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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지방 - 보이지 않아서 더 위험한 ㅣ 건강총서 40
구도 가즈히코 지음, 김정환 옮김, 박용우 감수 / 동도원 / 2011년 4월
평점 :
한동안 잘 자다가 또다시 시작된 수면장애. 이번엔 좀 큰 놈이 와서 꽤 고전하고 있다. 눈을 감고 몇 시간을 누워있어도 잠들지 못한다. 남들은 책을 읽으면 잠이 잘 온다는데 난 책을 읽으면 눈이 더 말똥말똥해진다. 그랬는데 이 책 목차 가운데 하나가 눈에 띈다. 수면부족은 "지방축적의 원인" 그렇다. 내가 지금 돼지년(?)이 된 것은 이 놈의 불면 때문인 것이야. 하고 잠 탓을 해본다.
책 제목이 아.주. 적나라하다. 제목이 단순명료한 만큼 내용도 명쾌해서 팍팍 와닿는다. 한 글자 한 글자 모두 내게 비수가 되어 콕콕 박혔다. 정확한 제목은 "보이지 않아서 더 위험한" 내장지방 이다. 그런데 난 다 보인다. 불판에서 노릇노릇 지글지글 곱창이 익어갈 때 흐뭇하게 치어다보면서 내 내장이 저렇겠구나 생각한다. 살짝 끔찍해하면서도 아주 맛있게 잡솨. 또 닭요리를 할 때 닭의 몸 구석구석 덕지덕지 붙어있는 노오란 기름을 떼어내면서 "이 조그만 닭 몸뚱이에도 이렇게 많은데 내 속엔 얼마나 많은 지(기)름이 들어있을까?" 경악하며 허벅지를, 배를 꼬집으며 몸서리를 친다.
자기의 배둘레(가장 튀어나온 부분)를 재어보아서 내장지방형 비만인지 아닌지 쉽게 측정하는 법을 여러번 반복해 언급해서 안그래도 절망한 나를 충격과 공포에 빠지게 만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줄자로 몇 번이나 재봤는지 모른다. 아슬아슬하다. 내장지방이 쌓여 생기는 대사증후군의 원인은 무엇인지, 얼마나 위험한 지 목숨을 위협하는, 이름만 들어도 아찔한 병명을 소개하고 철저하게 분석한다. 그리고 분석에 그치지 않고 내장지방을 줄이는 식사치료법, 운동요법을 소개하고 규칙적으로 생활할 것을 촉구한다.
멀게만 느껴졌던 심혈관 질환이 잠을 못자면서 가슴 두근거림이 심했던 요며칠 내 문제로 성큼 다가왔다. 대학 때 자주 놀러가던 교수님방에 차 한잔 얻어 마시러 들렀다가 다른 교수님이 먼저 와 계셔서 하시는 말씀이, "동창회 가니까 애들이, 너 혈압이 얼마냐? 고 묻더라니까" 40대에는 친구끼리 혈압으로 안부를 묻는다는 얘기에 셋이서 껄껄껄 웃었건만 이젠 웃을 일이 아니라니까.
세계의 절반은 굶어 죽어 가고 절반은 배터져 죽는다. 현대인들은 먹을 것이 너무 많아 스스로의 몸을 고문하고 엄청난 양의 음식쓰레기를, 배설물을 쏟아낸다. 현대인의 고질병처럼 사회 전체에 만연한 아름답지(?) 못한 식습관(과식, 폭식, 야식...)과 운동부족, 과영양, 불규칙한 생활습관 문제를 꼬집으며 한 마디로 "밥은 묵고 댕이냐?" 하며 못먹고 살던 그 시절의 생활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 문방구 딸내미였던 소꿉친구가 고물상을 하는 우리집에 놀러와서 한번도 흰 쌀밥만 먹어 본 적 없이 늘 보리밥을 섞어먹던 우리집 밥을 먹다가 숟꾸락을 놓더니, 자기집은 쌀밥만 먹는다고 자랑질을 한다. 에잇, 나도 쌀밥 먹고 싶어! 조르다가 엄마한테 되지게 맞았다. 엄마들은 어쩜 그리도 현명하신지. 역시 엄마의 매는 옳다. 또 자기가 잘산다는 사실을 늘 떠벌리기 좋아했던 약방집 아이와 시골길에서 노상방뇨를 했는데 그 아이 왈, "난 영양가가 많은 음식을 먹어서 이렇게 오줌색이 노란거야." 물처럼 투명한 색깔의 오줌을 눴던 내 가난한 현실을 환기해주었다. 과영양 꼬마아가씨는 그때를 기억하고 있으려나. 이보게, 잡곡밥과 채소와 해산물을 즐겨먹으며 투명한 오줌을 누고 일부러 걸어다니는 생활이 지금 우리에겐 필요하다네.
뻔하지만 뻔하지만은 않은 내용이다. 내 상태가 위험(?)해서 더 긴장하고 새겨들은 건지 모르겠다.규칙에 대한 반발이 심해서 아무렇게나 무규칙하게 살아온 내가 잔뜩 분기탱천해져서는 규칙을 만들어내고 실행하는 맛을 느끼는 요즘이다. 영양을 고루 갖추어 정성껏 식사 준비를 하고 밥을 먹을 때에도 수행하는 기분으로 소중한 음식을 먹는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오늘도 꼭꼭 씹어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