 않았는가. 어느 시대, 어느 위치에서든 주도권 싸움은 치열하고 중요하다. 죽음을 불사(살해까지)하고 주도권을 얻으려는 일들은 지금까지도 계속된다. 연애 또한 더 사랑하는 사람이 성장하는 법이니까. 성장없는 연애가 무슨 의미인가. 단순히 화학반응 주고받기로 끝내는 아해들은 누나들한테 댐비지 말지니라.
문학성이 드러나는 추리소설이라 신선하고 운치있다. 단순히 미스테리를 파고드는 것 뿐이라면 그냥 시간죽이기 영화 한 편 같겠지만 소설 속 풍경이 아주 잘 그려질 만큼 작가가 글을 잘 다듬었다. 살인의 이유는 기대와 달리 시시하기 그지없지만 글 전체에 서정성이 녹아있어 읽을 맛이 난다. 주인공이 작가일 경우 조금 더 흥미롭다. 누구보다도 그 직업에 익숙한 작가가 작가이야기를 하는 것은 확실히 실감나게 마련이지. 미쿡드라마 캐슬(Castle) 주인공이 "Writer"라고 쓰인 방탄조끼를 입었을 때 얼마나 배꼽을 잡았는지.
딴지일보 편집장을 지낸 전력이 있는 역자의 번역이 매끄럽고 편안하다. 이 역자의 책을 또 읽었었구나. 최고의 추리소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빌 밸린저,『이와 손톱』도 이 사람이 번역했다.(이 책 참 좋아했는데 몇 년 전에 도서관에 기증해버리고는 아까워서 땅을 쳤네.) 번역은 이런 역자처럼 정말 책을 많이 읽어보고 글도 좀 쓸 줄 아는 사람이 해야 마땅하다.
반전이나 손에 땀을 쥐는 긴장도는 떨어진다. 우리는 어쨌거나 치밀한 복수극에 끌리고 시원스럽게 복수를 해내는 주인공에게 심하게(?) 감정이입하게 마련인데 이 책은 그런 맛은 없다. 그래서 재미가 크지는 않지만 치명적인 독을 지닌 아름다운 생명체에게 끌렸던 사람이라면 그 느낌을 알거다. 얼굴값하는 것들은 자고로 신뢰하지 않는 난 도무지 공감하기 어렵지만. 아름다움은 위험을 무릅써야 얻을 수 있는 게 아닌가. 그게 껍데기 뿐일 때는 허탈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