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스치는 바람 2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윤동주는 쉽게 시를 썼는데 난 겨우 서평 쓰는 것도 어렵다. 생각이 두서없다 보니 문장은 더 뒤죽박죽이 된다. 책을 읽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셈이다. 그런 상태로 글을 쓰는 것이 부끄럽지만 읽었다는 기록을 남기려고 일부러 쓴다. 시간이 지나면 그 책을 읽었는지조차 가물거리기도 하니까.


군대간 조카에게 마커스 주삭, 『책도둑』을 보내주었는데 휴가 나온 아이가 그 책을 집에 두고 갔다. 마침 언니는 『책도둑』을, 나는 『별을 스치는 바람』을 읽기 시작했는데 『책도둑』과 『별을 스치는 바람』이 꽤나 비슷한 상황과 분위기를 띄고 있는 것이 공교롭다. 서울에서 책을 반납하지 않고 집에 돌아와 언니에게 반납기한 연장해 두었으니『책도둑』다 읽으면 『별을 스치는 바람』도 읽어보라 권했다. 『책도둑』이 히틀러 치하에서 죽음으로 내몰린 유태인들과 양심있는 독일인 이야기라면 『별을 스치는 바람』은 일제시대 고통받고 죽어간 조선인들과 양심있는 일본인 이야기이다.


책을 다 읽고 내처 영화, 〈동주〉도 보았다. 스기야마라는 인물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였을까. 소설에는 동주와 함께 자라고 일본으로 유학가고 같이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혀 비슷한 시기에 죽은 송몽규에 대한 언급이 없다. 최치수 라는 인물이 송몽규와 비슷하게 그려진다. 허구이기에 가능하겠지만 최치수만은 통쾌하게도 그 지옥을 벗어났다. 실제로 송몽규가 최치수와 같은 결말을 가졌다면 좋았겠지만 그것이 송몽규에게는 악몽이겠다. 윤동주 없이 혼자 살아남는다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일테니까. 


윤동주가 점점 기억을 잃고 난 뒤에 한번 더 소설 속에 인용된 「별헤는 밤」을 읽으니 그제야 그 시가 동주가 쓴 유서로 읽힌다. 동주가 자기 죽음을 예감한 듯해 가슴이 저리다. 그동안 이 시를 읽을 때 별다르게 느끼지 못한 것은 영화 속 송몽규와 비슷한 관점을 가져서이다. 무장독립투쟁이나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일제와 직접 싸우는 것만이 독립운동이라 여겼다. 지식인들이 민중을 교화 대상으로 여기고 계몽운동을 벌이는 것이 지식인들이 취해 있는 우월감이라 생각했다. 중학교 때 읽었는데도 심훈, 『상록수』같은 작품은 역겨울 정도였다. 식민지 상황이 아닌 지금 읽으면 불교 선(禪)이나 자연 속에서 찾은 삶이 깨달음을 주기도 하겠지만 당장 모두가 죽게 될 지도 모르는 판국에 현실도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자기들만 유유자적한' 청록파 시인들이 비겁하게 보였다. 그래서 일제와 직접 부딪치지 않았다 보았던 윤동주도, 그 시도 내겐 관심 밖이었다.


이 책을 통해 윤동주처럼 여리지만 단단하고, 부드럽지만 굳센 이들도 있다는 것을 보았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움직여야만 독립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책이 사람을, 삶을 바꾸고, 문학이 세상을 구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그린 작가 뜻이 이상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론 뭉클하다. 책을 읽다가 곳곳에서 무언가 콕콕 찌르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는데 역시나 이정명은 이정명이다. 시같은 단어와 문장들을 읽는 눈에 글자가 번져 시야가 흐리다. 이제는 「별헤는 밤」 제목만 들어도 눈물이 또륵 굴러 떨어진다. 이정명은 긴박하게 추리해나가는 전개를 통해 우리가 잘 아는 전형성을 가진 인물을 새롭고 뜻깊게 그려낸다. 그러니 이정명 작품을 좋아할 수밖에. 


'나' 라는 화자보다 스기야마라는 입체성 있는 인물에게 끌린다. 스기야마가 변해가는 과정이 스기야마 시선으로 더 많이 펼쳐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식민잔재로 숱한 문제들이 산적한 채 이 나라 구석구석이 병들어 있고 청산하지 못한 친일파들이 여전히 권력을 잡고 있지만 일본인들 잔학성에 치가 떨려 차라리 제국 후손이 아닌 식민지 후손인게 어쩌면 더 낫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 야만성이 그 후손들 유전자 속에 남아있을 것이라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끔찍하다. 우리가 피부로 느끼지 못할 뿐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 않나. 


책에 인용된 프랜시스 잠, 「그것은 무서운 일이었다」라는 시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인체 실험도구로 쓰인 조선인들을 얘기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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